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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35화 (35/200)

§ 35화. 정말 두더지가 되어 보자 (2)

태강 길드 사건이라 하면.

3년 전 이야기다.

내가 말한 대로, 당시 길드장이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켰고, 그게 매스컴에 보도되면서 헌터계가 대중의 질타를 받게 된 사건이다.

연예인도 음주운전을 하면 방송도 끊기는 마당에, 헌터라고 다를 게 있으랴.

연예인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군인만 하더라도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키면 강제 전역은 물론이요, 가중 처벌까지 받는다.

헌터는 그런 군인보다도 더 귀한 공무원이기에 당연히 금기시되는 규율이다.

결정적으로 헌터들에겐 ‘품위 유지’란 규율이 있다.

몬스터와 맞서 싸우고 이겨내는 신앙적 존재나 다름없는데, 사고를 치고 다니면 누가 좋아하나?

협회에서 판단하길, 헌터의 품위를 손상시킨 죄는 일반인을 상대로 능력을 사용해 상해를 입힌 것과 똑같이 취급했다.

갑작스레 사고가 일어나면 그 사고를 만회하기 위해 홧김에 능력을 사용할지도 모르기에 정해진 규율이다.

“그 길드장 음주운전을 너희가 유도한 거라고……? 왜?”

“아뇨 음주운전만 놓고 보지 말고. 그 길드장 음주운전 사고 일으킨 다음에 보도된 내용은 몰라요?”

“아… 그거라면.”

태강 길드가 문제가 많았거나 그런 건 아니다.

단, 해당 길드가 다른 길드와 다른 점이 있다.

바로 길드의 사유지.

얼마나 넓었냐면, 행정구역 단위인 동(洞)에 해당하는 면적을 그 길드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강 길드의 길드장은 국내 대기업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기업의 이름도 태강이라서 길드의 이름까지 태강이 되었다.

그리고 분명히 그 길드장이 사고를 일으키고, 협회에서는 길드 해체 명령과 더불어 태강 길드가 보유한 사유지를 헌터 육성과 관리에 힘을 쓸 수 있는 길드에게 양도하게 할 것이란 보도들이 나돌아다녔다.

“잠깐… 설마 그때 그 길드가?”

“네. 오빠가 근무하던 SF 길드. 원래 그 길드로 가게 될 운명이었어요. 그걸 계획한 게 최현민 협회장이었고요.”

[뭐야? 지금은 그냥 일반 건물이잖아. 주차장도 지하 주차장 쓸 만큼 가지고 있는 땅이 없잖아?]

흑염룡의 말대로다.

정말 그 계획대로 됐다면, 내가 근무하던 SF 길드는 서울 중앙이 아닌, 넓은 부지가 있는 경기 외각으로 옮겼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도 그 위치 그대로 있으니 최현민 협회장의 계획이 완벽하게 실패했단 뜻이다.

실패한 이유는 태강 길드장이 사고를 일으키고 며칠 뒤.

느닷없이 사죄의 의미로 길드가 가진 사유지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선언 때문이다.

길드장직은 물론, 헌터라는 신분도 내려놓고 그가 가진 땅까지 전부 국가에 헌납했다.

“그럼… 너희가 헌납하게 만들었단 뜻이야?”

“네. 국가에 헌납해 버리면 최현민이 아무리 협회장이라고 해도 강만식에게 줄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순전히 너희 둘이 벌인 일이라고? 지은 씨도 껴 있던 거야?”

“아니요. 그때 언니는 해외 나가 있어서 저희들끼리 움직였죠.”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냐……?”

이제 신보미는 사건의 전말에 대해 알려줬다.

***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최현민은 태강 길드장이 평소 음주운전을 자주 한다는 습관을 알고, 그와 술을 자주 마셨다고 했다.

그렇게 공을 들인 나날.

정말 최현민의 예상대로 태강 길드장은 사고를 일으켰다.

이 사고 자체는 최현민이 계획한 게 아닌, 순전히 태강 길드장의 악습관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때를 기다리던 최현민과 강만식.

이 사건을 빌미로 태강 길드가 가진 사유지를 빼앗아 강만식에게 주려고 했던 것.

강만식은 당시 넓은 부지가 필요했다고 한다.

