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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36화 (36/200)

§ 36화. 내가 가진 것의 진가 (1)

애지중지하던 차가 부서지자 분노에 사로잡힐 뻔한 박우민.

겨우 평정심을 되찾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곱씹었다.

“확실히 뭔가 있구나?”

이지은이 가진 상가 주위를 잠복한 것이 결과적으로 정답이 되었다.

갑자기 자신의 몸이 스스로 공중을 향해 두둥실 뜬 것은 물론, 소환체들과 자신의 차까지 들어 올렸다.

이건 마치 이지은의 상가 근처에서 얼씬도 하지 말라는 경고로 보이기 충분했다.

“거기에 있는 건 확실하군.”

박우민은 정말 형사가 된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금 상태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

이지은을 돕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누군지 모르니, 물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놈이 사용하는 능력은… 은신은 확실하고. 그리고…….”

이제 부서진 차를 바라봤다.

이지은의 상가 건물에 있던 자신이, 한순간에 아테네 길드 주차장으로 이동한 현상.

이 능력을 추측하는 것도 박우민에게 어렵진 않다.

“커넥터 유형이고 워프인데 문제는…….”

자신이 소환한 퀸과 자신의 몸까지 공중으로 떴다.

이 능력의 정체를 아무리 추측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박우민은 생각이 완전히 멈췄다.

자신의 몸이 공중에 뜬 능력의 정체를 알기 전, 더 거대한 충격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뭐야……? 설마 한 사람이 능력을 세 개나 가지고 있는 거야?”

보통 헌터들이 가진 능력은 하나.

아주 이례적으로 두 개의 능력을 가진 헌터들이 있긴 하나, 두 개를 가졌다고 해서 강한 헌터들은 아니었다.

왜냐, 능력 두 개를 가진 헌터들은 전투력이 현저하게 낮은 편이다.

예를 들면, 은신 능력을 가진 헌터가 있다면.

나머지 하나의 능력은 은신 능력을 서포트 할 수 있는 식의 능력이다.

달리기 속도가 빨라져서 은신한 채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던가.

대부분 이런 식이다.

대표적으로 던전이 아직 세상에 남아 있을 때.

던전이 발견되면, 해당 던전의 지형은 어떻고, 어떤 유형의 몬스터가 있는지 알아보는 선발대.

그 선발대에 있는 헌터 중 하나가 은신과 발이 빨라지는 능력을 보유했다.

“이지은의 건물에 있는 쥐새끼……. 한 명이 아닌가?”

헌터 한 명이 세 가지의 능력을 가질 수 있을 리는 절대 없다.

한국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그런 헌터가 있다고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박우민은 확실하게 답을 낼 수 있었다.

“최소 세 명이야.”

덕분에 이지은과 내통하는 자의 숫자도 파악할 수 있었다.

“세 명이면…… 나 혼자서는 힘들 수 있어. 애들 풀어봐야겠는데?”

박우민은 상대가 셋이라고 확신했다.

게다가 상대는 이지은 쪽 사람이다.

이지은도 헌터 바닥에서 강만식만큼의 영향력이나 힘이 없을 뿐이지, 헌터계 전체에서 보면 꽤 강한 상대다.

S급이 괜히 S급이 아니다.

그런 이지은의 사람이니 결코 만만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로 별도의 조직을 꾸렸을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과장 조금 보태면 은둔 고수 세 명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셋을 혼자 상대하는 건 역시 벅찬 일이고, 결정적으로 셋의 정보를 아예 모른다.

적어도 상대가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선 박우민도 별도의 행동을 취해야만 했다.

박우민은 조용히 휴대폰을 들었다.

***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흑염룡이 내게 경고하는 목소리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상황 때문이다.

“뭘 그런 눈으로 보지 말래?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직은 아무것도 안 했지만, 이제 할 생각인 게 눈에 다 쓰여 있으니 그런 거 아냐. 네 생각이 훤히 보이는 눈동자라고.]

이럴 땐 또 눈치가 빠르다.

박우민을 쫓아내고.

신보미와 정다혜가 내일 연습용 금고를 가지고 오기로 약속하고 떠난 뒤.

흑염룡을 오글거리게 만들어, 내가 생활하는 공간에 게이트가 하나 덜컥 생겨 버렸다.

