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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44화 (44/200)

§ 44화. 음지에서 양지로 (1)

“순수하단 게……?”

나이대는 서류 속에 적힌 어린이들과 비슷하지만, 정다훈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흑염룡은 이 차이로 인해 순수하고, 그렇지 않음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보였다.

[던전 속 몬스터들도 알아. 들어온 인간이 헌터인지 아닌지 그냥 보면 안다고.]

“그럼, 만약에. 정다훈이 던전에 혼자 들어가게 되면?”

[몬스터들이 바로 반응하지.]

“…….”

“뭐래요?”

내가 갑자기 말이 없는 것을 보고 정다혜는 심각한 이야기 중이란 걸 눈치껏 알았다.

하지만 이걸 그대로 말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일단은 애써 무시했다.

[그런데 어차피 던전은 이제 없잖아. 그나마 다행이네. 그 꼬맹이가 위험한 상황에 처할 일은 없으니까.]

이 세상에 던전이 없다는 것은 여기 모인 우리와 이지은만 아는 사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협회장이나 강만식은 던전이 어딘가에 있다고 믿고 행동에 나선 사람들.

즉, 어떻게든 던전을 찾아내겠단 일념으로 진행한 것이다.

따라서 던전을 찾았을 때, 무조건 정다훈을 혼자 들여보낼 생각인 건 확실하다.

왜 이런 결단을 내렸는지, 난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내가 SF 길드에 근무할 당시.

레이드 일정이 잡히면, 길드 내부는 레이드에 나설 헌터를 선별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물론, 그 결정은 전적으로 길드장이 하지만, 길드가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여파는 고스란히 일반인 직원들에게도 넘어간다.

대표적으로 나 같은 경우에도 휴가 중이었던 헌터가 휴가를 반납하고 복귀하는 일로, 헌터의 휴가 일수를 다시 맞춰 놓는 등등.

행정적으로나 실무적으로나 레이드 일정이 예정되어 있으면 헌터, 일반인 직원 전부가 신경이 곤두선 나날을 보내야 했다.

길드 단위에서도 그 정도인데, 길드를 모두 총괄하는 협회는 오죽할까?

게다가 이번 프로젝트는 극비에 진행되는 프로젝트.

조용히 던전을 찾고, 조용히 초월석만 회수하는 게 그들의 목표다.

그때 마침 중국 협회 비문을 손에 넣게 되었고, 비문 내용이 사실이라면, 굳이 레이드에 나설 헌터를 선발하지 않아도 되니까 바빠질 일도 없다.

협회장은 그것을 기대하고 정다훈을 상대로 실험하겠단 생각이다.

“왜 그렇게 말이 없어요……?”

여전히 불안한 정다혜가 집요하게 물었다.

“잠깐 생각 좀 하느라.”

그들의 계획까지 알아차린 지금, 난 이제 어떡해야 할까?

아지트라고 생각한 이지은의 건물도 이미 SF 길드가 포위한 상태.

언제 그들에게 우리가 들켜도 이상하지 않다.

시간은 이미 많이 지났다.

이렇게 숨어지내는 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음지에 있던 내가 슬슬 양지로 나아가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비록, 이지은이 당부했던 내 힘을 완벽히 길러야 한다는 시점이 도달하진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은 움직여야만 했다.

난 서류 끝자락만 만지작거렸다.

‘이게 가장 걸리는데…….’

다른 건 몰라도 정다훈과 강만식에게 얽힌 문제 때문이다.

정다훈이 어떤 능력을 가져서 강만식이 데리고 가 실종 처리까지 한 걸까.

그리고 강만식은 그런 정다훈을 가지고 있으면 얻는 이점이 무엇일까.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다음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만식이 정다훈을 데리고 있으면 얻는 이점이 분명히 있다면.

그 이점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고, 동시에 정다훈이 나를 끝까지 믿게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생겨난 순간이다.

‘그 방법밖에 없어. 두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생각을 마친 나는, 정다혜를 부담스러울 정도로 쳐다봤다.

“왜 그래요?”

“다혜야. 제안 하나가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납득 하기 힘들 제안일 것 같아. 근데, 그래도 해야겠어.”

