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두더지들의 급습 (1)
“만물이라는 게 내가 아는 뜻이 맞는 건가?”
[응. 우주 만물 할 때 그 만물 맞아.]
“이거 정확한 효과가 뭔데?”
[말 그대로. 만물을 다룬다고. 정해져 있지 않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네가 다룰 수 있으니까.]
“흠.”
이렇게만 보면.
실로 대단한 능력은 맞겠지만, 과연 이게 염력과 세트여야만 했던 걸까?
이런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냥 만물만 있어도 충분한 위력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왜 염력이랑 같이 써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철저하게 크루즈 대항용으로 만든 거니까.]
“크루즈의 정체를 모르니 영 감이 안 잡히네.”
결국엔 염력과 이 만물을 조합해서 대항해야 하는 방식인데, 크루즈가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 전혀 모르니 사용법도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었다.
[아직 네가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게다가 이번에 얻은 만물을 보면 레벨이 0이야. 내가 던전에 들어가기 전 했던 말 기억하지?]
초월석의 등급에 따라 시작 레벨이 달라진다고 했다.
하필이면 이번에 사용한 초월석의 등급이 낮았고, 최저치인 레벨 0으로 시작된 것이다.
어쩐지, 몬스터들이 온순할 때부터 예상했어야 했는데 이건 조금 아쉬운 일이다.
“그런데 레벨 0은 처음 보는데. 나 은신이랑 염력은 1부터 시작했잖아? 레벨이 0인 것도 있었어?”
[만물만 유일해.]
“레벨 0이면 아무것도 못 하는 거 아냐?”
[그건 아니야. 만들 수 있는 게 정말 하찮은 수준이라 그렇지. 아예 사용 못 할 정도의 능력은 아니거든.]
“그래?”
내친김에 시험해 보기로 했다.
만물이라고 했으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그것을 만들거나 다룰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게다가 레벨은 0.
과연 레벨 0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무엇을 만들 수 있는 것인가를 직접 확인해야 했다.
능력 사용법은 여타 은신이나 염력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고, 곧장 실험에 돌입했다.
아주 작으면서도 간단한 것.
처음 염력을 연습할 때 사용했던 그 종지.
그런 것을 만들어 보려고 했으나.
[뭐해? 얼굴 잔뜩 빨개져가지곤.]
“흑염룡…… 종지 하나 못 만드는데?”
[레벨이 0이니까 그렇지.]
“아니…… 아무리 0이라도 그렇지 그럼 도대체 뭘 만들 수 있는 거야……?”
이건 솔직히 충격이다.
그 작고 간단한 종지 하나 만들지 못하는 상태라니.
그보다 더 작고 간단한 게 뭐가 있을지 난 골똘히 생각하던 중에, 흑염룡이 넌지시 일렀다.
[먼지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녀의 말대로 먼지를 만들어 보려고 하니까.
“하…… 나 참.”
이번엔 또 어이가 없게도 먼지가 흩날렸다.
[지금은 딱 먼지 수준이네.]
“이거 꽝인 것 같은데……. 만물도 레벨 올리려면 계속 사용하는 수밖에 없지?”
[그렇지.]
이 정도면 당장은 없는 능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 이 만물이라는 능력. 너희가 몬스터를 만들 때도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한 건가?”
[우리가 몬스터를 만들 때 사용한 능력은 ‘소환’과 ‘창조’야. 네가 가진 만물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뭐가 어떻게 다른데?”
[소환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을 그대로 내가 있는 곳으로 불러들이는 거고, 창조는 내가 원하는 형태를 만드는 거지.]
“그러니까 그 창조는 만물과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아니지. 창조는 생명체에 한해서만 만들 수 있어. 만물의 뜻을 기억하라니까? 만물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야! 그 세상은 너희 인간계만이 아닌, 우리 정령계. 즉, 시오스와 크루즈 세상에도 존재하는 것들까지 포함이라고!]
하도 답답했는지, 흑염룡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진작에 그렇게 말할 것이지.
정령계에 존재하는 것까지 포함이라.
이 부분이 상당히 구미가 당긴다.
이것을 바꿔 말하면.
인간계에는 없지만, 정령계에는 있는 게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대표적으로 초월석.
인간계에는 없지만 정령계에는 넘쳐나는 것.
