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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43화 (43/200)

§ 43화. 두더지들의 급습 (4)

신보미와 정다혜는 잠시 안에 두고, 나만 복도로 나왔다.

[밑 작업이라고 그러니까 되게 담대하게 보이네? 밖에 있는 헌터 무시한다고는 했지만, 그건 그냥 애들 안심시키려고 한 거야?]

은근히 흑염룡이 기대하는 눈치다.

“아니. 진짜로 무시할 생각인데?”

[그런데 밑 작업이란 말을 왜 해?]

“말 그대로 밑 작업이 필요하니까.”

내 답에 흑염룡은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내가 말하는 밑 작업의 정체는 특별한 것도 없다.

복도에 나온 뒤, 일단 이 건물의 최상층인 5층으로 올라갔다.

이 5층엔 게이트 5개가 펼쳐져 있어, 나도 새로운 게이트를 만들 목적이 아니라면 근처에 얼씬도 안 하는 곳이다.

하지만 5층에 도착한 난 게이트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간 게 아닌, 출입문에다가 은신 능력을 씌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출입문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벽만 남게 되었다.

[뭐해? 왜 굳이 입구를 지워?]

“혹시 모르잖아. 밖에 있는 헌터들이 만에 하나 이곳에 멋대로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뒤에 강만식이라는 든든한 뒷배경을 둔 녀석들인데 그런 강경한 선택 하나 못할까.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니, 그 사태를 대비한 것뿐이다.

그런데 그 안에 SF 길드 근무 당시, 친하게 지냈던 임재형이 있는 건 조금 의외다.

이건 차차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S급 둘에 C급 하나 조합은 내가 봐도 너무나 이질감이 드는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재형의 능력이라곤 신체 강화가 전부.

어제 박우민을 쫓아내고, 박우민이 보냈다고 치면 자신이 믿는 실력을 가진 헌터를 보내는 것이 당연한 순리다.

그런 리스트에 내가 생각하기에도 의문이 드는 임재형이 껴 있다?

확실하게 정상적인 현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난 그렇게 5층을 시작으로, 1층까지 전부 출입문을 은신 능력으로 가려두고 신보미와 정다혜가 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정다혜는 이미 포털을 열어두고 나를 기다리던 중이다.

“밑 작업은 끝났어요? 금방 돌아오시네.”

“간단한 거였으니까.”

아직도 둘은 내가 어떤 밑 작업을 해 놨는지 모르는 중이다.

나도 방에 들어와서 출입문을 바라보니, 방 안에서 출입문을 볼 땐 출입문이 훤히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은신으로 가린 출입문 표면은 복도에서 볼 때의 출입문이니, 방 안에서 볼 땐 그대로 남은 것이었다.

“자, 일단 자리 좀 옮기자.”

우린 그대로 정다혜가 열어둔 포털을 타고 임시 피난처 정다혜의 집으로 향했다.

***

“잘 해 놓고 사네…….”

1초 만에 도착한 정다혜의 집.

집의 상황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다.

그렇게 작지도, 크지도 않은 적당한 원룸이다.

정말 말 그대로 혼자 살기 좋은 형태였다.

난잡하게 가구들이 전부 들어선 것도 아니고, 정말 생활에 딱 필요한 수준만 있는 정도라 분명히 적당한 크기의 원룸일 텐데 훨씬 커 보였다.

“지금 집구경 할 때에요?”

한편, 신보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정다혜의 집에 있는 식탁을 가리켰다.

“앉아요. 이거 때문에 잠깐 여기로 온 거잖아요.”

“네 집도 아니면서 네 집처럼 행동한다?”

“그야 전 자주 왔으니까.”

하긴, 둘이 꼭 붙어 다닌 세월이 있는데 집 정도야 자주 들락날락거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우리 셋은 식탁에 협회장실에서 훔쳐 온 서류를 펴고, 본격적인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신보미도 그제야 서류 속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던 순간이기도 했다.

“설마… 그렇게 철저하게 숨긴 다훈이를 남에게 보여준 이유가 이거 때문이야……?”

