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은둔 고수를 위하여 (4)
“내일이요……?”
큐브를 맞추던 어린이가 물었다.
그의 이름은 정다훈.
나이는 이제 고작 11살이 된 초등학생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초등학생 신분이 아니다.
애초에 학생 신분이란 게 허락되지 않은 몸이다.
왜냐, 이미 강만식은 그가 신동이 될 것을 알아보고 따로 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다훈은 바로 협회장 직속 관리부의 비밀 부원 중 하나다.
강만식이 따로 손을 써서 헌터 특성화 학교의 진학을 생략하고 이미 헌터 신분으로 만든 어린이다.
이 호텔이 그런 정다훈이 지내는 곳이다.
하루 숙박비만 몇십만 원이나 하는 고급 시설이지만.
정다훈에겐 그런 고급스러운 느낌은 하나도 없다.
그는 이곳에 새장처럼 갇혀, 감금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밥도 주지 않을 정도로 강만식은 혹독하게 그를 사육하다시피 했다.
결국, 어린 정다훈은 그런 강만식이 무서워 시키는 것들을 전부, 토 달지 않고 착실히 이행했다.
벌써 이 객실에서 이런 생활을 한 게 6년이다.
정다훈은 6년 동안, 강만식이 직접 데리고 나갈 때를 제외하고 호텔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어. 외출이다.”
“외출…….”
“이번 외출은 조금 길 거야.”
“…정말요?”
밖을 나갈 수 있단 말에 정다훈은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린이가 바깥 공기를 그리워하는 지경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니까 필요한 거 다 챙겨.”
쿵!
강만식은 가지고 온 여행용 가방을 정다훈의 앞으로 던졌다.
“알아서 잘 챙겨. 네 강박증 때문에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죄송해요.”
정다훈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가 가진 능력 때문에 강박증이 유독 심하다.
그래서 특정 물체가 있다면, 줄이나 색을 맞춰야만 했다.
그가 큐브를 맞추고 있던 것과 호텔 안에서도 늘 멀끔한 어린이 정장 차림인 것이 그 이유이다.
큐브 말고도 객실에는 체스, 바둑, 색칠 스케치북 등등.
손을 써야 하는 도구나 취미 용품들이 많았다.
“시끄럽고 챙기기나 해. 내일 아침 7시에 오지. 시간 맞춰서 준비 끝내.”
그렇게 강만식이 여기에 온 지 1분도 되지 않아 나가려고 할 때, 정다훈이 다급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불렀다.
“저… 저기……!”
“왜? 뭐 필요한 거 있어?”
“먹고 싶은 게 있어요…….”
“룸서비스로 시키면 되잖아.”
“룸서비스엔 없는 거예요…….”
“뭔데?”
“라면…이요.”
“하, 나 참.”
정다훈의 답을 듣고 강만식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표정을 잔뜩 구겼다.
“장난하냐? 룸서비스에 라면 있잖아.”
“그런 거 말고… 제가 먹고 싶은 건 평범한 라면이라서…….”
룸서비스로 오는 건 값비싼 재료가 들어간 호화스러운 라면이다.
그러나 정다훈이 원하는 건.
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평범하게 집에서 해 먹는 라면이었다.
“그래서? 너 지금 나한테 라면 사 와서 끓여달라는 거냐?”
그러나 그런 그의 속을 알 리 없는 강만식은 목소리가 무섭게 변했다.
“이게 오냐오냐하니까, 너 내가 누군지 몰라? 내가 네 라면이나 끓여주는 사람이야?!”
버럭 소리치자, 정다훈은 어깨를 들썩였다.
“죄… 죄송합니다!”
“짜증 나게 하고 있어. 쯧.”
강만식은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쾅 닫으며 나갔다.
그러자 서러움이 터진 정다훈은 흐느꼈다.
먹고 싶은 음식 하나 마음대로 먹을 수 없으며, 밖에도 나갈 수 없는 이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흑흑… 누나… 보고 싶어…….”
정다훈이 평범한 라면을 먹고 싶었던 이유.
그의 친누나와 함께 있었을 시절, 친누나가 끓여서 둘이 맛있게 먹은 기억 때문이다.
정다훈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라면이 바로 친누나가 끓여준 것과 같은, 평범한 라면이었다.
“흐극… 흐윽…….”
하지만 이제 그런 친누나는 없다.
친누나가 죽은 건 아니다.
강만식 때문에 강제로 헤어지게 된 것이지.
꼭, 강만식으로부터 탈출하면 친누나부터 찾을 거라고 다짐하는 정다훈이다.
