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은둔 고수를 위하여 (3)
난 신보미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윤도원이라고 해요.”
“아! 네! 나이는 언니랑 동갑이라고 들었는데, 그냥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인사할 때도 그렇고.
꽤 활발하게 인사하더니, 성격 자체가 붙임성이 좋은 사람 같았다.
신보미가 내 손을 잡고 흔들었을 때다.
“보미 씨 세상 다 혼자 사시는 미모란 말, 혹시 들어 봤어요?”
[아 제발…….]
난 분명히 경고했다.
제어할 수 없는 중2병력이 나오는 중이라고.
흑염룡은 귀를 막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어떻게 해서든 내가 하는 말을 듣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다.
“…네?”
신보미는 그 활발한 모습이 강풍 앞의 성냥처럼 한순간에 사라져 없어지고,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세상 혼자 사는 미모를 가지신 보미 씨 손을 이렇게 잡고 있으니…… 전 그럼 세상을 가지게 되는 건가요?”
“어머나 세상에 시ㅂ…….”
“…예?”
그런데 이번에 당황한 건 내 쪽이다.
눈과 표정은 웃고 있는데, 막상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걸쭉하고도 구수한 육두문자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신보미는 재빨리 악수를 떨치고 자신의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분명히 저 입을 스스로 막지 않았다면, 그녀가 뱉으려던 단어는 완성됐을 거다.
“아하하하하……! 상당히 재미있는 분이네요! 어쩐지 언니가 나랑 성격이 안 맞을 거라고 그렇게 강요하더니, 이 뜻이었구나, 아하하하!”
오호라……? 그렇단 말이지?
나와 성격이 맞지 않을 거란 뜻은.
신보미도 이지은과 똑같이, 이런 중2병력에 내성이 아예 없다는 뜻이다.
정다혜의 반응도 살폈다.
“언니이이…….”
정다혜는 신보미의 어깨를 꽉 붙잡으면서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정다혜, 신보미, 이지은까지. 전부 항마력이 없으시다, 이 말이군?’
나에겐 최고의 파트너들이다.
중2병에 내성이 없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저런 반응이 나온다는 것.
우리와 함께 있는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당연, 그 반응은 전염병처럼 전이되어 고스란히 저들 눈에 보이지 않는 이에게 전해진다.
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바로 그녀들의 반응이 전이될 흑염룡이 있는 곳이다.
[제발……! 윤도원……! 빨리!]
흑염룡이 몸을 애처롭고도 불안하게 떠는 모습이 꼭.
배탈이 났는데, 고장 난 화장실 앞에서 멈춰 버려, 새어 나오기 직전이라 걷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흑염룡은 이제 주먹을 꽉 쥐면서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이거… 게이트로 변하기 직전이다.
“오우, 쒯!”
하지만 여긴 상가 입구.
게다가 낮이라서 남들도 있는 곳이다.
난 황급히 상가 문을 열고 뛰어 올라갔다.
게이트를 펼쳐 놓은 5층으로 도달하기 위해서다.
“저기요……? 도원 오빠?!”
갑자기 내가 들입다 달리기 시작하니,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둘은 내 뒤를 따라붙었다.
그러나 난 지금 그 둘의 반응 따위를 신경 쓸 게 아니다.
흑염룡이 게이트로 변하기 전에 얼른 5층으로 내가 도착해야 한다.
벌컥!
드디어 5층 출입문을 열었을 때였다.
쿠웅!
흑염룡은 도착과 동시에 게이트를 하나 만들었다.
이로써 5층에 있는 게이트는 총 6개가 되었다.
“대박… 이런 식으로 만드는 거구나? 게이트를? 어쩐지, 왜 갑자기 그런 미친 소리를 다 하나 했네.”
미친 소리라니…….
나도 모르게 신보미를 째려봤다.
“으흠…. 흠흠.”
그녀는 애써 눈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와아…. 신기하다. 게이트가 하늘에서 내려온 거 같다.”
정다혜는 특별한 반응 없이 저게 전부였다.
이렇게 신보미와 정다혜도 내가 가진 능력 중 하나를 보게 되었다.
***
우린 상가 근처 카페로 왔다.
말이 근처지, 사실 15분가량은 걸어서 온 곳이다.
그래도 도보 15분 이내에 이런 편의시설이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조용한 동네인 만큼, 카페에도 손님이 거의 없었다.
우리 셋이 전세를 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상가에는 아직 앉아서 얘기할 곳이 없으니, 여기에서 얘기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까, 꼭 오글거려야만 그 흑염룡인가 하는 정령이 게이트를 만든다는 거죠?”