나와 같은 생각이 먼저 든 모습이다.

누가 보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생각할 것이다.

필요 이상의 조치인 실종 처리를 하면서까지 철저하게 숨겼던 정다훈이란 존재를.

이지은에게 쉽게 노출한 점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이유가 바로 이 서류 속 내용이라고 확신하는 중이다.

난 흑염룡에게 물었다.

“어이, 흑염룡. 너 아까 분명히 이런 일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했잖아?”

이 문제에 대해 파고들려고 한 순간, 협회장이 갑자기 돌아왔고, 대피한 내 집에서는 또 SF 길드 헌터들 때문에 타이밍을 놓쳤다.

[그랬지.]

“그것 좀 자세히 설명해 봐. 아예 불가능한 일이 아니란 건 또 무슨 말이야?”

본격적으로 던전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니, 신보미와 정다혜는 나에게 집중했다.

그들의 눈엔 난 그저 허공에 대고 얘기하는 미친 사람으로 보이지만, 내 옆에 흑염룡이 있다는 것도 알고, 흑염룡은 또 던전의 주인이란 것도 알기에.

다른 인간은 파헤칠 수 없는 진실을 유일하게 확실히 알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아서 나온 행동이다.

[그러니까……. 아예 불가능한 일이 아니란 뜻은. 우리가 애초에 키스톤을 인간계로 보낸 건 인간들과 싸우기 위함이 아니잖아?]

“그렇지. 크루즈로부터 키스톤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했으니까.”

[우리도 키스톤을 인간계로 보낼 때 아무런 생각 없이 보낸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어린이에겐 몬스터가 반응하지 않는 이유가 뭔데? 넌 정확히 알 거 아니야. 정령들의 왕과 다름이 없는데.”

“…왕이었어?”

이 사실은 신보미와 정다혜도 오늘 처음 듣는 거다.

한창 흑염룡과 대화하던 중, 둘은 꽤 충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령일뿐더러, 나와는 늘 유치한 말장난을 한다고 생각해 그 정도로 높은 신분의 정령일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키스톤에는 등급이 있다는 거 알잖아.]

“알지.”

[던전은 키스톤 보관소 개념이란 것도 잘 알고 있고.]

“두 번 말하면 입 아프지.”

[던전 안에 있는 키스톤의 등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인간들은 더더욱 찾기 힘들어져. 네가 가진 능력인 은신은 덤이고, 보통 인간의 손은 물론, 눈도 잘 닿지 않는 곳에 있으니까.]

흑염룡의 말에.

던전 완전 정복의 기쁨을 전하던 그 뉴스가 생각났다.

남극에 있었던 그 던전.

정확한 위치는 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인 크레바스.

그 속에 마지막 던전이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 크레바스 속으로 뛰어들 생각을 누가 하던가?

그건 자살에 지나지 않는다.

그와 같이, 높은 등급의 초월석이 있는 던전일 수록, 이지은과 같은 감지 능력 헌터가 없이는 절대 찾을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반대로 낮은 등급의 키스톤을 가진 던전이라면.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어. 헌터가 아닌, 평범한 인간이 우연히 들어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겉으로 보기에도 게이트라는 걸 알 수 있는데도, 들어갈 수가 있다고?”

[아니야. 등급이 가장 낮은 던전의 경우엔 보통 동굴이나 지하 하수도 같은 음침한 곳에 많이 생성돼.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본래 인간계에 있던 하나의 장소 그 자체가 던전으로 변한다고 보면 되는 거야.]

“그 뜻은…… 게이트라는 입구의 개념이 없다는 거야? 최저 등급의 던전이라면.”

[맞아!]

흑염룡의 말대로라면, 동굴로 가정하자.

평상시에는 아무런 특이점이 없는 동굴인데, 그 동굴 속에 던전이 생겨나면, 게이트와 같은 던전 입구는 없다는 뜻이다.

즉, 평소 그 동굴을 자주 드나들던 사람은 여느 때와 같이 그저 동굴을 갔을 뿐인데, 어느 순간 동굴은 던전으로 변했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던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난 서류의 내용을 다시 살폈다.

