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작전명, 마니토 (2)
“……너 또, 불안하게 왜 그러는데.”
이번엔 또 무슨 변수가 있단 말인가.
등골이 오싹했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대요?”
내 떨리는 목소리를 파악한 이지은도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나 기억나…….]
“뭔데! 답답하게 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우리가 맨 처음 크루즈들 함정으로 설계했던 거야…….]
“함정……?”
[응…… 일부러 약한 슬라임을 다수 배치하고, 방심하게 만들어 키스톤이 있는 끝으로 유인…… 그리고 거기에 진짜가 있는 거…….]
“그 진짜의 정체가 뭔데?”
[우리가 수호신으로 모시는 존재…… 드……]
“드?”
그 순간이었다.
후우우우웅-!
“끄악!”
한산했던 숲에 갑자기 태풍이라도 불어닥친 듯이, 강풍이 불었다.
그러자 숲에 있던 흙과 작은 돌멩이가 이리저리 튀었고, 모래가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눈도 따가웠다.
나와 이지은은 팔로 눈을 가리며 강풍에 휘말리지 않게 버텼다.
난 흑염룡에게 소리쳤다.
“그러니까 ‘드’ 뭐냐고!!”
크르르르륵!!
그런데 들려오는 건 흑염룡의 목소리 대신.
기괴하고 소름이 끼치는 어느 동물의 울음소리다.
순간, 온몸에 전류가 흐르며 소름이 끼쳤다.
‘설마……?’
[……래곤.]
억지로 눈을 뜨며 하늘을 확인했다.
저 멀리 보이는 검은 물체 하나.
분명히 거리가 상당히 떨어진 상태인데도,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우리가 수호신으로 모시는… 드래곤… 나보다 상위 생명체야. 내 명령 같은 게 안 통해……. 그러니까 드래곤이 도착하기 전에 나가야 해! 뛰어!]
“도대체 무슨 일이래요! 방금 그 소리는 또 뭐고요!”
난 흑염룡 덕분에 상황을 전달받았지만, 흑염룡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지은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또 설명할 여유가 어디 있겠나.
이지은의 손목을 붙잡고 뛰려고 할 때였다.
“초월석……!”
[지금 그게 중요해?! 진짜 위험하다고!]
“그럼 어떡해, 이미 우리가 들어온 이상 저거 안 가져가면 큰일이잖아!”
[…….]
흑염룡은 말했다.
던전을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안에 있는 몬스터는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우린 이미 들어와 버리지 않았던가?
따라서 드래곤이 반응해 버렸고, 초월석을 회수하지 않으면 저 드래곤은 게이트를 타고 넘어와 바깥으로 나가 버린다.
겉보기에도 내가 사는 오피스텔만큼의 크기를 가진 드래곤.
그런 드래곤이 도심 한복판에 갑자기 나와 버리면?
나와 이지은이 세운 계획은 전부 물거품이 되고, 이대로 내 정체도 의도하지 않은 대로 까발려지게 된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방법이 없잖아! 절벽 너머에 있는데 어떻게 가져와……!]
“…있잖아! 가지고 올 방법!”
[무슨 수…… 설마, 염력을 사용하려고?]
그것 말고는 없다.
하지만 역시 성공이 보장된 상황은 아니었다.
[너 고작 레벨 1이잖아! 종지 하나도 제대로 못 드는 놈이 초월석은 어떻게 들어서 가져 와!]
“그럼 어떡해! 뭐라도 해야지! 이대로 나가면 전부 끝인데!”
어차피 선택권 따위는 없었다.
하늘을 다시 살폈다.
거대한 드래곤의 실루엣이 조금 더 거대해졌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흑염룡! 지은 씨 데리고 먼저 나가!”
난 흑염룡의 등을 떠밀었다.
[…너랑 나랑 일정 반경 이상 못 떨어진다고!]
“바로 따라붙을 테니까 걱정 말고, 일단 빨리 튀기나 해!”
[…아 몰라! 믿는다!]
흑염룡도 뾰족한 수가 없어, 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
“내… 몸이 왜 저절로……?”
흑염룡은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이지은의 팔을 잡아당기며 억지로 출구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지은은 영문도 모른 채로 그저 끌려가기만 했다.
“도원 씨! 이게 뭐예요!”
