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맞물리는 사연들 (2)
이지은은 침을 꿀꺽 삼켰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토록 무게를 잡는 것인지, 당최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다.
보통 강만식이 이렇게 무게를 잡을 때는 상당히 심각하거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저렇게 유난스러운 태도라는 걸 너무 잘 알아서이기도 했다.
“저 꼬맹이한테 눈길도 주지 마. 알았어? 모든 관심도 끊고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멀쩡히 눈에 보이는 사람을 어떻게 신경을 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이제 고작 막 10대가 된 것 같은 어린이이다.
한창 부모의 품에서 커야 할 나이인데, 강만식의 눈에 든 것도 모자라 병풍 취급하라니.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안 들려?”
“저 꼬마가 어떤 꼬마길래 이렇게까지 하시죠?”
순간, 이지은은 저도 모르게 욱하는 마음으로 조금의 반항이 튀어나왔다.
“뭐……?”
당연히, 그녀의 반항은 강만식의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었고 강만식은 살벌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이지은은 잠시 이상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말씀 명심하죠.”
“그리고 두 번째. 앞으로 던전을 찾을 땐 무조건 있다고 생각하고 찾아봐. 못 찾으면 어차피 우리 못 돌아가거든.”
강만식은 협회장 최현민이 그토록 당부했던 것을 지금에서야 꺼냈다.
물론, 그들의 뒷사정을 알 리 없는 이지은의 귀엔 얼토당토않은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던전은 자신들이 만든 것 외에는 없다고, 게이트를 만드는 정령 흑염룡의 주인 윤도원에게 듣지도 않았던가?
그런 사정을 전부 알고 있는데 돌아갈 수 없단 말이 기가 찰 뿐이다.
“무조건 있다고 생각하고 찾으라고요?”
“어.”
왜 이걸 강조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차피 다른 답을 할 권리도 없다.
이지은은 짤막하게만 답했다.
“……알겠습니다.”
강만식에게 던전에 관한 중대한 비밀을 말할 수도 없는 노릇.
이 비밀은 오직 윤도원과 나눠야만 한다.
이지은은 그렇게 비밀을 무사히 간직한 채로 대답했다.
“할 말은 이제 끝. 나가.”
강만식의 손에 의해 강제적으로 방에서 나오게 된 이지은.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전, 어느 방 문 앞에 멈춰섰다.
정다훈이 있는 방이다.
이지은은 소리 없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미안하다. 내가 지금 당장 뭘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구나.’
***
신보미와 정다혜가 돌아가고 나서.
나와 흑염룡은 같이 한 가지를 고민했다.
바로 내 능력의 레벨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다.
지금까지 했던 방법은, 내가 스님이 된 것처럼 가만히 앉아서 명상하는 방식이었다.
그 덕분에 은신은 6레벨, 염력은 5레벨을 달성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가만히 앉아서 집중하고 있다면 내 능력을 사용하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게 내가 가만히 앉아서 능력을 사용하게 할 환경을 만들어줄까?
당장 이지은과 함께 갔던 게이트의 일에서도 그렇다.
느닷없이 나타난, 시오스들이 수호신으로 모시는 드래곤.
드래곤은 나를 잔해조차도 남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무지막지한 공격을 퍼부어대니, 당연히 나도 심적으로 여유가 없어지고, 온전히 능력 유지에 집중하기도 힘든 상황에 놓였었다.
앞으로 계속 그런 일만 일어날 것이다.
특히나 앞으로 나의 적은 몬스터만이 아닌, 인간도 있었다.
그것도 국내에서 꽤 실력이 있는 헌터가 내 적이다.
강만식.
그의 옆을 10년 넘게 붙어 다닌 이지은조차도 그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모른다.
그런 미지의 적을 상대하게 될 때, 과연 내가 평정심을 유지하고 능력을 쉽게 발현할 수 있을까?
돌발 상황이 나타나면 나도 모르게 능력 유지에 필요한 집중이 끊어질 수 있다.
즉, 내가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은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능력의 유지도 끊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
숨을 쉬는 것처럼,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능력이 나올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수준으로 만들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단순히 그걸 위해서 만들어둔 게이트를 사용할 수도 없고.]
