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두더지들의 급습 (3)
서류의 내용은 중국의 일화를 담은 것이었다.
중국 오지에서 한 어린이가 우연히 던전 안을 들어갔는데, 몬스터에게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고 무사히 초월석을 챙겨서 왔단다.
심지어는 가지고 온 초월석이 일반 돌과 달리 예뻐 보이기라도 했는지, 목걸이로 만들어 장식하고 다니는 것을 중국 협회 직원이 발견.
더 조사해 보니, 이런 경우가 중국 오지에서 종종 일어난다는 것까지 알아차렸다.
그래서 중국 협회는 이 사실을 바탕으로, 헌터가 아닌 어린이를 던전 안으로 들여보내는 희생 없는 레이드를 실제로 성공한 사례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 비문이 언제 작성된 것인지는 명확히 적혀 있지 않아 시기가 언제인지는 몰랐다.
던전이 완전 정복 되기 이전이라는 것만 확실하다.
“흑염룡. 이거 사실이야? 어린이를 던전 안으로 보내면 몬스터들이 반응하지 않아?”
나에겐 확실한 정보통이 있다.
즉각 흑염룡에게 묻자, 흑염룡은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 답했다.
[가능은…… 하지?]
“뭐냐? 그 확신 없는 답은.”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무조건 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이게 허황된 사실은 아니란 뜻은 명백해졌다.
그러나 의문점은 끝나지 않았다.
“어이, 흑염룡. 너 분명히 던전은 너희에게도 아주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몬스터와 같은 경비 장치를 달아둔 거라고 하지 않았냐? 그런데 어린이한테는 반응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 이상하잖아?”
[그러니까 그게 말야.]
흑염룡이 본격적으로 설명하려 할 때.
-협회장이 갑자기 협회로 돌아왔는데요……?
신보미에게 연락이 오고 말았다.
“하필이면 이럴 때…….”
무슨 이유에서 협회장이 갑자기 돌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우린 자리를 떠야 한다.
“다혜야, 협회장 갑자기 돌아왔단다. 일단 튀자.”
“아… 네! 근데 이 서류는 어떡해요?”
정다혜는 문제의 서류를 놓지 않은 채 물었다.
“가지고 가자. 아무래도 예삿일 아닌 거 같다.”
서류의 내용과 갑자기 정다훈을 이지은에게 보여준 것.
뭔가 앞뒤가 맞아가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나도 이 서류를 버릴 순 없었다.
“챙겼으면 길 열어.”
“네!”
정다혜는 문제의 서류만 품에 안은 채로 나머지 서류는 다시 금고 안에 집어넣고, 서둘러 신보미가 있는 카페로 길을 열었다.
덜컹.
우리가 포털을 통과하기 직전.
문고리가 들썩이는 소리가 들렸다.
벌컥.
다행히, 문이 완전히 열리기 전에 우린 포털을 타고 피했다.
***
협회장실로 돌아온 최현민.
돌아오자마자 그는 옷걸이에 걸린 다른 외투 주머니를 뒤적였다.
뭔가를 급하게 찾는 행동이었지만, 외투 주머니에선 그가 원하는 것이 나오지 않았다.
그 뒤로 책상 서랍을 열고 나서야 그가 원하는 물건을 드디어 찾을 수 있었다.
“나, 참. 내 정신 좀 봐. 내가 왜 지갑을 서랍에 넣어뒀지?”
그가 갑자기 협회장실로 돌아온 이유는 단순히 지갑을 놓고 가서였다.
지갑을 단단히 챙기고, 서랍을 닫은 뒤, 다시 협회장실을 나설 때.
그의 시선에 걸리는 게 나타나고 말았다.
“…….”
바로 자신이 업무를 볼 때 앉는 의자다.
분명히 나갈 때는 책상에 꼭 맞게 안에 넣어뒀는데, 지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의자가 책상 밖으로 나와 있었다.
“이상한데? 나 분명히 넣어두고 갔는데? 내가 아무리 건망증이 있다고 해도, 이걸 기억 못 할 정도는 아니…….”
그 순간, 그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바로 몇 년 전에 있던 태강 길드 사건.
설마, 그때와 같은 일이 지금 벌어졌단 건가?
오싹한 마음에 그는 서둘러 책상 밑에 있는 금고를 열어봤다.
