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두더지 게임 (1)
박우민은 문제의 장소에 도착했다.
“더럽게도 머네.”
아테나 길드가 있는 곳과는 상당히 떨어진 곳.
이미 주소상으로도 위치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찾아와 보니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멀었던 것을 체감했다.
도착하고 나니 시간은 완벽한 어두운 밤이 되었다.
“겉으로 보기엔 사람이 없는 거 같은데…….”
문제의 그 건물 주변에 주차를 해 두고, 창문을 통해서 이지은의 건물을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불빛도 새어 나오는 게 없는 걸 보면.
사람이 사는 집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러면 더더욱 이상하잖아. 이렇게 조용한 건물에서 사용량이 그렇게 찍힐 리가 없는데.”
자동차 핸들에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고민을 시작한 박우민.
애써 단서를 잡았고,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움직인 것인데, 도착하고 나서의 계획을 완벽하게 잡지 않았다.
자신이 형사가 된 것처럼 저 건물에서 사람이 나오길 계속 기다린다?
잠깐 그런 생각을 가졌지만 금세 접었다.
애초에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졸지에 두 개의 길드를 관리하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애써 잡은 단서를 놓치기는 더더욱 싫은데 말이지.”
박우민이 이렇게 안달인 이유가 다 있었다.
이지은이 비밀스러우며 개인적으로 결탁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이미 박우민과 강만식.
전부가 아는 사실.
그 미지의 존재들은 중요 순간에 방해 공작을 벌이기도 했다.
방해 공작 수준이 그저 파리가 근처에 날아다니며 귀찮게 구는 게 아닌, 모기 수준이다.
무시하고 싶은데 자꾸만 모기의 앵앵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아, 꼭 잡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수준이다.
과거의 일이다.
협회장 최현민과 강만식이 계획하던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특정 길드를 강만식의 SF 길드로 흡수하려던 계획.
흡수의 이유는 단순했다, SF 길드도 몸집이 점점 거대하게 부풀어지면서, 소속 헌터의 별도 훈련 장소 등등.
헌터를 보유하기 위한 인프라를 넓히기 위함이었다.
기업의 인수합병처럼.
길드도 서로 흡수하는 관례는 예전부터 존재했던 것이고 불법적인 일이 아니기에 최현민과 강만식은 어느 길드가 적합할지 물색하기 시작했다.
강만식은 이미 눈독 들이던 길드가 있었다.
길드의 규모. 즉, 소속 헌터의 숫자로만 보면 그리 크지 않은 곳이지만, 해당 길드가 가진 부지들이 당시 강만식에겐 너무나 달콤한 열매였기 때문이다.
최현민은 물색하고.
강만식은 고민하던 사이.
이런 우연의 일치가 다 있을까?
마침 강만식이 눈독을 들이던 길드의 길드장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한다.
음주운전과 더불어 단속 중이던 교통경찰의 측정 요구를 불응하며 술김에 능력을 사용해 버린 것.
다행스럽게도 경찰관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그래도 병원 신세는 져야 했다.
게다가 이 사건은 명백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
애초에 헌터들은 일반인 대상으로 절대 능력을 사용하거나, 혹은 능력이 아니더라도 물리적 압박을 가해서도 안 된다.
헌터와 일반인의 몸은 두부와 바위처럼 강인함의 차이가 너무나 심하게 났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잡고, 최현민이 주도하여 해당 길드장에게 SF 길드와 합병을 지시하려고 했었고,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시, 길드와 길드장에게 어떤 불이익을 부여할 것인지 공문으로 만들어둔 상태에.
갑자기 해당 길드장이 길드를 직접 해체하고, 길드가 가진 부지를 전부 사회에 환원해 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강만식은 이지은에게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왜냐, 이 계획을 알고 있던 게 최현민과 강만식.
그리고 이지은.
이 셋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천하의 강만식도 당시 이지은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물증이 있어야 했는데 그런 물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해당 길드장이 부지를 사회에 환원하는 전후 시기에 이지은은 해외에 파견을 나간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더불어 이지은과 내통하는 누군가가 어떻게 방해 공작을 벌였는지, 그 진상 자체도 모르니 말 그대로 눈 뜨고 당한 격이었다.