정다훈은 울음을 애써 참으며, 큐브, 바둑판, 체스판, 색칠 스케치북 등등.
자신의 강박증을 해소할 수 있는 물건들을 욱여넣었다.
***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강만식은 정다훈을 데리고 호텔 주차장으로 나왔다.
운전석엔 이지은이 있었다.
차는 한 대로 움직인다.
그런데 그녀가 운전석에 앉아 있는 이유는.
강만식의 기사 노릇까지 해야 했기 때문이다.
“타.”
강만식은 정다훈을 뒷좌석에 태우고.
자신은 조수석에 앉았다.
이지은은 저런 어린이를 처음 본 순간이다.
“…누구예요?”
“네가 알아서 뭐 할 건데.”
숨겨둔 아들 같은 건 아닐 거고.
그저 어린이를 호텔에서 데리고 나오니, 궁금해서 물은 것뿐인데, 강만식은 유독 사납게 반응했다.
“…죄송합니다.”
그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관심 끄고 없는 사람 취급하란 뜻이다.
저것이 강만식의 본모습이니까.
“출발해.”
강만식은 조수석 좌석을 한껏 젖히고 누웠다.
운전하면서, 이지은은 백미러를 통해 슬쩍 뒷좌석을 확인했다.
어린이는 큐브를 꺼내더니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심히 큐브를 맞추기 시작했다.
그러다 시선을 느꼈는지, 백미러를 통해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이지은은 그저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어린이는 그녀의 미소를 보고 나서 귀신을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강만식의 눈치를 보곤 시선을 다급하게 피했다.
“…….”
이지은은 남 일 같지 않았다.
저 표정…….
자신이 17살 때 늘 짓던 표정과 너무도 똑같았으니까.
‘그렇구나… 저 아이… 강만식이…….’
아이의 반응을 보고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넌 도대체 어떤 능력을 가졌길래 그렇게 된 거니.’
가슴이 아팠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나이인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벌써부터 강만식에게 잡혔다는 사실이.
‘미안하다. 그래도 조금만 참아. 꼭 너도 해방시켜줄게.’
고작 눈빛 한 번 맞춘 것이지만 어린이에게 모든 감정이 이입되었다.
그리고 이지은은 어린이가 들리지 않는, 약속을 나눴다.
셋은 유유히 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전국 일주는 한국의 최남단, 제주도부터 시작하기 위해 부산행으로 향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지은은 자꾸 뒷좌석의 어린이에게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이상하네… 왜 이렇게 닮은 것 같지. 겁이 많고 낯가림이 심한 것도 그렇고.’
자신이 아는 사람과 닮았다. 정확히 누굴 닮았는지는 아직 떠오르지 않았지만.
***
2주가 지났다.
신보미에게 전달받은 대로, 상가의 개조 공사는 오늘 딱 끝이 났다.
나도 그에 맞춰 살고 있던 오피스텔을 정리하고, 상가로 이사까지 완료했다.
이사는 신보미와 정다혜가 도와준 덕에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빨리 끝났다.
집들이라도 하자는 그녀들의 제안에 우린 결국, 조촐한 파티를 열기로 했다.
“2주 동안 성과 좀 있어요?”
각종 안주와 술을 사 온 뒤, 함께 둘러앉아 먹고 마시고 있을 때 신보미가 물었다.
흑염룡이 기다렸단 듯이 내 능력이 적힌 그 두루마리를 펼쳤다.
[은신 Lv 6]
[염력 Lv 5]
2주 만에 이 정도 성과면 꽤 대단한 거 아닌가?
정말 집에 박혀서 스킬 레벨을 올리는 데만 집중했으니까.
은신의 지속시간은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길어졌고.
염력의 발전도 눈이 부셨다.
이제 종지 같은 작은 물체만 드는 게 아니라, 식탁과 같은 부피가 큰 물건도 들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제약은 존재한다.
특히 염력.
부피는 커도 아직까지는 가벼운 물건들만 들 수 있는 수준이다.
냉장고와 같은 물체는 여전히 무리다.
이들 눈엔 흑염룡의 두루마리가 보이지 않으니, 말로 전달한 뒤다.
“오~ 그래도 정말 노력했나 보네요. 신기하다, 그렇지? 이렇게 단기간에 팍팍 오르는 거.”
신보미가 정다혜에게 말했다.
난 그 부분에서 의아한 게 생겼다.
“원래… 헌터들 능력이란 거 이렇게 쉽게 안 올라?”
