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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31화 (31/200)

§ 31화. 두더지 게임 (2)

일단 난 다급히 방 안에 모든 불을 껐다.

어차피 밖으로 새어 나가는 빛은 전부 차단한 상태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으로 내린 조치다.

“으음……. 저 인간이 어떤 냄새를 맡고 여길 왔을까.”

그게 가장 문제다.

도대체 무슨 단서를 잡은 뒤 확신에 차 이곳으로 온 걸까?

그가 확신에 차 있다는 것도 행동으로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이미 몇 시간이나 이 근처를 서성이며 잠복 중이었단 것만 봐도, 무언가 확신에 차서 증거를 잡기 위한 움직임이었으니까.

[나도 모르지.]

“일단…….”

난 급한 대로 휴대폰으로 정다혜와 신보미에게 연락했다.

***

‘……그게 진짜예요? 다혜 동생이 강만식한테 있다고요?!’

역시나, 신보미도 화들짝 놀랐다.

처음 이지은과 연결되어 답할 땐 활발할 목소리였지만, 지금은 도리어 긴장과 걱정만 가득한 목소리었다.

하지만 정확한 상황을 전부 전한 건 아니었다.

강만식이 의도적으로 굶긴다거나, 이런 가슴 아픈 소식은 전부 제외 했다.

‘응. 그러니까 네가 전해줘. 내가 따로 연락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와아… 이거 참……. 그래도 지금이라도 확실히 알았으니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강만식 밑에 있으니 더 걱정해야 하는 건지…….’

신보미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해한 모습이다.

아마, 이 소식을 듣게 될 정다혜의 반응을 미리 보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부탁해. 강만식 밑에 있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잘 보살필 거니까.’

‘알았어요. 전할 건데…… 어라?’

‘왜 그래?’

둘이 한창 대화하던 중, 신보미의 반응이 이상했다.

꼭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느낌이다.

‘도원 오빠한테 연락이 왔는데? 갑자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원래 이런 시간에 연락 없던 사람인데.’

‘도원 씨한테? 무슨 일 생겼나?’

‘언니한테 뭐 하나 물어봐 달라는데요?’

‘뭔데?’

‘세상에…….’

그런데 곧장 질문이 나와야 하는데, 신보미는 불안한 목소리로 뜸을 들였다.

이런 반응 탓에 덩달아 이지은까지 긴장하게 만들었다.

‘왜? 뭐라는데?’

‘그게 언니……. 지금 도원 오빠 있는 곳에 박우민이 와 있다는데요?’

‘……뭐?! 집 안까지?’

‘아니요. 건물 밖에서 잠복하고 있었대요. 몇 시간이나. 그래서 도원 오빠가 혹시 박우민이 눈치챌 만한 그런 거 있냐고 물어봐 달라는데.’

이에 이지은은 그 건물과 관련된 모든 것을 기억으로 추적하기 시작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실마리는 단숨에 기억이 났다.

바로 고지서.

언제부터였는지, 이지은은 정확히 기억한다.

박우민이 아테네 길드 비서실장으로 오고 나서, 길드 지출 관리를 위해 이지은의 개인 통장은 물론 카드 사용 내역까지 전부 관리해주겠다며 각종 고지서들을 아테네 길드로 오게 만들었다.

이 역시, 당시 이지은은 거절할 수 없었다.

박우민의 위에는 강만식이 있고 그 강만식은 최현민과 돈독한 사이이니, 거절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박우민이 관리하기 시작한 게 몇 년이나 지나 버렸기 때문에 윤도원에게 마음껏 사용하라고 할 때도 그런 상세한 부분은 잊고 말았다.

‘그거 때문인 거 같다고 전해.’

‘아, 네. 알았어요. 그런데 오빠가 어차피 저랑 다혜 지금 당장 와달라고 했어요.’

‘왜……?’

‘그건 저도 모르죠. 일단은 와 달라고 하니까 가 볼게요. 그리고 보미한테는…… 이 일 끝나고 나서 전할게요.’

‘응, 그래 알았어.’

‘네. 쉬어요, 언니.’

그렇게 신보미와의 대화는 끝이 났지만, 이지은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지기만 했다.