슬슬 SF 길드의 덩치가 커지고, 협회의 신뢰까지 받는 상황이니 많은 헌터가 SF 길드로 오고 싶어 했고.

그들 전부를 수용할 욕심이 생겨난 것.

그래서 강만식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그 넓은 영토를 매매하는 것은 지금 자신의 능력으로는 불가능.

그러니 기존에 넓은 부지를 가진 길드 하나를 없애고, 그 부지를 이어받는 쪽이 돈도 들지 않고 완벽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아니, 너흰 어떻게 그걸 알고 있던 거야? 둘이서만 비밀리에 정한 거잖아?”

“제 능력을 보시면 알 것 같은데.”

“워프? 그 능력 가지고 뭐?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최현민과 같은 옛날 사람들은 정말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어요.”

“재미있는… 공통점이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재미있는 공통점의 정체를 모르겠다.

“뭔데? 그 공통점이란 게.”

“기계에 약해요.”

“그건 당연한 거잖아. 젊은 사람들과 다르겠지. 사용법 익히는 걸 두려워하기도 하고, 조작하는 걸 어려워하니까.”

기계라면 겁부터 먹는 일종의 풍습이 최현민 나이대의 사람들에겐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긴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걸까.

“그래서 기계에 약하니까 습관이 생겼더라고요.”

“무슨 습관?”

“중요한 건 컴퓨터와 같은 기계에 보관하는 게 아니라 문서로 가지고 있어요. 개인 금고에.”

“설마… 그 문서를 보고 알아냈다고?”

“네.”

“어떻게 한 거야?”

“저희가 여태 놀고만 있던 건 아니거든요. 강만식의 생활 패턴을 파악하는 건 여러 가지로 어려웠는데, 최현민 협회장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래서 생활 패턴 파악하고, 협회 구조도 파악하고. 그러면서 협회장실도 제가 본 적이 있어서 최현민 협회장이 자리 비울 때.”

“그때 네 능력인 워프를 이용해서 협회장실을 털었다? 어차피 이미 협회장실은 본 적이 있으니까 침투하는 건 어렵지 않아서?”

“네.”

“하…하하하…….”

첨단 장비를 이용해 값비싼 물건을 훔치는 도둑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도둑질을, 이 두 여자가 해냈다는 게 조금 소름이 돋는다.

“그런데 개인 금고라며? 비밀번호는 어떻게 뚫었어?”

“자기 차 번호로 해놨던데요? 생일, 휴대폰 번호 등등 차례대로 찍었는데 차 번호 때 맞았어요.”

“…참, 협회장이란 사람이 은근 빈틈이 많네.”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다.

보통 그 나이대 사람은 자신이 외우기 쉬운 걸 비밀번호로 해 놓기도 하니까.

그리고 누가 거기까지 침투해서 털 생각을 하기나 했을까?

은행도 아니고, 그렇다고 최현민이 재벌도 아닌, 그저 권력이 강한 협회장일 뿐이다.

그렇다 보니 금고의 비밀번호도 어렵게 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강만식과 짠 증거를… 태강 길드장에게 넘겼다? 그래서 그 길드장은 열이 받아서 사회에 환원해 버린 거고?”

“네.”

“그럼 그 길드장은 너희 얼굴 봤겠네?”

“아니요. 직접 건넨 거 아니에요. 병실이야 지나다니면서 쉽게 볼 수 있어서 잠깐 자리 비울 때 슬쩍 제가 침대 위에 올려놓고 빠져나왔으니까.”

음주운전을 일으킨 뒤 태강 길드장도 입원을 하긴 했었다.

정말 다쳐서 입원한 게 아닌, 당시 협회의 질타를 피하기 위한.

전형적인 재벌식 도피라고 볼 수 있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둘의 계략을 보였단 뜻이 된다.

이렇게 들으니까 모든 게 이해가 된다.

그렇게 독하디독한 강만식이 왜 태강 길드가 가진 지부를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최현민도 더는 아무 말 할 수 없었던 건지.

분명히 태강 길드장은 해당 증거를 인질 삼아, 최현민에게 따졌을 거다.

그렇게 둘만의 거래가 시작되고.

어쨌든 사고를 일으킨 건 사실이니 그 책임은 물어야 한다.

단, 자격 정지로 끝내자.

