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작전명, 마니토 (4)
결국, 우리가 자리를 옮긴 곳은 내 집이다.
아무래도 이지은은 늘 감시를 받고 있으니, 또 어디선가 이지은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따라서 공공장소보단, 밀폐된 장소를 선호하였기에.
어쩔 수 없이 내 집으로 오게 된 것이다.
이지은과 난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원래 늘 나 혼자 사용하던 식탁이어서 앞에 누군가가 있다는 게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썩 나쁜 기분은 또 아니었다.
“제가 시간이 이틀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이지은은 무슨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처럼, 우중충한 느낌의 얘기를 꺼냈다.
“이틀이요?”
“네. 그래서 최대한 이틀 안에 모든 걸 정해 놓고 가야 해요.”
“이틀 뒤엔 뭘 하시는데요?”
그 뒤로 이지은은 설명했다.
오늘 아침에 협회로 불려갔고, 정부 지침이 하달되었다는 것.
그래서 협회장 지시로 강만식과 붙어 있으면서 혹시 던전이 있진 않은지, 전국 일주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쓸데없는 짓이네. 던전은 네가 만든 것밖에 없어. 우리가 던전의 주인인데. 그걸 모를까.]
이지은의 얘기를 듣고 흑염룡이 말했다.
난 그것을 곧장 전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의미 없는 짓이란 거.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러니 별수 없죠.”
결국, 일단 시킨 거니까 하긴 해야 한다란 뜻이다.
전문 용어로 까라면 깐다.
헌터나 나와 같은 일반인 직원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직원은 길드에서 시키면 해야 하고, 헌터는 협회가 시키면 해야 하니까.
“그런데… 그럼 찾을 때까지 못 돌아오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더더욱 도원 씨가 저한테 필요하단 뜻이죠.”
“아까 말한, 묵혀두라는 의미가……?”
“네. 제가 적당히 시간 끌고 있을 테니까, 그때 초월석을 풀어 버리죠.”
시간이 끌리면 끌릴수록.
사회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혼란만 더욱 가중되고.
그럴수록 이지은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더욱 심해진다.
그것이 최고조 직전에 다다랐을 때.
초월석을 풀어, 사태를 무마하고 협회장 최현민의 신뢰를 받는 새로운 루키로 떠오르자는 말이었다.
나쁜 계획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걱정은 있었다.
“제가 갑자기 초월석 들고 가면, 협회가 넙죽 믿어줄까요?”
“일단은 믿겠죠. 시국이 시국이니까. 그러나 믿음만 얻는 건 아녜요. 오히려 도원 씨를 지배하려고 하겠죠. 여기에서 중요한 건 지배당하면 안 돼요. 도원 씨가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란 걸 보여줘야 하니까요.”
“어떻게요?”
“강만식이 단순히 협회장 비위를 잘 맞춰서 신뢰를 사고, 협회장 직속 관리부장이 된 것 같아요?”
꽤 심오한 얘기였다.
강만식에게도 확실히 뭔가가 있는 듯했다.
“강만식은 전투력도 국내에서 수준급인 헌터에요. 그래서 협회장에게 지배당하는 상하관계가 아닌, 서로 협력하는 상호관계가 된 거죠. 도원 씨한테도 그런 무력이 있어야 해요.”
“강만식에 버금가는 전투력이라…….”
난 강만식의 능력이 뭔지 모른다.
이것은 내가 일개 일반인 직원이라서 모르는 게 아니다.
헌터 중에서도 아마 강만식의 능력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 거다.
도대체 어떤 능력을 가졌기에 그런 영향력 지대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내심 궁금했다.
혹시 이지은은 알고 있을까?
“강만식 길드장의 능력이 뭔지 알아요?”
“…아뇨, 몰라요.”
그렇게 붙어 다니던 사람도 모를 정도로 강만식은 철저하게 자신의 능력을 숨긴 듯하다.
“그런데 이건 확신할 수 있어요. 아까 보니까, 도원 씨한테도 그런 무력은 충분히 있는 것 같던데요? 강만식에게 버금가는.”
이지은이 말했다.
난 무엇을 보고 확신에 차서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드래곤한테 살아 돌아왔잖아요? 게다가 제게 보여준 능력은 은신과 염력. 지금은 숙련이 제대로 안 된 거 같던데.”
