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두더지 게임 (3)
[으음…… 보통 이런 소환은 우리가 몬스터를 만들 거나 던전에 배치할 때 사용한 건데.]
그렇다면 던전 속에 있는 몬스터.
그것들을 만들 때나 사용하던 능력이란 뜻이 된다.
‘박우민도 몬스터를 만드는 걸까?’
[아니야. 그건 절대 아닐 거야. 인간들은 구조적으로 이 능력을 통해 몬스터를 만들 수 없어.]
‘구조적으로……?’
[복잡한 얘기인데, 그냥 쉽게 말하면 몬스터를 만드는 건 시오스만 가능하다고 보면 돼.]
‘그럼 박우민이 가진 소환이란 능력은 어떤 식이 되는 거야?’
[무언가를 소환하는 건 맞는데. 아무래도 인간에게 맞게 변형이 된 거 같은데……. 어떻게 변형됐는지는 나도 모르지.]
몬스터는 만들 수 없지만, 인간에게 맞도록 변형이 된 소환 능력이라.
이렇게 말하니 더 확인하고 싶어졌다.
‘어쨌든 확실한 건 그냥 소환하는 것뿐이란 거지? 박우민도 나처럼 자신의 몸으로 직접 싸우는 게 아니라?’
[그렇지.]
그거면 됐다.
신체 능력이 다른 헌터와 달리 높은 편이 아니란 뜻이다.
나처럼 무언가에 의존해서 싸우는 타입이라면, 내 쪽이 충분히 더 강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염력은 아예 접근도 못 하는 게 가능하지만.
무언가를 소환하여 싸우는 박우민의 경우 그 소환체가 내게 접근을 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내 시선은 길가에 주차된 차로 향했다.
평소엔 아무것도 없는 길이었는데, 고급 외제차 한 대가 덩그러니 주차된 상태다.
‘저 차가 박우민이 타고 온 거지?’
[응. 원래 없었던 차잖아.]
차가 상당히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이렇게 늦은 밤인데도 광이 날 정도로 애지중지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것만 보고 박우민을 어떻게 쫓아낼지 감이 왔다.
‘좋은 생각이 났어.’
난 바로 박우민을 향해 공격하는 게 아닌, 정다혜가 만들어 준 포털을 타고 집으로 되돌아 와, 은신을 잠시 풀었다.
“다혜야.”
“…네?”
한껏 긴장한 채로, 이 집에 숨어서 상황을 기다리던 중이었기 때문일까.
대답하는 순간에도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나랑 같이 좀 나가야 할 것 같아.”
“왜… 왜요……?”
“아니, 미쳤어요?! 그 위험한 곳을 저렇게 소심한 애를 데리고 갈 생각을 하고?”
오히려 신보미가 자신의 일인 것처럼 화를 냈다.
“그럴 이유가 있으니 그러지. 대신, 걱정하지 마. 네 안전은 내가 보장하니까.”
난 답하면서, 은신 능력을 정다혜에게 사용했다.
그러자 정다혜의 몸은 투명하게 변해, 형체도 없어 사라졌다.
“…뭐야? 언제 이런 거까지 가능했어요?”
오히려 신보미가 놀라며 물었다.
사실, 나도 처음 해 본다.
그러나 이미 예전에 흑염룡에게 들은 적이 있지 않은가?
크루즈와의 전쟁에서 점점 열세에 접어들자, 키스톤을 잘게 쪼개 인간계로 보냈고.
키스톤을 담은 던전을 인간계 곳곳에 만들기 시작했다.
키스톤은 시오스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보물이기에 남들 눈에 쉽게 띄면 안 된다.
그래서 던전 입구를 종종 가리기 위해 은신 능력을 사용하기도 했다는 전례를 들었기에 시도해 본 것이다.
내가 고안한 수련 방법과 그 수련에 쏟은 시간이 그리 헛된 시간이 아니란 증거가 지금 와서 발현됐다.
은신의 레벨이 오르면서, 내 몸만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남의 몸도 투명하게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이다.
또한 신기한 것은, 내 눈에는 정다혜의 모습이 보인다.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아닌, 흐릿한 사람으로 보이는 차이다.
[네 눈에 보이는 건 네가 직접 그렇게 만들어줬기 때문이야. 우리가 던전을 숨길 때도, 던전의 위치와 상태는 알아야 했기 때문에 우리 눈엔 보이도록 설계했거든.]
흑염룡의 설명까지 들으니, 이 현상도 쉽게 수긍이 됐다.
“언니… 저 지금 몸이 투명한 상태예요?”
정다혜도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몸을 볼 수 없는 노릇이니 신보미에게 물었다.