신보미가 물었다.
주변에 누가 듣진 않을까, 눈치를 살피며 작은 목소리였다.
[야! 윤도원! 내 이름은 린느라고! 너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한테도 흑염룡이라고 불리기 싫다고!! 빨리 정정해!]
‘아, 시끄러워.’
흑염룡은 자신의 별명에 대해 불만은 토로했지만.
뭔 상관이야?
어차피 저 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흑염룡 쪽이 훨씬 입에 더 잘 달라붙으니까 이번에도 역시 가볍게 무시했다.
“정확히는 오글거릴 때만이 아니라, 감정의 변화가 찾아왔을 때요.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우울함 등등 전부 포함이래요.”
“그런데 왜 꼭 그런 방법을 택한 거예요?”
“그게 확실하니까요. 보통 오글거리는 감정을 잘 제어 못 하잖아요? 그 증거로 보미 씨도 아까 나한테 욕하려고 했으면서?”
“아하하하하……!”
신보미는 멋쩍은 듯, 자신의 입을 다시 틀어막기 위해 빨대를 입에 물었다.
“아무튼, SF 길드는 오늘부로 퇴사했다고요?”
“네. 약 2시간 전에요.”
얘기를 하던 도중, 신보미의 눈의 초점이 흐릿해졌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다.
“아! 이 동네가 집이 아니라면서요? 언니가 준 상가 동네라면서요?”
“…어떻게 알았어요?”
“방금 언니랑 대화했어요.”
신보미랑 이지은은 서로 연결된 상태.
나와 대화하는 도중에 따로 둘만의 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 네. 제 집은 좁고 너무 멀기도 하니까요.”
난 그냥 솔직하게 답했다.
“그럼 계속 저희가 만나는 일이 있을 때, 이 동네에서 만나게 될까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요.”
“으음… 잠깐만요.”
신보미는 다시 초점 없는 상태로 돌아갔다.
이로써 확실하다.
저 상태면 이지은과 무슨 얘기를 주고받는 중이란 거다.
초점이 돌아온 신보미가 말했다.
“그럴 거면 언니가 그냥 그 상가에서 사는 거 어떻겠냐는데요?”
“흐음… 그건 힘들 거 같은데.”
“왜요?”
“아까도 봤잖아요. 5층에 게이트 펼쳐 놓은 거. 생활할 수 있게 개조하려면 간단한 공사라도 해야 하는데, 인부들 왔다 갔다 하다가 발각되면 어떡해요.”
“저희가 있잖아요?”
정말 고민도 하지 않고 내놓은 답이다.
그러나 난 정확히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래서요?”
“저희가 공사 끝날 때까지 거기 지키면 되잖아요. 안 그래?”
“응. 어차피 요새 심심했는데 잘 됐어.”
정다혜도 부정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 주면 나야 고맙긴 하지만…….
괜히 너무 부려 먹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다들 아테나 길드원 아닌가요? 길드 일정도 있을 건데.”
“엥? 그게 무슨 소리래요?”
나는 이지은이 소개했으니, 당연히 그녀의 부하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잘못 짚은 듯하다.
“아테나 길드원 아니에요?”
“네. 저희는 길드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안 그래도 예전에 언니한테 언니네 길드 들어가고 싶다고 했는데 언니가 정색하면서 반대했거든요.”
“왜요?”
“왜긴요, 박우민 때문이지.”
“아…….”
박우민은 비서실장이란 자리에 있으면서 이지은뿐만 아니라 아테나 길드 전체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만약 이 둘이 아테나 길드원이 되면, 둘 다 감시 대상이 되니 그것을 피하기 위한 그녀의 조치로 보였다.
“현명한 선택이었네요.”
“네, 저도 언니 말 듣고 나서 이렇게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그 뒤로 말도 안 꺼냈죠. 그래서 어떡할래요? 추진해요?”
“으음…….”
조금 고민했다.
확실히 이 둘이 나를 위해 움직여주면 좋긴 하다.
나도 게이트를 만들어 둔 곳과 생활하는 곳을 따로 두는 건 불안한 게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으니까.
결국, 이번에도 조금은 이기적으로 굴어야 할 것 같았다.
“부탁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공사는 제가 알아볼게요. 그리고 언니가 그 시간에 오빠는 가진 능력을 수련하는 게 어떻겠냐는데요?”
“그럴 거예요.”
난 이제 정다혜를 쳐다봤다.
정다혜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갑자기 시선을 땅으로 내렸다.
