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작전명, 마니토 (3)
[은신 Lv 3]
[염력 Lv 2]
흑염룡이 보여줬다.
은신은 두 단계나 올랐고, 염력도 한 단계가 올랐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보상이라고 생각하자!]
쓸데없이 해맑다.
누구는 정말 오금 저리는 사경을 헤매다 왔는데, 경각심 따위는 보이지 않으니,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어 흑염룡의 이마를 주먹으로 툭 쳤다.
[아! 아파!]
“야……. 드래곤이 내 앞길 막는 그 순간. 돌아가신 우리 친할아버지 얼굴이 아른거렸어. 이게 어디서 이걸로 퉁 치려고. 너 자객 아니냐? 왜 네가 여는 거마다 변수 덩어리인데!!”
그렇게 안전하다고 해 놓고, 막상 두 번이나 연달아 목숨 내놓는 도주 행각을 펼쳤으니, 나도 게이트를 보면 경기가 나올 지경이다.
[그건…… 나도 시오스 세상에선 꽤 급이 높은 정령이니까 그렇지!]
흑염룡이 변명하듯, 하소연했다.
“급이 높아?”
[응! 정령은 나만 있는 게 아니거든! 나처럼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정령이 또 어딘가에 있단 말씀! 그런데 그중에서도 난 나름 상위권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여는 게이트도 저급이 잘 안 걸리는 거라고.]
“…….”
이 중요한걸.
빨리도 말한다.
“내가 그런 건 좀 미리미리 말하라고 했지!”
아직도 다리가 덜덜 떨리지만, 흑염룡을 향한 분노가 더욱 컸기에.
난 벌떡 일어나 모기를 잡듯, 흑염룡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흑염룡은 이리저리 빠르게 날아다니는 파리처럼 내 손을 피했다.
“얄미운 기지배!!”
쿵!
“어머.”
한창 흑염룡과 실랑이를 하던 중, 던전이 완전히 붕괴된 신호로 게이트가 무너져 내렸다.
그 직후 게이트라는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신기하네요……? 게이트는 보통 흔적을 남기 마련인데. 도원 씨가 만든 건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지네. 존재 자체가 원래 없었던 것처럼…….”
그녀는 내가 처음 게이트가 사라진 것을 보고 느낀 것을 지금 그대로 느끼는 중이다.
“흑염룡이 만든 게이트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정식 던전이 아니라, 던전으로 향하는 길만 뚫은 개념이라서요.”
그것을 시작으로, 본래 던전은 방이 최소 5개 이상이지만.
흑염룡이 만든 게이트로 통한 던전은 방이 1개만 있다는 이유까지 설명했을 때였다.
“그럼…… 던전이 이렇게 붕괴되면 안에 있던 몬스터도 사라지는 건가요?”
보통 헌터들은 안에 있는 몬스터를 무력으로 제압해 소멸시키지만, 우린 몬스터를 피해서 탈출했을 뿐이다.
이지은은 이런 경우엔 안에 있던 몬스터들이 어떻게 되는지 내심 궁금한 모양이다.
[사라지지 않아. 사라진 건 던전이라는 방만 사라진 거니까. 안에 있던 몬스터는 다른 던전으로 옮겨갔을 거야.]
흑염룡이 답했다.
이지은에겐 들리지 않으니, 내가 그대로 전달하는 통역사 노릇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다네요.”
“아하…… 그런데 드래곤이라…… 저도 헌터 생활을 하면서 던전에서 드래곤을 마주쳤다고 한 헌터는 없었는데. 그만큼 독보적으로 강한 몬스터겠죠?”
[당연하지! 우리의 수호신인데!]
“네, 그렇대요.”
난 이지은에게 방금 회수한 초월석을 건넸다.
이지은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목숨 걸고 가지고 나온 건데, 괜히 저 때문에 죽을 뻔한 거잖아요. 받기가 조금 그런데.”
“약속이잖아요. 괜찮아요. 어차피 한배 탄 사이인데, 목숨값도 맡길 수 있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되죠.”
“…….”
이지은은 갈등이 많이 되는 눈초리였다.
그러나 어떠한 확신이 들었는지, 초월석을 집어 들었다.