중국 협회 비문이라 불리는 이 서류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단 것을 깨달았다.

“전부 중국 오지에서 일어난 일들이네……?”

단 한 건도.

중국 도심에서 발견했다는 소리는 없다.

더군다나 중국은 땅이 넓기로도 유명하다.

한 나라에 사막과 만년설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땅.

그게 중국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야 국토 면적이 좁기 때문에 많은 면적이 다 도시이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

“그럼 여기 적힌 일화들이 실제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뿐이지?”

[응.]

“어린이에게 반응하지 않은 이유는?”

[헌터가 아닌 인간이 던전에 우연히 흘러 들어갈 정도면 최저 등급의 키스톤을 품은 던전. 우리도 우연히 힘없는 인간이 던전 안에 들어갈 수 있단 가능성은 충분히 인지했어.]

“그러니까 어린이에게 반응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가 뭐냐고.”

[최저 등급 던전 속에 있는 몬스터들에겐 일종의 조건이 걸려 있었으니까.]

“어떤 조건?”

[던전 속에 들어온 인간이 힘이 없는 순수한 인간이라면. 반응하지 않도록 설계되었지. 처음부터 우린 인간들과 싸울 생각이 아니었으니까.]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그렇게 되면 너희들이 소중히 여기는 키스톤은 결국 헌납하게 되는 꼴이잖아?”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에 그 부분을 지적했다.

[별수 없잖아. 그래서 우리가 내린 결단이었거든. 어차피 최저 등급의 키스톤이니까 그 정돈 포기할 수 있다. 그것마저 지키려고 들어오는 모든 인간을 쫓아낼 용도로 몬스터를 풀어 버리면, 우린 인간까지 적으로 돌리게 되는 거니까. 그러고 싶지 않았어.]

가뜩이나 크루즈와의 전쟁도 끝나지 않고, 패색이 짙어져 인간계로 피신 온 시오스들.

그래서 최저 등급의 키스톤은 버린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설계를 해 놨단 뜻이다.

“하지만 너희 계획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네? 결국, 인간을 적으로 돌렸잖아.”

인간이 던전의 존재를 알고, 그 던전 속에 있는 몬스터를 제압할 수 있는 새로운 인류 유형인 헌터의 등장.

그 뒤로 재앙이라 불리는 던전을 속히 없애기 위해 헌터들이 모여, 체계와 조직을 설립했다.

[완벽한 우리의 계산 실수야. 그렇게 빨리 키스톤의 영향을 받아 헌터가 되는 인간들이 나타날 줄 몰랐으니까.]

하긴, 거기까지 예측할 수 있을 정도면 애초에 크루즈와의 전쟁에서 열세로 접어들 일도 없었을 거다.

“그럼 인간 어린이에 한해서는 최저 등급의 던전 몬스터는 반응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는 건 사실이지?”

[응.]

“그 어린이의 범주는 어디까지지? 나이라던가 그런 기준이 있을 거 아냐.”

[정확한 기준은 정하지 않았지만, 초등학생 저학년 정도. 겉보기에도 어리고 순수하다고 판단되는 나이대.]

“정다훈이 몇 살이라고 했지?”

도중에 정다혜에게 물었다.

“저랑 아홉 살 차이니까 지금 11살이죠.”

[딱 그 나이대네.]

“점점 확실해지는데……. 정다훈을 이지은에게 보이면서까지 함께 간 이유가 던전을 찾으면 정다훈 혼자 던전 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해서잖아?”

나 혼자 추측하면서 중얼거리는 소리에 정다혜는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치솟는 분노를 애써 참는 중일 터다.

[그런데 말야……. 정다훈이란 아이. 나이는 어리지만, 헌터라고 하지 않았어?]

“헌터니까 강만식이 탐내고 데려갔겠지.”

[정말로, 정말로. 그 강만식이란 놈이 저 서류 속 내용을 따라 하려고 할 생각이면 큰일인데…….]

상대 의도는 알아차렸지만, 문제는 아직 더 남은 듯했다.

“큰일이라니?”

[정다훈은 순수한 어린이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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