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두더지들의 급습 (2)
우린 그대로 협회로 향했다.
당연, 협회 내부에선 셋에게 전부 은신을 씌운 상태다.
“근데 다혜야. 무슨 생각이 든 거야? 둘이 처음으로 뭔가 통하는 눈빛이던데?”
협회에 도착하기까지 여전히 신보미는 나와 정다혜의 계획이 무엇일지 갈피도 못 잡는 중이었다.
“저 진심으로 감탄했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지? 도원 오빠는 천재인가?”
“내가 특별하긴 하지. 범상치 않은 인물이잖아?”
“뭐야……? 왜 갑자기 둘이 쿵짝이 잘 맞아?”
협회에 도착하고 나서, 우린 협회장실이 있는 층까지 올라가 봤다.
물론, 남들 눈에 띄어서 좋을 것 없으니 나를 포함해 신보미와 정다혜까지 은신으로 가린 상태다.
협회장실까지 직접 와 본 것도 당장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게 아니다.
난 SF 길드에 근무한 적은 있지만, 협회를 이렇게 온 적은 처음이다.
그렇기에 협회장이 있는 층의 구조가 어떻고, 협회장실로 향하는 통로는 또 얼마나 있고, 협회장실 근처엔 어떤 방이 있는지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생각이었다.
이미 정다혜에게 말로만 설명은 듣긴 했지만, 직접 보는 것과는 차이가 크기 때문에 굳이 올라온 것이다.
“음, 이런 구조라면 쉽네.”
협회의 건물은 디귿 자 형태다.
그리고 협회장실이 있는 곳은 2층.
심지어 구석이다.
즉, 디귿 자의 가장 가장자리에 있고, 중앙 통로엔 여러 부서가 있는 방이 존재하지만, 협회장실 근처엔 아무것도 없었다.
“돌아가자.”
구조만 눈으로 후딱 훑고, 우린 그대로 협회에서 나왔다.
그 뒤로 자리 잡은 곳은 협회 근처에 있는 카페였다.
당연히, 카페 자리를 선정할 때도 조건이 있었다.
첫째.
창가 자리일 것.
협회장이 협회에서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직접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우리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어야 할 것.
어떻게 보면 대담한 범죄를 도모하는 중이니, 남들 귀가 최대한 닿지 않는 곳을 선별해야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어렵지 않게 조건에 부합하는 자리를 찾아서 우린 그대로 눌러앉았다.
심지어 자리도 3층 창가 자리이기에 협회 입구가 한눈에 훤히 보였다.
“브리핑 좀 들어볼까?”
정다혜에게 말했다.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본론만 쏙쏙 골라서 답했다.
“협회장은 무조건 점심을 나가서 먹어요. 오후 일과 중에는 외근을 나가기는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요.”
“즉, 점심시간 제외하면 나머진 나갈지 안 나갈지 모르는 일이다, 이거네
“그렇죠?”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지는 단 하나.
점심시간에 급습해서 5분 안에 끝내고 나오는 것이다.
“협회장이 자주 가는 식당은? 알아?”
“그건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그날그날 다르더라고요. 그냥 먹고 싶은 거 먹는 성향인 것 같아요.”
“평균적인 식사 시간은?”
“정말 빠르면 30분. 느리면 2시간까지도 자리 비우더라고요.”
“2시간이나?”
“네. 근데 공통점이 있어요. 30분 비우면 협회랑 가까운 식당 가는 거고요. 아닌 경우엔 차로 갈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는 거죠.”
30분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이 계획의 핵심인 정다혜에게 물었다.
“최단 시간인 30분으로 잡고. 30분 안에 끝낼 수 있지?”
“네. 그런데 정말 오빠 천재인 거 같아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던 거예요? 워프 능력을 가진 저조차도 그런 건 생각도 못 했는데.”
그녀는 연신 나를 향한 감탄만 쏟아냈다.
[도대체 뭐길래 저래? 나도 좀 알려줘 봐.]
“둘이 생각한 계획이 뭔데?”
흑염룡과 신보미의 의문도 날아들었다.
난 잠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흑염룡이 있는 자리지만, 신보미와 정다혜 눈엔 내가 허공을 바라보는 것과 똑같이 보일 거다.
“넌 어차피 내 옆에서 지켜보니까 알게 될 거고.”
