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맞물리는 사연들 (1)
“그런데 내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나?”
한창 나의 새 보금자리에서 조촐한 파티를 진행하던 중에 신보미와 정다혜에게 물었다.
조촐한 파티인 만큼, 가벼운 술도 곁들인 상태이기에 분위기도 슬슬 무르익을 무렵이다.
“뭔데요? 뭐, 이상한 질문 같은 거만 아니면 괜찮죠.”
신보미가 답했다.
“너희 둘은 어쩌다 지은 씨랑 함께하게 된 거야? 엄연히 헌터계 최고 실세 강만식과 대항하는 거대한 일인데 그만한 사연들이 다들 있을 거 같아서.”
“…….”
내 질문을 듣자 둘의 표정이 굳어졌다.
표정으로만 보자면 내 예상대로 뭔가 이지은과 버금가는 씁쓸한 사연이 있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내가 굳이 이것을 캐묻는 이유도.
말 그대로 우린 어찌 보면 현 한국의 헌터계에 반란을 일으키는 자들이나 다름없는 위험한 일을 진행 중이다.
헌터계의 대통령 협회장 최현민과 그의 총애를 사고 실권을 휘두르는 강만식.
이 둘을 상대하는 일이 결코 무게가 가볍지 않다.
정말 특별한 사연으로 얽혀야만 가능할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현수 길드장님이요.”
그러던 중 신보미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이름이다.
“이현수 길드장님이면…… 설마 내가 아는 그 HS 길드장 이현수?”
“네.”
“그분이 너랑 무슨 관계이길래?”
“제가 이현수 길드장님이 소유한 재단 소속이었거든요.”
“……재단?”
이건 나도 모르는 얘기다.
과연 어떤 재단을 말하는 걸까.
“이현수 길드장님은 복지 재단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헌터 후보생 중, 가정 형편이 어려워 헌터 특목 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후보생들의 학비를 지원하고 소정의 생활비도 지원해주는 재단이었거든요.”
“아…….”
이현수 길드장은 살아생전 같은 헌터는 물론, 그의 길드 직원들도 찬사를 받을 정도로 성인군자의 인품을 가진 인물.
그런 수식어에 걸맞은 미담이 나온 순간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재단은 물론 HS 길드도 없어지고, 저도 지원금이 끊기면서 졸업도 못 하고 중퇴했죠. 학비 못 냈으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 재단이 없어진 이유가 강만식 때문이었다는 걸 알고, 언니도 알게 되면서 함께하게 된 거예요.”
강만식이 이현수를 죽인 일이 분명했다.
상당히 오래전 이야기이니 25살 신보미가 학생 나이 때가 맞을 거다.
“중퇴? 그럼 넌 정식 헌터가 아니란 뜻인가……?”
헌터 특목 학교에 진학은 했으나 졸업은 하지 못했으니, 졸업장이 없는 게 당연했다.
헌터 특목 학교의 졸업장은 곧, 정식 헌터를 증명하는 신분증과 다름없는 것이다.
“네. 저도 오빠랑 상황 같아요. 지금.”
“그렇구나…….”
평소에 발랄한 신보미가 가진 사연도 꽤나 무거웠다.
난 이제 정다혜를 보고 물었다.
“다혜 너는?”
“동생 찾으려고요.”
“……동생?”
“네, 저한테는 9살 어린 동생이 있었거든요. 이름은 다훈이. 지금은 실종된 상태지만요.”
난 갸우뚱했다.
동생의 실종과 이지은과 함께하는 일이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단 뜻인가.
“설마…… 강만식이 그런 거야?”
“아니요. 그건 몰라요. 하지만 강만식과 연관이 되어 있는 건 분명한 거 같아서요.”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단 뜻인가?”
“네.”
어떤 심증이 있었길래 이러는 걸까.
정다혜의 나이는 이제 고작 스무 살이다.
그런 그녀와 강만식이 얽힌 사연들이라.
특히나 난 강민식의 SF 길드에 근무했던 사람이다.
최근에 강만식의 행보 중에 수상한 건 하나도 없었다.
협회와 길드를 왕래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게 없었는데, 언제 이런 사연이 생긴 것인지 문득 궁금해 묻자, 정다혜는 침착하게 설명했다.
“저희 집은 시골에 있었거든요. 그리 화목한 집안은 아니었어요. 어머니 없이 B급 헌터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어요.”
“어머니는 왜……?”