“……없어.”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서류들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금고.
그러나 서류 봉투의 개수가 모자라다.
심지어 사라진 서류는 중국 협회의 비문인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도대체 어떤 놈이……!”
이미 몇 년 전에 겪은 적이 있지만, 최현민 협회장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게 화근이다.
태강 길드 사건을 겪은 뒤에 한동안 단속과 보안을 철저히 했지만, 더는 알 수 없는 누군가가 협회장실을 노리지 않았고, 최현민도 사태가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고 보안을 느슨히 했던 것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사라진 서류가 보관한 서류 중 1급 보안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협회의 비문.
최현민은 불안감보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시기 좋게 중국 협회 비문만 사라졌다는 것은 딱 하나를 나타낸다.
분명 몇 년 전 태강 길드 사건을 일으킨 놈과 동일범이라는 것.
그리고 정체 모를 범인은 그 뒤로도 자신을 계속 지켜봤단 결론이 내려진다.
“감히 협회장을 상대로 이딴 장난을 쳐……?”
격분한 그는 곧장 휴대폰을 들었다.
이 일을 신속하고도 조용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사람.
그가 생각하기엔 딱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예, 여보세요.
“나일세.”
-아, 예. 협회장님.
“지금 당장 서울로 와! 자네가 할 일이 생겼어!”
-네……? 지금요?
“그래! 지금 당장!”
-박우민 그 친구를 부르시지, 저를 왜……? 제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시면서요.
하지만 비협조적인 강만식의 태도는 최현민의 화를 더 한 단계 격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최현민은 이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아 글쎄! 자네가 오라니까!”
그러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
의문의 서류를 획득한 우리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셋이 둘러앉아 서류를 펼치며 본격적인 추측을 시작하려고 할 때.
[윤도원. 근처에 이상한 놈들이 있어.]
“뭐?”
흑염룡은 창가 여기저기를 서성이며 말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내 주위에 정령이 있다는 것을 아는 신보미와 정다혜는 허공에 대고 뭐라 중얼거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만, 내 목소리가 좋지 않다 보니 눈치껏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둘에게 “잠깐만.”이라는 뜻의 손짓만 보인 채, 흑염룡에게 집중했다.
“놈들이라니?”
[아까부터 이 건물을 쳐다보는 놈들이 있어.]
“헌터 같아?”
[응.]
“왜요…? 무슨 얘기이길래 헌터냐고 물어요?”
신보미가 불안에 떨며 말했다.
“설마… 저희 이거 빼 온 거 들킨 거예요?”
지금이 딱 도둑이 제 발 저릴 때가 아닌가.
이번엔 정다혜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모르지. 흑염룡. 상황 좀 전달해 봐.”
[어제의 박우민처럼 그냥 이 건물 주위를 서성이기만 해. 관찰하는 것처럼 힐끗힐끗 쳐다보는 게 전부야.]
“그렇다면…… 협회에서 온 헌터들은 아닐 가능성이 높겠네.”
[그런가?]
“만에 하나, 우리가 이 서류를 훔친 걸 눈치채고 쫓아온 놈들이라면, 저렇게 밖에서 간 보겠어? 당장 쳐들어오지. 다른 사람의 서류도 아닌 협회장의 서류를 훔쳤다는 걸 안다면 간 볼 이유가 전혀 없지.”
[그건 또 그렇네?]
흑염룡과 대화하던 중, 신보미도 상황에 대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밖을 서성이는 의문의 헌터들.
조목조목 짚어 보면, 이상한 구석은 많다.
일단 시간적인 문제다.
우린 방금 협회 앞 카페에 있다가 이곳으로 넘어왔는데, 곧장 뒤를 쫓아왔다?
저쪽에 워프 능력을 가진 헌터가 있으면 가능한 얘기다.
“흑염룡. 밖에 있는 헌터들.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있었던 거지?”
[응. 그건 확실해.]
흑염룡의 답변으로 나도 확신을 굳혔다.
우릴 카페에서부터 뒤쫓은 게 아닌, 이미 와 있었다는 뜻이 된다.
밖에 있는 헌터는 최현민 협회장과 무관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용의선상은 단 한 명.
“아무래도 강만식 쪽 헌터 같은데?”