이런 방해 공작들이 있었기에, 박우민은 잠복까지 생각한 탓이다.
귀찮게 모기처럼 신경 벅벅 긁어대니, 눈에 보이기만 하면 터트려 버리겠단 생각이 절로 들게 했으니까.
그리고 바로 오늘.
그 모기의 정체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이 더욱 그를 이곳에 잡아두고 있다.
“가만히 앉아만 있는 건 의미가 없는 짓 같으니까…….”
박우민은 결단을 내렸다.
트럼프 카드를 챙겨 들고, 차에서 조용히 내려 건물로 다가갔다.
***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게임을 하는 동시에 능력 유지 훈련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오늘 내 집중을 방해하는 건 게임 속 캐릭터도 아닌, 흑염룡이다.
몇 시간 전쯤이었다.
이제 나도 이 방식에 적응이 되다 보니, 흑염룡이 굳이 옆에서 능력 유지 시간을 잴 필요가 없어진 것.
그렇다 보니 할 일이 없어진 흑염룡은 심심함을 달래러 산책이나 나가겠다며 창문을 통해 나갔다.
나와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질 수 없기에, 말이 산책이지 공전하는 지구처럼, 이 건물을 중심으로 주위만 뱅뱅 도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나갔다 오고 나서가 문제다.
흑염룡은 습관적으로 창문을 관통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오며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어딘가 께름칙해 보이는 표정은 덤이었다.
그러고 또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다시 창문을 관통하며 나갔고, 똑같이 돌아오면서 고갤 갸우뚱거리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소리 없이 행동으로만 그렇게 하면 모르겠는데.
“이상하다……?”라고 자꾸 이런 추임새를 붙이며 의문을 표하니 내 집중력은 완전히 바닥을 쳤다.
결국, 난 훈련을 중단하고 흑염룡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갑자기 왜 이래? 나갔다 들어왔다, 나갔다 들어왔다. 정신 사납게.”
[아니……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그러니까 뭐가!”
[참, 그러고 보니 내가 처음 산책한다고 밖에 나갔던 게 몇 시간 전이지?]
“2시간은 됐지?”
[그치? 2시간이면 꽤 긴 시간이잖아?]
“그렇지.”
도대체 뭐가 그렇게 이상하길래 스무고개 같은 대화가 이어지는 건지, 이젠 내가 답답했다.
흑염룡은 이제 시계를 슬쩍 쳐다봤다.
[지금 시간이 오후 11시……. 윤도원! 이 동네는 이렇게 늦은 시간이 사람이 안 돌아다니잖아?]
“아예 안 돌아다니진 않겠지. 그래도 사람 사는 동네인데.”
[아니 그 뜻이 아니잖아.]
나도 무슨 말인지는 안다.
처음 이지은의 소개로 이 동네에 왔을 때, 사람이 정말 살지 않은 것처럼 고요하게 보였으니까.
흑염룡은 그것에 집중하는 중이다.
“그래서 뭐. 뭐가 그렇게 이상한데?”
[윤도원. 이 건물 주위에 몇 시간 동안 계속 서성이는 사람이 있어.]
흑염룡의 답에.
나도 모르게 경직되었다.
몇 시간 동안이나 이 건물 주위를 서성인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건물이 내가 전에 살던 집이었으면 나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이 건물의 주인은 이지은.
심지어 이지은은 감시하는 눈이 많은, 처량한 CCTV 속의 사람이다.
혹시 밖에 서성이고 있다는 사람이 이지은을 감시하는 누군가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다.
[그런데 내가 이상한 건 그것만 있는 게 아니거든?]
“그럼?”
[밖에서 서성이는 사람. 분명히 내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인데 확신은 안 서. 어두워서 얼굴이 제대로 안 보여서 그런가? 아, 아닌데. 맞는 거 같은데.]
흑염룡이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나를 제외하고 이지은, 신보미, 정다혜밖에 없다.