“혹시, 안 피곤하시면 같이 나갈래요?”
그런데 이어지는 대사가 조금은 내 입장에서 뜬금없었다.
“나가자뇨?”
“약속했잖아요. 초월석 받으면 제가 가진 건물도 드린다고. 그 건물 보여드릴게요.”
목숨 걸고 가지고 나온 초월석을 준 탓일까.
이지은의 진심이 묻어났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은.
‘나도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다.’라고 안심시키는 듯했다.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덧 벌써 자정에 가까워진 시간이지만, 아직까지 피곤함이 느껴지진 않는다.
그래도 늦은 시간은 맞으니, 내일의 출근 문제도 있었다.
“오래 걸리나요?”
“잠시만요. 여기에서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해 볼게요.”
그녀는 자신의 휴대폰 지도를 열어 거리를 파악한 뒤에 답했다.
“차로 30분 거리네요.”
30분 거리면 그래도 꽤 거리가 있다는 뜻.
왕복 1시간이긴 하지만…….
어차피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또 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 이지은이 있을 때 위치를 미리 파악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답했다.
“그러죠.”
잠 몇 시간 안 잔다고 죽진 않으니까.
조금 피곤할 뿐이지, 못 버틸 정도는 아니다.
“갑시다.”
***
“우와… 차 되게… 좋네요…….”
이지은은 자신의 차를 우리 집 근처에 주차해 놨었다.
심지어 반짝반짝 빛이 나는 외제차.
정치나 재벌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차를, 내가 조수석에 타고 가고 있으니 감회가 참 남달랐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차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보통 이렇게 늦은 시간엔 택시를 타기 마련이다.
그런데 부른 택시의 차종이 평범한 차종이 아닌, 조금 값이 나가는 차종이면.
괜히 내가 그 차의 주인이 된 것만 같은 그런 기분.
지금 내가 느끼는 게 딱 그렇다.
“전 이 차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런데 이지은은 떨떠름하게 답했다.
“아니…… 남들은 평생 모아도 살까 말까 한 차를 왜요?”
“이것도 강만식 그 자식이 억지로 준 거니까요. 감시 중 하나죠. 이 차를 처음 받았을 때, 툭 하면 차는 어떠냐, 문제는 없냐. 이러면서 귀찮게도 굴었으니까요.”
“…….”
강만식과 이지은의 관계를 아는 나이다 보니, 그 얘기를 듣고서도 부러운 마음이 사라졌다.
강만식에게 억지로 비싼 것들을 받아 버렸기에.
그 구실로 간섭이 더욱 심해지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
괜한 얘기를 꺼낸 느낌이었다.
그렇게 침묵을 유지하며, 우린 유유히 달렸다.
확실히 자정에 가까운 시간인데다가 서울 외곽이다 보니, 도로는 한산했다.
“음, 이 정도면 20분도 안 걸리겠네요.”
도로 상황을 진단한 이지은이 말했다.
정말 이지은의 말대로 20분이 채 되지 않아서 그녀는 고장 난 가로등이 즐비한 어느 골목 앞에 차를 세웠다.
가로등이 제대로 들어오진 않으면서, 낡은 빌라들이 나열되어 있으니.
꼭 던전을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심지어 불이 켜진 집도 별로 없었다.
자정이면 그래도 TV를 보거나 하면서 집 창문에선 불빛이 새어 나오기 마련인데.
이 동네는 그런 게 없다.
좀비 사태가 출몰한 곳처럼, 폐허가 된 도시의 느낌이었다.
“내려요.”
이지은이 먼저 내리고, 난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처음 오는 동네다 보니 모든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그녀가 앞에 선 곳은, 그녀가 말한 대로 5층짜리 상가 건물이다.
“평수는 층마다 조금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평균적으로 40평. 층마다 호실 2개, 5층이니까 총 10개. 즉, 가용 평수는 400평. 이 정도 크기면 그래도 게이트는 충분히 수용할 수 있지 않겠어요?”
[오호! 진짜 넓다!]
흑염룡은 기뻐하는 목소리였다.
확실히 내가 사는 집과 비교하면 몇 배는 되니까, 넓은 건 당연한 사실이다.
난 건물을 쭉 살폈다.
