§ 46화. 음지에서 양지로 (3)
신동원은 소파 상석에.
그리고 그 옆으로 나와 정다혜가 나란히 앉았다.
나는 곁눈질로 신동원의 인상을 유심히 살폈다.
이 정도 노골적인 시선이라면, 관상가가 사람의 관상을 알아내기 위한 눈빛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신동원을 사진으로만 봤을 땐 인상이 특히 사납다거나 특별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마주하니 딱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인상이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니란 것.
무표정을 짓고 있는 지금도.
남들에겐 그저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야 하는 무표정이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불편했다.
눈도 동그랗게 크면 보통 잘생겼다고 느껴져야 하는데 신동원의 눈동자는 남을 평가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도 한때 헌터 출신인데다가 집안 배경이 빵빵한 덕인지, 그의 나이 마흔 줄이란 것을 생각하자면 피부를 비롯한 몸 전체에서 소위 말하는 귀티가 좔좔 흘렀다.
그가 드디어 본격적인 대화를 위해 입을 뗐다.
“그러니까. 3년 전에 내가 그랬을 때.”
스스로도 굳이 꺼내고 싶지 않은 과거였는지, 당시 사건을 ‘그랬을 때’라며 두루뭉술하게 지칭했다.
“태강 길드 사건이라고 하시죠. 그게 서로한테 편할 것 같은데.”
“그래요, 좋네요. 태강 길드 사건. 아무튼, 그 사건 때… 나한테 서류를 몰래 놓고 간 사람이…….”
이제 나와 정다혜를 검지만으로 가리키며, 동그랗게 묶는 손짓을 보이며 이어 말했다.
“두 분이시라고?”
“네.”
“왜요? 나야 고마워할 일이긴 한데, 난 두 사람을 처음 보는데.”
자신이 가진 근본적인 궁금증부터 해결하려는 질문이었다.
난 슬쩍 정다혜의 표정을 살폈다.
협회장실을 털러 갈 때 보였던 의기양양함과 발랄함은 이미 사라졌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나와 신동원의 눈치만 보는 중이다.
이 상황에서 입을 제대로 열 수 있는 건 나 하나.
난 침착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특별히 본부장님을 좋아하거나, 잘 보이려는 생각은 아니었고요. 그냥 간단합니다.”
“간단?”
“네, 저희는 협회장을 비롯해 SF 길드의 강만식을 세상 누구보다 싫어해서요.”
“하, 하하……?”
내 답을 듣고, 헛웃음을 동반한 썩 유쾌하지 않은 웃음을 보였다.
그리곤 고개를 갸우뚱거리기까지.
만족스러운 답이 아니란 증거다.
“자, 그래요. 그건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3년이나 지난 지금 갑자기 저한테 나타난 이유는? 서류를 몰래 두고 간 뒤에 바로 나타날 수도 있었을 텐데?”
누가 기업인 아니랄까 봐.
계산하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게다가 은근슬쩍 대화를 나누면서 슬쩍 하대하는 듯한 어투까지 섞인 게, 꼭 내가 이 회사의 부하직원이 된 느낌이다.
“일종의 농사라고 해 생각해 주시죠.”
“농사?”
신동원의 특징.
내가 답하면, 그 답에 있는 핵심을 짚어서 되묻는 습관이 있단 걸 지금 알아차렸다.
계속된 대화 속에서 얻은 수확인 셈이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농사란 답에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보였다.
“이해가 안 되는 답인데?”
“씨를 오늘 뿌리면 내일 바로 벼가 익어 쌀이 나오나요? 오랜 기간이 걸리죠. 그것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엔 당장 본부장님의 도움이 필요 없어서 굳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입니다. 대신, 앞으로 도움이 필요할 것을 대비해 선행 하나 해 둔 거고요.”
“3년짜리 농사를 지으셨다?”
“뭐, 그런 셈이죠.”
“어쨌든 결론은 지금은 도움을 받을 일이 생겨서 요청하러 왔다는 뜻이네요? 3년 전 태강 길드 사건을 담보로.”
“그렇습니다.”
신동원은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없는 웃음을 흘렸다.
역시, 이것도 긍정적인 반응이 아니다.
손가락을 테이블에 까딱대던 그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한 뒤.
질문을 이었다.