흑염룡에게는 두루뭉술하게만 말해두고, 이제 신보미를 쳐다봤다.
“보미 너도 역시……. 어차피 알게 될 거니까 굳이 설명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뭐야……. 그래도 같이 하는데 저도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신보미의 불만이 나오던 그때.
“어! 협회장!”
정다혜가 창문을 가리키며 다급하게 말했다.
동시에 나는 물론, 신보미까지 함께 창문 밖을 쳐다봤다.
희끗희끗하지만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진 한 중년.
그가 바로 협회장 최현민이다.
남자는 나이 들면 재력 싸움보다 머리숱 싸움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최현민은 전부 이기고 남을 정도다.
게다가 배불뚝이 아저씨를 연상할 것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지만, 체격도 의외로 호리호리했다.
“저 사람이 협회장이군.”
나도 이름만 알 뿐이지, 얼굴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본 건 처음이다.
아니, 정확히는 언젠가 뉴스와 같은 매체를 통해 본 적은 있겠지만, 내 기억에 남은 사람은 아니다.
어차피 헌터 협회장은 헌터들에게나 대통령이지, 당시의 나와 같은 일반인에겐 그저 동네 아저씨에 불과한 위치였으니까.
하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내가 절대 잊으면 안 되는 사람.
그의 얼굴을 벽에 못질하듯, 뇌리에 단단히 박았다.
그리고 우린 그의 행동을 계속 살폈다.
최현민은 주차장으로 향하지 않고 혼자 유유히 걸어 협회 정문을 자연스럽게 나왔다.
“오늘은 근처 식당 가려나 본데요? 보통 멀리 가면 차를 가지고 가는데 가까운 곳은 저렇게 걸어서 가요.”
“그렇다면 주어진 시간은 30분. 다혜야, 슬슬 출발할까? 준비됐지?”
“물론이죠!”
정다혜는 어제도 그러더니, 이 일을 할 땐 성격이 완전히 바뀐다.
지금도 소심한 성격은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의욕이 가득하고 활기찬 상태가 되었다.
“자, 보미 너는 여기에서 지켜봐.”
“저도 같이 안 가고요?”
“어차피 이 작전에 필요한 건 나랑 다혜 능력이잖아.”
신보미는 이지은과 정신적으로 연결된 게 전부다.
즉, 함께 나서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이 자리를 지키는 것뿐.
그게 전부다.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애석하게도 이게 현실이다.
“그래도 뭔가 서운한데.”
“대신, 이 자리 지키면서 우리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협회장이 돌아오는 돌발상황이 생기면 알려줘.”
“어떻게 알려주죠? 내가 쫓아갈 수도 없는데.”
“뭘 어떻게 알려줘? 우리 인간에겐 이런 훌륭한 문물이 있잖아?”
난 휴대폰을 들고 흔들며 답했다.
“아, 맞다. 지은 언니랑만 주로 얘기하다 보니까 휴대폰 사용할 일이 많이 없어서 잠깐 깜빡했네.”
신보미 상황도 그럴 거다.
애초에 휴대폰을 통해 이지은과 자유롭게 연락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망각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지금은 이지은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 현장에 있는 것은 바로 나.
휴대폰만큼 훌륭한 연락 수단도 없다.
“그럼, 다녀올게. 다혜야, 시작하자!”
“이미 길은 열어뒀죠.”
행동도 참 빠르다.
***
정다혜의 포털을 타고 넘어오자, 재벌가들 서재처럼 보이는 방이 나타났다.
이곳이 바로 협회장 최현민의 집무실인 협회장실이다.
당연히, 넘어오기 직전 나와 정다혜의 몸에 은신을 씌워둔 상태다.
난 협회장실에 도착하자마자 천장 구석구석을 살폈다.
우리가 우려하는 그것을 찾기 위해서다.
이미 정다혜와 신보미는 예전에 협회장 실을 턴 이력이 있으니, 방범용으로 CCTV라도 달아놨으면 어쩌나 싶었던 우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깨끗하네?]
“그러네……?”
한 번 털린 적이 있는 사람의 집무실인데 천장이 깨끗해도 너무 깨끗했다.
이건 마치 도둑이 도어락 비밀번호 따고 침입한 적이 있는데도 비밀번호를 바꾸지도 않고 그대로 방치한 느낌이다.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털린 적이 있으면서 그대로 방치하는 거. 그냥 조심성이 없는 사람일까?]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조심성이 그렇게 없는 사람이면 여태 협회장을 하고 있을 리가 없을 건 분명하다.
