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29화 (29/200)

§ 29화. 맞물리는 사연들 (4)

“다혜요. 정다혜.”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설마, 자신과 뜻을 함께한 정다혜의 동생이 정체가 여태껏 함께 다닌 정다훈일 줄이야.

세상이 넓으면 넓고 좁으면 좁다더니.

그 말이 딱 지금과 어울렸다.

그리고 강만식이 왜 그렇게 정다훈에게서 신경을 끄라고 한 건지도 전부 이해가 되었다.

‘또 무슨 짓을 해 놨길래 이 아이의 정체를 그렇게 철저하게 숨기려는 걸까.’

그만한 이유가 다 있는 행동이다.

이지은은 이것을 알아보고자 했다.

“누나 안 보고 싶어?”

그 전에, 정다훈과 조금 더 친밀해지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이 대화를 이어가는 게 급선무다.

“보고 싶어요. 그 아저씨한테 벗어나면 꼭 누나 찾고 싶어요. 누나가 끓여준 라면도 먹고 싶고…….”

그 아저씨라고 칭하는 게 강만식일 거다.

정다훈에게 강만식은 무섭고 벗어나고 싶은 존재다.

굳이 라면을 고집한 이유도 누나 정다혜 때문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네 누나. 나랑 같이 있는데.”

이지은이 그 말만 했을 뿐인데, 신나게 라면을 먹고 있던 정다훈의 손이 멈췄다.

“……정말요?”

“응. 나랑 되게 친해.”

“누난 건강해요?”

어린이의 입에서 건강하냔 말이 먼저 나올 정도라면.

그간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지 걱정이 먼저 들었다.

아니, 이미 걱정은 눈으로 직접 다 봐서 알지 않은가.

강만식의 밑에 있는 사람 중에 웃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과.

이미 1주일이나 애를 강제로 굶긴 악마라는 점.

강만식이 그런 독한 방법을 사용하는 일은, 분명 뭔가 이 아이에게서 노리는 것이나 얻을 것이 있다는 뜻이다.

이지은은 그게 무엇일지, 지금으로선 쉽게 가늠이 잡히지 않았다.

“꼭 만나게 해 줄게. 내가.”

서로 같은 하늘 아래에 살고 있음에도, 생사도 모르는 남매.

이젠 생사도 알고, 어디에 있는지도 알았으니 만나기만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사이에 있는 장애물, 강만식을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이지은의 말에 정다훈은 젓가락을 표정이 침울하게 변했다.

“왜 그래?”

“……만나면 안 돼요. 누나랑.”

“알아, 나나 너나 같은 상황이잖아. 강만식 때문이고.”

“아니요, 그거 말고도 누나를 만나면 안 되는 이유 있어요.”

“이유가 있다니……?”

“누난 늘 가난해도 죄짓고 살지 말라고 했는데…… 전 죄를 지어 버려서요. 그래서 못 만나요.”

정다훈의 가정사라면, 정다혜의 가정사일 테니 이지은도 대강 알고 있었다.

도박 빚이 산더미로 불어난 아버지를 둔 탓에 어렵게 자란 남매.

그리고 그 아버지는 훗날,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헌터가 아닌 일반인을 죽인 이력까지 있어 지금은 교도소에 있다.

그런 아버지 밑에 자랐으니, 죄를 짓지 않는 것만이 인생의 승자라고 여기는 것도 당했다.

“아깐 누나 찾을 거라면서? 그게 만나고 싶단 말 아닌가?”

“그렇긴 한데…… 그래도 엄마 같은 누나의 가르침을 어긴 거예요. 저까지 누나 힘들게 하면 안 돼요.”

어린아이가 이렇게 확고할 정도로 말할 정도면, 그 죄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 자리를 기회 삼아, 이지은이 슬쩍 물었다.

“무슨 죄를 지었는데?”

“저 때문에 사람이 죽었으니까요.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네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잖아?”

심성이 이렇게 착한 아이가 사람을 죽일 리는 없다고 생각한 이지은.

그래서 답을 유도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물었다.

“어떻게 죽였는데?”라고 취조하는 식으로 물어본다면, 답하고 싶어도 이미 색안경을 낀 것처럼 보이니, 답할 마음이 사라질 거니까.