사실 내게는 질문이라기보단 취조에 훨씬 가까운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저한테? 알다시피, 전 이미 헌터계와는 무관한 사람인데? 현역 헌터들이 훨씬 낫지 않나? 평범한 기업인으로 사는 나보다.”
세상이 언제부터 기업인이 평범한 사람이 됐던 걸까 싶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지 않던가?
그 부분은 신경 쓰지 않으며 침착하게 답을 이어갔다.
“그야 저희도 정상적인 헌터가 아니니까요.”
내 답이 꽤 흥미로웠는지, 그는 이번에 불편한 기색이 아닌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눈썹을 꿈틀거렸다.
“정상적인 헌터가 아니다? 그 뜻은……?”
“본부장님과 비슷한 상황이란 거죠.”
“나와 비슷한 상황이다라……. 그럼 두 분 상황이 어떤 상황이죠?”
“그거야…….”
내가 답하려고 한 그 순간, 신동원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곤 이어진 돌발행동.
얇은 바늘을 찾더니, 그대로 휴대폰 옆면에 찔러 넣었고, USIM 칩을 뺀 뒤에 그 화면을 내게 보여줬다.
[미등록 단말기]
휴대폰의 핵심은 USIM.
이것이 없으면 전화나 문자가 아예 되질 않는다.
지금 그 핵심을 빼 버린 신동원의 휴대폰은 분명 멀쩡히 작동은 하지만, 통신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 상태인가요, 아니면.”
신동원의 다음 행동이 이어졌다.
이번엔 휴대폰 전원을 아예 꺼 버려서 검은 상태의 액정만을 내게 보여주는 중이다.
“이 상태인가요? 아시다시피 난 이 상태잖아요?”
그의 답을 듣고, 이번엔 내가 어깨를 살짝 들썩이며 소리 없이 웃었다.
“비유가 참 재미있네요?”
신동원의 비유법.
휴대폰을 헌터 그 자체로 두고 보자면.
USIM을 뺀 상태는 단순히 통화나 문자가 되지 않을 뿐, 와이파이를 연결한다면 어플 정도는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정식으로 등록된 상태가 아니니 완벽한 휴대폰이라 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러나 전원을 아예 꺼 버리고 자신은 이 상황이라고 말하는 것.
정식 등록이 안 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휴대폰의 기능 일부도 아예 사용할 수 없는 상태를 뜻했다.
우리처럼 그저 협회가 모르는, 등록되지 않은 헌터가 아닌.
헌터인 티를 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차이가 있다.
“작동은 하는 상태죠. 저희는.”
“그래서 저를 찾아왔다? 어차피 현역 헌터들에게는 도움을 요청할 수 없으니까.”
“예.”
“그래요, 일단 들어나 봅시다.”
그렇게 나온 신동원의 답.
솔직히 조금 의외다.
설득 과정이 상당히 난해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너무 흔쾌히 받아들인 느낌이라서다.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내 표정을 읽은 신동원이 놓치지 않고 물었다.
“왜 그렇게 당황한 느낌이죠? 내가 수락할 줄 몰랐다는 것처럼?”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가는 느낌이라서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뭔지 아세요?”
“글쎄요. 그것까진 잘 모르겠네요.”
“노블리스 오블리주. 얼마나 멋있는 말입니까? 그리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아무나 실현할 수 없는 말 아닙니까?”
말에 씨가 있었다.
아무나 실현할 수 없다는 말이 와닿았기 때문이다.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
즉, 신동원은 지금 이렇게 말하는 중이다.
‘나 같은 고위층만 실현할 수 있는 특권.’이라고.
“받은 게 있으면 돌려주는 게 예의지. 단지 그거 때문이니까 말해 보시죠. 어째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까, 잠시만요.”
신동원은 옆에 놓인 전화기를 스피커 폰 상태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한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네, 본부장님.
“오늘 미팅 전부 취소하고. 차 좀 준비해 줘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 신동원의 표정은 어딘가 한결 가벼워 보였다.
그리고 나도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차피 준비하기까지 시간 조금 걸릴 것 같은데, 저희도 한가지 준비해도 되겠죠?”
“얼마든지요.”
난 곧장 정다혜에게 챙겨온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
“다혜야. 오는 길에 근처에 팬시점 있던 거 기억하지?”
