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내가 가진 것의 진가 (2)
흑염룡은 잠시 뜸을 들였다.
할 말이 많아, 그 순서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느라 나온 반응으로 보였다.
그러다 드디어 흑염룡이 입을 열었다.
[이거 하난 확실해. 네가 가진 염력은 전 세계 헌터 중 너만 가진 능력이야.]
“나만?”
솔직히 그렇게 대단하다고 느껴질 능력은 아닌데, 능력의 주인인 흑염룡이 그렇게 말하니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허나 여전히 궁금한 건, 어째서 이 능력이 나에게만 있느냐다.
그것을 물었을 때, 흑염룡은 답했다.
[간단하지. 그 염력은 원래 없던 능력인데 우리가 나중에 급하게 만들었으니까. 그것도 딱 하나만.]
“나중에 만들었으면… 그럴 이유가 있었던 건가?”
[당연히 있지. 그 염력이란 능력을 만들었던 시기가 크루즈에게 점점 열세로 접어들었을 때니까.]
“잠깐.”
이 말을 해석해 보면.
“꼭 염력이 크루즈 대항용으로 만든 비밀 병기로 들리는데?”
[잘 들었네. 염력이 없으면 크루즈들과 싸울 수 없어.]
크루즈는 도대체 어떤 존재들이길래 없던 능력인 염력도 만들어낸 것일까.
염력은 정말 단순하게 생각하면, 보이지 않는 힘을 이용해 물체를 들거나 이동시키는 것뿐이다.
이 간단한 효과 하나가, 시오스의 주적인 크루즈 대항용이라니.
쉽게 납득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원래는 우리가 염력을 만들 필요를 못 느껴서 만들지 않았다가 크루즈 때문에 그 필요성을 느끼고 급하게 추가한 거라고.]
“그러니까 염력이 있어야만 크루즈랑 싸울 수 있다는 뜻을 모르겠다는 건데?”
[그건…… 설명하기 힘들어. 네가 직접 겪어야 알 수 있는 거라서. 크루즈가 나타나면 생겨나는 변화 때문이니까.]
“아무튼, 계속해 봐.”
그래, 염력이 크루즈 대항용이라고 하는 건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제 왜 딱 하나만 만들었는지가 중요하다.
크루즈와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면, 무기인 셈이다.
그런 무기를 딱 하나만 만들었다는 것도 나로서는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원래 그 염력은 우리의 수호신, 드래곤에게 주입하려고 만든 거야.]
“그런데 그게 생각대로 잘 안 된 모양이군? 나한테 흘러들어왔으니까.”
[그렇지. 우리보다 상위 생명체인 드래곤에게 우리 마음대로 능력을 주입할 수 없더라고. 하나밖에 만들지 않았던 이유도, 그만큼 크루즈와 대항할 때 있어서는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나 남발하면 안 된다는 게 우리 정령들의 의견이었고.]
그런 이유에서 염력이 딱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완벽히 이해까진 아니더라도 납득은 된다.
어쨌든 시오스에겐 정말 중요한 무기이자 보물이었으니, 그런 보물이 많아지면 크루즈들도 대응법을 찾을 위험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럼 내가 드래곤을 만났던 그 던전. 크루즈 함정용이라고 만들었던 곳도. 계획대로라면 드래곤에게 염력을 주입하고, 거기에서 일망타진하기 위했던 건가?”
[응. 다 실패로 끝났지만. 그래서 결국, 키스톤을 쪼개서 인간계에 보낼 때 염력을 담은 조각까지 같이 보내게 된 거야. 수호신인 드래곤에게 주입할 수 없으니까.]
“그러다가 인간 중에 우연히 염력을 가진 자가 나타났으면……?”
[너를 만나기 전이었으면, 내가 그 인간을 주인으로 섬겼겠지. 그리고 나를 비롯한 많은 정령이 인간계의 다양한 나라로 흩어져서 일종의 순찰 중이었어. 널 만나게 된 것도 그때고.]
