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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28화 (28/200)

§ 28화. 맞물리는 사연들 (3)

내가 보기에도 지금의 상태는 더는 집이라고 볼 수 없었다.

현재 내 집의 상태는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어떤 장르의 영화냐?

바로 전쟁 영화다.

갖은 폭격으로 쑥대밭이 된 도시.

그리고 그나마 멀쩡한 집도 내부는 무언가가 잔뜩 부서져서 엉망인 상태.

지금 내 집이 그렇다.

며칠째였는지 모르지만, 난 어느 순간부터 집에 있는데도 마치 미국인처럼 신발을 신었다.

접시, 컵 할 것 없이 이미 깨진 파편들이 바닥 여기저기에 굴러다니는 탓에 맨발로 다닐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으니까.

그 정도로 능력을 올리는 게 급선무라 생각하고, 나도 조급해지면서 이런 조치까지 내린 거다.

“도대체 뭘 한 거예요! 강도가 들어와도 죄송하다고 하고 나갈 판이네!”

이제 들려오는 것은 신보미의 잔소리다.

이 중에서 성격이 제일 털털한 사람이라, 나에게 잔소리도 거침없이 뱉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어휴, 못 살아! 멀쩡한 접시랑 컵은 왜 또 깨서!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집요한 물음에, 난 지난 일주일 동안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설명했다.

게임을 하면서 능력을 유지하여 숙련도를 높이는, 현실 게임을 했다고.

“……꽤 특이한 방법이긴 한데. 확실히 오빠가 가진 능력이면 그게 효율적일 거 같긴 하네요.”

역시,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신보미는 내가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방식을 상당히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능력은 좀 어때요?”

신보미의 물음에, 흑염룡을 쳐다보자 흑염룡은 내 능력의 상태가 적힌 두루마리 종이를 펼쳤다.

[은신 Lv 12]

[염력 Lv 15]

효과는 확실히 있었지만, 아직 그래도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수준은 능력 발현 유지를 24시간 채우는 것이었는데.

아직은, 정말 노력해야 2시간 겨우 찍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게임을 하면서 2시간이면 꽤 눈에 띄는 성장인 건 맞다.

“저번엔 2주에 고작 6레벨, 5레벨이지 않았나……? 그런데 이번엔 1주일 만에 10레벨까지도 올랐네요? 너무 사기적인데.”

“더 올려야지. 한계가 어디인지는 나는 물론, 흑염룡도 모르니까.”

이 레벨의 끝을 모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계속 이런 식으로 능력을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계속 집이 이 상태겠네요?”

“……뭐, 그렇지?”

“에휴, 다혜야. 어쩔 수 없네. 우리가 거들자. 저 사고뭉치 오빠를 위해.”

“응.”

“시작하자.”

“시작하다니, 뭘?”

“오빠는 하던 거나 계속하세요.”

이제는 급기야 나를 억지로 의자에 앉히고, 신보미와 정다혜는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엉망이 된 집을 청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 야. 너희 인간들이 말하는 동화 중에 뭐 그런 거 있지 않았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집에 밥도 차려져 있고, 청소도 다 되어 있는 거. 그거랑 똑같겠다.]

‘우렁각시 말하는 거냐…….’

[어! 맞아! 딱 그거네!]

깨진 유리 조각부터 쓸기 시작하면서, 엉망이 된 집은 점차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런 상태라면 조금 더 도움은 되겠네.’

[치워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아니. 더 시끄러워졌으니 내 집중력도 흐려질 거고, 그걸 이겨내고 유지에 성공하면 레벨이 더 오를 거 아냐?’

[오호…… 네가 그런 생각도 다 하다니. 조금은 기특한데.]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거.

정말로 신보미나 정다혜도 부담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으니, 하던 거나 계속 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1주일.

내 능력에 변화가 있던 만큼, 세상에도 변화가 있다.

이 사태가 1주일이 지속되면서, 기존에 이미 28배 오른 유가가.

바로 어제 다섯 배가 더 올라, 33배가 되었다.

즉, 100원이었던 유가가 지금은 3,300원이다.

어디 그뿐인가.

