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세트 완성을 위해 (1)
이런 상황에서 바다가 엄청 깊다고 하는 말이 죽으란 말과 뭐가 다른가?
난 해변에 쪼그려 앉아 멍하니 바다만 바라봤다.
“흑염룡. 그럼 초월석도 바다 깊은 곳에 있지?”
[정확히는 바다 바닥에 동굴이 있어. 초월석은 그 속에 있고.]
“미치겠다.”
고개를 푹 숙였다.
여태 많은 던전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겪을 만큼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아예 생각지도 못했다.
바다라니?
차라리 정글이나 신전이 그리워졌다.
내가 물고기가 아닌 이상 바다 깊은 곳에서 숨을 쉴 수 있을 리가.
그러나 정글이나 강해 보이는 몬스터가 있는 신전은 적어도 숨은 쉴 수 있지 않은가?
[하필이면 걸려도 이게 걸리네.]
딱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흑염룡이 대신했다.
“에휴! 뭐 어쩌겠냐!”
쪼그려 앉았던 난 무릎을 털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차라리 잘됐어. 부딪혀 보자!”
[……어떻게?]
“어떻게라니? 내가 가진 능력으로 길을 열어야지.”
[길?]
“염력은 어쨌든 무언가를 들거나 이동시키는 건데. 그걸 바다에 적용하면 어찌어찌 되지 않을까?”
[감이 안 잡히는데.]
“이렇게 말하면 감이 잡히려나? 작전명, 모세의 기적.”
[모세의…… 기적……? 설마?]
“응.”
그렇다.
모세의 기적이란 말 그대로.
염력을 이용해 바닷물을 양옆으로 치우고, 길을 만들 생각이다.
이 바다는 상당히 깊다고 했다.
따라서 수영으로 내려가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
겨우 내려간다 하더라도 아가미도 없는 내가 버틸 수 없다.
그러니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이 깊은 바다에 모세의 기적을 만들어, 육지의 땅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게…… 마음대로 안 될 텐데.]
“뭘 걱정해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안다.”
[……웬일로?]
“몬스터 때문 아냐? 거기다가 여기 던전 배경을 보니 몬스터는 바다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데.”
[몇 번 다녀봤다고 보는 눈은 생겼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저런 칭찬은 과한 반응이다.
“나도 이제 나름 헌터잖아. 아직 정식은 아니지만. 자, 그래서. 당연히 튀어나오는 몬스터도 바다니까 이 환경에 맞겠지?”
[그렇지?]
“무거우려나?”
[이런 상황에서 무겁다고 묻는 걸 보면…….]
흑염룡은 이례적으로 내 눈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맞췄다.
그만큼 내 답이 흥미를 유발한 모양이다.
“당연하지. 여차하면 들어 올릴 생각이니까.”
[몬스터를……? 어차피 내가 있으면 안전하잖아?]
“안전한 적이 있어야 안심하지.”
[……그건 그러네.]
이미 몇 번이나 돌발상황을 겪은 몸인데 온전히 흑염룡만 믿을 순 없다.
따라서 난 처음부터 마음 편하게 몬스터가 날 공격할 것이란 걸 염두에 두었다.
[흐음, 뭔가 자존심 상하네? 다른 정령이면 내 말에 찍소리도 못하는데. 날 이렇게 못 믿는다니.]
“난 네 주인이니까.”
[그래서 아예 접근을 못 하게 할 생각이구나?]
“방법이 그거밖에 없잖아.”
이미 던전에 들어온 몸이다.
던전의 배경을 보고 포기하고 나간다는 뜻은.
이 바닷속에 있는 몬스터를 밖으로 소환하는 꼴과 똑같다.
그렇다고 아직 세트 스킬도 완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몬스터를 제압시켜 소멸하는 방법도 사용할 수 없다.
그러니 기댈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염력을 이용해 몬스터의 접근을 막는 것.
애초에 모세의 기적처럼 바닷길을 만들면 길은 하나밖에 없으니, 은신으로 몸을 숨겨도 크게 의미가 없었다.
“어때? 네가 판단했을 때, 박우민의 그 퀸보다 무거울 것 같아, 어떨 것 같아?”