“왜 갑자기 둘을 부르지? 불러서 뭐 하려고……?”

아직 제대로 끝나지 않은 고민이 있는데, 윤도원의 행동으로 인해 새로운 고민이 생겨났다.

그 순간, 이지은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박우민 상대로 싸우려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고 도망칠 것 같지도 않고…….”

자신에게 정다혜나 정다훈처럼 자유로운 워프 능력이 있었다면, 지금 당장 그 건물로 가서 상황을 보고 싶을 정도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신보미와 정다혜는 내 집으로 도착했다.

이들이 오면서 밖에 있는 박우민에게 들켰을 리는 전혀 없다.

왜냐, 바로 신보미의 워프 능력을 이용해 이곳으로 왔기 때문이다.

정다혜에게 먼저 연락한 이유는, 그녀의 능력인 커넥터를 이용해 이지은에게 정황을 묻고, 그 후에 신보미와 합류하여 내 집으로 오라고 하기 위함이다.

이들이 오고 난 뒤에는 정다혜의 능력을 활용해, 밖에 있는 박우민을 처리할 계획이었다.

신보미는 도착하자마자, 창문을 향해 다가가려고 했다.

“가지 마. 그러다 괜히 사람 있는 거 들킨다.”

“아, 네. 경솔했네요.”

“아무튼, 지은 씨가 뭐라고 하디?”

“고지서 때문인 거 같대요.”

그러면서 자세한 설명을 내게 전해줬다.

설명을 듣고 난 뒤, 확실히 그런 거라면 박우민이 하나의 실마리를 가지고 저렇게 당당하게 오고, 잠복까지 한 정황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어쩌시게요?”

“어쩌긴. 밖에 있는 박우민. 처리해야지.”

“처… 리?”

내 대답에 신보미와 정다혜는 서로 눈을 마주친 상태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야! 무슨 처리를 하게?!]

흑염룡도 같은 반응이다.

처리란 단어에 내 행동이 무모할 것을 예상한 모양이다.

뭐, 솔직히 말하면…….

조금 무모한 행동을 할 생각인 건 맞다.

“언제까지 방구석에서 이러고 있냐.”

난 게임을 하면서 은신과 염력의 숙련도를 높인 증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깨진 접시 파편 등등, 컴퓨터 책상 주변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증거들이 넘쳐났다.

“난 아무래도 실전에 강한 타입 같거든.”

[너 설마…….]

“응. 박우민 상대로 내 능력을 시험한다.”

“잠깐만요! 그건 너무 위험하잖아요!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여기 있는 거 안 들킬 생각 아니었어요?”

이번엔 신보미가 화들짝 놀라며 지적했다.

“그렇지. 안 들킬 생각이었지. 근데 언제까지고 안 들킬 생각은 없었잖아? 나중에 어차피 들키게 될 거.”

“그럼…… 지금 그냥 들키겠단 거예요?”

“그건 아니라니까. 안 들키면서 박우민 상대로 시험 좀 해 보려고 너희 둘 부른 거 아냐.”

이제 내 시선은 정다혜에게 갔다.

“다혜. 길 좀 열어줘. 박우민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워프시켜 달란 소리야.”

“네……?”

“어서.”

정다혜는 눈치만 계속 봤다.

신기한 것은 내 눈치를 보는 게 아닌, 같이 온 신보미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이런 생각 때문일 것이다.

‘정말 시키는 대로 해도 되는 걸까?’

이 건물은 우리의 아지트이자 비밀 사령부쯤 되는 곳인데 길을 열어준 순간, 그 비밀 사령부가 없어질 위기에 놓이니 걱정되는 것도 당연하다.

“어차피 숨는다고 능사가 아니야. 나설 땐 나서 줘야지. 잘못될 일 없으니까 나 좀 믿어 봐라.”

사실은 “잘못되더라도 너희들 휘말리게 하지 않을 거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잘못될 상황을 가정하고 말하는 게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최대한 자신감 있는 모습만 보여줬다.

그 의지가 닿은 것일까.

정다혜는 집 밖으로 향하는 포털을 만들어 줬다.

“너희 둘은 여기 있어. 밖은 나 혼자 나간다.”