즉, 언젠가 나는 이 초월석까지 만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알고 싶었다.
“잠깐, 그러면…… 초월석까지 그냥 내가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단 말로 들리는데?”
[못할 게 뭐 있어. 네가 전에 나한테 키스톤이 얼마나 남았냐고 물었을 때. 내가 모른다고 그랬잖아. 그게 왜 그러겠어?]
“이 만물이라는 능력을 이용해서 만든 거야?!”
뜻밖의 호재에 내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졌다.
[조금 원리가 다르긴 한데. 만들 수 있는 건 맞아.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던 키스톤과는 조금 다를 거야.]
“그만큼 대단한 능력이니까 조금 더 특별하거나 그런 건가?”
[그렇진 않을 거야. 만물이 만능의 능력이 아니야. 단점도 분명히 존재해.]
“어떤 단점?”
[일시적인 창조야. 즉, 네 레벨이 오를수록 네가 만든 물체가 존재하는 시간이 늘어나지만 영원한 것은 아니란 거지.]
그런 단순한 단점이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적어도 사라졌을 때 다시 또 만들면 그만이니까.
이렇게 보니 왜 염력과 세트로 사용해야 했는지도 조금은 갈피가 잡혔다.
“좋았어. 앞으로 할 일 하나가 더 생겼군.”
보통의 나였으면, 자꾸 할 일이 쌓여서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기분이 좋아 보이네?]
“당연히 좋지. 정말 방금 마주쳤던 몬스터처럼 내가 절대자가 된 느낌이니까.”
[그래, 절대자라고 해줄 테니까 이상한 곳에만 안 쓰면 돼. 그건 내가 용납 못 해.]
“이상한 곳에 쓸 일이 있기나 하겠냐.”
정말 내가 원했던 비장의 무기.
인간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무기는 핵폭탄인데, 그것을 뛰어넘는 무기가 들어왔다.
그리고 난 남은 하나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물었다.
“이건 그냥 물어보는 건데, 아까 도롱뇽 몬스터가 너를 칭할 때 있잖아.”
[아~ 위대한 레베카 원로의 후계자 린느님이라고 한 거?]
“응. 그 레베카라는 정령은 뭐야? 겉으로 듣기에도 너희들 사이에선 대단한 위치로 보이는데.”
[정령들의 왕이라고 보면 돼. 우리 할머니야.]
“그럼 넌…… 정령왕의 손녀딸?”
[응. 내가 말했잖아. 나 정령들 사이에서도 꽤 높은 위치에 있는 정령들이라고.]
높아봤자 뭐 다른 말단 정령보다는 조금 자유롭고, 때론 독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 위치일 줄은 몰랐다.
인간계로 치면, 지금이 왕권 국가라는 가정하에 흑염룡의 위치는 딱 왕세손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손녀딸인 네가 왜 후계자야? 보통 부모님 중 하나가 그 자리를 물려받지 않나? 할머니면 네 아빠나 엄마의 엄마니까.”
[원래는 그랬지. 우리 엄마가 후계자였으니까. 근데 이제 없어. 그래서 내가 후계자야.]
“…….”
괜한 얘기를 꺼냈다.
이건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분명히 크루즈와의 전쟁에서 돌아가신 거겠지.
이렇게 되면 흑염룡은 왕세손이 아닌, 왕세자다.
“미안하다.”
[미안하면 능력 제대로 사용해서 보답해. 그거면 돼.]
그리고 웬일로 흑염룡은 꽤 어른스러운 답을 내놨다.
이렇게 보니, 정말 차기 정령들의 왕이 될 재목이 아주 살짝 엿보였다.
“그래. 알았다.”
[나랑 한 약속도 착실히 지키고.]
“오냐.”
[건성으로 답하지 말고!]
“진심을 과다 함유해서 답했는데, 안 느껴졌어? 이 정도면 포장지 뚫은 정돈데.”
[넌 그렇게 매사가 장난 식이니까 그렇지!]
“너에게는 늘 진심이었는데?”
[하지마!!!]
흑염룡은 또 오글거릴까 봐 내 입을 틀어 막아버렸다.
***
다음 날 아침을 넘어, 오후.
이지은은 늘 그렇듯이, 강만식에게 이끌려 부산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떠돌았던 때다.
이번에도 운전을 하며 이동하는 중이고, 상황은 늘 똑같다.
