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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7화 (17/200)

§ 17화. 내가 몰랐던 뒷무대 (3)

“이지은 길드장이랑 던전을 찾기 시작하는 건 언제부터지?”

“3일 뒤입니다.”

“왜? 당장 안 하고.”

“아시잖습니까. 이지은 길드장도 원체 바쁘게 움직였으니, 조금 휴식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흐음.”

최현민은 영 신통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이지은 길드장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컨디션도 받쳐줘야 하니까요. 그래서 알았다고 했습니다.”

“뭐, 자네 판단이니까. 그게 맞겠지.”

이지은은 별로 믿음직스럽지 못하지만, 강만식이 내린 선택이니 강만식을 믿고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다.

“아무튼, 이번에 만약 새로 던전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도 이걸 따라 해 보자는 거지.”

최현민은 이제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가 이 시간에 그를 부른 이유와 해커들이 가져다준 비문을 보여준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이걸, 믿으시는 건가요?”

“아예 허황된 얘기는 아닌 거 같아서. 중국 협회야 워낙에 부풀린 과장이 많아서 신뢰가 딱히 안 가긴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런 헛소문까지 비문으로 만들어 보관할 리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거든. 그리고 만약 이게 정말 사실이면, 우리도 딱히 손해 볼 게 없거든. 아니, 오히려 좋은 상황이 일어나지.”

“그런…가요?”

“생각해 봐. 우리가 몇 년 전에 그놈 내친 이유가 뭐야? 던전을 보존하자고 한 게 결국엔 초월석도 더는 수급하지 말잔 뜻이었기 때문이잖아. 거기에 헌터들이 동요하면 정말 우린 마비가 되니까 결단 내린 거고.”

“그랬죠.”

그의 의견이 사실이었다면, 한국은 초월석 수급도 중단하잔 말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한국만 스스로 가난에 빠지는 일이기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중국 협회의 비문은 이현수의 의견과는 일부 같았으나, 결정적으로 결과가 다르다.

당시의 이현수는 초월석도 수급하지 말자는 반기를 들었지만.

중국 협회는 그저 어린이가 던전으로 들어가면 반응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하고, 어린이를 이용해 헌터 희생 없이 초월석을 수급해 왔다.

즉, 희생 없이 취할 이득은 분명히 있었던 것이니 최현민도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파악 못 한 던전을 찾았다고 쳤을 때. 해당 던전을 또 레이드하려면 던전 내부를 조사할 선발대에, 급이 맞는 헌터 모집까지. 절차가 복잡해.”

“그래서… 실험하잔 거군요. 네, 협회장님 뜻은 잘 알겠는데… 문제는… 투입할 어린이는 어떻게 모집해요?”

“어떡하긴? 자네가 데리고 있는 놈 하나 있잖아. 꼬맹이 주제에 손장난 하나는 기가 막힌 놈.”

“…아.”

최현민은 잔을 들고, 강만식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최현민이 말한 그 어린이는.

협회장 직속 관리부장 강만식, 그가 데리고 있는 부원 중 하나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도 준비는 다 됐으니 찾기만 하면 되잖아?”

최현민은 강만식에게 내민 잔을 흔들었다.

팔 아프니까 빨리 부딪히기나 하란 재촉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녀석도 함께 움직이지요.”

“좋지.”

그렇게 강만식은 승낙의 의미로 최현민과 잔을 부딪쳤다.

“이지은 길드장한테 세뇌하듯 옆에서 계속 말해. 던전은 수맥과 같다고.”

“수맥과 같다라…….”

“그래, 나도 잘은 모르지만, 수맥이란 게 사실 찾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반응하고, 반대로 없다고 생각하면 반응하지 않는다고 하더군. 이지은도 결국엔 수맥 찾는 사람과 다를 게 없지 않겠어?”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니, 무조건 있다고 생각하고 찾으라는 뜻이었다.

본인도 잘 모르는 것을 믿고 남에게 강요하는, 전형적으로 구시대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만식은 그런 최현민의 충실한 개다.

의문과 의심은 없이, 그의 지시를 그저 따르기만 하는 기계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게 당사자 이지은도 없이, 둘이서 멋대로 앞으로의 행동 지침을 정한 순간이다.