당연히 난 이 게이트로 들어가 새로운 초월석을 얻을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롭게 얻는 초월석으로 뭘 하려는 생각이냐고 묻는다면.

초월석을 사용해 새로운 능력을 얻어야겠단 생각이 들어서다.

내가 가진 두 개의 능력.

염력과 은신.

이 능력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박우민을 상대하면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쫓아내는 게 전부.

실질적으로 물리적인 피해를 준다거나, 진짜 게이트를 정복하러 다니는 전장의 장수들과 같은 위엄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단순히 멋있어지고 싶어서?

그건 절대 아니다.

염력과 은신만으로는 뭔가 확실한 무기가 없단 게 가장 중요한 이유다.

즉, 이왕 생겨난 게이트를 이용해 그 확실한 무기를 만들자는 취지다.

[절대 안 돼. 잊었어? 너 나랑 분명히 약속했다. 게이트 다섯 개 단위가 초과한 시점에서 하나 가져가라고 했고! 이지은한테 이 건물 받은 건 예외로 허락했으니까 이번엔 열 개라고 했어!]

확실히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긴 하다.

그리고 5층에 다섯 개 만들어 놨고, 지금 내가 생활하는 곳에 하나가 있으니 합쳐서 게이트는 여섯 개밖에 되지 않는다.

흑염룡과 약속한 개수에 도달하려면 4개가 더 필요한 상황이지만, 난 이번도 예외로 두고 싶었다.

“아니지. 이번에도 예외로 둬야지.”

[아! 자꾸 그놈의 예외! 야! 게이트가 어떤 의미인지 잊은 거 아니잖아? 도대체 왜 자꾸 쓸 생각만 하는 거야? 만들 생각은 안 하고?]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진심으로 정색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대화를 조금만 더 이어가면 정령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올 분위기다.

“사람 말은 일단 듣는 게 어떤가? 내가 왜 예외라고 생각하는지.”

[그래. 들어나 보자.]

나도 흑염룡의 기분을 고려해 나긋나긋하게 다가가자, 기분이 조금 풀렸는지 적어도 들을 자세는 취했다.

“일단 이 게이트의 위치가 문제야. 보다시피.”

이번에 만들어진 게이트는 내가 생활하는 곳에 생성되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저 게이트 속으로 하다못해 리모컨이라도 들어간 순간 게이트 속에 있는 몬스터를 깨우는 일이 된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아주 높다.

왜냐, 난 꾸준히 염력과 은신을 연습해야 하고, 특히 염력이 가장 문제다.

그 과정에서 깨진 물체의 파편이 게이트 속으로 들어가면 그것은 곧 잠든 사자의 코털을 뽑는 일이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가닥이나.

[그건 네가 그만큼 집중하면 해결될 일이잖아.]

하지만 흑염룡은 고집스러워 보이기까지 할 정도로 완강했다.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니까 그렇지. 만에 하나란 게 있잖아.”

[그렇게 만에 하나란 걸 신경 쓰신 분이 박우민을 상대하시겠다고 뛰쳐나가셨어요? 혜안이 아주 대단하신 분이? 왜? 네 말대로 실전에 강한 타입이라며? 이것도 실전인데? 뭐가 다른 건데? 너 그냥 새 능력 얻고 싶어서 떼쓰는 걸로밖에 안 보여.]

이게 업보라는 걸까.

흑염룡에게 점점 말리는 중이다.

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설득을 이어갔다.

“…야, 솔직히 내가 부탁하는 거잖냐. 그런 이유가 있으니 이 게이트는 사용하자고 말이야. 난 네 주인이라며?”

내가 명령을 내리면, 흑염룡은 좋든 싫든 이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서로에게 좋을 게 하나 없으니, 난 최대한 흑염룡을 설득하고 부탁하는 쪽을 고수한 거다.

나 혼자서 세운 규율 정도로 보면 되겠다.

그런데 지금 그 규율에 살짝 금이 간 순간이다.

[설득시킬 자신 없으니까 협박하는 거냐?]

내 의도를 어렴풋이 알아차렸는지, 흑염룡의 눈빛이 또 변했다.