뒷좌석엔 정다훈이 혼자 있고, 조수석엔 강만식.
그리고 운전대를 잡은 것은 이지은이다.
‘이상하다, 얘 왜 답이 없어?’
그러나 이지은에겐 한 가지 걱정이 있다.
아침부터 신보미에게 계속 말을 거는 중인데, 일부러 들리지 않는 척이라도 하는 듯이, 신보미는 답이 없다.
어제 박우민이 자신의 상가 건물로 왔다는 것까지 듣고 소식이 끊겨 버렸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거기서부터 연락이 아예 끊겼으니, 이지은의 정신도 사납기 그지없었다.
빠아앙-!
정신이 다른 곳에 팔린 사이, 뒤에서 오던 다른 차가 이지은의 차를 향해 시끄러운 경적 소리를 내며 운전자가 창문을 내려 욕설을 퍼부었다.
“야! 운전 똑바로 안 해?!”
“…….”
이지은은 그저 욕설을 뱉는 운전자를 향해 고개만 꾸벅 숙여 사과의 표시를 보냈다.
“너 뭐하냐?”
당연히 이 사태를 그냥 넘어갈 리가 없는 강만식.
잡아먹을 듯한 눈빛을 한 채로 이지은을 노려봤다.
“……죄송합니다. 피곤해서.”
“왜 피곤해? 일정이 그렇게 타이트한 것도 아닌데.”
“죄송합니다.”
변명보다 차라리 이렇게 넘기는 게 훨씬 낫다.
입이 열 개라도 애초에 이지은은 할 말이 없는 게 아닌, 처음부터 입을 열 생각도 없었다.
‘도대체 뭐 하는 거니……! 보미야!’
그렇게 속으로 신보미를 애타게 찾을 때였다.
‘언니!’
드디어 신보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년아! 너 도대체 뭐 하다 이제 연락해!’
그와 동시에.
“예, 여보세요.”
강만식의 휴대폰이 울렸고, 그는 곧장 전화를 받았다.
“아, 예. 협회장님. 네……? 지금요?”
그런데 강만식의 표정이 이상했다.
“박우민 그 친구를 부르시지, 저를 왜……? 제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시면서요.”
-아 글쎄! 자네가 오라니까!
휴대폰에서 들리는 최현민의 목소리.
얼마나 화가 났는지,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스피커폰이 아닌데도 이지은에게 고스란히 들릴 정도였다.
“아니 갑자기 이렇게 부르시면…….”
-당장 서울로 올라와!
‘헤헤, 언니.’
덩달아 신보미는 장난기가 가득한 말투다.
‘저희 협회장한테 한 방 먹이고 오는 길이라서 연락이 늦었어요. 미안해요.’
‘뭐……?’
그럼, 설마…….
최현민이 저렇게 화가 난 상태로 강만식에게 전화한 이유가.
신보미 때문이란 뜻인가?
‘너희들 무슨 짓 했어?!’
***
아침의 일이다.
신보미와 정다혜는 약속대로 연습용 금고를 가지고 왔고, 난 염력을 이용해 금고를 여는 연습을 해 봤다.
다행히 협회장이 쓰는 금고는 지금 가지고 온 것과 비슷한, 전자식 금고라고 한다.
전자 도어락처럼 비밀번호를 입력해서 푸는 방식이다.
하지만 아무리 연습해도 염력을 이용해서 풀 수는 없었다.
문을 세차게 흔들어도 단단하게 잠긴 문은 열릴 기미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어떡하지.”
내가 아무리 용써도 금고는 꿈쩍도 하지 않자 신보미가 덩달아 초조한 모습이다.
애초에 내가 금고를 열지 못하면 실행할 수 없는 작전이라고 여기는 중이다.
하지만 난 그 순간,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 내 시선은 정다혜에게 갔다.
“다혜야. 너 예전에 협회장 금고 턴 적 있다고 했잖아?”
“네.”
“그럼 그때 협회장 금고 내부를 봤을 거 아냐? 그럼 굳이 안 열고도 털 수 있지 않나?”
“당연히 봤죠. 그런데 그게 가능한…… 아?”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같은 생각이 스친 게 분명하다.
“네 워프가 있는데 뭘.”
“뭐야, 뭐야?”
반면에 신보미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