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은둔 고수를 위하여 (1)
이지은은 그렇게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지은도 서울 외곽에 산다는 것을 듣고 조금 놀랐다.
그러나 외곽에 터전을 자리 잡은 이유를 듣고 나서는 씁쓸했다.
결국, 강만식 하나 때문에 그녀의 모든 삶이 족쇄가 되어 버린 것이었으니까.
이지은이 가고 난 뒤, 나와 흑염룡만 남은 집.
난 집에 남은 하나의 게이트를 쳐다봤다.
“흑염룡.”
[왜.]
“게이트 말이야. 옮기거나 그런 게 가능해?”
[…아니?]
그렇다면 이 게이트가 계속 존재할 이유는 없다.
이미 이지은에게 받은 상가가 있고, 앞으로 우린 거기에 게이트 밭을 펼칠 거니까.
난 그 생각을 전했다.
[…….]
하지만 흑염룡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게이트가 전부 다 사라지면 불안해서?”
[응. 안 그래도 게이트 저거 하나 가지곤 효력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고… 언제 크루즈가 올지 모르는데…….]
그 마음 이해 못 하는 거 아니다.
그래서 이번엔 흑염룡을 안심시키기로 했다.
“그래? 그럼…….”
난 휴대폰으로 택시를 불렀다.
다행히 택시는 금방 잡혔고, 몇 분 내로 도착한다는 메시지를 받은 뒤에.
옷을 주섬주섬 챙겨 나갈 준비를 했다.
[어디 가려고……?]
“지금 당장 그 상가에 게이트 5개 펼쳐 놓고 오자. 그럼 됐지?”
[…정말?]
“응. 너만 불안한 거 아니야. 나도 불안해. 크루즈가 언제 넘어올지 모르잖아.”
이지은과 알게 되면서, 우린 앞으로의 계획을 철저하게 그렸다.
그러면서 새롭게 생긴 조건이 있는데.
바로 이 계획을 실현하기 전까지 크루즈가 등장하면 안 된다는 것.
우리 계획이 제대로 실현되기 전에 크루즈가 등장해 버리면.
시오스와 크루즈의 관계를 제대로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크루즈를 보고, 아직 찾지 못한 던전이 있다고 생각할 터였다.
그렇게 되면 던전은 어딘가에 있다는 게 알려지고.
이 소식을 들은 일반인이나 정부, 협회는 “아! 이제 다시 초월석을 얻을 수 있겠구나!” 하면서 오히려 기뻐할 수도 있다.
허나, 크루즈가 먼저 등장해 버리면 우리가 묵힌 초월석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게 된다.
세상이 파멸로 변해가는데 그제야 초월석을 사용한다고 의미가 있을까?
아끼다가 똥 된다는 말이 있다.
딱 그런 상황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따라서 그 사태만은 분명하게 막아야 했다.
[그런데 거기 1층 통유리잖아…… 다 보이지 않나……?]
“상가는 1층만 있는 게 아니잖아. 5층까지 있잖아. 5층 구석에 몇 개 펼치면 돼.”
어느덧 택시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왔다.
내려가다 보니 우체통에 꽂힌 각종 무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 신문을 주로 읽는 요즘 세상이다 보니, 우체통엔 지저분하게도 여기저기 무료로 배포되는 신문이 꽂혀 있었다.
‘으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 신문들을 최대한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기고 택시에 올랐다.
***
‘보미야? 혹시 깨어 있니?’
이지은은 운전하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언니!’
다행히도 신보미는 즉각 답했다.
‘웬일이야! 이 늦은 시간에!’
‘너한테 하나 전할 게 있어.’
‘응, 뭔데?’
‘내일 아마 누가 너한테 연락할 거야. 그 남자 좀 잘 챙겨줘. 나 대신해서.’
‘남자…?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 웬일로? 혹시…? 남자친구?!’
신보미는 떠들썩한 반응을 보였다.
경사라도 난 듯이, 방방 뛰고 있을 것 같은 목소리였다.
‘아니, 그런 거 아니야. 내가 한가하게 연애나 할 사람이니.’
‘그럼 뭔데?’
‘우리의 구세주.’
‘뭐야… 그 오글거리는 말은. 잠깐, 구세주? 설마?’
‘응, 정말 운 좋게 찾았다. 날 강만식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있는 사람.’
‘대박! 어쩌다가?’
‘그건 나중에 자세히 얘기해 줄게. 아무튼, 연락 오면 잘 챙겨줘. 가능하면 내일 밥이라도 먹으면서 얼굴 익히고. 난 마음대로 못 돌아다니지만, 넌 아니잖아.’
