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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34화 (34/200)

§ 34화. 정말 두더지가 되어 보자 (1)

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이제 우리는 향후의 일을 지켜봐야 했다.

이번에는 우리 정체를 들키지 않으면서 박우민을 성공적으로 쫓아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왜 그토록 이지은과 협력하는 사람의 정체 파악에 혈안인지도 아직은 제대로 모른다.

실제로 내 존재가 그들에게 어떠한 해악을 끼친 적도 없는데, 저렇게 집착을 보이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 참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일을 마치고 나서, 정다혜의 포털을 통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신보미가 감탄했다.

“다혜의 포털을 이용해서 그냥 쫓아내는 방식이라곤 상상도 못 했네.”

“그렇다고 없애 버리기엔 너무 잔인하지 않았니?”

“없앨 수 있었어요?”

정말 신보미는 궁금해서 묻는 눈치다.

내 실력이 박우민을 없애기에 충분한 것인지 의심하는 눈초리도 섞여 있었다.

“원래 중2병 환자들은 허세 빼면 시체야. 박우민 짜식. 내 오른손에 봉인된 흑염룡이 깨어났으면 큰일 났지, 아주.”

[하아…….]

흑염룡은 고개를 절레 저으며 자신의 이마를 찰싹 때렸고.

“…….”

정다혜는 그저 표정을 굳히고 입을 꾹 다물었다.

“오빠는 1절만 하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 그런 농담이 나와요?”

신보미는 도리어 나를 나무랐다.

“애국가도 4절까지 있는데 왜. 뭐 어때서? 4절이 뭐야? 후렴에 반복재생까지 할 수 있는데?”

“됐다…. 말을 말자.”

역시, 항마력이 없는 인간들과 대화하는 건 힘든 일이다.

“그런데 어디로 보낸 거예요? 박우민.”

“어디겠냐? 다혜가 아는 곳 중 하나겠지.”

정다혜의 포털은 자신이 알고 있는 곳으로만 보낼 수 있다.

단, 그 장소가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본 곳이 아닌.

직접 눈으로 본 곳이어야만 하는 조건이 달려 있다.

“어디로 보냈어? 다혜야?”

“언니네 길드 주차장으로요.”

아테네 길드로 보냈단 뜻이다.

“아하~”

“덤으로 차도 박살 냈어요.”

“응? 어떻게 알아?”

이건 내가 미리 계획한 일이 아니기에, 놀라며 물었다.

“도원 오빠가 차를 먼저 포털로 밀었잖아요.”

“그랬지.”

내가 먼저 차를 움직인 이유도.

이미 박우민이 이곳에서 잠복했을 때, 그의 차 상태를 봤기 때문이다.

차를 애지중지하고, 남다른 애착이 있는 사람을 판별하는 방법.

차의 상태를 보면 된다.

밤인데도 겉이 번쩍번쩍하는 게 보일 정도로 평소 관리를 잘한 사람이니, 차가 갑자기 움직이면 반응할 것이고.

반응을 보인 순간, 빈틈이 드러난다고 생각해서 난 차를 먼저 움직였을 뿐이다.

즉, 처음부터 정다혜에게 그저 박우민과 그의 차를 다른 곳으로 보내달라고 할 뿐, 어떻게 해 달라는 주문은 없었다.

“차를 먼저 보내고, 마침 박우민은 거대한 소환체를 만들었잖아요.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소환체를 차 위에다 떨어트리면 차가 박살 나지 않을까? 그러면 당분간 여기로 또 오고 싶어도 못 오겠지? 이런 생각으로요.”

[저 기지배 소심한 척하면서 할 건 다 하는 애였네……?]

흑염룡도 진심으로 감탄하는 목소리다.

“하하… 정말 한이 많았구나, 다혜야?”

신보미도 놀라는 것을 보니, 이렇게 당돌한 모습을 지금 처음 보는 듯했다.

[그래도 수확은 있네. 실전에 강하단 말. 정말이었나 보네?]

흑염룡이 두루마리를 꺼내줬다.

그리고 그곳에 적힌 것은.

[은신 Lv 21]

[염력 Lv 19]

내 능력의 레벨도 꽤 많이 올랐다.

결과가 이렇게 좋다 보니, 내심 이런 기대도 들었다.