전기, 수도, 가스 등등.

생활에 필요한 자원도 전부 동일한 수준으로 올랐으니, 사회는 정말 아비규환이 되고 있었다.

이미 인류가 모든 던전을 정복한 축제의 속보는 사라진 지 오래가 된 상태다.

대신, 새로운 속보가 이어졌다.

바로 물가를 안정시키라는 시위들이다.

임금은 오르지 않았는데 물가만 폭발적으로 오르니, 국민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이제 거리는 축제의 행렬이 아닌, 너도나도 시위에 동참하는, 시위의 행렬로 바뀌었다.

이런 사태가 이렇게도 빨리 찾아왔단 뜻은, 나도 이제 슬슬 움직일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게을리할 수 없으니, 최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난 그렇게 다시 눈과 손가락으론 게임을 하면서 머리로는 능력을 사용하는 훈련을 시작했다.

***

던전 조사를 떠난 게 벌써 1주일.

이지은과 강만식, 정다훈은 이제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넘어왔다.

1주일이나 그 작은 섬 제주도를 머물며 정말 샅샅이 뒤졌지만, 던전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지은은 이미 당연한 결과로 알고 있었지만, 강만식의 추궁은 피할 수 없었다.

“어이, 너 말야. 내가 한 말 명심하면서 찾고 있는 거 맞아?”

이렇게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하루가 끝나가면, 어김없이 강만식의 방으로 불려가 고문과 같은 추궁을 견뎌야 했다.

늘 강인하게 버텨온 이지은이지만, 이 시간은 유독 힘들었다.

“명심하고 있습니다. 기를 쓰고요.”

“그래? 그런데 왜 내 눈에는 안 그렇게 보이지? 설렁설렁하는 거 같단 말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시 머리에 똑똑히 새겨둬. 못 찾으면 절대 못 돌아간다는 걸.”

“……네.”

“내일 보자고. 나가.”

강만식의 방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지은은 잠시 걸음을 멈춰 정다훈의 방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까. 뭘 먹은 걸 본 적이 없는데? 같이 다닐 때도 꼬르륵 소리가 심하게 났고.’

벌서 1주일이나 함께 있었는데, 정다훈이 밥을 먹는 것을 아예 본 적도 없으며, 함께 던전을 찾아 나설 때도 정다훈은 조금만 걸어도 주저앉았다.

그게 다 먹지 못해 힘이 없어서 그런 게 분명했다.

이에 이지은은 다시 강만식의 방을 쳐다봤다.

‘네가 악마인 건 알고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어린 정다훈까지 그런 식으로 하는 건… 아니지?’

마음 같아선 당장 정다훈의 방을 벌컥 열고, 배는 안 고프냐고 묻고 싶지만.

강만식과 함께 생활하는 중이기에 그럴 수 없었다.

‘아니겠지. 아무리 인간이길 포기했어도 그 정도까지 하겠어…. 그냥 자주 배가 고픈 거뿐이겠지.’

이지은은 그렇게 믿으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하기로 했다.

밖에 있는 강만식과 잠시나마 완전히 차단하겠단 생각으로 문까지 걸어 잠그면서.

불편한 마음을 가득 안은 채로 힘들게 잠이 들었다.

잠이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저기…… 누나…….”

목소리와 함께 이지은의 볼을 누가 툭툭 건드리는 것처럼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눈을 떴을 때,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바로 정다훈이 자신의 방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너…… 어떻게 들어온 거야……?”

이지은은 곧장 자신의 방문 상태를 확인했다.

자신이 잠근 문은 연 흔적이 없다.

즉, 정다훈은 잠긴 문을 투명 인간처럼 통과해서 들어온 것이다.

“누나…… 미안해요, 부탁이 있어서 들어왔어요…….”

꼬르르르륵.

정다훈이 말하는 그 순간에도 그의 배는 시끄럽게 울어댔다.

“부탁이…… 뭔데?”

“배고파요…….”

정다훈의 짧은 그 한마디에.

이지은은 자신이 생각했던 게 맞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되었다.

벌떡 일어나며, 정다훈에게 물었다.