난 포털에 들어가기 전, 은신을 사용해 모습을 투명하게 바꿨다.

***

정다혜의 포털을 타고 나오자, 박우민과 한 블록 떨어진 골목길에 도착했다.

여전히 은신으로 몸을 숨긴 채, 박우민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너 아까 나한테 말한 실전에 강하단 뜻. 뭐야?]

‘네 덕분에 죽을 고비 몇 차례 넘기면서 그래도 자신감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죽을 고비? 언제?]

‘그새 잊었니? 네가 만든 게이트로 들어갔다가 드래곤 마주친 거.’

[아…….]

그때도 내 능력은 있었지만, 실전에서 제대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드래곤으로부터 벗어났다.

무려 드래곤은 시오스들이 수호신으로 모시는 위대한 생명체인데도 말이다.

우리 인간계로 따지면, 검 한 자루 쥐여주고 한국 전설 속의 괴물, 이무기나 용에게서 살아남으라고 한 것과 똑같은 난이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난 그걸 실제로 해낸 전례가 있다.

게다가 지금은 내가 가진 두 가지 능력의 숙련도도 꽤 오른 상태다.

당시 게이트에서 드래곤과 마주쳤을 때, 내가 가진 무기가 검 한 자루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기관총까진 아니더라도 검보다는 강한 총이 들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상대는 당시와 똑같은 드래곤이 아닌, 같은 인간이자 헌터.

이 정도면 사냥용 엽총으로 호랑이를 잡으라는 난이도와 비슷하지 않을까?

정신을 다른 곳에 팔고 있으면 호랑이에게 물려 죽지만, 반대로 정신만 제대로 집중해서 엽총을 쏘면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즉, 박우민 앞에서도 정신만 잘 차리면 된다는 결론이 나오니 무섭지 않았다.

그렇게 난 드디어 박우민의 근처까지 다다랐다.

이때쯤이면 내가 가진 제 3의 무기를 꺼낼 차례다.

‘흑염룡.’

[왜?]

‘너 헌터들 능력 보여줄 수 있다고 했잖아. 그거 박우민한테 써먹어 줘.’

바로 흑염룡의 존재.

헌터들이 사용하는 능력은 시오스들이 사용하던 것이라고 했다.

즉, 본래 주인은 시오스이며.

지금 헌터들이 사용하는 능력은 시오스에게 빌려 왔다고 하는 것이 옳다.

게다가 흑염룡은 내 눈에만 보이고, 다른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다.

이런 흑염룡을 이용해 박우민이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먼저 파악하고, 그 뒤에 행동으로 나설 생각이었다.

[그거라면 어렵지 않지.]

흑염룡은 그렇게 쪼르르 날아, 박우민의 뒤통수로 향했다.

내가 박우민과 가깝게 붙은 이유도, 흑염룡과 나는 일정 거리가 멀어지면 흑염룡이 튕겨져 다시 내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자 일부러 이렇게 가깝게 붙었다.

박우민의 뒤통수에 도착한 흑염룡은 그래도 박우민의 이마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도 흑염룡이 다른 헌터의 능력을 보여주는 과정을 보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흑염룡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흑염룡은 박우민의 이마에 가까이 붙어, 두 손을 그의 이마 위에 올렸다.

그리고 몇 초 뒤.

이마에서 손을 떼자, 흑염룡의 손에는 두루마리 종이를 편 것처럼 상단과 하단이 동글동글하게 말린 종이가 형상화되었다.

[다 됐어.]

상당히 간단한 절차다.

다른 사람의 능력을 볼 땐 뭐가 다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완벽히 똑같을 줄은 몰랐다.

흑염룡은 내게 쪼르르 돌아와, 종이에 적힌 것을 보여줬다.

[소환 Lv42]

‘……소환?’

글자만 놓고 봤을 땐 몬스터를 소환하거나 그런 능력 같다.

문제는 내가 처음 보는 카테고리의 능력이다.

SF 길드 근무 당시에도 많은 헌터의 인적 사항을 직접 본 몸이다.

그때도 이 ‘소환’이란 카테고린 없었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능력이기에 능력의 백과사전인 흑염룡에게 물었다.

‘어떤 능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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