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세트 완성을 위해 (2)
거북이 몬스터는 내 앞으로 다가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제 등껍질로 올라타세여! 제가 신속, 정확하게 모셔다드릴 게여!]
“엉……?”
거북이는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반 거북이도 아니고 몬스터 거북이기에 몸집이 큰 만큼, 등껍질도 크다.
그래서 내가 올라타기엔 충분한 크기이지만, 난 이 상황 자체가 너무 낯설었다.
남들한테는 목숨을 걸고 없애야 하는 몬스터가.
졸지에 지금 내게는 개인택시로 전락한 이 상황을 다른 헌터가 보면 아연실색할 거다.
[어서요! 집중하시기 힘드시다면서여! 금방 도착해여!]
심지어 나를 배려하는 몬스터라니.
이 상황만 놓고 보자면 흑염룡보다 더 믿음이 간다.
몬스터가 말한 대로, 난 바닷길을 유지하는 것 자체로도 큰 부담인 상황에서 몬스터와 싸울 필요가 없어졌으니, 나에겐 행운인 상황이다.
“그렇다면.”
난 냉큼 거북이의 등껍질로 올라탔다.
딱딱한 등껍질을 앉는 느낌이 썩 좋은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훌륭한 던전용 택시가 생긴 셈이다.
“그런데 네가 제일 빠른 녀석이라며? 이 상태로 빠르게 움직이면 난 튕겨져 나갈 것 같은데.”
[걱정 마세여!]
그 말을 뱉자마자, 거북이의 등껍질이 변했다.
정말 좌석처럼 내가 앉은 부분이 움푹 파여 들어갔고, 등껍질에는 손잡이까지 생겨났다.
[꽉 잡고 계세여! 그럼, 출발할까여?]
[오호. 너 꽤 똘똘한 녀석이구나?]
[하핫, 감사합니당.]
[뭐해? 윤도원. 얼른 붙잡아. 출발할 거라고 하잖아.]
그렇게 거북이의 등껍질을 잡은 순간.
거북이의 눈동자가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반짝이는 효과로 변하면서 목소리가 돌변했다.
안 그래도 활발한 목소리가 이젠 흥을 주체할 수 없는 상태로 번진 느낌이었다.
[출발할게여!]
슈우우우웅-!
“으어어어억……!”
정말 총알과 같은 속도로 냅다 뛰기 시작한 거북이.
자세히 보니, 거북이는 네 발로 성큼성큼 뛰는 게 아닌, 발은 등껍질 안에 넣어두고 배 부분에 바퀴라도 달린 듯이, 길을 그대로 미끄러져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빠른 속도로 움직이니, 덩달아 바닷길을 유지하는 내 집중도 잠시 깨져, 물결의 장벽이 허물어졌다.
[너무 빠른가여?! 속도 좀 줄일까여?!]
난 황급히 물결의 장벽을 재건하면서 거북이에게 답했다.
“아니야! 괜찮아!”
[꺄하하하! 윤도원! 너무 재밌지 않아? 인간들 놀이기구 중에 이거랑 비슷한 거 있잖아?]
빠른 속도로 달리는 거북이.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 집중이 조금씩 깨져 사방으로 튀는 물줄기들.
그래, 뭘 말하는지 알겠다.
난 지금 던전판 후룸라이드를 타는 느낌이다.
흑염룡은 여름 휴가 온 피서객처럼 어느 순간 즐기기 시작했다.
얼마나 빠른 속도인지, 내 머리카락은 왁스와 스프레이로 고정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러운 올백머리가 됐다.
그렇게 거북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인 나를 동굴로 데려다주는 일에만 몰두했고.
1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도착했습니당! 절대자님!]
정말 거북이가 멈춘 곳 앞에는 천장이 높은 동굴이 있었다.
그런데 절대자는 또 뭐냐?
나도 한 중2병 하지만, 절대자란 말을 사용할 정도는 아닌데, 이렇게만 보면 거북이는 나보다 심한 중2병 환자인 것 같다.
[신경 쓰지 마. 우리 정령은 이 몬스터를 만든 주인공들이니 몬스터들 입장에선 우리가 창조주야. 그런데 넌 그런 정령의 주인이니 창조주보다 높은 절대자라고 생각하는 거지.]