처음엔 상가라고 해서 번화가에나 있는 그런 상가를 말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와서 보니 상가라고 하기엔 너무나 낡은 건물이다.
천장에 있는 굵은 거미줄 하며, 건물 가득히 채워진 퀴퀴한 먼지 냄새까지.
내가 생각하던 건물과는 거리가 조금 멀었다.
‘이왕이면 생활도 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았는데…….’
솔직히 그걸 기대하긴 했다.
게이트를 수용하면서, 그 공간에서 내가 사는 것.
그러나 이 건물은 크기는 충분하지만, 결정적으로 생활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러면 관리가 힘든데…….’
“마음에 안 드는 눈치네요?”
이지은은 내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건물이 조금 낡았네요.”
“네. 일부러 낡은 건물을 선택했으니까요.”
“……왜요?”
아무래도 그녀가 이 건물을 가지게 된 계기도 뭔가 사연이 있는 듯했다.
“강만식에게 처음 끌려다니며, 던전을 파악하고. 그때마다 수고비를 받았을 때, 행복했어요.”
그녀가 강만식에게 보수를 떼인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다.
지금 이지은이 말하고 있는 시점은 그녀가 17살인, 헌터 특목고 졸업 직후를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엄마는 음식을 참 잘했거든요. 그래서 이 돈 차곡차곡 모아서 1층엔 작은 분식집이나 하나 열고, 그 위에서 엄마 아빠랑 같이 살 생각으로 샀었죠. 평범하게 오순도순 살고 싶어서……. 낡은 건물은 싸고, 평범하니까요.”
그런데 말끝이 떨렸다.
‘설마…….’
동시에 나도 불길함이 느껴졌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생각한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내 착각이길 바랬지만.
“25살 때 이 건물을 샀어요. 강만식이 막상 날 이용해 먹은 걸 알고 나서죠. 그래도 난 상관없었어요. 빨리 헌터 은퇴해 버리고 엄마 아빠랑 평범하게 살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엄마 아빠랑 동행해서 계약했죠.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지. 돌아오는 길에 그만 교통사고가 나 버렸지 뭐예요.”
“…….”
난 설마 강만식이 그런 줄 알았는데.
그건 아직 억측이었다. 강만식이 아무리 구린 놈이라도 그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은 이제 의미가 없는 곳이 되었죠. 계속 가지고 있으면 가슴만 아프니, 도원 씨한테 준다고 한 거고요.”
“……그래도 추억을 묻은 곳이라, 이건 받기 좀 그런데.”
사람이라면 양심이란 게 있지 않은가.
이 건물에 얽힌 사연을 듣게 되니, 받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지은은 내가 그녀에게 줬던 초월석을 꺼내 보였다.
“나한테 목숨값도 줬으면서? 그냥 받아요. 받는 게 나 도와주는 거니까.”
그러면서 전자식 열쇠 하나를 건넸다.
그건 그녀가 이 건물의 현관문을 열 때 썼던 전자식 도어락의 마스터키였다.
건물만 낡았을 뿐, 정말 부모님과 같이 살 생각으로 당장 필요한 것들만 당시의 최신식으로 바꾸어 둔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껏 쓰세요. 흑염룡 씨와 게이트를 여기저기 펼칠 용도로는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저게 제일 걸리네요.”
1층은 통유리로 된 곳이다.
따라서 여기에 게이트를 펼치면 남들에게 훤히 보일 것.
고로, 1층은 사용할 수 없는 곳이다.
“그건 걱정하지 마요. 리모델링은 하고 싶으면 하세요. 물론, 그 비용도 제가 부담하죠.”
그런데 이지은은 생각지도 못한 조건을 또 내걸었다.
“……왜요? 그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뭔데요.”
오히려 호의가 너무 계속되다 보니 이젠 나도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지경이다.
“말했잖아요? 나중에 나랑 도원 씨가 돈독한 사이인 걸 협회장이 알아야 한다고. 그러니까 정말 돈독해지려고 하는 건데. 제 욕심인 걸까요?”
거, 참…….
이 처자.
말 한번 예쁘게 하시네.
“그리고 아직 할 얘기가 더 남았는데. 자리 옮길까요?”
심지어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