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작전명, 마니토 (1)
그래, 이지은의 말대로.
협회는 결코 멍청한 집단이 아니다.
엄연히 그곳은 국가의 한 기관.
그것도 헌터를 총괄하는 곳이기에 상당한 상급 기관이다.
그런 곳의 수장이.
이지은도 생각한 걸 못 할 리가 없었다.
“지은 씨라고 불러도 되죠? 아니, 길드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요, 괜찮아요. 편하게 지은 씨라고 불러요.”
“그래요, 지은 씨 말대로 협회장이 이제 절 잡는다고 칩시다. 그 뒤에 강만식은 어쩌고요? 결국 강만식이 없어야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거잖아요.”
“어차피 협회장을 등에 업고 의기양양한 사람일 뿐이에요, 가장 날카로운 무기이자 단단한 방패인 셈이죠. 협회장만 사라지면. 강만식도 지금처럼 날뛰진 못해요. 단, 도원 씨가 명심할 건 딱 하나.”
“하나?”
“도원 씨와 제가 돈독한 사이란 걸 협회장에게 노골적으로 보여야 해요. 그래야 저도 안전하니까요.”
그거라면 딱히 나도 손해 볼 건 없다.
훗날에 최현민이 나를 아끼면, 내가 또 이지은을 아끼는 것을 보여주면.
강만식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니까.
이지은은 이것을 전부 그 짧은 사이에 계획한 듯했다.
“그리고 초월석은 묵혀두고 파세요. 지금 팔아서 득 될 거 없어요.”
그런데 이번엔 조금 의아한 조언을 했다.
“득 될 게 없다뇨?”
“제가 말했잖아요. 이 사태가 장기화되면 어떻게 되겠냐고요. 그때 풀어야죠. 제가 지금 도자기 하나 구워서 빗살무늬 토기라고 우기면. 그게 빗살무늬 토기가 되나요? 유물이 왜 유물인데요?”
“…….”
이지은의 의도는.
초월석은 지금도 귀한 상황이지만, 조금 더 묵혔다가 값어치를 올려서 최현민의 눈에 확실히 들자는 뜻이었다.
이지은이 얘기한 대로, 이 사태가 장기화될 시에.
대중교통료가 몇만 원까지 올랐을 때, 초월석을 푼다고 가정하자.
정말 서민들 입장에서는 마른 가뭄의 단비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때까지 고통받는 서민들의 고충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지은도 무조건 묵히는 게 아니라 적당히 때를 기다리잔 거였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한국에서 초월석이 나온다는 게 알려지면, 단번에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죠. 왜? 특히 산유국들이 한국 협회에 초월석을 사야 하니까. 그때가 되면 정말 부르는 게 값이 되죠. 그렇게 되면 도원 씨는 그야말로 무형 문화재가 되는 거 아니겠어요?”
난 여태껏 협회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이건 내 시야가 좁은 듯하다.
게다가 평범한 헌터도 아닌, 국내에서도 이름이 잘 알려진 아테나 길드장의 입에서 나온 소리니 확실히 신뢰가 갔다.
“지금 우린 서로가 필요한 상황 같은데.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요?”
이지은이 진지하게 물었다.
서로에게 서로가 필요한 상황.
말 한번 잘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게이트를 만들고 초월석을 얻을 수 있지만.
막상 얻은 초월석을 팔아 현금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난 정식 헌터가 아닌 일반인에 지나지 않으니까.
이제야 헌터로 각성했다는 거짓말도 통하지 않은 건 분명하다.
초월석을 쌓아 놓으면 뭐 하나?
결국엔 가상 화폐나 다름이 없다.
가상 화폐는 충분히 화폐의 가치를 가진 디지털 화폐지만, 정작 그것을 환전하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데이터 쪼가리로 전락하고 말지 않나?
그 상황이 지금 딱 나에게 어울리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지은이 있다면.
그 부분을 해결해 줄 수 있다.
게다가 이지은은 아테나 길드장.
직급으로 보나, 나를 향한 태도로 보나, 내게도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한 사람은 맞다.
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차피 번호까지 따인 거, 저도 좋습니다.”
이지은은 빙그레 웃으며 내 손을 맞잡고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서 난 한 가지를 강조했다.
“앞으로 우린 비밀 친구네요? 작전명, 마니토 어때요?”
“마니토?”
“네, 그러고 보니 나이가 저랑 동갑이던데, 딱 맞네. 학창 시절에 했던 마니토 기억나죠?”