그 말인즉슨, 시오스에게도 소중한 능력인 염력을 담은 초월석이 어디로 갔는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령들은 각자 흩어져서 염력을 가지게 된 인간이 어디서 나타날지, 순찰하던 중에 나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무려 15년 전에.
“그런데 이상하네? 넌 그때부터 나를 주인으로 섬겼잖아? 염력이 없는데도.”
[염력이 없어도 너의 그 유치한 말장난에 내가 게이트를 만들어내게 했잖아. 그래서 생각했지. 너와 함께 있으면 게이트는 계속 만들어질 거고, 그럼 너에게 염력이 들어갈 확률이 높아질 거였으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염력을 품은 키스톤을 찾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니니까. 난 너한테 붙어도 된다고 생각했어.]
보기와는 달리 꽤 계획적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15년 전 흑염룡과의 첫 만남을 떠올려 보니, 지금은 조금 소름이 돋는다.
그런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단 것은 아예 생각도 못 했으니까.
[아무튼. 정말 너에게 염력이 들어갔으니 그건 끝. 그리고 그 염력을 가지고 있는 자에 한해서, 키스톤을 사용해 특정 능력 하나를 선택해 추가할 수 있는 방법도 우린 이미 만들었어. 물론, 그건 나만 할 수 있지.]
“그래서 나한테 일반 헌터는 무조건 무작위지만, 일반 헌터가 아니라고 한 것도?”
[염력 소유자니까. 크루즈에게 맞설 수 있는 게 염력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염력 하나만 믿을 순 없어. 필요한 능력이 하나 더 있거든.]
“꼭 햄버거 시키면 감자튀김이랑 콜라가 같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논리 같군.”
[……비유가 이상하지만 틀린 말은 아냐.]
문득 이런 얘기를 듣다가,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염력이 그렇게 대단한 능력인데 왜 흑염룡은 처음 내가 능력을 얻었을 때도 아무렇지 않게 반응한 걸까.
애초에 그때 대단한 능력이라고 말했으면 된 걸 괜히 질질 끈 느낌이다.
이 물음에 흑염룡은 즉각 반박했다.
[일에는 다 순서가 있지. 당시 네 단계에서는 불필요한 안내라고 생각했고 일부러 알리지 않았어. 그리고 그 선택은 백번 옳았다고 느꼈는데? 네 행동을 보고?]
“내 행동?”
[어. 너 실전에 강한 타입이라면서 능력 레벨도 낮은 게 박우민을 상대하러 나가는 무모함까지 보였잖아. 그런 애한테 처음부터 염력이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라고 말했으면? 안 봐도 뻔할 거 같은데. 기고만장해져서 인간들 말처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랐겠지.]
그 부분은 나도 공감이 됐다.
내가 가진 능력이 세계에서 단 한 명밖에 없을 정도로 특별하다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희소성이건 중요성이건, 하나만 존재한단 것은 특별함을 지녔다.
그러니 난 세상에서 하나만 존재하는 특별한 사람.
이걸 처음부터 알았다면, 흑염룡의 말대로 박우민을 상대하러 갔을 때 신중하지 않았을 거고.
신중하지 않았다면 높은 확률로 실패했을 것이며, 우리의 정체가 그 자리에서 탄로 났을 위험도 컸다.
확실히, 이것만큼은 흑염룡의 판단이 옳았다.
“자, 그래서 지금 네가 이걸 나한테 말하는 이유는? 염력과 세트인 능력을 만들어주기 위함이 아니야?”
[…내가 생각한 때는 아니지만, 어차피 나중에 해야 했을 일. 지금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그렇다는 말을 너무 길게 말하네.”
[그래. 그러려고 한 거다.]
“그럼? 어떻게 줄 수 있는데?”
[키스톤 하나를 써야지.]
“그 말은?”
흑염룡에게 물으며, 방금 만든 게이트를 쳐다봤다.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초월석은 두 개.
하난 이지은에게 줬고, 나머지 하난 내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초월석은 능력을 만드는 것에 사용하지 않을 거다.
왜냐, 남은 초월석은 나중에 협회와 내가 직접 협상할 때 사용해야 할 카드기 때문이다.