“뭐길래……?”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말끝을 흐렸다.

“다훈이를 조금 이용해 봐야 할 것 같아.”

난 더듬거리지도 않고 딱 잘라서 말했다.

그 직후.

신보미가 나서서 버럭 화를 냈다.

“그게 무슨 미친 소리예요?!”

***

박우민은 전화를 통해 이지은의 건물에 보낸 SF 길드 헌터에게 상황을 물었다.

“어떻게 됐어?”

-우리가 노점상도 아니고. 아침부터 와서 여태껏 밖에 있었는데 건물 드나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헌터의 답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상당히 불만스러웠으며, 이런 일을 내가 왜 해야 하냐는 불평도 노골적으로 섞였다.

다른 곳에 가면 특급 대우받는 S급이 졸지에 길거리를 서성이는 고양이 처지가 되고 말았으니, 충분히 그 불만을 납득할 수 있었다.

“다 만식이 형님 도와주는 일이니까 조금만 참아주지?”

-어쨌든. 아침부터 있었는데 사람 그림자도 안 보여.

박우민은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덧 오후 1시가 넘은 상태다.

“밥들은 먹었냐?”

-먹었을 리가 있냐?

“일단 교대로 먹으면서 지켜봐. 분명히 거기 최소 3명 이상이고, 랭크는 A급 이상인 헌터가 있을 거라고.”

-하아…… 짜증 나네. 정확히 네가 원하는 게 뭐야? 저 건물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그걸 확인하고 싶은 거 아냐?

“그렇지? 그놈들 얼굴이랑 이름까지 알아내야 하니까.”

-그럼 그냥 문 부수고 들어가면 되는 거 아냐? 어차피 이지은 똘마니들이라며. 만식이 형님이 알아서 다 커버해 주겠지.

“나도 그 생각 안 한 거 아냐. 그리고 나도 놈들한테 당했어. 세 놈 중 하나는 워프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너희가 부수고 들어간 순간 도망치면 끝이란 거지.”

박우민이 원하는 것은 이지은 내통자의 정확한 이름과 얼굴.

안에 사람의 흔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파악하는 건 이미 끝났기에 정확히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잡아 오는 것이 남았다.

-그럼 더더욱 우리가 이렇게 밖에 있는 것도 답이 없잖아? 워프 능력자라며? 집 안에 박혀서 워프로 움직이면 그만인데 왜 밖에서 대기하고 있어.

“놈들이 모일 곳은 거기밖에 없을 거니까. 대신 사람 기척 느껴지면 바로 덮쳐. 우리가 노릴 건 그거 하나다.”

-쯧, 일단 알았다.

상대 헌터는 마지막까지 잔뜩 불만스러운 반응으로 전화를 끊었다.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방법… 뭐 없나……. 하필이면 워프 능력자가 있어서 내가 생각하기에도 잠복은 정말 의미가 없을 수 있는데.”

답답하긴 박우민도 마찬가지다.

***

난 정다혜에게 솔직한 내 생각을 말했다.

그러자 펄쩍 뛰는 것은 이번에도 신보미다.

아무래도 둘이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기에, 정말 친동생처럼 여겨 나온 행동이었다.

“미쳤어요?! 지은 언니 있는 곳 근처로 가서, 게이트를 만들고. 강만식이 진짜 다훈이를 혼자 밀어 넣는지 어떤지 지켜보자고요?!”

내 계획의 정체다.

하지만 난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은신 상태로 바로 뒤에 붙을 거야. 다훈이가 다치지 않도록.”

“아무리 그래도! 지금 오빠도 완벽한 상태 아니잖아요! 다훈이 고작 11살이라고요! 애 생각은 안 해요?”

“확실히 알아야 한다니까? 분명히 강만식이 다훈이를 실종 처리하면서까지 데려간 건 다훈이의 능력 때문이라고. 혼자 무서운 상황에 처하면 자신의 능력이 나올 거 아냐? 그것만 확인하자고. 그 뒤엔 내가 바로 데리고 나올 테니까.”

“어쨌든 몬스터한테 공격당하길 기다리겠단 뜻이잖아요!”

내 의견과 신보미의 의견이 불협화음을 내며 삐그덕 댔다.