흑염룡도 힘이 제법 센 녀석이었다. 그 이지은이 반항도 못 하고 그대로 끌려가는 중이니까.
그러나 역시 설명할 여유는 없다.
“나중에 말해줄 테니까 일단 나가요!”
그렇게 흑염룡과 이지은은 먼저 뛰기 시작했고.
홀로 남은 나는 절벽 건너편에 있는 초월석을 바라봤다.
‘되라… 되라……!’
간절함을 담은 나만의 마법의 주문.
초월석을 똑바로 보면서 두 손을 모으며, 내가 가진 능력.
염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초월석이 살짝 들썩였다.
‘제발……! 제발……!’
펄럭-! 펄럭-!
이제 드래곤이 제법 가까워졌는지, 날갯짓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한다.
무섭고 조급한 마음이 들었지만, 마음을 애써 다잡았다.
‘조급하면 될 것도 안 된다!’
이 상황에서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런 교훈을 얻을 계기는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대표적으로 학창 시절.
시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급하게 OMR 카드를 체크하다가 답을 밀려 쓴 경험.
다들 한 번씩은 있을 거다.
꼭 밀려 쓰지 않아도 급하게 하다 보면 실수를 하기 마련.
나는 정답을 3번에 칠한 줄 알았는데, 막상 4번이나 2번에다가 실수한 적도 더러 있지 않은가?
최대한 그 교훈을 새기며.
집중했다.
이젠 ‘무섭다’가 아닌.
‘할 수 있어……. 충분히!’
그 마음가짐으로.
들썩이던 초월석은 드디어 공중에 떴다.
‘그래, 크기로 치면 종지랑 똑같아. 집중만 하면 돼. 무거운 거 아니야. 드래곤 따위 없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귀를 닫았다.
난 이제 청각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다.
드래곤의 날갯짓 소리는 잊자.
그저 눈앞에 초월석만 집중한다.
신기하게도 정말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주변의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초월석을 내가 있는 곳으로 끌고 왔다.
‘다 왔어……!’
어느덧 절벽 절반을 넘었다.
이제 정말 조금만 더 하면 된다.
하지만 그래도 조급함이란 게 내 내면에 조금은 남아 있었을까, 난 결국 하늘을 보고 말았다.
드래곤은 이제 눈동자까지 보이는 거리까지 도달했다.
‘잊어……! 난 지금 헛것을 본 거야. 드래곤 같은 거 없어!’
황급히 시선을 떼고, 다시 초월석에 집중했다.
잠깐 드래곤을 확인한 바람에 초월석은 절벽 아래로 조금 내려가 있었지만, 그래도 건질 수 있는 거리다.
그렇게 침착함을 유지하면서도 최대한 빨리.
염력을 지속할 때였다.
‘됐다!’
절벽이 넘어 온 그 순간, 난 초월석을 향해 달려서 손으로 낚아챘다.
텁!
그리고 그 순간.
쿠구구궁-!
초월석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면서 던전 붕괴가 시작했다.
“얼른 나가…….”
콰과과광!
황급히 몸을 돌린 그 순간.
드래곤은 내 앞길을 막았다.
얼마나 낙하하는 힘이 강한지, 대지가 전부 아수라장이 될 정도다.
크르르륵-!
무시무시한 이빨과 발톱으로 분명하게 나를 노려보는 중이다.
‘……망했다.’
초월석은 손에 넣었지만, 드래곤의 표적이 되는 건 막지 못했다.
어떡하지?
어떡해야 탈출할 수 있지?
내가 가진 거라곤 은신과 염력밖에 없는데…….
‘아, 은신……!’
난 일단 몸을 숨겼다.
이게 드래곤에게 통할지는 모르지만.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
생존 본능에서 나오는 내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크르륵…….
그러자 드래곤은 고개를 땅과 가까이 대더니, 코를 킁킁거렸다.
‘냄새를 맡아? 진짜 내가 눈에…… 안 보이는 건가? 시오스의 수호신 드래곤이라고 해서 은신이 안 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이것만으로도 호신호다.
난 천천히 은신에 집중하며 드래곤의 옆을 지나가려고 했을 때다.
크아아아아악-!
화르륵-!
드래곤의 거대한 주둥이에서 열기가 훤히 느껴지는 화염이 생성되었다.
***
콰앙-!
저 멀리서 들리는 폭음.