“하하하, 다혜가 원래 낯을 좀 가려서 그래요. 친해지면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두 분…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저를 오빠라고 부르는 거 보면, 저보다 어린 건 맞는데 몇 살인지 모르겠네.”
둘 다 꽤 성숙해 보였기 때문이다.
절대 노안이란 말은 아니다.
“전 스물다섯이요!”
신보미의 답이고.
“스무…살이요.”
정다혜의 답이다.
심보미는 나와 다섯 살, 정다혜는 무려 열 살이나 차이가 난다.
‘흐음… 친해지기 어렵겠군.’
신보미는 그렇다고 치는데, 정다혜가 걱정이다.
나이 차이가 밑으로 이렇게 많이 나는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툴러서 나도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이제 함께 움직이는 사이이니, 기본적인 건 알아내야 했다.
“보미 씨 능력은 들어서 알고 있고. 다혜 씨는 혹시?”
“저도 커넥터에요. 그런데 보미 언니랑은 조금 달라요. 커넥터라는 능력은 보통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을 어떠한 형태로든 잇는 능력자를 뜻하거든요.”
그렇게만 들었을 땐,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
“음… 이런 거요.”
정다혜는 갑자기 두 팔을 자신의 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끝으로부터 아지랑이와 같은 투명한 기류가 나오더니, 동그랗게 결집됐다.
결집된 기류는 점점 더 커졌고, 이내 우리 몸과 크기가 비슷한 의문의 형체를 만들었다.
생긴 건 RPG 게임에서 자주 보던 포털이랑 상당히 흡사하다.
“들어가 봐요. 이게 다혜 능력.”
신보미가 제안했고, 난 조금 긴장된 채로 그 의문의 형체에 몸을 밀어 넣었을 때였다.
“어……?”
그런데 우린 분명 카페에 있었는데, 내 몸은 지금 상가 5층에 도착했다.
[아~ 워프 능력이구나~]
흑염룡도 단번에 알았다.
내 뒤로 신보미와 정다혜가 따라 들어왔다.
“워프 능력이에요. 단, 조건이 있어요. 제가 직접 가 본 곳만 연결할 수 있어요. 사진이나 영상으로 본 곳은 안 되고요.”
그래서 커넥터라고 한 것 같았다.
워프를 통해 멀리 떨어진 장소를 잇는 통로를 만드니까.
커넥터의 정의도 완벽히 이해가 됐다.
그리고 정다혜의 능력을 보고 한 가지 기똥찬 계획이 생각났다.
‘이러면… 밖에 있어도 언제든 중2병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잖아?’
여기 상가 건물 입구에서.
중2병을 발휘했을 때, 어땠는가?
흑염룡이 게이트로 변하기 직전에 내가 5층까지 뛰어오는 난리가 잠깐 있었다.
정다혜의 이 능력이 있다면.
난 그런 걱정을 하지 않고 언제든 중2병을 꺼낼 수 있으며.
흑염룡이 밖에서 게이트로 변하려고 할 때, 정다혜가 만든 이 워프 게이트를 이용해 이곳으로 오면 됐다.
‘아주 최고야.’
난 만족했지만.
[하아…….]
흑염룡은 내가 아무 때나 오글거리는 대사를 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시무룩해보였다.
게이트를 만드는 건 좋지만, 그 과정에서 입을 내상이 두려운 모양이다.
‘살려는 드릴게.’
[닥쳐…….]
‘성깔하고는.’
우린 다시 카페로 돌아왔다.
“그럼, 각자 정한 거 시작하기로 할까요?”
“네. 미룰 필요 없죠.”
그렇게 우리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저녁이 되었을 때.
신보미는 공사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를 메시지로 남겼다.
정말 행동력이 확실한 처자였다.
간단한 개조 공사라 기간은 고작 2주.
비용은 이미 자신이 처리했으니 신경 쓰라고 했다.
이것 역시, 이지은이 그렇게 지시한 거라고 아예 못을 박아 버렸다.
찝찝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게 필요한 과정이 아닌가?
난 그대로 진행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뒤로 공사가 끝날 때까지 집에 있으면서.
염력과 은신 레벨을 올리는 데 열중했다.
그렇게 내 하루 일과는 집에 앉아서 눈을 감고, 은신과 염력을 계속 수련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
강만식은 한 고급 호텔에 들렀다.
한 손에는 20kg가량을 담을 수 있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들고서.
그가 마스터키로 객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안에는 멀끔한 정장 차림의 어린이가 큐브를 조작하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어이. 내일 나와 함께 갈 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