“그렇긴 해도 어쨌든 저 때문에 죽은 건 맞으니까요……. 누나가 절대 아빠처럼 되지 말라고 했는데…….”

고개를 푹 숙인 정다훈이 어렵게 답했다.

자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은 자신 때문에 죽은 것이 맞으니, 자신이 죽인 것과 다름이 없다고 여기는 게 분명했다.

이지은도 도대체 누가 죽은 것인지, 궁금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물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정다훈은 슬쩍 무언가를 확인하며 말했다.

“이제 가야 해요. 그 아저씨 잠에서 깼어요. 화장실이라도 가려나 봐요.”

“뭘 보고……?”

어느 순간, 정다훈의 손에는 작은 손거울 같은 것이 있었다.

마치 휴대폰으로 CCTV 화면을 지켜보는 것과 똑같았다.

“제 능력이에요. 워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원하는 곳을 확인할 수도 있어요. 이것 말고도 할 줄 아는 건 더 있지만.”

“너 늘…… 이렇게 강만식을 지켜본 거였어?”

“그냥, 제가 몰래 뭘 먹다 들키면 안 되니까요.”

정다훈의 말대로, 강만식은 침대에서 벗어나, 방 안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그나마 화장실이 방마다 있는 게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이지은과 정다훈이 나왔다는 걸 진작 들켰을 상황이다.

이지은은 정다훈의 컵라면을 슬쩍 쳐다봤다.

저 얼마 안 되는 양마저도 마음 편히 다 먹지도 못한 채, 조금 남아 있었다.

“그래도 라면 아직 남았는데……. 1주일이나 못 먹었잖아.”

“괜찮아요. 이 정도면 며칠 버텨요. 또 배고파 죽겠으면 찾아갈게요. 그때도 이거 사주세요.”

“……그래, 얼마든지.”

그 와중에 정다훈은 자신이 먹은 컵라면과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전부 말끔하게 버리고, 국물이 튀지도 않았는데 냅킨을 이용해 테이블을 싹싹 닦았다.

“전 제 능력 사용할 때 잡생각이 떠오르면 능력 유지가 무너져 버려요. 그래서 강박증이 생겼고요. 이런 거 안 치우고 가면 능력 못 쓰더라고요. 며칠간은.”

‘그래서 평소에도 정갈한 옷차림, 시도 때도 없이 맞추는 큐브…… 다 이유가 있었구나. 꽤 피곤한 삶이야.’

이제야 이지은도 정다훈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알게 되었다.

“가요.”

모든 걸 말끔하게 치운 정다훈은 호텔에서 이곳으로 온 것처럼, 거울 두 개를 만들고 각자의 방을 비췄다.

“잘 자요. 누나.”

정다훈은 그 말만 남기고 홀연히 자신의 방을 비춘 거울로 들어갔다.

“……너도.”

이지은도 얼떨결에 답하고 이지은의 방을 비추는 거울로 들어가며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

아테나 길드의 비서실장 박우민.

그는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소속은 아테나 길드이지만, SF 길드장 강만식과도 오랜 친분이 두터운 터이기에, 현 상황에서 혼자 두 길드를 관리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강만식과 이지은이 협회의 별도 명령으로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 믿는 던전을 찾으러 떠난 게 벌써 한 달도 훌쩍 넘었다.

매달 말마다 찾아오는 머리 아픈 작업.

바로 각 길드에서 한 달간 사용한 운영 대금의 결제와 직원들 임금 처리다.

강만식이 떠나면서 SF 길드의 관리도 같이 하는 터라, 돈 계산이니만큼 실수하지 않도록 집중하며 서류를 처리하던 중이었다.

“이건 뭐야?”

한 공과금 고지서를 집어 들고, 그는 표정을 찌푸렸다.

“여기가 왜 이렇게 많이 나왔지……?”

분명히 아테나나 SF 길드의 공과금 고지서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미 공과금은 던전 완전 정복 후, 자원 뻥튀기가 중단되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치솟는 중이었다.

얼마 전에 33배가 올랐다는 뉴스 뒤, 다시 가격이 인상되어 당분간 55배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속보도 이미 들어서 알았다.

강만식은 고지서의 주소를 확인했다.