“응. 안 보여. 아예.”
“우와…….”
“그러니까 이 상태면 안전은 보장된 거라고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어때? 같이 나갈 수 있겠어?”
“물론이죠.”
“그럼 부탁 좀 한다. 내가 해달라는 대로만 해 주면 돼.”
그렇게 우리 둘은 포털을 타기 전. 정다혜에게 간략한 나의 작전을 설명했다.
“음, 간단하네요?”
“응. 나가고 나서는 절대 입 열지 마. 우리 모습만 안 보일 뿐, 소리는 들릴 거니까 목소리는 숨겨야 해.”
“그 정도는 쉽죠!”
그렇게 정다혜와 함께 밖으로 향했다.
***
밖에는 여전히 박우민이 건물을 서성이며 살피고 있었고, 난 그의 근처까지 붙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다혜는 한 블록 떨어진, 포털이 있는 곳에 있도록 하고 고개만 빼꼼 내밀어 상황을 살피라고 말했다.
‘자, 시작하자.’
모든 작전은 세워졌다.
이제 박우민을 쫓아내기만 하면 된다.
난 그대로 박우민을 향해 염력을 사용했다.
그러자 박우민의 발은 땅에서 약 10cm가량 떨어졌다.
“뭐… 뭐야?!”
목소리에서부터 당황한 티가 역력하다.
그러나 그는 당황에서 끝내지 않고, 곧장 다음 행동으로 옮겼다.
다급하게 손이 주머니로 가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자세히 보니, 슈퍼나 편의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트럼프 카드다.
트럼프 카드를 꺼낸 박우민은 한 장의 카드를 꺼내 들고 외쳤다.
“퀸(Queen)!”
그가 고른 카드는 퀸(Q) 카드.
그런데 그의 트럼프 카드는 일반 트럼프 카드와 달랐다.
바로 문양이 없다는 점.
보통 트럼프 카드엔 스페이드, 클로버, 다이아몬드, 하트.
이렇게 네 개의 문양이 있다.
박우민의 트럼프 카드엔 이 문양이 생략되어 있었다.
박우민이 퀸 카드를 꺼내며 외치자, 거대한 무언가가 소환되었다.
그것의 높이는 보통의 건물 2~3층 정도였다.
정확히 말하면, 박우민이 퀸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인형이 소환되었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가 퀸이라 부르는 생명체의 모습은, 중세 시대 왕비와 같이 신분이 높은 사람이 입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치마폭이 상당히 넓은 그런 드레스다.
그리고 얼굴은 있지만, 눈, 코, 입이 없다.
이렇게 보면 중세 시대 드레스를 입은 거대한 달걀귀신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박우민은 자신의 소환체를 덥석 잡으며, 내 염력에 저항했다.
그가 저 거대한 퀸을 소환한 이유는 아마도 몸이 갑자기 혼자 공중으로 뜨니, 지탱할 무언가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퀸이라고 부르는 소환체는 거대한 팔로 박우민을 들어, 자신의 품에 감쌌다.
그 탓에 내가 염력으로 그를 더 높은 공중으로 들어 올리려고 해도 퀸이 붙잡고 있어서 떠오르지 않았다.
“누구냐……?”
그리고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내가 보이지 않는 상태이니, 정확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면서 뱉은 협박의 말이었다.
[이제 알겠어. 저 인간이 가진 소환 능력이 어떤 건지.]
이어진 흑염룡의 목소리.
박우민의 행동 하나만 보고 정답은 찾은 듯했다.
‘뭔데?’
[소환은 우리가 몬스터를 만들기 위해 사용한 능력이라고 했잖아.]
‘그랬지.’
[너도 봐서 알잖아. 몬스터의 모습이 전부 똑같지 않다는 것. 그것처럼 저 인간도…… 저 카드를 이용해 자신에게 필요한 소환체를 만드는 것 같아.]
‘그런데 왜 굳이 트럼프 카드지?’
[그건 나도 모르지. 저 인간이 능력을 발휘하기 편한 수단으로 정한 것일 수 있으니까.]
해석하자면, 박우민은 트럼프 카드를 통해서 상황에 맞는 소환체를 만드는 헌터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부분은 있다.
바로 문양이 없다는 점이다.
보통 어떠한 비밀이 있을 때, 비워두기 마련이다.
지금 박우민의 문양 없는 트럼프 카드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오호, 그래? 대답이 없으시겠다? 그럼 내가 직접 찾지 뭐.”
자신의 몸에 일어난 이상 현상이 사라지면서, 박우민은 여유를 되찾고 목소리부터 자신감이 넘쳤다.