“네.”
“거기 가서 이거 복사해 와.”
혹시 모를 일이니, 나도 보험은 필요하지 않은가?
서류를 건네받은 정다혜는 그대로 자신의 능력인 워프를 통해서 협회장실을 벗어났다.
“오호, 워프? 참 좋은 능력이죠. 전투력은 제로라고 할지라도, 활용 범위가 상당한 능력이니까. 아~주 유용하지. 간만에 향수를 느끼는군요.”
정다혜의 능력을 보고 신동원이 내린 총평이다.
그래도 한때 길드장이라는 자리에 있었던 자였기에 그런지, 일반인처럼 신기한 반응이 아닌, 평가하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복사는 왜……?”
“이제 알게 될 겁니다.”
***
오후 3시가 조금 넘었을 때, 강만식은 협회장실에 도착했다.
하루 중 온도가 가장 높은 시간이 오후 2~3시라고 하더니.
그런데 온도가 가장 높은 것은 날씨도 아닌, 최현민의 상태였다.
‘무슨 일이길래 저 양반이 저런 표정이야.’
이젠 표정만 봐도 그의 심리 상태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강만식은 불안감과 귀찮음이 함께 왔다.
“이리 와서 이거 봐 봐.”
최현민은 그제야 자신의 다리 밑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용히 다가가서 확인하니, 그의 금고가 활짝 열려 있는 상태였다.
열린 금고.
이것만 보고 강만식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응. 3년 전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났어. 도대체 자넨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건가?”
급기야 이젠 이 모든 일의 원흉을 강만식에게 책임 전가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것보다, 사라진 서류는요?”
“중국 협회 비문.”
“환장하겠네…….”
“놈들이 그 서류를 가져가서 어디에 쓸지 모르지만, 유출된 것 자체가 큰일이야. 당장 회수해야 해. 그리고.”
최현민은 강만식을 손가락질하며 이어 말했다.
“용의자는 이지은 길드장과 내통하는 녀석이라고 추측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헛다리 짚는 게 아니냔 뜻이지. 그 당시 이지은 길드장은 해외 원정 나간 상태인데. 그게 어떻게 가능해.”
“그래서 더더욱 이지은이 의심스러운 거죠. 왜 하필 자리를 비우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졌겠어요? 그리고 이번에도 이지은이 자리를 비우니까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이 정황만 보더라도 강만식은 이런 짓을 벌인 게 이지은과 관련이 있다고 확신했다.
“3년이나 지났는데도 못 잡고, 오히려 또 당했어. 이런 일이 반복되는데, 내가 자네를 어떻게 믿나?”
“그건 아니죠. 협회장님이야말로 보안 소홀히 한 책임이 있는데 무조건 제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요?”
“…….”
“그렇지 않아도 올라오는 길에 박우민에게 보고 들었습니다. 이지은과 내통하는 자들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고 하더군요.”
이미 차에서 박우민에게 보고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자 최현민의 얼굴엔 화색이 돋았다.
“뭐?! 3년 동안 못 찾았던 녀석을 드디어?”
“예, 그런데 거처만 알아냈을 뿐, 정확한 인원과 신상은 아직 모른답니다.”
“그 거처를 쑤시면 되잖아?”
“내통자 중에 하나가 하필이면 워프 능력자라서 신중히 행동해야 하는 모양입니다.”
“워프……. 그래, 그러니까 복도에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상태로 내 금고가 털렸지. 이제야 이해가 되네.”
이미 복도 CCTV도 확인한 뒤였기에, 최현민도 이해가 빨랐다.
“그래서 지금 그 거처는 어떻게 하고 있지?”
“일단 제 길드 소속 헌터들이 잠복 중이랍니다.”
“허허, 일 처리 정말 답답하게 하네. 자네는 내 직속 관리부장이기도 하잖아? 관리부원들 풀면 될 것을 뭘 그렇게 답답하게 해?”
“말씀드렸다시피 워프 능력자 하나가 껴 있어서요.”
“자네가 데리고 간 그 꼬맹이. 그 녀석은 워프 능력자가 있어도 역추적할 수 있잖아? 관리부는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준 건데 왜 썩히지? 그 꼬맹이 데리고 와서 당장 역추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