[전부 제각각이야. 크기는 박우민의 퀸보다 클 수도 있지만, 정작 무게는 가벼울 것 같거든. 그런데 또 크기는 그보다 훨씬 작은데 무게는 적어도 3배는 무거운 몬스터도 있을 거야.]
“어쨌든 확실한 건, 들지 못하더라도 접근을 막을 정도는 된다는 뜻이겠지?”
[하기에 따라서 따르지.]
“그거면 됐어.”
염력을 이용해, 바닷길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면.
몬스터의 접근을 막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왜냐, 난 모세의 기적처럼 바닷길을 만드는 난이도가 더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어떤 물건을 들 때, 흔들리지 않고 가만히 고정된 무거운 물체를 드는 건 난이도가 그리 어렵지 않다.
힘만 있다면, 쉽게 들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는 물체가 단순히 무거운 물체가 아닌, 거대한 물풍선이라고 생각하면?
안에 든 물 때문에 자꾸 출렁거려 무게 중심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뀌고, 흘러내리기에 십상이다.
그렇다고 아예 출렁거리지 못하게 힘을 바짝 주면 어떻게 되나?
파앙~
그대로 터진다.
그렇기에 난 바닷길을 만드는 것에만 성공한다면, 몬스터의 접근을 막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만약…… 바닷길을 못 만들면?]
“안 되면 되게 해야지. 방법 없으니까.”
애초에 선택지가 없었다.
[참…… 이런 대책 없는 모습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해냈을 때 반하지 마라. 곤란하거든.”
[게이트 안에 또 게이트 만들 생각이니?]
“시끄럽고. 나 이제 집중한다. 조용히 하고 있어.”
그렇게 바다를 보며, 정신을 잔뜩 집중했다.
그리고 시작하자마자 깨달았다.
바닷길을 만드는 일.
말처럼 쉬운 게 아니란 것을.
“끄그극…….”
정신 집중의 시작과 동시에 난 자동적으로 어금니를 물었다.
혀끝에서 알싸하고 시큼한 맛이 나는 게, 너무 세게 물어 잇몸에서 피가 나는 중임을 깨달았다.
[괜찮……니?]
안 괜찮다.
정확히 말하면.
정신 집중이 아예 되질 않는다.
이런 기분…….
정말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까.
분명히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데 그 정신들이 난잡하게 튀고 있는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튀는 게 아닌, 그저 미친 것처럼 저들끼리 난잡하게 튀는 것과 똑같다.
아, 그래.
밀실의 탱탱볼.
지금 내 정신 상태를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딱 그 상태일 것이다.
각기 다른 색, 크기까지도 다른 탱탱볼을 밀실에 튕겨 놓고 문을 닫으면 어떻게 되던가.
목적과 이유 없이 그저 이리저리 튀고, 또 서로 부딪히기까지 하면서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상태가 된다.
바닷길을 만드는 과정 속에 있는 내가 지금 딱 그런 느낌이다.
[……윤도원. 너 정말 괜찮은 거야?]
흑염룡이 보기에도 얼굴로 나타나는 상태가 심각했는지, 걱정스럽게 물었다.
답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그럴 정신이 들지도 않았을 정도였으니까.
흑염룡에겐 어떠한 답을 하지 않고, 묵묵히 바닷길을 여는 것에만 집중했다.
촤라라락.
드디어 물결 중앙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신호는 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물결 중앙에 생겨난 홈은 서서히 커졌다.
***
[오오……. 이 정도면 그래도 합격인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바닷길.
하지만 폭이 아주 좁은 바닷길이다.
나 혼자만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크기의 바닷길이 완성되었다.
흑염룡은 그런 바닷길을 보며 감탄했다.
“이제부턴 타임 어택이다.”
지금 바닷길을 유지하고 있는 이 순간도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사납다.
탱탱볼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밀실에서 열심히 튀는 중이다.
따라서 내 상태가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초월석만 건져서 던전에서 탈출해야 하는, 시간 싸움으로 변했다.
난 일단 열린 바닷길을 살폈다.
바다가 양옆으로 갈리면서, 그 속에 있는 몬스터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흑염룡의 말대로 크기, 무게가 제각각으로 보이는 몬스터들.