‘차라리 박우민이 자주 와 줬으면 좋겠는데?’

그를 쫓아내는 방법은 발견했으니, 이것을 반복하면 내 능력이 정말 발전했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만하지 마. 아직 한참 멀었어.]

‘나도 안다.’

자만한 적 없다.

내가 기대하는 건 그저 박우민을 통해 더 빠르게 능력을 진화시키려는 목표일 뿐이다.

“흐음…….”

산을 하나 넘은 안도의 순간도 잠시.

신보미는 누가 들어도 근심 가득한 한숨을 쉬면서, 정다혜를 쳐다봤다.

“왜 그래요? 언니?”

“그게…… 너한테 할 말 있는데.”

“할 말? 무슨 할 말?”

나도 모르게 그들의 대화에 끼었다.

“사실은요. 오빠한테 연락 오기 전에 언니한테 연락이 왔거든요.”

“지은 씨?”

“네.”

“그래? 그럼, 잠시 자리 비켜줘?”

“아니, 그게 아니라… 이게 참 고민스러워서. 오빠도 들어야 하는 건지, 아닌 건지…….”

늘 당차고 활발하던 신보미가 지금 저렇게 고민스러운 반응을 보이니 나도 궁금했다.

“아무래도 이건 보미가 허락해야 같이 들을 거 같은데.”

“뭔데요? 무슨 얘기이길래 그래요?”

“네 동생 얘기야.”

“……네?”

순식간에 우린 냉동창고에 갇힌 것처럼,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

우린 셋이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정다혜가 나도 함께 들을 것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허락한 이유도 특별한 건 없다. 신보미가 판단하기에 나도 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걱정되는 부분에서.

나도 알면 좋은 부분이 있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신보미는 그렇다고 답해서다.

그렇게 신보미가 이지은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전부 듣게 되었다.

이야기의 내용은 꽤 충격적이었다.

정다혜가 그토록 찾은 동생이 강만식 밑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지은은 자세한 상황은 설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강만식 밑에 있다고 걱정하지 말고.

지금은 자신이 함께 있으니 언니를 믿으라는 말이 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언니가… 도원 오빠도 같이 들으면 좋은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한 거구나.”

자초지종을 알게 된 정다혜가 답했다.

의외로 덤덤한 반응이다.

솔직히 내가 생각하기에 그녀의 동생이 강만식 밑에 있다고 했을 때. 펄쩍 뛸 것 같았는데, 오히려 저렇게 무덤덤하니 더 걱정스럽다.

그리고 강만식이 엮여 있기에, 나도 함께 듣는 게 좋은 건지, 아닌 건지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된다.

정다훈의 일은 엄연히 정다혜의 개인적인 사연이라고 치부할지 몰라도.

문제는 그 정다훈을 데리고 있는 사람이 강만식이다.

강만식과 맞설 카드는 현재로선 내가 유일했으니, 내 도움이 아니면 그런 강만식과 맞설 수 없는 이유가 가장 크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신보미와 내가 정다혜의 눈치를 보느라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정다혜가 말했다.

“무슨 생각?”

신보미가 물었다.

“왜 강만식은 다훈이를 실종으로 처리하면서까지 데리고 있었을까, 이걸 생각해 봤거든요?”

“그렇지…? 꼭 본인이 데리고 있는 걸 숨기려는 의도로 보이니까?”

“아무래도 그게 정답이죠. 자신이 데리고 있는 걸 남들에게 숨기고 싶어서 그런 짓을 했다는 게 정답인데. 문제는…….”

“문제는?”

“그토록 숨기고 싶었던 다훈이를 왜 데리고 갔을까요? 그것도 지은 언니가 간 곳이 무슨 나들이도 아니고. 엄청 중요한 자리잖아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국가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는데.”

그건 나도 동감이다.

강만식과 이지은은 전국 일주를 나섰다.

목표는 단 하나.

전국 어딘가에 15년 전, 내가 흑염룡을 처음 만났을 때 생성해 버린 변이 게이트라도 없을까.

혹시 있다면, 그 속에서 초월석을 얻을 수 있진 않을까?

아니면 이지은이 놓친 던전이 어딘가에 있는 건 아닐까?