‘맡겨만 줘!’
‘그래. 부탁한다. 다혜한테도 전해줘.’
‘알았어!’
‘아, 참. 미리 알려주는 건데… 아마 너랑 성격 안 맞을 거야…. 네가 좀 힘들 수 있어.’
‘…왜, 어떤데?’
이지은은 아직도 윤도원의 그 대사가 아른거린다.
“너는 내~향 저격~”
정말인지 정신이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회상하니, 자연스럽게 자동차 핸들을 꽉 붙잡게 됐다.
‘…설명하기 힘들어. 직접 보고 판단해.’
‘불안한데?’
***
상가 동네에 도착한 나는 근처 편의점에서 테이프 하나를 사서 상가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향한 곳은 5층.
5층은 그나마 다행인 게 통유리가 아닌, 창문이다.
난 가지고 온 신문지로 창문을 전부 가렸다.
[오호, 그런 식으로?]
“응. 커튼이 없으니까. 커튼 대용으로.”
그렇게 창문 전체를 가리고 난 뒤 본격적으로 던전을 열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방법을 바꿨다.
그전까지 말과 행동으로 흑염룡을 오그라들게 만들었다면, 이번엔 무언가를 보여줄 생각이다.
“흑염룡. 이리 와서 이거 봐 봐.”
내가 보여준 것은 아주 예전에 인터넷상에서, 미니홈피가 유행하던 시절에 유명했던 짧은 소설 같은 거다.
난 흑염룡에게 그것을 천천히 보여주었다.
내가 보여준 소설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고교 커플이 있는데, 선생님이 여자친구인 여학생을 구박(?)하니, 남자친구인 남학생이 벌떡 일어나며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제 마누라한테 함부로 하지 마세요.”
“뭐? 마, 마누라?”
“그 여자 제 꺼니까 선생님 마음대로 건들지 마시라구요!”
[아잇씨! 무슨!!]
쿵!
씨익.
흑염룡의 반응을 보고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거, 성능이 확실하구먼?’
그것을 시작으로 몇 가지 더 보여줬다.
이번엔 예전에 방영했던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이번엔… 또 뭔데…….]
“재밌는 거야. 진짜로.”
일부러 재밌다고 세뇌를 하듯, 각인시켜야 한다.
그래야 반전이 더욱 큰 효과로 다가올 테니까.
드라마 속의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에게 말했다.
-타는 냄새 안 나요?
-……?
-내 마음이 지금 불타고 있잖아요.
[아이 씨!! 진짜 정도껏 해야지!! 네가 아까 말한 향 냄새랑 뭐가 달라 이게!!]
쿵!
그렇게 난 게이트가 5개가 될 때까지, 이런 영상이나 글귀들을 전부 보여줬다.
드디어 나와 흑염룡이 원하던 5개가 되었을 때다.
[그… 그만해……. 정말 정신 나갈 것 같아…….]
나는 그런 흑염룡의 반응이 재밌었지만, 흑염룡은 사경을 헤매다 온 것처럼 눈가가 퀭하게 변했다.
“수고했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새벽 3시가 가까이 됐다.
‘잠은 다 잤군…….’
뭐, 어차피 상관없나?
내일이면 회사는 이제 안녕이니까.
아니, 내일이 아니라 오늘.
그것도 몇 시간 뒤구나.
그렇게 게이트를 무려 5개나 연달아 생성했다는 뿌듯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잠들 수도 없었다.
이유는 내 집에 남아 있는 하나의 게이트 때문이었다.
“흑염룡……. 여기도 들어가면 안전하지 않겠지?”
[…장담 못 해.]
“흐음…….”
솔직히 조금 겁난다.
이미 두 차례나 연속으로 위험한 상황을 맞이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걸 계속 놔두기에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무엇보다 안 그래도 좁은 집에 게이트가 자리하고 있으니, 생활하기에도 불편해서다.
“에라, 모르겠다!”
난 그대로 게이트를 향해 성큼성큼 들어갔다.
[난… 진짜 모른다? 이번에도 변수 생기면 그거 내 탓 아니야!]
흑염룡도 이젠 자신이 없는지, 미리 이런 말로 보험도 다 들었다.
“뭐 어때. 위험하면 능력 사용해서 탈출하고. 그러면 레벨도 오르고, 좋지.”
내가 강행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고난을 한 번 겪고 난 뒤에 보상이 확실하니, 이젠 크게 두렵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믿을 구석이 생겼다는 사실에 자신감이 생긴 것도 크게 한몫했다.