정말 잠깐 보여줬는데도, 이지은은 단번에 파악했다.
역시 감지 능력자라 그런지, 통찰력도 제법 있는 듯하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제가 강만식 데리고 시간 끌고 있을 때, 도원 씨는 지금 다니는 SF 길드 관두고, 그 능력의 숙련도를 쌓는 것. 어때요? 그럼 후에 초월석을 풀었을 때도. 결코 협회에게 지배당하지 않을 것 같은데. 특히 염력이라는 그 능력. 국내에선 도원 씨 말고 능력자 없는 걸로 아는데?”
그러고 보니…….
낮에 길드에서 소속 헌터들 각성 시기 파악을 위해 인사기록부를 뒤졌을 때.
슬쩍슬쩍 그들이 가진 능력도 봤다.
확실히 내가 가진 염력처럼 마법과 같은 능력은 없었다.
전부 신체를 강화하는 능력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이지은처럼 감지 혹은 순간 이동과 같은 서포팅 계열 능력들이었다.
“염력이라는 거. 결국엔 보이지 않는 힘을 이용하여 물체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거잖아요.”
“그렇죠?”
“물체를 조종할 수 있으면, 사람도 영향받을 거 아니에요. 아예 움직일 수도 없게 만든다든가.”
이지은의 말을 듣고 흑염룡을 쳐다봤다.
정말 이지은이 말한 것처럼, 그런 것까지 가능하냐는 질문을 담은 시선이다.
[음……. 가능은 해. 문제는 그 경기까지 도달하려면 레벨이 몇이나 될지 나도 모른다는 거지.]
확실히 그런 게 가능하다면…….
내가 상대할 헌터가 전투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결국엔 몸을 움직일 수 없다면, 그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게 된다.
[덧붙여서 네가 가진 은신. 그것도 레벨이 오르기만 하면 네가 지정한 물체를 보이지 않게 숨기는 것도 돼.]
“정말?”
뜻밖의 수확을 얻은 느낌에.
흑염룡에게 물었다.
내 시선이 자연스레 얼굴 옆에 있는 흑염룡을 향하니, 이지은은 눈치껏 입을 닫았다.
[응. 원래 우리가 던전 만들어 놓고 숨긴 게 바로 그 은신 능력을 이용한 거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효과가 점점 떨어져서 발각된 거지.]
“…확실히 그거라면.”
여러모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구석은 많다.
“얘기 다 끝났어요?”
“아, 네. 그런데 방금 말한 것 중에 SF 길드 관두라는 거. 그건 조금 위험하지 않아요?”
“왜요?”
“제가 갑자기 관두면 강만식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그렇죠.”
도둑이 제 발 저린 것과 같은 거다.
게다가 강만식은 생각보다 철두철미한 사람이니.
내가 관두고 나면 뭔가 이상함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렇진 않을 거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해요?”
“낮에 엘리베이터에서 저랑 강만식 같이 있는 거 봤죠?”
“아, 네.”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의 일이었다.
“그때 강만식이 도원 씨한테 친절하게 말했잖아요. 그냥 같이 타고 올라가자고.”
“그랬죠.”
“제가 도원 씨 내리고 나서 물어봤거든요. 친절하게 말하길래 아는 직원이라도 되냐고.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아세요?”
고개를 저었을 때다.
“도원 씨 같은 직원이 있는 줄도 몰랐다는데요? 강만식은 그런 사람이에요. 관심도 없어요, 어차피. 표면적으로만 친절한 척해서 이미지 메이킹한 거거든요. 원래 뒤가 구린 사람이 겉을 치장하기 마련이잖아요.”
“…….”
나에게 했던 행동도 마음에서 나온 게 아닌, 그저 눈속임에 불과했다는 말을 듣고 나니.
조금 허탈하면서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그러니 관두는 것도 의심 살 행동은 아닐 거예요. 그리고… 관두는 게 좋죠. 아무래도. 그 시간에 능력을 올리는 게 우선이니까.”
내가 처음 계획했던 일이긴 하지만, 시기가 조금 앞당겨진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것 말고 다른 현실적인 문제가 존재했다.