대신, 이 문서도 없던 것으로 해 줘라.

어차피 태강 길드도 사고를 낸 건 사실이니,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그걸 또 하자는 거고?”

“네.”

정다혜의 생각이 이해는 된다.

그토록 비밀로 치부했던 정다훈의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중요한 배경이 있을 터이고.

그 배경의 시작은 최현민 협회장.

그리고 최현민은 중요한 건 문서로 보관하는 습관을 가졌으니, 협회장실을 다시 털어보자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미 한 번 털렸으니 보안이 조금 심해지지 않을까? 예를 들어 협회장실에 CCTV가 있다던가, 아니면 비밀번호가 바뀌었다던가.”

“그래서 이번엔 오빠가 도와줘야 한다는 거죠.”

“…내가 뭘 어떻게?”

“CCTV가 생겼으면 오빠가 우리 모습을 가려줘야 하고. 금고 비밀번호는… 차도 밀 정도면, 염력으로 부숴 버릴 수 있지 않아요? 차보다 가볍잖아요. 아니면 티가 안 나게 딴 다던가.”

들으면 들을수록…….

정다혜.

소심했던 그 사람 맞나 싶다.

겉보기와 달리 생각은 꽤 파괴적이다.

그리고 그녀의 말 중에 틀린 말은 없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도 가능할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 도와주지. 그런데 혹시 모르니까. 연습 하나 하자.”

“무슨 연습이요?”

“둘은 날이 밝으면 개인 금고 하나 사 와. 정말 그게 되는지 안 되는지 확실히 확인하고 싶으니까.”

“그거 어렵지 않죠! 그럼, 저흰 이만 가 볼게요! 내일 다시 올게요!”

내가 수락하자 소심했던 정다혜는 사라지고, 활기찬 정다혜가 되었다.

도리어 신보미는 말을 아끼며 주눅든 모습이.

꼭 둘의 성격이 잠시 뒤바뀐 것만 같았다.

둘은 현관문이 아닌, 포털을 통해 내 집에서 나갔다.

[이렇게 냉큼 도와주기로 약속해도 되는 건가? 난 그래도 뭔가 걱정스러운데.]

“그렇게 생각할 거 없어. 도와준다고 나한테 손해될 건 없으니까.”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정다훈에 얽힌 일 중에, 던전과 관련된 게 있다면 나도 꼭 알아야 한다.

이미 박우민에게 선공을 하면서, 나도 강경한 대응을 보인 몸.

최현민과 강만식이 정확히 어떤 족속인지 실제로 내가 보고 싶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성향은 말로만 들어서 알 뿐이지, 직접적으로 본 건 없다.

하지만 물질적 증거인 그런 문서를 발견하게 된다면.

나도 이제 그들을 상대할 때의 방향을 확실히 정할 수 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나도 이 수단을 꽤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다.

“정말 박우민 말대로 두더지가 되어가는 중인 것 같네.”

지금은 땅속에 숨어 기회를 엿볼 때.

그러나 두더지가 발밑에서 불쑥 머리를 내민다면, 발 하나 정도는 아작이 날 수 있다.

난 그때를 기다릴 것이다.

[고작 두더지한테 그런 힘이 어디 있어?]

“평범한 두더지라면 그렇겠지. 우린 평범한 두더지가 아니니까.”

[그럼 무슨 두더지인데……?]

“인간계에서 유명한 애니메이션. 주머니에 몬스터 넣고 다니는 이야기의 애니메이션이 있거든. 거기에 두더지를 모티브로 한 몬스터가 나와. 생긴 건 귀여운데, 땅에 숨어서 공격하는 녀석이라 얕보면 크게 다치거든.”

[아~ 나 그거 알 거 같다.]

“조금 닮지 않았어?”

[뭐가?]

“생긴 건 귀여운데 얕보면 크게 다치는 거.”

[누구랑?]

“누구긴.”

난 다시 터져 나오는 중2병이 발현하려던 참이다.

그 신호로, 눈이 게슴츠레하게 떠졌다.

내 신호를 알아차린 흑염룡은 다급하게 변했다.

[야……! 잠깐만! 나 아직 준비 안 됐……!]

“너처럼.”

[아아아아악!!!]

쿠웅!

오케이, 던전 하나 더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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