아무래도 민감한 사정인 것 같아서 일부러 말끝을 흐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어릴 때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그 충격 때문이었는지, 아버지는 헌터 관두고 매일 술만 마시기 시작했어요.”
정다혜는 그리 화목한 집안이 아니라고 했다.
술을 달고 사는 아버지라.
뉴스에서 자주 보던 그런 것 같아서 나도 표정이 침울하게 변했다.
“그런데 술만 마시면 다행이었지.”
역시,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돈이 궁했던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도박에도 손을 댔어요. 그러면서 빚은 불어났고, 빚쟁이들한테 도망치려고 시골로 이사 간 거였거든요. 그게 제가 14살 때쯤이니까 꽤 오래됐죠.”
“그럼 처음부터 시골에서 지낸 건 아니었구나?”
“네, 아무튼…… 이사를 가도 빚쟁이들한테 들켜서 매일 집을 찾아오고, 아버지는 그거 때문에 집을 나가 버려서 저와 동생만 지내게 됐어요.”
다행히도 내가 생각한 폭력이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이거대로 참 사연이 딱했다.
“그래서 동생과 저는 늘 라면만 먹었거든요. 저도 요리를 할 줄 아는 건 없고 배는 고픈데 돈도 없고. 싸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게 라면밖에 없으니까요.”
“…….”
순식간에 무르익었던 분위기는 먹구름이 드리운 듯, 침울하게 변했다.
나도 괜한 말을 꺼냈다는 느낌이 들어 혼자서 자책하고 있었지만, 정다혜는 계속 자신의 사연을 풀어놨다.
“그러던 어느 날. 강만식과 아버지가 집에 왔어요. 그리고 강만식이 아버지한테 이렇게 말했죠.”
“뭐라고?”
“‘빚 많은 거 안다. 그 빚도 다 내가 갚아줄 테니까 딸과 함께 다른 곳에서 새 삶을 살아라. 돈은 더 주겠다. 대신 아들은 내가 데려가 헌터 특목 학교에 진학시키겠다.’라고요.”
“네 동생을 강만식이……? 아니, 그것보다 빚이 얼마였길래 넙죽 갚아주겠단 거야?”
“저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억이 훌쩍 넘는 건 알아요.”
나도 모르게 그 순간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저 일이 일어난 게 6년 전.
내가 24살 때다.
즉, 이것은 이지은도 24살 때란 뜻이다.
이지은은 17살부터 강만식과 함께 다녔고, 게이트를 찾아다니며 협회로부터 돈을 받았다.
따라서 신보미의 사연은 이지은이 강만식 밑에서 6년이나 일했던 시기다.
그 정도면, 억 단위로 가는 빚도 강만식에겐 그리 부담이 아니었을 거다.
그리고 이지은의 말을 빌리면 강만식은 사람의 재능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다.
그거 때문에 이지은이 눈에 들었던 거였다.
그런 강만식이 정다혜의 동생을 눈여겨봤다면, 필시 그녀의 동생에게도 탐나는 재능이 있단 뜻이다.
“동생 능력이 뭐길래 강만식이 그렇게 탐낸 걸까?”
“저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저와 아버지랑 비슷한 능력일 거예요. 전 워프잖아요? 서로 다른 공간을 잇는. 그런데 저희 아버지는 공간을 창조하는 능력이었어요. 아마 제 동생의 능력도 공간과 연관이 있겠죠.”
“아니 누나인 네가 어떻게 모르지……?”
“제 앞에선 한 번도 자신의 능력을 보인 적이 없으니 모르죠. 저도 저한테 워프 능력이 있다는 거 16살 때 알았어요. 저랑 비슷한 거겠죠. 능력이 있는데도 자각하지 못하는 거요.”
확실히, 그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가족이라도 알기 힘든 건 사실이다.
[으음, 저런 경우라면 대부분 유전이야. 물론, 무조건 되는 건 아니지만.]
흑염룡의 설명도 이어졌다.
보통 일반인이 헌터가 되려면 초월석의 영향을 받아야 하는데, 정다혜 같은 경우엔 부모가 헌터라면 비슷한 유형의 능력이 유전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떻게 하셨지?”
“강만식한테 돈을 받았죠. 제 동생 다훈이는 강만식을 따라갔어요. 서울에 있는 헌터 특목고에 진학하기 위해.”
“그렇게 실종이 됐다고?”
“네. 그게 너무 이상했어요. 강만식이 다훈이를 데리고 가고 며칠 지나지 않아 경찰들이 저희 집에 왔거든요.”