찾을 수만 있다면 지금 사회에서 걱정을 끼치고 있는 인플레이션 안정화를 외치는 시위를 잠재울 수 있는 최고의 카드니까.

즉, 아무나 참여할 수 없는 프로젝트다.

그런 프로젝트에 협회장 최현민이 가장 믿는 강만식을 선발하였고.

아시아 대륙의 게이트 전부를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실적을 올린 이지은이 핵심 인력.

그런 중대한 임무를 가진 일정에 아무나 투입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정다훈을 데리고 갔다.

이것을 뜻하는 건 단 하나.

정다훈도 해당 프로젝트에 꼭 필요한 인물이란 뜻이 된다.

정다훈이 그 정도로 중요한 능력을 지녔던가?

그러나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정다혜는 워프 능력.

그녀의 아버지도 헌터였고, 공간을 창조하는 능력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흑염룡의 말로는 이런 경우엔 대부분 유전이라고 했으니, 정다훈도 공간과 관련된 능력일 게 분명하다.

공간 관련 능력을 지닌 정다훈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인가?

물론, 게이트는 없지만, 만에 하나 그들이 찾는다고 쳐도.

던전을 정복해야 하는데, 정다훈의 능력이 게이트 정복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네……? 왜 다훈이를 데리고 갔을까? 그렇게 기를 쓰고 숨긴 애를 남에게 보여줄 정도로, 함께 가야 하는 이유가 있었던 건데?”

신보미도 내 생각과 일치한 듯하다.

“그걸 알아내고 싶은데…….”

정다혜는 진심으로 한 말이다.

도대체 뭐가 있기 때문에 동생인 정다훈이 실종 처리가 되면서까지 자신과 연락이 끊겨야 했는지.

또, 그렇게 비밀을 유지한 정다훈을 남에게 노출되는 것을 감수하고서도 데리고 간 것.

전부 알 수 없는 연결고리가 확실히 있다.

“이거 분명히 협회장 주도하에 시작된 프로젝트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언니도 거절 못 하고 불려 나간 거고.”

“맞아. 그거 아니었으면 갈 이유가 하나도 없지.”

“그럼 시작은 협회장이란 소린데.”

“너 설마……?”

난 그저 신보미와 정다혜의 대화를 듣기만 했다.

그런데 신보미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왜 저러지?]

‘글쎄……? 나도 알고 싶네. 갑자기 왜 목소리를 떠는지.’

“언니. 우리 또 한 번 ‘그거’ 할래요?”

“또…? 야! 그때도 간 떨려 죽는 줄 알았는데, 또 하자고?”

“지금은 꼭 해야 하잖아요. 부탁해요.”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활발한 신보미가 저토록 아연실색하는 걸까.

그러자 정다혜가 나에게 말했다.

“근데 이번엔 오빠도 도와줘야 하는데.”

“…내가?”

“네. 저도 오빠 도와줬으니까 이번엔 저 좀 도와줘요.”

“아니 도대체 뭐길래?”

“꽤 스릴 있고 재밌는 거예요.”

“스릴… 재미…?”

그 소심한 정다혜의 입에서 스릴과 재미란 말이 나오니 괜히 닭살이 돋는 것만 같다.

“아니, 도와줄 수는 있는데. 적어도 뭘 하려는 건지 내가 알아야 하지 않아? 그래야 착실히 도와주지.”

도와주지 않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다만, 정확히 이들이 무얼 하고.

내가 어떤 식으로 도와줘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 다혜야. 일단은 설명은 해 줘야지. 안 그래?”

“그렇죠. 잘 알고 있어야 제대로 도와줄 거니까.”

“네가 직접 말해. 그럼. 네가 도와달라고 한 거니까.”

그렇게 설명 담당은 정다혜가 되었다.

“오빠는 혹시 몇 년 전에 ‘태강 길드 사건’ 알아요? 당시에도 SF 길드에서 근무했으니까 알고 있을 것 같은데.”

“태강? 태강이면 내가 아는 그 태강 맞나? 길드장이 음주운전 했다가 자격 정지되고 길드도 해체되려고 했던 그 사건.”

“네. 맞아요. 그거.”

“근데 그게 왜?”

“사실 그거 우리가 그런 건데.”

“뭐…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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