***

“참… 방법이… 하하…….”

이제야 정신을 차린 이지은의 반응이었다.

“꼭 그렇게 낯부끄러운 짓을 해야 게이트를 열 수 있는 건가요?”

“이게 제일 확실하니까요.”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과장도, 축소도 없는 정말 지극히 평범하게 평소대로 한 것뿐이니까.

오히려 당당했다.

“……참, 신기한 분이네요. 도원 씨는.”

그런데 갑자기 이지은이 나를 칭하는 말이 ‘당신’에서 ‘씨’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이건 같이 한배 탄 입장이니. 공동체 운명이라고 확실히 못을 박는 듯한 말이었다.

“이런 시국에서 게이트를 열 수 있다면…… 세계의 귀인이 되는 건 확실한데.”

그녀는 게이트를 보며 입맛을 다시듯 말했다.

[절대!! 안 돼! 저 여자 생각이 훤히 다 보이네! 게이트에서 눈을 못 떼는 거 보니까 초월석 가져갈 생각이잖아! 너! 나랑 한 약속 안 잊었지?]

흑염룡이 즉각 반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게이트도 보존해야 한다는 완고한 주장을 펼치는 중이다.

‘가만히 좀 있어 봐. 그렇게 넘겨짚지 말고.’

[절대로!! 내가 용납 못 해!]

‘입을 틀어막을 수도 없고.’

“그런데. 이 능력을 얻게 된 후에 어떤 계획을 세웠어요?”

그녀가 갑자기 조금 뜬금없는 것을 물어왔다.

그리고 게이트에서 시선을 뗐다.

[어라……? 내가 생각하는 그게 아니었나?]

동시에 흑염룡은 멋쩍은 반응을 보였다.

“계획이라. 일단 크루즈라는 존재를 지금껏 본 적은 없지만, 전 흑염룡의 말을 믿거든요. 정말 크루즈를 말할 때 몸까지 덜덜 떠는 걸 보면, 틀림없이 던전 속 몬스터보다 훨씬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존재라는 건 확실한 거겠죠?”

“제가 그 모습을 직접 못 봐서 아쉽네요.”

“그래서 일단은… 초월석 몇 개 회수해서 팔 생각인데…….”

“팔아요? 누구한테? 아니, 왜요?”

그 순간, 이지은의 눈동자에서 빛이 났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지만, 정확히 그 생각을 읽을 순 없었다.

“일단 돈이 필요하거든요. 보다시피 제가 사는 이곳은 좁아서 크루즈를 억제할 정도의 게이트를 수용하지 못해요. 게이트 5개 정도가 모여야 던전 하나의 효과를 낸다고 했으니까…….”

“그 돈으로 넓은 곳을 임대나 매입하려고?”

“네.”

이지은은 입을 꾹 닫았다.

그리곤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깊은 생각에 잠긴 후,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배 탔으니까 저도 부탁 하나 해도 되죠?”

“말씀하세요.”

“초월석 하나만 저한테 주세요.”

[저것 봐! 결국 저게 목적이잖아!!]

흑염룡은 화가 잔뜩 난 고양이처럼 머리카락과 목의 핏대를 세웠다.

아마 고양이가 생선 먹고 있는데 뺏어 버리면 저런 반응을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이지은이 저런 부탁을 한 이유가 궁금했다.

“왜 달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도원 씨가 지금 초월석을 팔려고 하는 건 거기서 얻은 돈으로 넓은 곳을 확보하기 위한 거 아닌가요? 그럼 게이트를 더 많이 수용할 수 있으니까.”

“그렇…죠?”

“아니, 저한테 파세요. 제가 살게요. 만약 도원 씨가 생각한 금액과 제가 가진 돈이 부족하면, 제가 가진 건물 하나 드릴게요. 안 쓰는 5층짜리 상가 건물이 하나 있거든요.”

그 순간, 난 흑염룡과 눈을 맞췄다.

한껏 반항적이던 흑염룡도 이지은의 제안을 듣고선 입을 다물었다.

우린 이제 이지은이 들리지 않게, 속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야, 염룡아. 초월석 하나 내주고 건물 받으면, 너한테도 좋은 거 아니야? 게다가 상가 건물이면 엄청 넓다고! 5층짜리잖아!’