“아, 그거. 그러네요. 딱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말이네요.”
비밀 친구라는 이탈리아어에서 나온 말인 마니토(Manito).
그것을 나이 서른이 다 되어서야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여전히 이지은과 악수를 하던 중.
나의 주체 못 할 중2병은 이 순간 재발했다.
“그리고 이런 미녀의 비밀 친구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지.”
“하하…….”
그 순간, 이지은은 나와 맞잡은 손에 힘을 꽉 쥐었다.
“제 앞에선 그런 거 하지 마요. 저 그런 거 되게 싫어하거든요.”
오호라……?
이지은은 꽤 신중한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이러면 잘 맞겠는데……?’
난 슬쩍 흑염룡을 쳐다봤다.
유치한 말투나 내 특기인 중2병을 싫어하는 사람이 흑염룡과 함께 있다면.
시너지 효과는 분명하게 존재할 거니까.
‘좋았어.’
[너…… 무슨 생각해? 되게 불안한데.]
‘응, 넌 몰라도 돼. 앞으로 보여줄게.’
[……그게 더 불안한데. 차라리 지금 말로 해 주면 안 돼?]
‘응, 안 돼.’
흑염룡도 가볍게 무시했다.
“그럼 서로 협상도 끝났으니……. 주시죠.”
이지은은 이제 악수하던 손을 떼고, 손바닥을 천장 방향으로 펴며 말했다.
“뭘요?”
“뭐긴요? 초월석 하나 주기로 했잖아요.”
“아.”
난 흑염룡을 쳐다봤다.
[싫어. 5개 아직 안 됐잖아.]
그녀는 완고했다.
‘염룡아. 건물이다. 무려 건물이라고! 네가 원하는 만큼의 게이트를 수용할 수 있는 건물! 이번은 예외로 하자.’
[…….]
‘넌 주인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걸 아는데도, 명령하지 않고 부탁하는 이유도 그거다. 네 상황을 모르는 게 아니고 널 존중해주기 위해서.’
역시나 흑염룡 입장에서도 마냥 거절하기엔 너무나 달콤한 조건.
그녀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고민하더니,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좋아. 이번 예외로 두는 대신, 건물 얻으면 10개가 초과했을 때 하나 가져가. 나도 양보했으니까 너도 이건 양보해.]
‘고맙다.’
거래는 성사되었다.
난 그대로 게이트 앞에 서며, 이지은에게 물었다.
“같이 들어가실래요?”
“……저도 들어가도 되는 거예요?”
“흑염룡. 지은 씨랑 같이 들어가도 네가 막아줄 거지?”
[……에휴, 그래.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
“네, 같이 가도 된다네요.”
“……신기하네요. 보통 레이드를 하려면 선발대도 보내고, 등급을 측정하는 등등, 복잡한 절차가 있는데. 도원 씨 게이트는 그런 거 없나 보네요.”
“흑염룡과 함께라면 그런 절차가 필요 없으니까요. 아무튼, 여기에서 기다릴 거예요, 아니면 같이 가실 거예요?”
잠시 이지은은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경험을 싫어하진 않아요.”
그렇게 이지은이 내 뒤에 따라붙고, 내가 먼저 게이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
“우와~ 여긴 화사하네.”
이번 던전의 모습은 어제 흑염룡과 함께 들어갔던 신전과 비교하자면 평범하고 너무나 평화로웠다.
녹색의 우거진 풀숲.
흔히 던전 밖에서도 볼 수 있는 그런 숲의 모습이다.
바깥은 지금 늦은 밤이 되었는데, 여기엔 햇볕이 쨍쨍하다.
마치, 휴양지로 휴가라도 온 기분이었다.
“보통 이런 던전은 제일 등급이 낮은데.”
이지은이 말했다.
지금껏 그녀가 찾은 던전도 많았으니, 그녀는 던전 내부도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그래서 입장하자마자 던전의 모습을 보고, 등급도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그래요? 전 이번이 두 번째라서.”
“첫 번째 던전 모습은 어땠는데요?”
“신전이었어요.”
“……날씨나 배경은요?”
“그냥 어두컴컴해요.”
“보통 그런 던전이 제일 위험한데…… 어떻게 살아 나온 거예요?”
이지은은 정말 진심으로 궁금한 표정이었다.
[저 여자, 확실히 잘 아네. 맞아, 우리가 처음 같이 들어갔던 곳도 초월석이 두 개나 있어서 위험한 상황이 나왔잖아. 그만큼 귀한 던전이었으니, 위험한 것도 맞지.]