“경찰들이 왜……?”
“다훈이가 실종됐다는 거예요. 신고자는 당연히 강만식이고요. 그 조사 때문에 경찰들이 온 거죠.”
내가 들어도 상당히 이상한 상황이었다.
강만식이 데려가 놓고 갑자기 실종 신고라…….
구린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풍겼다.
“그 뒤로 전 다훈이를 못 봤어요. 여태까지. 그리고 강만식이 데려가고 나서 일어난 일이니까 강만식이 어떠한 의도가 있어서 그런 거로 생각하고, 언니랑 다니게 된 거예요. 강만식은 자신이 원하는 게 있으면 수단 방법 안 가리는 사람이란 걸 언니 덕에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렇구나…….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이 사라졌는데 가만히 계셨어?”
“그 인간 지금 교도소에 있어요. 살인죄로 복역 중이거든요. 솔직히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아요.”
“교도소엔…… 왜?”
“강만식한테 받은 돈으로 또 도박해서 다 날리고, 빚은 또 쌓이고. 화가 났는지 빚쟁이들한테 능력 잘못 사용해서 일반인이 죽었거든요.”
헌터가 일반인 상대로 능력을 사용하는 일은 엄격하게 금지됐고, 범죄 행위다.
심지어 그로 인해 일반인이 죽었으니, 단순 살인도 아닌 특수 살인으로 들어갈 것이다.
따라서 지금 정다혜에겐 가족이라고 한 명도 없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그럼 넌…… 동생도 사라지고, 아버지는 집을 나가고. 지은 씨를 알기 전까지 계속 시골의 집에서 혼자 지낸 거야?”
“네. 라면 먹으면서.”
“…….”
“라면 볼 때마다 다훈이 생각 많이 나거든요.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아니면 강만식이 데리고 있던가. 다훈이는 제가 끓인 라면 정말 맛있게 먹었거든요. 세상에서 제가 끓여준 라면이 제일 좋다고 했어요. 다시 만나면 꼭 다시 끓여줄 거예요. 맛있게.”
정다혜에게 심적으로 기댈 수 있는 존재는 결국 동생인 정다훈밖에 없었던 사정도 쉽게 이해가 갔다.
각자의 사연이 전부 강만식 하나에게 맞물리는 중이다.
[너무 불쌍하잖아. 쟤…….]
다른 인간에게 그다지 감정을 이입하지 않는 흑염룡까지 저런 반응을 보일 정도다.
“또 궁금한 거 있어요?”
“아, 아니…… 충분해.”
화기애애하게 시작한 조촐한 파티의 끝은 어두웠다.
***
이지은과 강만식은 부산의 한 호텔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장거리 운전이라 피곤했지만, 상대가 누군가?
남의 사정은 별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강만식이다.
그렇기에 이지은은 피곤한 기색도 낼 수 없었다.
“오늘은 여기에서 하루 보내고 내일 배편으로 제주도로 간다. 이지은 네가 운전을 너무 느리게 해서 늦게 도착했잖아.”
“죄송합니다. 선배님.”
저런 강만식의 말에 이젠 상처도 안 받는다.
이지은은 기계적으로 답하며 상황을 넘겼다.
그리고 호텔 방엔 세 사람이 함께 들어갔다.
강만식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셋은 이렇게 함께 지낸다. 불만 없지?”
“…….”
“…….”
이지은과 정다훈은 대답하지 않고 서로를 멀뚱히 쳐다봤다.
어차피 이들에게 선택권은 없다.
굳이 한 방에 셋이 같이 지내는 것도 강만식이 무언가 감시하려는 게 있어서라는 속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대답 안 해?”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알겠……습니다…….”
“좋아, 내 허락 없인 밖으로 못 나간다. 나도 안 나갈 거거든.”
그렇게 강만식은 각자 사용할 방을 배정했다.
그제야 이지은은 꼬마의 이름이 정다훈인 것도 알았다.
배정이 끝난 뒤, 그가 이지은에게 말했다.
“이지은. 따라 와.”
“네.”
이지은은 불안한 마음으로 강만식의 뒤를 따랐다.
이지은이 슬쩍 뒤를 쳐다봤지만, 정다훈은 벌써 방으로 들어갔는지, 사라진 상태다.
그렇게 이지은은 강만식의 방으로 함께 들어가고, 강만식이 문단속까지 확실히 하고 난 뒤 표정을 싹 굳히며 말했다.
“어이, 잘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