이 혼란한 상황 속에서 정다혜는 침묵을 지키던 중.

“해요.”

“…응? 다혜야, 뭐라고? 하라니?”

제일 놀란 건 신보미였다.

“그렇게 하자고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 동생이잖아…? 네가 그토록 찾고 싶어 했던 그 동생! 그런데 위험에 처할 상황을 만들겠다고?”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오히려 이제 정다혜가 신보미를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무슨 생각으로 허락한 걸까?]

당연히, 흑염룡도 그녀의 결정이 궁금했다.

나도 같은 마음이기에 잠시 침묵 상태로 돌아가, 정다혜의 설명을 같이 들었다.

“저도 궁금했어요. 도대체 뭐 때문에 실종 처리를 하면서까지 데리고 간 걸까. 그리고 강만식 밑에 있으면서 뭘 했는지. 알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강만식과 떼어 놔야 해요. 강만식이 다훈이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한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희에게 올 거잖아요.”

정다혜도 나와 생각이 비슷했다.

일단 당장 보고 싶은 동생은 맞지만, 전후 사정 다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서렸다.

“아무리 그래도……. 꼭 던전 안에 혼자 보내는 일이 필요하냐고…….”

“어차피 던전 못 찾으면 지은이 언니 안 돌아와요. 우리에겐 지은이 언니도 필요하니까 던전은 필요하죠.”

이제 정다혜는 나를 쳐다보고 물었다.

“던전을 언니가 있는 곳 근처로 가서 만들겠단 생각은, 그 던전에 있는 초월석은 그냥 뺏기겠단 거죠? 강만식한테.”

“응.”

[…뭐? 야! 약속이 다르잖아!]

내 답에 흑열룡이 분개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난 설득의 과정 없이, 흑염룡에게 잔인할 정도로 딱 잘라 말했다.

“명령이야. 이번 건 그냥 쓴다.”

주인이 명령을 내리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정령 흑염룡.

주먹을 꽉 쥐고, 턱이 진동할 정도로 어금니를 꽉 물며, 답했다.

[명령이니까 따르겠지만 앞으로도 이런 명령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감정 주체 못 할 만큼 화나면 어떻게 될지 너도 예상하고 있을 거니까.]

“알아.”

어차피 흑염룡이 반대한다고 해도, 이지은의 근처로 가서 만드는 게이트는 무조건 바로 없애야 한다.

왜냐, 역시 이번에도 장소가 문제다.

지금처럼 우리 아지트에 펼쳐 놓은 게 아닌, 길가에 게이트를 만드는 것과 똑같기 때문에 당장 없애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얘기도 없이 상황에 닥쳐 멋대로 하는 것보다, 미리 이렇게 마음의 준비라도 시키는 편이 훨씬 낫다.

이제 흑염룡에게선 시선을 떼고 신보미와 정다혜에게 말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신보미를 쳐다보며 말했다.

“자, 그 전에. 한 가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뭔데요?”

“보미 너는 이 서류 속 내용을 지은 씨한테 전부 전해. 그리고 우리의 계획까지도 다 알려주고.”

“네, 그거야 뭐 어렵지 않으니까. 지금 당장도 할 수 있는 거고.”

“보미 너는 그것만 하면 되고.”

이제 정다혜를 쳐다봤다.

“다혜 너는 나랑 이 일 시작하기 전에 마쳐 놓을 게 있는데.”

협회장실에서 훔친 서류를 보면서 잡힌 계획이 있다.

지금 내 상태로는 이지은이 염두에 둔, 협회장에게 무력으로서 먹힐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내 힘이 완벽해지길 기다릴 수 있는 여유도 없는 상황.

그런 걱정을 하던 중에, 문득 떠오른 한 인물이 있다.

내 힘이 약한 지금, 든든한 내 뒷배경이 되어 줄 수 있는 적합한 인물이 분명히 존재했다.

“신동원 씨. 어디서 뭐 하는지 알고 있나, 혹시?”

“신동원이면…….”

정다혜는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되물었다.

“전 태강 길드장이요?!”

“응. 그 양반 상황도 협회장처럼 빠삭하게 알고 있어?”

신동원이 바로 그 인물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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