‘……별로 떠올리고 싶은 기억이 아닌데.’
아찔했던 그 순간을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그땐 정말 바지에 오줌이라도 지릴 뻔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흑염룡이 소리쳤다.
[아! 뭐야! 이 여자 왜 이래! 확 씨!]
자세히 보니, 이지은이 흑염룡을 만지고 싶었는지,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고 있었다.
흑염룡은 그런 이지은에게 주먹을 쥐었다.
[이게 진짜!]
“뭐…… 하세요?”
“그냥, 신기해서요. 아지랑이가 계속 이리저리 돌아다니니까 어릴 때 비눗방울 놀이하는 것 같은 느낌이네요.”
이지은의 눈에는 아지랑이처럼 불투명한 비눗방울 같긴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정말 비눗방울이 아니라 엄연히 흑염룡도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게 문제지.
흑염룡은 계속해서 불쾌한 기분을 표출했다.
주먹으로 이지은의 턱이라도 칠 기세였다.
“…그만하시죠. 걔 지금 엄청 화났으니까.”
“어머, 미안해요.”
[처신 잘하라고 해. 진짜 화나면 때릴 거니까.]
“처신 잘하래요. 진짜 화나면 때린다고.”
“……네.”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전하란 말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우리는 유유자적 걷기 시작했다.
“흑염룡. 이 던전에는 어떤 몬스터가 살아?”
[몰라. 다 무작위라고 했잖아.]
“그래도 던전 형태에 따라 서식하는 몬스터의 종류도 정해져 있는 줄 알았지.”
[그런 거 없어.]
어차피 이지은은 내 옆에 흑염룡이라는 이름의 정령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
그렇기에 굳이 속으로 말하지 않고, 육성으로 말했다.
이지은은 그럴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며 우리의 대화를 엿들었다.
물론, 이지은의 귀에는 내 말밖에 들리지 않는다.
“알고 가면 좋을 텐데…….”
그렇게 좀 더 걷기 시작했을 때다.
“귀엽네요.”
이지은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바로 나뭇가지다.
나뭇가지엔 나뭇잎 색과 똑같은 녹색의 물컹한 무언가가 매달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둘이 아니다.
던전에 존재하는 모든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니.
그 수를 전부 합하면 몇백 마리는 가볍게 넘길 듯했다.
“……저건.”
“슬라임. 최하등급 몬스터. 정말 등급이 낮은 것 같긴 하네요.”
[저 여자 말대로야. 슬라임은 가장 약해. 그래도 얕보면 안 돼. 화나게 하면 저기 있는 모든 슬라임이 뭉쳐서 몸집이 거대해지거든.]
“음…… 화나게 하지 않는 건 그냥 무시하면 되는 거지?”
[응.]
“그럼 됐어.”
[끝으로 계속 가. 어차피 내가 연 게이트는 방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우린 무시하고 계속 숲 깊숙이, 진입하기 시작했다.
진입하면서도 특별히 눈에 띄는 위험 같은 건 없었다.
일자로 뻗은 숲길, 좌우로 빼곡하게 박혀 있는 나무들.
또 그 나무들의 나뭇가지에 나뭇잎처럼 위장한 슬라임들.
어제 들어갔던 던전과 달리 너무 평화롭다 보니 던전에 들어온 게 아니라, 어느 테마파크로 들어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평화로운 던전. 본 적 있어요?”
“……전 레이드를 직접 참여한 적이 없어서요. 제 역할은 던전의 위치만 파악하는 일이거든요.”
“아, 그렇구나.”
이지은도 그런 던전의 풍경이 신기한지, 주위를 감상하면서 끝으로 진입했다.
드디어 이 던전의 끝에 다다랐다.
던전 배경이 숲인 만큼, 던전의 끝은 절벽이었다.
그런데 절벽이 우리 건너편에도 또 존재했다.
마치 본래 서로를 잇던 다리가 있는데, 끊긴 것과 같은 형태였다.
그리고 우리의 건너편 절벽에 녹색 빛으로 감싸진 초월석을 발견했다.
초월석은 절벽 중앙에 뾰족 솟은 돌로 만들어진 둥지 위에 있었다.
‘이상하네, 둥지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커.’
내가 누워도 공간이 많을 정도의 둥지다.
원래 조류의 둥지가 저렇게 컸던가……?
그 순간이었다.
[어……? 윤도원……. 이거……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