이지은은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세상에…….”
평화로운 초록빛으로 가득하던 이 숲의 던전이.
저 끝에선 화염 폭발이 일어나며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쾅!
콰아앙-!
잿빛은 끝나지 않고, 순차적으로 이어졌다.
먼 곳에서 출구 쪽으로 점점 더 가까워지는 중이다.
“저기……! 잠깐만! 흑염룡이라고 했죠? 우리 둘이 이렇게 가도 되는 거예요?! 도원 씨는 어떡하고요!”
이지은은 흑염룡에게 말했다.
흑염룡의 말이 들리진 않지만, 윤도원이 걱정스러워 발을 멈췄다.
[$#%@!!]
그리고 그녀의 귀에는 분명하게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정확히 말하면 목소리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소리다.
마치, 이 소리는.
물속에서 말을 하면 그저 웅얼거리는 진동으로 들리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흑염룡은 더욱더 이지은을 힘으로 끌었다.
[내가 안 튕겨 나간 거 보니까 윤도원은 지금 착실하게 따라오고 있는 중이라고!! 그러니까 빨리 가자고!]
그것이 흑염룡이 말한 내용이었지만, 아쉽게도 이지은에겐 웅얼거리는 진동으로만 들렸다.
“어떡해…….”
이지은은 좌절감에 빠졌다.
모처럼 강만식에게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의인이자, 동갑내기 비밀 친구를 만난 날에.
이렇게 희망을 잃어버리게 되는 건가?
온통 그 생각만 가득했다.
“내가… 초월석 달라고 안 했으면… 됐던 거잖아…….”
자신의 제안을 땅을 치고 후회했다.
분명 윤도원은 저 폭발 속에서 멀쩡할 리가 없어 보였다.
흑염룡이 말한 내용도 듣지 못하는 이지은은 결국, 무릎을 꿇으며 상심하던 그때였다.
“뭐 하고 있어요? 빨리 가!”
그런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윤도원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뛰어……!”
“설마……? 은신 중인 거예요?”
“네……! 빨리요. 무서워 죽겠으니까!”
그렇게 둘이 부리나케 뛰면서 출구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을 때였다.
“학교 다닐 때 멀리뛰기 기록 잘 나왔어요?”
윤도원이 물었다.
“그건 갑자기 왜……?”
“시간 조금이라도 아껴야 하니까 게이트 밖으로 뛰쳐나간다는 생각으로!”
그러면서 윤도원은 은신을 풀었다.
이지은은 슬쩍 뒤를 확인하니 어느덧 잿빛의 폭발은 자신들과 상당히 가까운 거리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윤도원의 말대로.
출구로 몸을 던지지 않으면 폭발에 휘말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펄럭-!
그와 동시에 뛰고 있는 길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니.
어느덧 드래곤이 날아서 자신들의 머리 위까지 온 것이다.
크아아아악-!
드래곤은 새로운 브레스를 뿜어내기 직전이었다.
“뛰어어어-!! 흑염룡! 부탁해!!”
윤도원이 그렇게 말하며 몸을 던졌다.
아무리 족히 봐도 5m는 되어 보인다.
이렇게 긴 거리를 멀리뛰기로 도달하겠다니?
미친 소리로 보였다.
5m면 올림픽 멀리뛰기 종목 첫 여자 세계 신기록과 맞먹는 거리다.
그런데 윤도원이 튀어 오른 그 순간이었다.
대포에서 발사되는 포탄처럼. 그의 몸이 공중에서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보통 멀리 뛰기를 하면 포물선을 그리기 마련인데, 비정상적인 현상이었다.
“빨리 뛰어요! 흑염룡이 도와줄 거니까!”
윤도원이 친 소리에.
‘에라……! 모르겠다!’
이지은도 눈을 질끈 감고 뛰었을 때다.
퍼억-!
“끄윽!”
등을 누군가가 팔꿈치로 찍은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이지은의 몸도 윤도원처럼.
발사되는 탄환처럼 포물선이 아닌 직선으로 날아갔다.
철퍼덕!
그렇게 윤도원과 이지은은 출구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윤도원은 이지은을 안으며 출구로 뛰어들었다.
***
“와아……. 진짜 흑염룡 죽기 직전까지 팬 다음에 5대 더 때리고 싶다.”
[그래도 이거 봐……! 대단한데?]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