그래도 여기가 바다이기 때문인지, 몬스터들의 종류는 전무 물에 서식하는 동물과 닮았다.
거대한 도롱뇽 몬스터도 보이고, 거북이의 모습과 상당히 비슷한 몬스터도 보였다.
“그래도 이번 던전의 몬스터들은 온순해 보이는데?”
[그렇지는…… 않을걸? 쟤네 화나면 엄청 사나워져.]
“지금은 화난 상태가 아닌 것 같은…….”
쾅!
그때, 거대한 도롱뇽의 몬스터가 우리 앞에 나타나 길을 막았다.
하필이면 바닷길로 가는 길목을 막아 버린 셈이다.
[갑자기 우리의 집을 왜 공격하지?]
그리고 몬스터가 말을 했다.
내가 처음 흑염룡의 게이트로 들어갔을 때, 신전 배경의 던전에서도 이런 현상은 겪은 적 있기에 그다지 놀랍진 않았다.
다만, 걱정스러울 뿐이다.
갑자기 몬스터가 이렇게 돌변한다면.
나를 공격할 가능성도 높으니까.
[어어……! 아니야! 너희 집을 공격한 게 아니야!]
흑염룡은 재빨리 몬스터로부터 내 얼굴을 가려주려고 하는 듯이, 내 얼굴 앞에 두둥실 떠서 몬스터에게 말했다.
[그런데 왜…….]
[내 주인님이야! 그러면 안 돼!]
[주인님?]
[그래! 넌 내가 누군지 잊은 거 아니지?]
[위대하신 레베카 원로의 후계자 린느님.]
그런데 이번 몬스터는 내가 여태 겪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정말 흑염룡을 극진히 모시는 게, 꼭 드라마에서 보던 왕을 정성스레 모시는 신하처럼 보였다.
[그런 나의 주인인데. 어떻게 대해야겠어? 지금 내 주인님이 바닷길을 만들어서 정신 집중이 중요한 순간이거든? 그런데 지금 네 행동은 뭐지?]
신전의 던전에서는 몬스터에게 애원하다시피 했던 그 흑염룡이.
지금은 도리어 몬스터를 나무라는 걸 보고 있자니 정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심지어 몬스터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사과까지 하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사죄드리고 용서받고 싶은데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세상에…….
몬스터의 입에서 사죄와 용서라니.
이게 무슨 개과천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말인가?
그간 내가 겪은 것은 늘 멋대로 폭주하던 몬스터들 뿐이었다.
그로 인해 몬스터를 만든 장본인.
즉, 몬스터의 입장에선 창조주인 흑염룡의 말도 듣지 않아서 위험한 상황이 더러 있었다.
그래서 던전에 들어올 때도 난 흑염룡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흑염룡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용서받고 싶어?]
[네.]
심지어 대답하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내가 몬스터를 귀엽게 보는 날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흑염룡은 이제 나를 향해 돌아봤다.
[윤도원. 안 그래도 너 바닷길 계속 유지하기 힘들지?]
“당연한 걸 왜 물어.”
답을 한 이 순간에.
애써 만든 바닷길이 위태로운 순간에 놓였다.
바로 양옆으로 찢어진 물결의 장벽이 조금 흐트러져, 바닷길로 물줄기가 조금 튄 것이다.
“보면 알겠지?”
내가 답할 때마다 바닷물로 만든 장벽에선 물이 조금씩 새어 나와 땅을 적셨다.
[좋아!]
흑염룡은 뭔가 대안이 떠올랐는지, 다시 도롱뇽 몬스터를 보고 말했다.
[제일 빠른 녀석을 데리고 와! 그리고 주인님을 키스톤이 있는 동굴로 안내해! 그럼 용서해주실 거야!]
[알겠습니다!]
도롱뇽은 그대로 답하고, 바닷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깐. 빠른 녀석?”
[다행이야. 온순한 녀석들이 걸려서 이번엔 엄청 쉽겠는데?]
나보다 더 기뻐하는 눈치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도롱뇽 몬스터는 빠른 녀석을 데리고 왔다.
“……거북이?”
내가 이미 봤던 거북이 모습의 몬스터다.
[네. 저희 중에 제일 빠른 녀석입니다.]
거북이가 제일 빨라……?
던전판 토끼와 거북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