[그렇긴 한데… 아니, 저 여자가 바보냐고. 덥석 주겠다고 하는 게 더 의심스러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닐까?]

‘자기 상황을 다 말했는데 따로 더 꿍꿍이가 있을까?’

[사람 속은 모르는 거야!]

흑염룡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이지은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파격적인 제안을 하는 것일까.

나도 그게 못내 궁금했다.

“왜 그런 제안을 하세요? 너무 파격적인데.”

“사실대로 말해도 될까요?”

“사실대로 말을 해야만 하죠.”

“좋아요, 사실… 도원 씨가 게이트를 열 수 있는 능력자인 걸 처음 말했을 때 제가 든 생각이 있어요.”

난 그녀의 말에 더욱 집중했다.

과연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제가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전 제가 원해서 헌터가 됐다기보단 재수 없게 강만식의 눈에 띄어서 된 거예요. 그리고 헌터가 되고, 길드장이 됐는데도 여전히 쭉 감시를 받고 살고요. 게다가 헌터들의 대통령인 협회장은 그런 강만식과 도원결의를 한 사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가깝고. 결국, 제 적은 강만식과 최현민 협회장이란 뜻이죠.”

“…근데요?”

“강만식을 알게 된 이후로 잠도 편하게 잔 적이 없어요. 늘 절 감시하고, 전화라도 안 받으면 강만식이 거닌 관리부의 표적이 되니까요. 이제 그런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걸 가능하게 해줄 사람이… 바로 도원 씨 같고요.”

“…제가요? 뭘 보고요?”

“제가 감지 능력자인 건 알고 있으니까 말이 쉽겠네요. 세계의 모든 던전이 정복된 지금. 초월석은 이제 국토와 바꿔서라도 얻어야 하는 귀한 자원이 됐죠. 그런데… 도원 씨는 그런 게이트를 무제한으로 만들 수 있잖아요?”

“제 말은 단순히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걸로 어떻게 제가 지은씨를 그 손아귀를 벗어나게 할 수 있느냐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도원 씨가 등장하면, 최현민 협회장이 계속 강만식과 돈독하겠어요?”

그녀가 비수를 꽂듯 말했다.

“…겨우 이거 하나만 보고 갈아탈 정도라고요? 협회장이? 그렇게 가벼운 사람이었나?”

난 그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적어도 전 최현민 협회장을 직접, 그것도 오래 봤어요. 양심의 가책? 깃털만큼도 없어요. 차라리 먼지가 더 무거울걸요. 그 사람은 이득이 더 큰 쪽으로 붙는 사업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일 뿐. 세계의 던전이 정복된 지금, 도원 씨를 알게 되면 당연히 도원 씨를 더욱 붙잡지 않겠어요? 현 시국에서 세계적으로 절대 버릴 수 없는 인재니까.”

확실히…… 일리는 있는 말이다.

고작 하루다.

세계의 모든 던전이 사라지면서 그간 발휘했던 초월석의 능력이 멈춘 기간이.

그런데 그 하루 만에 내가 살고 있는 한국만 보더라도 벌써 난리이지 않은가?

유가가 얼마 오른다, 공과금도 10배는 인상될 것이다 등등.

벌써부터 국민들은 곧 다가올 부담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게 나다.

“그리고 이 상황이 지속되면, 어떻게 될지 감이 안 와요? 대중교통 이용료도 오를 수밖에 없어요. 장기화되면 버스나 지하철 이용료만 몇만 원이 되는 거? 우습죠.”

한 번 상상해 봤다.

대중교통을 몇 번 이용하는 것이 며칠 식사비와 맞먹는 수준으로 오른다면?

그야말로 경제는 마비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 나오는 것도 허황된 말은 아니다.

내 월급을 100만 원이라치면, 출퇴근하는 차비로 100만 원 이상이 나갈 수 있으니까.

일을 하면 할수록 마이너스만 계속되는 믿기 힘든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도원 씨가 있는 한국은 그런 걸 겪을 리가 없죠. 협회장이 그런 앞날을 생각 못 할까요?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이현수 길드장도 내친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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