그렇게 게이트로 입장하자, 던전이 나를 맞이했다.
이번 던전은 이지은과 함께 들어갔단 곳처럼, 평범한 숲으로 된 던전이었다.
순간적으로 설마 같은 던전이 걸린 건가, 하며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도. 슬라임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번엔 진짜 평범한 던전 같은데?]
흑염룡도 나와 똑같이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진입했을 때였다.
우거진 나무들에는 슬라임 대신, 징그러운 지네들이 가득한 게 내내 시선에 걸렸다.
보통 지네가 이런 숲에 사는 곤충은 아니지 않은가?
‘불길한데…….’
끝엔 또 뭐가 있을지 걱정하던 그 순간, 흑염룡이 흥에 겨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진짜 안심해도 돼! 여기에 나오는 건 저 지네 하나뿐이야!]
‘네가 안심이라고 말하면 난 더 불안해.’
이미 두 번이나 겪었는데 어떻게 철석 믿을까.
오히려 더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니야! 정말이야! 저 지네는 그냥 거대해지는 몬스터야! 물론!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된답니다!]
흑염룡의 말은 무시하고 최대한 신속하게 끝에 다다랐을 때였다.
절벽은 없고, 막다른 길인 암벽만 나왔다.
그리고 암벽에는 초월석이 박혀 있었다.
내가 그 초월석을 냉큼 뽑아버리자.
쿠구구궁-!
던전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오잉…? 진짜 평범한 곳이었나 보네…?”
[내가 뭐라고 했어! 안심해도 된다고 했잖아!]
걱정과 달리.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지극히 평범하고 위험 요소는 없는 던전이었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 법이라더니.
운이 좋게 드디어 평범한 던전이 걸렸다.
흑염룡이 아무리 정령계에서 급이 높다고 하더라도, 늘 위험 요소만 가득한 게이트를 만드는 건 확실히 아니었다.
그렇게 던전이 완전히 붕괴되기 전에 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로써 초월석 하나가 더 생긴 순간이다.
***
다음 날, 시간에 맞춰 길드로 출근했을 때였다.
“도원이 왔니? 빨리 왔네?”
과장님의 친절한 아침 인사.
난 고개를 꾸벅 숙이며 답했다.
“좋은 아침이네요, 과장님.”
어제 너무 늦게 잔 탓에 피곤하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 끝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은 홀가분했다.
난 자리에 앉자마자 서류 하나를 프린트했다.
바로 이 길드의 퇴직서 서식이다.
그렇게 뽑아 든 퇴직서를 자리에 가지고 와서 작성하던 그 순간.
난 한 가지가 궁금했다.
‘관두기 전에… 이건 꼭 확인해 보고 싶은데.’
곧바로 사내 인트라넷에 로그인하고.
인사기록부를 뒤졌다.
내가 확인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 길드의 주인, 강만식의 인사기록부다.
그도 어쨌든 헌터.
따라서 아무리 길드장이라 하더라도 다른 헌터들과 똑같이 능력과 각성 시기를 기록한 인사기록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직급 : 길드장]
[이름 : 강만식]
‘오, 있다.’
더블 클릭하며 문서를 열려고 했지만.
[접근 권한 없음]
이라는 차단 메시지와 함께 접근이 거부되었다.
역시, 길드장이다 보니 아무나 열람할 순 없는 듯했다.
‘아쉽네. 능력이 뭔지 알고 싶었는데.’
후에 나와 격돌하게 될 사람이다.
그래서 조금 더 세밀하게 알아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현재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박우민…….’
분명히 이지은도 그가 헌터라고 했다.
헌터인데 일반인처럼 행동하는 강만식의 최측근.
게다가 난 SF 길드 직원이기에 협력 관계인 아테나 길드 소속 헌터들과 직원들의 인사기록부를 볼 수 있는 상태다.
‘박우민이라도 확인해 보자.’
[직급 : 비서실장]
[이름 : 박우민]
따닥.
이번에도 금방 찾아내서 더블 클릭을 했지만.
[접근 권한 없음]
강만식과 똑같은 오류 메시지가 나왔다.
‘확실히… 구린 게 많은가 보네.’
물론 표면적이기는 하지만 비서에 지나지 않는 사람까지 보안으로 꼭꼭 숨겨둘 이유가 뭐가 있을까?
[능력이 궁금해서 뒤지는 거야?]
‘응.’
[그거 내가 해결해줄 수 있는데?]
‘으…응?!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