혹시, CCTV를 설치하면 안 되는 어떠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싶었다.
“일단… 뭐, 잘 됐지. 다혜야. 시작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일단은 우리가 할 일에 집중해야 했다.
주어진 시간 30분.
차고 넘치는 시간이지만,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정다혜는 바로 협회장실에 있는 업무용 책상으로 다가갔다.
정돈된 의자를 옆으로 밀치고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금고 위치도 그대로예요.”
확실히 이상하다.
CCTV도 설치하지 않고, 심지어 금고 위치도 그대로라니.
“금고도 그대로야?”
“그대로라고 했잖아요.”
“아니, 내가 말한 금고는 네가 전에 털었을 때의 금고랑 똑같이 생겼냐고.”
“아~ 네.”
정말…… 조심성이 없는 사람일까?
걸리는 부분은 많았지만, 일단 일은 처리하고 봐야 했다.
금고까지 바꾸지 않았다면 우리의 계획은 이제 성공할 일만 남았다.
“시작하자.”
금고 앞에 쪼그려 앉은 정다혜는 금고 천장 부분에 손을 댔다.
“기억에서 끄집어내 봐. 네가 봤던 금고 내부.”
“네.”
답만 간략히 하고, 정다혜는 바로 금고 위에다가 아주 작은 포털을 만들었다.
포털의 크기는 딱 정다혜의 손이 들어갈 정도다.
[아!! 그런 거였어?!]
그 모습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흑염룡이 소리쳤다.
‘응. 다혜는 분명히 말했잖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본 곳 말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곳에만 포털을 열 수 있다고.’
일부러 정다혜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속으로 답했다.
그리고 이 계획을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미 정다혜는 제 손으로 직접 협회장으로 금고를 털어본 적이 있었고, 내가 내부도 본 적이 있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답했다.
포털을 꼭 몸을 움직이는 용도로만 써야 하나?
그리고 내가 꼭 금고를 열어야 하나?
아니다.
어차피 이미 기억에 있는 금고 내부.
손이 들어갈 정도의 포털을 열고, 손만 밀어 넣은 다음에 안에 있는 내용물을 빼내면 그만 아니던가?
그리고 정다혜가 기억하는 장소는 꼭 산이나 방과 같은 넓은 공간이 아니어도 된다.
어쨌든 금고 내부도 아주 좁지만, 장소로 들어가기에 포털을 열 수 있는 위치는 확실하다.
[오호, 이건 나도 놀라운데? 남의 능력을 그렇게 활용할 생각을 했단 말야?]
‘말했지? 난 특별하다고.’
[자만하기는…… 어쨌든 금고가 같은 거라 다행인 거잖아. 그런데 네 생각과 달리 금고가 바뀌면 어쩌려고 그랬어?]
‘어쩌긴. 부술 생각이었지.’
[……부숴?]
‘부술 방법은 많아.’
[은근히 괴팍한 면도 있네.]
‘결단력 있는 편이라고 하자.’
[어련하시겠어요.]
나와 흑염룡이 떠드는 사이, 이미 정다혜는 안에 있는 내용물을 전부 꺼낸 뒤였다.
전부 서류 봉투들이다.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거 다 가져갈까요?”
난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협회장의 금고를 터는 데 걸린 시간 단 3분.
휴대폰도 확인하니, 신보미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즉, 여유 넘치는 상황이다.
“아니. 조금 살펴보고 특별해 보이는 것만 가져가자.”
그렇게 우리 둘은 책상 밑에 쪼그려서 서류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웬 한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정다혜가 의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도 그녀가 집은 서류를 확인했다.
서류를 차례대로 들추니, 한자만 가득한 서류가 나오다가 한글로 된 서류가 등장했다.
<중국 협회 비문>이라고 적혀 있는 서류였다.
누가 보더라도 한자로 가득한 서류는 중국어 원본이었고, 한글은 번역본이다.
“중국 협회 비문을 왜 한국 협회장이 가지고 있어?”
그 생각에 우린 그 자리에서 서류를 확인했다.
“이게 뭐야……?”
내용을 확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정다혜는 자신의 입을 스스로 틀어막았다.
“…강만식 그 또라이가 정다훈을 데리고 간 이유도?”
나도 충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