흑염룡은 5층에 펼쳐 놓은 다섯 개의 게이트를 말하는 거다.
흑염룡이 만든 것도 어쨌든 방 하나짜리 던전.
그 속에는 몬스터도 있으니, 나 혼자 들어가서 정식 레이드를 하듯이, 능력을 사용하며 게이트를 닫는 것을 말하는 중이다.
“나도 그러고 싶진 않아.”
5층에 있는 게이트가 어떤 게이트인가?
던전이 전부 사라져 버린 지금 시대에서 크루즈들이 넘어올 수 없도록 만든 방파제와 같다.
물론, 게이트를 더 만들면 그만이지만 내 궁극적인 목표는 레이드라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내가 당장 원하는 수준은 능력으로 누군가를 제압하는 수준이 아닌.
집중하지 않아도 능력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수준이다.
그렇게 시선을 돌리던 중, 멈춘 곳이 있었다.
바로 이사 오면서 가지고 온 내 컴퓨터다.
그 순간, 나에게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혹시… 이거라면……?”
그렇게 컴퓨터에 쪼르르 다가가 의자에 앉아 전원부터 켰다.
[이 상황에 컴퓨터는 왜?]
“흑염룡. 난 천재인가 봐.”
[……갑자기 무슨 이런 헛소리를. 취했니?]
그녀는 지금 눈으로 심한 욕을 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정말로.
내가 방금 막 든 생각은 획기적이어도 너무 획기적이었다.
“아니, 어떻게 컴퓨터를 보고 이런 생각을 떠올리지? 하, 세상에. 한계가 도대체 뭐냐……? 나란 남잔.”
흑염룡은 주먹을 꽉 쥐었다.
덩달아 어금니도 깨물며 내가 경고했다.
[……하지 마라. 갑자기 게이트 만들려고 하니?]
“아니, 진짜 내 자신에게 너무 감명받았어!”
그렇게 로딩까지 전부 마친 컴퓨터.
바탕화면을 띄운 채로 내 명령을 기다렸다.
난 그 즉시 현란한 손기술을 가진 프로게이머처럼, 마우스를 사사삭 움직이며 한 아이콘을 더블 클릭했다.
흑염룡은 내가 클릭한 아이콘을 보며 물었다.
[뭔데, 그게?]
“내가 옛날에 자주 하던 게임. RPG 게임이라고 말하면 아니?”
[알아. 레벨 올리고 그러는 게임이잖아.]
“응. 바로 그거.”
길드 직원이 되기 전엔 게임으로 나날을 보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레벨이 너무 높아져서 랭킹 최상위권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적당한 수준의 랭커가 된 이력도 있는 몸이시다.
길드 직원이 된 후엔 업무에 치어서 할 시간이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어차피 백수에 남는 건 시간밖에 없는 몸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이 바로 이 게임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다.
게임 서버에 접속하자 무수히 많이 생성된 내 게임 캐릭터들.
흑염룡은 게임 캐릭터의 닉네임을 보고 표정을 굳혔다.
[이름이 왜 다 이 모양이야? ‘타락해서짱센전사’, ‘zi존도적’, ‘T없E맑은법사’? 진짜 작명 수준하곤……. 이딴 유치한 캐릭터는 다 언제 만든 거야?]
“중2 때. 더 정확히는 너와 처음 만나기 몇 달 전.”
[……그래, 그때부터 중2병이 중증이셨지.]
난 흑염룡의 푸념은 아랑곳하지 않고 캐릭터를 더블 클릭하며 접속했다.
그리곤 흑염룡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흑염룡. 나 지금부터 지은 씨한테 연락 올 때까지 게임만 할 거야. 대신, 넌 날 관찰해야 해.”
[무슨 관찰……?]
“내가 게임을 하면서 능력을 사용할 거거든. 그게 얼마나 유지되는지 네가 직접 보고 시간을 재달라는 말씀.”
[아하……!]
그렇다.
내가 떠올랐다는 획기적인 방법.