“낯간지럽군.”
[어때? 이제 내 기분을 조금 느낄 수 있어?]
“무슨 기분?”
[네가 나를 이용해 게이트 만들 때 내가 겪은 기분.]
“그건 재밌는 거잖아. 이건 그냥 낯간지러운 거고.”
[……됐다. 말을 말자.]
어쨌든 동굴로 무사히 도착하고 등껍질에서 내렸을 때다.
[일 보고 오세여! 전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당!]
“같이 안 가고?”
[네! 동굴 안까진 제가 들어갈 수 없어여!]
내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자, 흑염룡이 설명해줬다.
[특별한 거 없어. 애초에 거북이나 도롱뇽 몬스터들은 동굴 안까지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는 것뿐이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한 이유라도 있는 거냐고.”
[그냥 서식하는 환경이 다른 것뿐이야. 동굴 안에는 엄청 춥거든. 쟤넨 그렇게 추운 곳에서 살 수 없는 게 이유의 전부야.]
바닷속이나 동굴 안이나 온도가 거기에서 거기일 것 같긴 하지만, 몬스터를 만든 장본인인 흑염룡이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넘겨야 했다.
“금방 끝내고 올게.”
내가 거북이에게 말하자, 거북이는 과도하리만치 발랄하게 답했다.
[넹!]
그렇게 나와 흑염룡은 동굴로 진입했고, 몇 걸음 걷지 않았을 때, 온몸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으으으…….”
정말 흑염룡의 말대로 추워도 너무 추웠다.
심지어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추위로 인해 나도 모르게 손은 팔을 비비고 있었고, 이도 서로 부딪쳐서 딱딱딱 거리는 소리를 계속 냈다.
[으으으…….]
심지어 흑염룡도 마찬가지다.
우리 둘은 그렇게 잔뜩 움츠러들며 동굴 안을 서서히 진입했을 때.
[윤도원! 발 조심!]
흑염룡이 갑자기 소리쳤고, 난 놀란 나머지 그 상태로 발걸음을 멈췄다.
“깜짝이야. 갑자기 왜 그래?”
[발밑에 확인해 봐.]
“오…….”
어느 순간, 한 걸음만 내디디면 절벽이었다.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둠이 깔려 있어 내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거다.
그리고 그 절벽 밑에는.
“잉?!”
이무기 모습과 비슷한 거대한 몬스터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심지어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잠을 자는 것으로 보였다.
푸른색의 이무기 몬스터.
몸에 미세한 균열과 같은 틈이 있었는데 그 틈에서 푸른빛이 옅게 새어 나왔다.
이무기가 숨을 쉴 때마다 옅은 푸른빛 줄기가 나오는 것이 지하에 있는 오로라가 보이는 느낌이다.
[저 몬스터가 이 던전의 주인.]
“겉보기에도 무시무시하구나…….”
만약 흑염룡의 말을 또 듣지 않는 녀석이었다면.
상대하기에 상당히 벅찼을 건 분명하다.
[그리고 이 던전의 키스톤은 저 녀석 밑에 있어.]
“어떻게 꺼내지?”
[괜찮아. 이번 던전은 쉽게 갈 수 있으니까.]
흑염룡은 자신감 있게 답하고는, 이무기에게 소리쳤다.
[어이! 언제까지 자빠져서 자고 있을래?!]
흑염룡의 외침에 이무기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쪽을 쳐다보곤, 똬리를 풀고 내 앞까지 다가왔다.
[언제 오셨습니까?]
이무기 몬스터의 목소리는 환경과 이곳의 분위기와 어울리게 상당히 저음인데다가 목소리가 울렸다.
[우리가 언제 왔는지도 몰랐어? 죽을래? 네 임무가 뭐야!]
흑염룡은 도리어 이무기에게 화를 내자, 이무기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요새 한산하기도 하고.]
[뭐? 한산? 한산하게 사라져 볼래?]
[죄송합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인간은……?]
[어허! 말조심해! 내 주인님이야!]
[절대자님이시군요!]
참…….
이상하다.
왜 자꾸 이 대화가 적응이 되지 않을까.
아무래도 중2병의 고지는 우주만큼이나 넓은 듯하다.
나름 중2병 분야에서 정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다.