“당연하죠. 어떤 사람은 몇 년 동안 제자리라서 그냥 바로 은퇴해 버린 사람도 있어요.”
“맞아요. 축복받은 거예요.”
“그래……?”
[나한테 고마운 줄 알아. 내 덕 본 것도 있으니까.]
흑염룡까지 거들었다.
딱히 뭔가를 한 것 같진 않았는데,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래도 나를 위해 노력을 하긴 한 모양이다.
“음? 저거 봐요. 진짜 본격적으로 시작인가 보네…….”
그러던 중, 정다혜가 TV를 가리켰다.
이번에도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는 중이다.
[내일부터 유가 1800% 인상! 대중교통, 택시, 전기, 수도. 전부 동일수준으로 인상돼…….]
2주 만에 1800%라…….
정다혜의 말대로, 시작됐다.
본격적인 인플레이션.
2주에 1800%면, 두 달이 지난 후엔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가만있어 보자… 원래 휘발유가 100원이라고 잡고…….”
신보미는 암산으로 계산했다.
“내일부터 리터당 2800원?! 2배가 넘게 오르네?”
정확한 수치로는 28배 오른 거다.
처음에는 10배 이상 오른다고 예상했던 것이. 결국, 한참이나 벗어난 28배로 확정이 난 순간이다.
아직까진 버틸 수 있는 수준이지만…….
이 정도로 유가 상승이 끝날 리는 없었다.
어쩌면 두 달 이내에 계획을 실행해야 할지도 모를 속도다.
***
미국 네바다주의 한 군사 비밀기지.
드넓은 군사 기지 지하에는 각종 비밀 시설들로 가득하다.
어느 한 구역에 모인 미국의 연구자들은 거대한 캡슐 앞에 모였다.
파란색 액체가 가득 담긴 캡슐이다.
캡슐에 담긴 것은 액체만 있는 게 아니다.
자세히 보면 아지랑이와 같은 희미한 물체가 있다.
하지만 원체 희미하기에 정말 집중하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았다.
바로 캡슐 안에 든 파랑 물체가 저 아지랑이를 조금이라도 뚜렷하게 보여주는, 그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특수 물질이었다.
그들의 자국 헌터가 레이드를 진행하던 중, 의문의 물체를 포획했고, 이것을 예사롭지 않게 여긴 미국 연구진들은 네바다주에 있는 이 비밀기지로 공수해 왔다.
그리고 저 아지랑이처럼 보이는 의문의 물체에서 신비한 힘이 방출된다는 것까지 발견해냈다.
그 신비한 힘은 바로 초월석이 내는 힘과 상당히 비슷하단 것.
다만 그 힘이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고압의 전기 충격과 같이, 보통 인간이라면 견딜 수 없는 극한의 충격을 줘야만 그런 힘이 나왔다.
“경과는 어떤가?”
해당 연구팀장이 연구기록 차트를 보며 물었다.
“저희 연구가 맞습니다. 초월석이 내는 힘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초월석이 없는 지금, 이 힘을 이용할 방법을 찾는다면, 초월석을 대체할 수 있을 게 분명합니다!”
그들은 인류 역사에 있어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발견을 한 순간이다.
때문에 모두가 환희에 젖었다.
“다시 해 봐.”
팀장의 지시에 캡슐엔 고압 전류가 전달되었다.
치지지지직-!
멀리 떨어져 있는 연구원들에게도 그 전류가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다.
만약 저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다면.
전류에 감전되어 죽는 게 아니라, 그냥 몸이 터져 나갈 정도의 위력이다.
그런데 그 순간 연구원들 모두의 귀에 이명이 계속 들렸다.
“난 계속 이게 궁금하단 말야. 왜 저런 전류를 가할 때마다, 이명이 들리지? 전류로 인한 이명이 아닌데.”
정확히 이 이명을 정의하자면.
물속에서 말을 했을 때, 울리는 진동과 똑같았다.
뭐라고 딱 정의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소리다.
“저희도 계속 듣고 있는 것인데…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전류 공급을 중단하면 이명이 중단되고 말이죠.”
“허허, 참 알 수가 없군. 꼭… 생명체가 괴로워하는 것 같지 않아?”
“확실히 그렇게 보여지긴 하지만… 또 생체 반응은 없는 물체이니… 이 비밀을 알 수가 없네요.”
“다시 해 봐.”
캡슐에 고압 전류를 새로 가했을 때였다.
[린느…니임……! 살려… 주세요……!! 괴로워 죽겠어요……!]
그들이 이명으로 들리는 소리의 정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