최소한 하나라도 남겨 놓고, 염력과 세트인 능력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초월석은 새로 얻어야 했다.
[들어가. 어쩔 수 없지. 대신, 정말 마지막이야. 최소한 네 능력을 만드는 데에 초월석을 소비하는 건 이게 마지막이라고. 정말 여기까지만 예외고 나중은 나와 한 약속 지켜.]
“게이트 열 개 유지한 다음에 하나. 그다음은 다섯 개 단위부터 사용할 수 있는 그 약속?”
그 물음에 흑염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초월석은 어차피 곧 세상에 모습을 다시 드러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소비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때 소비될 초월석에 한해,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다.
“좋지. 그런데 걱정이 있는데.”
[무슨 걱정?]
“초월석은 등급이 제각각이라며? 아무 등급이나 사용해도 되는 거야? 염력과 세트인 능력을 만들어줄 때 말이야.”
[응. 상관없어. 대신 불편한 점은 있지.]
“뭔데? 그 불편한 점이.”
[높은 등급의 키스톤을 사용했다면, 시작 레벨이 높고. 반대로 낮으면 레벨이 1부터 시작해. 아니, 어쩌면 1보다도 낮을 수 있지. 그만큼 특별한 능력이니까. 이건 네가 염력과 은신을 얻는 과정과는 명백히 다른 점이야.]
원래는 초월석의 등급에 따라 그 안에 들어있는 능력이 달랐다고 한다.
즉, 이 능력을 만든 정령들이 판단하기에 귀한 능력이면 높은 등급의 초월석에 넣었을 것이고.
반대로 흔하디흔한 능력은 등급이 낮은 초월석에 넣은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1보다 낮을 수 있단 말이 신경에 걸렸다.
당장에 내가 얻은 염력이나 은신의 경우에도 1로 시작하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경우이기 때문에, 사용하는 초월석의 등급에 따라 곧 생길 미지의 능력 레벨이 다르다는 것뿐이다.
“좋아. 그럼 합의 본 거다?”
[약속 확실히 지켜. 아니면 정말 나 어떻게 될지 몰라.]
이번엔 꽤 무서운 협박으로 들렸다.
흑염룡은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하면 게이트를 만들어내는 정령.
지금까지는 억지로 오글거리게 만들어서 게이트를 만들었지만, 그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분노에 사로잡히면.
그만큼 더 강한 게이트가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던전에서 봤던 드래곤.
그 무지막지한 시오스의 수호신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걸 알아서 조금 섬뜩했다.
“최소한 네가 분노에 사로잡혀서 게이트를 만들게 하진 않을 거다.”
[믿을게.]
“고맙다. 흑염룡.”
[얼른 들어가기나 해. 빨리 끝내자고. 내일 할 일도 많은데.]
“그러자고~”
그렇게 난 일어나서 방금 만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
실로 간만에 던전에 들어왔다.
그간 염력과 은신을 연마하겠다고 컴퓨터만 붙잡고 살아서다.
그런데…… 간만에 보는 던전의 모습에 난 한숨부터 먼저 나왔다.
“흐음…….”
[난감하네…….]
흑염룡도 나와 같은 기분이다.
왜냐, 지금 던전의 모습은.
한가로운 휴양지를 연상케 하는, 부드럽고 고운 모래가 잔뜩 깔린 해변이다.
해변 경계에는 푸른 바다가 깔려 있고, 그 바다 끝까지 시선이 닿으니 지평선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던전은 바꿔 말하면, 바다인 셈이다.
게다가 해변의 면적도 크지 않기에, 어느 순간 해변으로 넘실대는 잔잔한 파도에 내 발은 젖어 있었다.
“이건 어떤 유형의 던전이야?”
[보면 알잖아. 바다.]
“그러니까… 내 말은… 초월석을 얻으려면 저 바닷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야?”
[그래야만 하니까 내가 난감하다고 하지 않았을까?]
“……어떡하냐.”
[참고로 엄청 깊다. 이 바다.]
왜? 그냥 죽으라고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