그렇지 않아도 어제 박우민을 쫓아냈다.
박우민이 이곳에 왔을 때, 내가 은신한 상태로 쫓아냈으니, 박우민도 무언가가 있다고 확신을 가지게 됐을 것.
그 정도 머리는 충분히 돌아가는 녀석은 분명하다.
공과금 고지서 하나만 보고 직접 찾아와 잠복까지 한 녀석이니,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
“어떡해요, 그럼……?”
여전히 신보미의 걱정 가득한 물음이다.
난 답하지 않고, 은신한 채로 창문 밖을 살피며 흑염룡에게 물었다.
이렇게 하면 내가 창문에 있어도 상대는 비치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내가 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게 된다.
“서성인다는 헌터가 어디에 있는 거야?”
[저기랑 저기. 그리고 저기 골목길까지.]
흑염룡은 일일이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위치를 알려줬다.
숫자는 정확히 셋.
셋 중에서 박우민은 없었다.
“어라?”
하지만 그 세 명의 헌터에게서 난 눈을 떼지 못했다.
[왜?]
“다 내가 아는 얼굴들이네?”
[안다고?]
“응. SF 길드 헌터들이잖아?”
SF 인사과에서 근무하던 나다.
SF의 모든 헌터를 기억할 순 없어도, 기억할 수 있는 조건은 있다.
나랑 친했던 헌터이거나, 길드 내에서도 특급 대우를 받는 상위 랭크 헌터들.
지금 이 집을 포위한 헌터는 공교롭게도 둘 다 해당이 되기에 내가 정확히 기억한다.
“흑염룡. 저기 골목에 있는 헌터. 기억 안 나? 너도 본 적 있잖아?”
[몰라. 기억 안 나는데.]
“임재형이잖아. SF길드 옥상에서 나랑 얘기했던 그 C급 헌터.”
[아아~! 그런데 C급 나부랭이가 여긴 왜 왔대?]
상대 중 하나가 C급인 걸 알아차리자 흑염룡은 곧장 깔보는 태도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정령 입장에선 C급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수준인 것 같다.
아니면, 흑염룡이 판단하기에 C급 임재형 정도는 나한테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수도 있다.
“나머지 둘은 S급인데. 조합이 참 이상하네. S급 둘에 C급 하나라…….”
[쟤들이 왜 여기 왔는지가 중요하지 않겠어?]
“보나 마나 어제 쫓겨난 박우민이 보냈겠지. 정찰대 같은 느낌으로다가.”
상대의 정체와 배후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됐으니, 이제 걱정을 덜었다.
난 그대로 창가에서 떨어져, 정다혜에게 물었다.
“다혜야. 어디 잠깐 숨을 곳 없을까? 네 워프 능력을 이용해서.”
“아… 어떤 장소를 원하시는데요?”
“그냥 조용히 이 서류들 펼쳐 놓고 얘기할 수 있는 곳이면 돼.”
“그럼 제 집으로 가요. 그게 제일 안전할 거 같아요. 밖에 있는 헌터 SF 길드라고 했죠? 저 헌터들은 제가 누군지도 모르고 제 집도 모르니까 훨씬 나을 거예요.”
“좋아, 이건 이렇게 해결됐고.”
[야! 윤도원! 도망치려고? 쟤네 안 쫓아내?]
하지만 흑염룡은 내 결정을 의아하게 받아들였다.
“일에 순서가 있는 법이잖아? 어차피 쫓아내도 금방 다시 찾아와서 귀찮게 할 거. 일단은 우린 이거에 집중하자고. 게다가 대낮이라 함부로 능력 남발하면서 쫓아내기도 힘들어.”
[아, 그건 그렇네.]
어제 박우민이 왔을 때처럼 깊은 밤이면 모를까, 이렇게 대낮은 아무리 조용한 동네라도 해도 지나다니는 사람 한둘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난 밖에 있는 헌터들은 무시하고, 일단은 협회장실에서 훔친 서류의 진실을 파헤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다혜야, 넌 길 열고 있어. 난 잠깐 밑 작업 좀 할 게 있어서.”
“밑 작업이요? 밖에 있는 헌터 무시할 생각 아니었어요?”
“그럴 거야.”
“그런데 밑 작업이 무슨 말이에요…?”
“있어, 그런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