그런데도 얼굴이 기억이 날 것 같다고 하면.
답은 딱 하나.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그 한 번이 짧게 본 게 아닌, 비교적 오랜 시간 봐서 얼굴이 기억에 남았단 뜻이다.
게다가 말하는 걸 봐선 이미 누구인지 짐작을 하는 중이다.
그저 확신이 없을 뿐이지.
“누구인 거 같은데?”
[잠깐만.]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은 흑염룡은 다시 창문을 관통하며 나갔다.
그리고 이번엔 금세 돌아오는 게 아닌, 제법 시간이 걸린 뒤에다.
돌아오며 흑염룡은 내게 소리쳤다.
[아! 기억났어! 윤도원 너 길드 관둘 때!]
“……내가 길드 관둘 때?”
설마.
***
침대에 누웠지만, 이지은은 잠이 오지 않았다.
정다훈이 처한 상황과 그가 애타게 찾고 싶은 누나가 자신을 도와주는 정다혜란 걸 알았던 게 제일 컸기 때문이다.
정다혜도 인생 목표가 동생을 찾는 것.
그 목표를 이뤄줄 수 있는 상황인데, 문제는 정다훈이 한 말 때문이다.
“저까지 누나 힘들게 하면 안 돼요.”
어린이 입에서 나온 말 치고는 너무 어른스러웠다.
정다훈은 자신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냉정하게 말하면, 그저 남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이지은도 정다혜를 친동생처럼 여겼고, 그녀에게서 받은 도움도 많으니 절대 냉정해질 수 없었다.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정다혜가 라면 봉지를 볼 때마다 서럽게 울었던 그 모습이.
동생은 자신이 끓여준 라면을 좋아했다며, 라면 볼 때마다 동생 생각이 나서 슬프다고 했던 말도.
그런 동생을 드디어 찾았다.
적어도 이 사실만이라도 정다혜에게 알려주고 싶었지만, 정다훈이 한 말 때문에 결정하지 못할 때였다.
“어떡하지…….”
그렇게 한참을 더 고민하다, 이지은은 결심했다.
“그래도 말해주는 게 좋을 거야.”
대신, 정다훈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빼기로 했다.
그것을 순환하여, 이렇게 말할 생각이다.
‘다훈이에게 어떤 걱정이 있는 거 같다. 내가 그 걱정을 먼저 알아보고 확실히 알려줄게. 지금 어차피 당장 못 만나는 상황이니까. 강만식 때문에.’라고.
“그러면 되겠지.”
굳이 말해주려는 이유는, 정다혜에게 희망의 활력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동생의 단서를 찾지도 못하고 방황한 세월도 절대 짧지 않으니 고생의 보상을 받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보미야.’
그렇게 이지은은 정신적으로 연결된 신보미에게 말을 걸었다.
‘네, 언니. 되게 오랜만이네요? 거기 상황 어때요?’
다행히 신보미의 답은 금세 돌아왔다.
늘 그렇듯 활발한 목소리로.
***
내가 길드 관둘 때 본 적이 있다고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하나밖에 없다.
“과장님?”
[아니! 이 멍청아! 내가 헌터도 아닌 사람 왜 기억해!]
도리어 흑염룡은 화를 냈다.
그런데 잠깐.
헌터? 그렇다면 지금 흑염룡이 보고 왔다는 사람이 헌터란 말인가?
“헌터만 기억한다면…… 설마 강만식? 아니지, 강만식이 여기 있을 이유가 없잖아?”
이지은과 함께 전국 순회 중이신 사람이다.
그렇다면 남는 사람이 딱 하나밖에 없었다.
“박우민?!”
[아! 그래! 그 이름! 맞어! 걔야!]
몇 시간이나 이 건물을 서성이고 있었던 정체가 박우민이라니.
동시에 나도 생각이 많아졌다.
흑염룡은 쪼르르 다시 창문으로 다가갔고, 얼굴만 창문 밖으로 관통한 상태다.
여전히 박우민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는 행동이다.
“아직도 있어?”
[응. 어떡할 거야? 저 사람이 여길 왜 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