[윤도원. 저 인간 꽤 강한 헌터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 상태를 보니 네가 계획한 거 안 통할 거 같은데? 레벨도 42짜리야. 높은 편이라고 그거.]
덩달아 흑염룡의 목소리는 걱정스럽게 변했다.
‘어쩌라고. 어차피 강만식이란 산을 넘으려면 박우민이란 입구부터 들어가야 했는데 뭘. 잘 됐지 차라리.’
나는 후에 강만식을 직접 상대해야 한다.
그리고 박우민은 분명히 강만식보다 약하니, 강만식의 명령을 받드는 추종자일 것.
이 박우민을 지금 넘지 못하면 애초에 나와 이지은이 세운 계획 자체가 어그러진다.
‘난 실전에 강하다고.’
까짓거 저 거대한 퀸을 뽑아버리면 그만 아닌가.
그 생각으로 한껏 정신에 힘을 바짝 줬을 때다.
[어……! 윤도원! 쟤 또 카드 꺼낸다!]
“어디 숨어 있을까, 이 쥐새끼. 역시, 내 예상대로 카드 챙겨 오길 잘했다니까.”
박우민은 그 말을 중얼거리며 새롭게 꺼낸 카드.
이번에 꺼낸 카드 역시 보통의 트럼프 카드와 달랐다.
이번에는 숫자는 없고, 문양만 있는 카드다.
그가 꺼낸 문양 카드는 하트.
그리고 그 하트를 직접 소환한 퀸에게 삽입하는 기이한 행동도 보였다.
소환한 퀸이 카드 단말기도 아니고, 어딘가에 투입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박우민이 카드를 퀸에 몸에 꽂으려고 하자, 그 카드가 자연스럽게 퀸의 몸으로 흡수되는 것이었다.
“어디에 숨었을지는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 결국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거다.”
하트 문양의 카드가 퀸의 몸으로 들어가고, 퀸의 이마엔 하트 문양이 생겨나면서 본래엔 없었던 눈, 코, 입이 생겨났다.
생김새도 상당히 기이하다.
눈의 크기 자체는 컸는데 쫙 째졌으며, 사나웠고.
입은 내가 어릴 때 흔히 일본 괴담에서 등장한 ‘빨간 마스크’처럼 좌우가 심하게 찢어졌다.
게다가 이빨은 맹수의 송곳니 방불케 하는 이빨이다.
일반적인 사람의 치아와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뭐가 저렇게 흉측해, 저건?!]
몬스터를 만드는 시오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그 정도로 하트 퀸의 생김새가 남들이 보기에 불편하단 뜻이다.
“찾아내. 퀸.”
박우민이 퀸에게 명령하자, 퀸은 거대한 손을 들었다.
그리고 퀸의 손바닥에선 하트 문양 다발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크기는 일방적인 풍선 크기.
생성된 하트들은 바람을 타고 나는 민들레 꽃씨처럼, 유유히 날았다.
모든 하트가 똑같은 방향이 아닌, 사방이 퍼지는 중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위험하다 느껴지는 문양이다.
본능적으로 내게 근접한 하트들을 피하려고 하던 순간이었다.
“이쯤인가?”
딱!
박우민이 손가락을 튕기자.
콰아앙-!
풍선 크기의 하트가 폭발했다.
하필이면, 내 근처에 있던 하트도 같이 터지는 바람에 난 한쪽 팔에 작은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 피가 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난 박우민의 능력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감탄했다.
‘저 미친놈… 이렇게 거대한 능력을 일반인 밀집 지역에서 대놓고 쓰다니.’
헌터는 일반인 상대로 능력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규율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단순히 일반인에게 사용하는 것은 물론, 일반인이 밀집된 곳에서도 피해에 휘말릴 수 있는 능력은 사용할 수 없다.
물론, 내가 박우민을 먼저 공격한 것이긴 하지만, 박우민은 필요 이상의 능력을 지금 일반인 밀집 지역에서 사용하는 중이다.
이는 명백히 규율 위반이라고 볼 수 있었다.
‘협회장 백이 그렇게 든든하다 이건가?’
어찌 보면 이렇게 사고를 쳐도 수습해 줄 사람이 있으니 가능할지도 모른다.
직접 겪으니, 박우민과 강만식이 지금 이곳 한국 헌터계에서 어떤 존재인지 확 와닿았다.
“이래도 안 나오네……? 도대체 정체가 뭐냐? 분명히 내 근처에 있는 거 같은데 보이질 않으니 원.”
그렇게 큰 범위 공격을 하고서도 내가 모습을 보이지 않자, 박우민은 새로운 카드를 꺼냈다.
이번엔 세 장의 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