바로 눈과 손가락을 게임을 하고 있지만, 정신은 능력을 사용하는 일이다.
즉,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
애초에 내가 원하는 수준은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능력이 발현되는 것이다.
마치, 모바일 게임 캐릭터가 자동으로 사냥하는 것처럼.
하지만 지금 난 고도로 집중하지 않으면 능력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몇 시간 동안 능력 유지만 해도, 이게 실전에선 별로 의미가 없다.
실전은 늘 변수와 난관이 존재하는 잔인한 전장이니, 내가 능력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까.
따라서 지금 당장 내게 필요한 것은 능력에 완전히 익숙해지는 것.
더군다나 이 게임은 그저 멍하니 클릭 몇 번으로 하는 게 아니다.
내 캐릭터는 어디에 있고, 몬스터는 어디에 있는지.
이런 사소한 것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움직여야 하기에 은근히 정신이 없다.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능력을 사용하면, 숙달은 물론이고 집중하지 않아도 능력이 자동으로 나올 테니까.
“하려면 제대로 해야겠군.”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난 밥그릇에 물을 가득 따르고 염력을 이용해 내 머리 위에 띄웠다.
게임을 하면서 몸은 은신 능력으로 투명하게 만들고.
동시에 그 위에 물을 담은 그릇을 띄워서 떨어지지 않게 만들 것이다.
“시작.”
그렇게 게임 시작과 동시에 은신과 염력을 사용했다.
내 몸은 투명화되어 사라지고, 그 위엔 물을 가득 담은 그릇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쨍그랑-!
“앗! 차가워!”
게임 시작 고작 3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난 결국 그릇을 떨어트렸고, 그릇은 내 머리를 한 대 치곤 바닥에 떨어져서 깨졌다.
“엄청 어렵구나…… 이거…….”
평소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온전히 능력에만 집중하면 이런 그릇쯤은 세 시간도 거뜬했는데.
게임 하나가 추가됐다고 유지 시간이 대폭 줄었다.
그만큼, 게임에 많은 신경이 갔단 뜻이고.
난 현재 멀티 테스킹이 전혀 되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얼마나 유지했어? 흑염룡.”
[2분 13초쯤.]
“2분 13초라…….”
2분 13초가 내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상당히 초라한 숫자지만, 무조건 암울하게 만은 다가오지 않았다.
“처음 한 거 치고 2분 13초면 나름 선방했다고 봐야 하나?”
무언가에 목표가 생기고 열중하게 되는 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
실로 간만이다.
오기와 욕구가 자극되는 일이다.
깨진 파편은 대충 치워 놓고, 새로운 그릇에 물을 다시 받은 뒤에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다시 시작하고 나서 약 3분 뒤.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으악!!”
[왜? 물도 안 떨어트렸는데.]
“내 캐릭터가 죽었잖아!”
흑염룡의 말대로 이번엔 신경을 전부 물그릇과 은신에만 쏟아부어, 그릇이 깨지지 않고 은신도 풀리지 않았지만.
정작 내 게임 캐릭터의 생명이 끊겨 버렸다.
능력에만 신경이 잔뜩 쏠린 바람에 정작 체력이 없는 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그대로 죽은 것이다.
“게임에 신경 쓰면 그릇이 깨지고. 그릇에 신경 쓰면 캐릭터가 죽고. 난공불락이란 말이 딱 어울리네.”
둘 다 살려야 비로소 내가 능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단 뜻이다.
“그래도 참 다행이지 않아?”
[뭐가?]
“내 능력이 이렇게 게임하면서도 올릴 수 있는 능력이란 게. 네가 저번에 말했잖아. 신체 강화 같은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이런 식으로 올릴 생각을 하는 인간도 너밖에 없을걸.]
“아무렴 어때.”
다시 깨진 그릇 파편은 대충 치우고 새로운 그릇에 물을 담아와서 나만의 훈련을 시작했다.
***
훈련 시작 일주일 뒤.
신보미와 정다혜가 내 집을 찾았다.
“세상에…… 이게 다 무슨 난리에요?!”
그녀들은 엉망진창이 된 나의 집 상태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