난 앞으로 더 도달해야 할 경지가 있던 거다.
[윤도원. 저 녀석에게 명령해. 키스톤 가지고 오라고.]
흑염룡이 내게 귓속말로 전했다.
자신이 직접 하면 될 것을 굳이 왜 나를 시키는지 의문일 때.
[절대자의 위엄을 보여야지!]
흑염룡의 의견이다.
뭐, 확실히 그런 거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절대자가 너에게 명령한다. 키스톤을 가지고 오너라.”
[윽……. 막상 저렇게 당당히 말하니까 내가 다 화끈거리네.]
나도 한순간에 동화되는 모습을 보이자, 흑염룡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최대한 이 불편한 분위기를 견디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알겠습니다.]
이무기 몬스터는 정말 시키는 대로 다시 절벽 깊은 곳으로 내려가 초월석을 가지고 왔다.
[여기 있습니다.]
키스톤을 입에 문 채로 들고 왔는데, 나에게 건넬 때도 격식을 잔뜩 차린 모습이다.
마치, 키우는 강아지가 장난감을 공손히 주인에게 주는 것과 비슷하게 보일 지경이다.
“수고했어. 이제 쉬어.”
난 그런 이무기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이무기의 눈가가 글썽이더니 울먹이는 목소리로 변했다.
[영광입니다!]
쿠구구궁-!
내가 온전히 초월석을 집었을 때, 던전이 붕괴되는 신호가 찾아왔다.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보자.”
[네, 살펴 가십시오. 절대자시여.]
난 이무기에게 그런 인사를 건넸고, 이무기도 내게 인사를 건네며 우린 동굴에서 나왔다.
[얼른 타세여! 저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여!]
동굴에서 나오자 거북이 몬스터가 이미 달릴 준비를 마친 채 대기하고 있었다.
던전이 붕괴되는 중이니, 이 거북이도 곧 다른 던전으로 옮겨지게 된다.
그러니 거북이가 사라지기 전에 던전을 나가는 게 목표가 되었다.
“그래, 부탁할게.”
이미 한 번 타봐서인지, 올라타는 것도 익숙해졌고.
올라타고 나서 거북이의 등껍질을 쓰다듬어줬다.
[그럼 달릴게여!]
슈우우우웅-!
거북이는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내달렸고, 출구에 도착하자 거북이의 몸이 상당히 흐릿하게 변했다.
“너도 이제 가는구나?”
[넹! 절대자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었어여!]
“그래. 나도 덕분에 고마웠다.”
[그럼 안녕히…….]
거북이는 미처 말을 끝맺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래도 죽음의 소멸이 아닌, 다른 던전으로 옮겨간 것이니 슬픈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가자!”
이번 던전은 참 여러모로 신기한 던전이었다.
***
던전에서 나오자, 게이트는 무너진 다음 잔해로 변했고, 몇 초 지나지 않아 그 잔해마저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정상적으로 던전이 사라졌다는 표시다.
난 곧장 초월석을 흑염룡에게 건넸다.
“시작하자. 세트 완성.”
[어렵지 않아.]
흑염룡은 초월석을 받고, 그것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행동은 특별한 게 없다.
처음 내가 초월석을 이용해 능력을 얻었을 때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야? 이번엔 특정 능력을 주입하는 거라 다를 줄 알았는데.”
[다를 거 없어. 어차피 염력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키스톤을 주입하면 네가 ‘세트’라고 말하는 그 능력이 자동적으로 생기는 거니까.]
큐브처럼 이리저리 돌리면서 조작한 초월석은 소주잔과 유사한 형태로 변하고, 안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변형된 초월석을 내게 주며 흑염룡이 말했다.
[시원하게 쭉 들이켜.]
“하, 이 느낌 별로던데.”
처음 능력을 얻을 때, 알싸한 그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다.
표정을 조금 찌푸리면서 전부 들이켰을 때다.
“된 건가?”
[으음…….]
흑염룡도 확실히 적용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내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드디어.
두루마리 종이가 나타났다.
흑염룡이 먼저 확인하더니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그러는데?”
[좋아해야 하는 건가…….]
“빨리 보여주기나 해.”
그렇게 드디어 세트의 정체가 나와 마주쳤다.
[만물 Lv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