“여기는 분명히…….”

낯설지만은 않은 주소.

바로 이지은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상가의 주소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아무리 55배가 올랐다고 해도, 이건 너무 많이 나왔는데? 분명히 이 집은…….”

사람이 살지 않고 있는 것도 진작 알고 있는 내용이다.

공과금 가격이 올랐다고 해도, 기본요금만으로 이 정도까지 나오진 않을 거다.

그리고 박우민은 이것을 확실하기는 쉬웠다.

바로 고지서상으로 나와 있는, 전달 사용량과 이번 달 사용량을 비교하면 번거롭게 여기저기 확인하지 않아도 됐다.

“사용량이…….”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올랐다.

이 말이 뜻하는 것은 단 하나.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곳에, 누군가가 살기 시작했단 것이다.

그것도 사용량이 증가한 시점이 이지은과 강만식이 던전을 찾으러 떠난 시기에 정확히 일치한다.

“그 사이에 누군가에게 세를 줬을 리가 없고.”

월세나 전세를 받고 집을 내주는 세를 주려면 계약서가 필요하고.

그 계약서는 보통 부동산을 통해서 하는 것이며, 하루아침에 되는 경우는 드물다.

최근부터 몇 년 전까지.

그동안 이지은이 부동산에 들른 적도 아예 없었는데, 어느 틈에 세를 준단 말인가?

“뭐냐, 도대체?”

그렇지 않아도 최근.

강만식의 신경을 긁는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SF 길드와 아테나 길드 전산상으로 SF 길드장 강만식과 아테네 길드 비서실장 박우민의 인적사항을 누군가가 열람하려 했던 것이다.

두 명의 인적사항은 권한이 있는 계정으로만 열람할 수 있도록 막아놨는데, 누군가가 그것을 무시하고 열람하려고 했던 흔적이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SF 길드의 직원이었고, 그 직원은 당일에 SF 길드를 퇴사.

지금은 백수 신세를 지고 있는 윤도원이란 사람이었다.

그는 신입사원이 아닌데도, 갑자기 두 명의 인적사항을 열람하려 했다.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신입사원이면 실수로 그랬을 거라고 생각이 될 텐데.

이미 몇 년이나 멀쩡히 길드에 근무했던 사람이 갑자기 두 사람의 인적사항을 열어보고.

그날 바로 퇴사했다는 게.

심지어 이 시기도 강만식과 이지은이 던전을 찾아 떠난 시점과 일치한다.

“뭐가 이렇게 묘하게 사건들이 딱딱 맞아떨어지지?”

거기다가 같은 시기에 사용량이 증가한 이지은의 빈집.

강만식은 수상한 냄새를 맡았다.

아니, 이 정도면 그냥 넘어가는 게 멍청할 정도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확실히 확인해 봐야겠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공과금 고지서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몇 년이나 아무도 살지 않던 집이었다.

도대체 누가 살고 있는 걸까.

“혹시 걔들인가? 갑자기 왜?”

짚이는 부분은 있었다.

이지은이 개인적으로 누군가와 내통한다는 정황을 이미 예전에 파악했다.

다만, 그 누군가가 정확히 누구인지 아직까지 밝히지 못했던 것이었다.

강만식은 분명 이지은의 빈집에 살기 시작한 사람이 따로 내통하는 누군가일 거로 생각했다.

“드디어 잡겠네. 이 쥐새끼들. 누군지 나도 엄청 궁금했는데.”

탄력을 얻은 박우민이 서류들을 일사천리로 처리하고, 드디어 여유가 찾아왔을 때다.

“자, 할 일은 다 끝났으니… 이것만 남았나?”

주머니에서 문제의 그 공과금 고지서를 꺼낸 채,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의 시동을 걸기 전, 조수석 서랍함 안에 손을 넣고 뒤적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건 챙겨야겠지? 상대도 헌터일 거 같으니까.”

그가 끝내 꺼내 든 것은 트럼프 카드였다.

박우민에게 있어서 트럼프 카드는 능력을 사용하기 위한 필수 준비물이었기에, 그만큼 중요했다.

“간만에 헌터답게 놀겠네. 얼굴 좀 보자. 이지은의 똘마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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