“아무리 그래도… 길드는 다니면서 해야 할 거 같은데.”
“아니, 도대체 왜요?”
“거… 아시다시피. 전 일반 회사원 신분이랑 똑같다니까요? 모아둔 돈도 얼마 없어서 백수 상태로 지낼 수도 없고. 더군다나 이제 곧 인플레이션 때문에 생활비는 더 빠듯할 텐데.”
이게 문제다.
이지은이야 국내에서 이름 있는 길드의 길드장이니.
생활고 같은 건 잘 모를 거다.
그러나 헌터가 아닌 삶을 살던 난 상황이 다르다.
“아, 뭐야. 별문제도 아니네.”
그런데 이지은은 정말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너무나 쉽게 받아들였다.
그녀의 돌발 행동은 이어졌다.
지갑을 대뜸 꺼내더니 카드 한 장을 식탁 위에 올려놨다.
‘블랙카드?’
카드사에서 상위 1% 고객들한테만 준다는, 한도가 없는 그 블랙카드.
나는 살면서 크리스마스카드 한 장도 받아본 적이 없는데.
구경하기도 힘들다는 블랙카드가 넙죽 식탁에 등장하셨다.
“이거 써요.”
“…아니, 아무리 한배를 탔다지만. 이건 너무 과한 거 아니에요?”
“초월석 값이라고 치죠. 어차피 저한테 팔기로 했잖아요.”
“…….”
솔직히 조금 고민했다.
내 머리는 지금 저 카드를 넙죽 집으라고 지시하는 중인데, 양심이 그래도 이건 조금 아니지 않냐며 서로 충돌 중이다.
천사와 악마의 속삭임이 따로 없다.
“받아요. 진짜 괜찮으니까. 어차피 그거 그렇게 귀한 카드도 아니에요.”
그러면서 이지은은 지갑을 펼쳐 보였다.
방금 내게 준 것과 똑같은 블랙카드가 몇 장 더 있었다.
카드 외형만 같을 뿐, 카드사만 다른 카드다.
“뭔… 블랙카드가 그렇게 많아요?”
“1티어급 길드장 되면, 이런 거 그냥 막 주더라고요. 카드사에서.”
국내 길드를 티어로도 부르는데, 아테나도 1티어에 당당히 이름을 새긴 곳이다.
안 그래도 헌터 자체가 고위급 공무원이나 마찬가지인데, 1티어급의 길드장이라면.
일종의 호객행위로 자기들 회사의 카드 좀 써달라고 그냥 발급해주는 그런 문화라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부담 안 가져도 된다는 뜻.”
난 결국, 머리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카드를 덥석 집었다.
그와 동시에 이지은이 휴대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눌렀다.
우우웅-!
내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확인하니, 이지은이 메시지 몇 개를 보냈다.
우리가 함께 갔던 그 상가 건물의 주소와 함께.
모르는 번호 두 개가 있었다.
“신보미… 정다혜?”
이지은이 보내준 번호 주인의 이름들이었다.
“앞으로 그 친구들이랑 연락해요. 말했다시피, 전 감시 때문에 직접 연락하는 게 어려우니까. 그 친구들이랑 얘기하면 돼요. 특히 신보미. 그 친구랑 저랑은 연결되어 있거든요.”
“연결…되어 있다는 게 무슨 뜻이죠?”
“정신으로 대화해요. 신기하죠?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을 ‘커넥터’라고 부르거든요.”
“…….”
나도 모르게 흑염룡을 쳐다봤다.
내게는 전혀 신기하지 않은 능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계속했던 거네. 정신으로 대화하는 거. 하긴, 헌터들이 사용하는 능력이 결국 우리가 사용했던 능력이니까 나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헌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그래도 이지은에게 내색하진 않았다.
확실히, 나와 흑염룡이 한 것처럼 정신으로 대화한다면.
감시가 아무리 심해도 들키지 않을 것.
“그럼 정할 건 다 정했나요?”
이지은에게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아, 그리고 명심하셔야 할 건. 제가 먼저 연락하기 전까지 저한테 직접적으로 연락하지 마세요. 혹시 모르니까요.”
“걱정 마세요.”
정해질 것이 전부 정해졌다면, 이제 남은 일은…….
은둔 고수가 되는 거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