이 태도를 고수하다간 이젠 겨우 자리 잡은 관계가 철회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왜 협박하냐. 너랑 나랑은 공동체인데.”

그래서 최대한 저자세로 기분 맞춰주면서 설득을 다시 시작하려고 할 때.

[하아…. 너 솔직히 말해. 지금 가진 네 능력이 약하다고 판단한 거지? 박우민처럼 겉보기에도 화려하거나 강해 보이는 능력이 아니라서?]

흑염룡이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건넸다.

솔직히…….

“응.”

숨김없이 답하는 쪽이 낫다고 판단했다.

난 스스로 능력의 한계가 너무 명확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이럴 줄 알았다. 내가 저 게이트를 사용하는 걸 허락하지 않는 게 단순히 약속 때문이 아니야. 즉, 크루즈 견제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걱정만 하는 게 아니라고.]

“그럼 다른 문제가 있다는 건가?”

[응.]

“그게 뭔데?”

[잘 들어라.]

이제 흑염룡의 시간이 되었다.

마치 토론에서 각자에게 발언 시간이 주어진 것처럼 내 시간이 끝나고, 온전한 흑염룡의 시간이 된 것이다.

[넌 이미 겪어서 알잖아? 키스톤을 사용해서 능력을 얻을 순 있어. 그런데 문제가 뭐야?]

“……너만 있으면 되잖아?”

[그거 말고! 멍청아!]

빡!

얼마나 답답해서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일까.

흑염룡은 내 정수리를 사정없이 크게 후렸다.

“주인을…… 때리니? 이러면 난 명령으로 한다?”

[그러든가. 그리고 설명 안 끝났으니까 들어.]

협박했는데도 먹히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화가 났다는 것이고 중요한 게 남았단 뜻이기도 하다.

난 일단 그 중요한 것을 먼저 들어야겠단 생각을 했다.

“해 봐.”

[능력은 무작위로 결정된다고. 즉, 넌 네가 마음에 드는 능력이 나올 때까지 키스톤을 사용하겠단 말이랑 똑같아.]

듣고 보면…… 맞는 말이긴 하다.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궁금한 게 생겼는데. 어차피 헌터들의 능력은 전부 정령들이 사용하던 거잖아? 게다가 넌 정령들 사이에서도 꽤 높은 위치의 정령이라며? 그 정도 정령이면 초월석을 이용해서 내게 무슨 능력을 줄지 결정할 수 없어?”

[없어. 무조건 다 무작위야.]

흑염룡은 딱 잘라 답했다.

정말 그렇다면, 내가 마음에 드는 능력이 나올 때까지 몇 개의 초월석을 사용해야 하는 걸까?

운이 좋으면 10개 안쪽으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100개가 넘는 초월석이 소비된다.

이런 상황에 그 많은 초월석이 단순히 내 능력 보충용으로 소비되는 것은 나도 달가운 일이 아니다.

“하아…… 이것도 정답이 아니잖아, 결국.”

[아직 내 얘기 안 끝났는데?]

이 정도면 얘기가 끝났고, 나도 초월석 사용을 보류하려고 했는데.

뭔가가 남은 모양이다.

[일반 헌터들에게나 그렇단 뜻이야.]

그런데 흑염룡의 답을 듣고도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반 헌터들에게나 그렇다는 뜻이 뭐냐?”

[키스톤을 능력을 가지기 위해 사용할 때, 무작위로 결정된다는 거. 일반 헌터들에게나 그렇다고.]

“잠깐…… 그럼, 난? 난 뭔데?”

[넌 일반 헌터가 아니란 뜻밖에 더 있어?]

그 순간 난 눈이 번뜩였다.

“그렇다면 나한테 줄 능력을 무작위가 아닌 결정할 수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덩달아 목소리도 잔뜩 높아졌다.

[정말…… 이거까진 내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주인인 나에게까지 숨기고 싶은 무언가가 있던 모양이다.

이런 상황은 봐줄 수 없다.

난 분명히 공동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지내왔는데, 도리어 흑염룡은 혼자서 거대한 비밀 하나를 숨겼다는 뜻이니까.

괘씸죄로 난 흑염룡에게 명령을 내렸다.

“말해라. 나한테 여태까지 숨긴 그 비밀. 명령이야.”

[그러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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