“너 설마… 1주일 전부터 아무것도 못 먹은 거야?”

정다훈은 고개만 조심스럽게 끄덕였다.

“밥… 안 줬어?”

“네. 원래 자주 안 줬어요…….”

‘이 악마 새끼.’

아무리 사람이길 포기했다고 한들, 이 정도로 할 줄은 몰랐는데.

강만식은 그런 범주를 완전히 벗어난 사람인 건 확실했다.

“잠깐만… 내가 가진 게 뭐가 있나 확인 좀 할게.”

이지은은 서둘러 침대에서 벗어난 뒤, 여행용 가방을 뒤적였다.

“그거 말고요 누나. 혹시… 돈 있죠? 저 먹고 싶은 게 있는데…….”

“뭐가 먹고 싶은데?”

“라면이요. 컵라면이라도. 같이 나가서 사주시면 안 돼요?”

“라면…?”

애처로운 정다훈의 부탁에 이지은은 문을 힐끗 쳐다봤다.

저 문을 통과하고, 어떻게 강만식의 눈을 피해 데리고 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했을 때, 정다훈이 말했다.

“괜찮아요. 안 들키게 나갈 수 있어요. 제가 문이 잠긴 누나 방에 들어온 것처럼 하면 돼요.”

“…뭐라고?”

이에 정다훈은 대답 대신, 자신의 능력을 선보였다.

원형 거울 같은 것이 생기더니, 그 거울 속에는 어느 풍경이 그려졌다.

이지은도 거울 속에 있는 풍경이 친근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낯설지도 않았다.

바로 이 호텔 근처에 있는 편의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네 능력?”

“네. 누나 방도 이거 통해서 들어왔어요. 여기 호텔로 올 때 편의점도 미리 봐뒀어요.”

확실히 이거라면 들키지 않고 강만식에게 나갈 수 있다.

이지은은 서둘러 지갑 하나만 달랑 챙긴 채로, 정다훈의 손을 잡았다.

“그래. 얼른 가자. 배 많이 고프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정다훈이 만든 거울을 함께 통과하자, 호텔 근처 편의점 문 앞으로 순간 이동을 했다.

‘다혜랑 비슷하지만, 어딘가 달라.’

워프란 능력은 이지은에게도 생소한 게 아니다.

그러나 정다훈과 정다혜의 차이는 결정적으로, 워프할 때다.

정다혜는 속이 조금 울렁거리는 것과 같이 약간 불쾌감이 있었지만, 정다훈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

차로 따지면 정다혜는 조금 낡은 차, 정다훈은 리무진과 같은 고급 차량의 느낌이었다.

“들어가도 되죠?”

“어, 그래.”

이제 무언가를 먹을 수 있단 생각에 신이 난 정다훈.

그리고 그런 정다훈을 에스코트하며 이지은은 편의점으로 무사히 들어왔다.

정다훈은 정말 자신이 말한 컵라면 하나만 들고, 계산대 앞으로 다가왔다.

“겨우 그거? 더 먹고 싶은 거 없어?”

“네. 이거면 충분해요.”

“아무리 그래도…….”

1주일이나 먹질 못한 상태인데, 허기를 달래기엔 충분하겠지만, 배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작은 컵라면이었다.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요. 들켜요.”

“…거기까지 생각한 거니.”

“자주 그랬으니까요.”

이미 의도적으로 강만식이 밥도 제대로 주지 않은 상태이니, 갑자기 하루아침에 힘이 도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뜻이다.

참으로 애석했다.

어린이가 벌써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먹을 걸 절제하고, 또 이런 상황에 놓인 게 익숙해졌다는 것이.

이지은과 정다훈은 그렇게 편의점 시식대로 함께 갔고, 이지은이 직접 컵라면 포장지를 뜯어주었다.

이거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다.

그렇게 물까지 부어, 라면이 익길 기다리면서.

이지은은 한 가지를 물어봤다.

“너 혹시 누나 있지 않니?”

사용하는 능력의 형태, 이름, 게다가 묘하게 닮은 것 같은 얼굴까지.

이 세 가지를 종합하니까 겹치는 사람이 딱 한 명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 누나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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