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내가 몰랐던 뒷무대 (2)
“이미 한배 탄 거 아닌가요?”
난 집에 떡 하니 자리 잡은 게이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에게 있어서 중대한 비밀을 이미 들켜 버린 상황인데, 문제 될 건 없다.
오히려 이지은에게 들킨 것을 정말 다행이라고 여기며 감사해야 한다.
인간은 본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도 무참히 갈라 버릴 수 있는 멍청함을 가졌지만.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다.
아주 희박한 확률로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지은이었다.
이지은의 평소 행실도 어느 정도 알고 있고.
그런 이지은이 강만식에게 이렇게 적대감을 잔뜩 보이니, 바로 확신이 섰다.
바로, SF 길드에 계속 있는 것보다 상황을 보면서 아테나 쪽으로 옮기고 이지은과 공동체가 되는 것.
비록, 사람 말은 어느 한쪽만 듣고 믿으면 안 된다곤 하지만.
이지은한테는 아직까지 그런 의심이 들지 않았다.
“그러네요.”
이지은의 답은 명쾌했다.
그녀는 이미 한배를 탔다는 것을 시인했다.
“그래서. 협회장이 강만식 길드장에게 무슨 자리를 만들어 줬는데요?”
“협회장 직속, 관리부장.”
“관리부장……?”
역시나 난 처음 들어보는 직급이다.
“헌터 중에서도 이 사실 아는 사람 많이 없을 거예요. 하는 일은…… 바로 협회의 뜻을 거스르는 헌터나 길드를 관리하고 따로 처리하는 행동대장. 그래서 강만식은 표면적인 SF 길드 말고 자신만의 비밀 단체를 가지고 있어요. 나도 그 단체에 누가 있는지는 모르고.”
“……꼭 첩보 영화의 암살단으로 들리는데.”
“네, 맞아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겉보기엔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그 양반이.
뒤에선 그런 일까지 하고 있을 줄은 SF 길드 직원인 나도 처음 알았으니까.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건데요? 같은 헌터를 죽여……?”
“협회의 비밀을 알고 있거나, 반란을 도모하는 분자들을 없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죠.”
“반란…… 분자? 지금이 무슨 조선 시대도 아니고. 반란이 웬 말이에요? 아니,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다고.”
“반란이라는 게 정말 구데타, 이런 개념이 아니에요. 협회가 정해놓은 룰을 깨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죠.”
“어떤……?”
“대표적인 예시로는 레이드를 통해 얻은 초월석은 꼭 협회에 팔아야 하는 거 알죠?”
“네.”
이미 임재형에게 들었던 내용이다.
꼭 협회를 통해서만 팔아야 하고, 그 외의 길은 없다고 했으니까.
“초월석을 암시장에 내다 파는 헌터들이 심심찮게 있었거든요. 이유는 단순하죠. 협회에 파는 것보다 암시장이 훨씬 비싸니까. 이득을 더 많이 취하려고. 본래는 그런 자들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용도였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희 길드 소속 헌터에게 들었을 땐 암시장은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없겠죠 그땐 있었으니까.”
“그런데 암시장이면 보통은 더 싸게 팔리지 않나요……? 어쨌든, 장물(贓物)이니까.”
이지은은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초월석은 다르거든요. 꼭 국내에 안 팔아도 되니까. 초월석 수급이 어려운 국가에 팔아도 되거든요.”
그것이 과거에 있었던 암시장의 정체였다.
“그게 원래 협회장 직속 관리부가 주로 하던 일이었는데……. 헌터들의 경찰과 같은 느낌이었죠. 그 관리부장도 원래 강만식이 아니었고, 다른 사람이었는데…….”
어딘가 그리운 눈동자를 하며 과거를 잠깐 회상한 이지은은 이어서 말했다.
“몇 년 전까지 건재하던 대형길드, HS. 기억하세요?”
모를 리가 있나.
HS는 국내 대표 길드였다.
지금의 SF보다도 더욱 거대한 길드.
길드라고 하면 HS가 떠오를 정도의 고유 명사 길드다.
길드장 이름은 이현수.
나는 직접 그를 본 적이 없지만, 인품이 성인군자 그 자체라고 불리며 헌터는 물론 일반직원들에게도 평판이 좋았던 젊은 길드장이다.
그런데…….
“몇 년 전에 갑자기 죽으면서 완전히 사라졌죠. HS 길드라는 건.”
그렇다.
이지은의 말대로, 그는 죽었다.
“레이드 중 사고로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길드가 해체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사람들은 단순하구나…… 협회의 공식 발표 하나만 보고 철석같이 믿네.”
“……설마?”
“네, 최현민 협회장 지시로 강만식이 한 일 중 하나죠. 그리고 상식적으로 길드장 죽었다고 길드가 해체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 밑에 있는 헌터가 얼마든지 물려받을 수 있는데.”
“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대형 길드의 길드장까지 저세상으로 보내 버릴 결단을 내렸단 말인가.
“그 이현수 길드장이 당신이 한 말 중 하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나도 자리에 있어서 분명히 들었죠.”
“……뭘요?”
“던전을 건드리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대신에 초월석도 얻지 못하지만.”
순간 나는 흑염룡과 눈을 맞췄다.
이미 우리 말고도 그 사실을 발견한 이가 있었다니.
나는 물론, 흑염룡도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그런데 왜 죽어요? 그 사실을 말했단 이유로?”
“일반인들에게 던전은 어차피 재앙이에요.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믿지 않죠. 하지만 그건 핑계고. 더 중요한 이유가 있죠.”
“그러니까 그게 뭔데요.”
“던전을 놔두면 초월석을 얻지 못한다고 했잖아요. 그게 문제였던 거지. 초월석이 없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니까. 그렇게 되면…… 정부 지지율도 떨어지니까 그들 입장에선 당연한 선택이죠.”
다른 나라는 자원 뻥튀기 기술을 이용하여, 풍요로운 에너지 삶을 누리는데, 한국만 가난하게 살 테니까 당연한 이치다.
단순히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지은의 말대로, 나도 흑염룡에게 이 사실을 듣기 전까진. 그저 던전은 재앙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상태에서 누군가가 던전은 사실 들어가지만 않으면 안전한 곳이라고 말하고 한들.
누가 믿기나 할까?
오히려 시한폭탄을 옆에 두는 것 같은 불안감에 떨 것이다.
불안감은 이내 반감이 되고.
반감의 여파는 전부 협회와 정부가 맞게 될 것이 뻔한 상황.
결국, 이현수 길드장이 발견한 이 중대한 사실을 묻어 버리고, 그의 입을 막으려고 저세상으로 보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오늘 당신 얘기를 들으니까…… 협회도 몰랐던 크루즈와 시오스라는 존재 때문이라도. 던전은 꼭 보존해야 하는 건 확실해졌네요. 그 당시엔 이 사실을 아예 몰랐으니까, 다들 이현수 길드장 의견에 부정적이었거든요.”
“꼭 죽여야만 했나요? 그렇다고 죽일 이유는 없는 거 같은데…….”
“이현수 길드장은 당시의 대표 길드장. 그런 사람이 영향력 하나 없겠어요? 헌터들을 설득하면, 레이드에 나설 헌터가 없어질지도 모르니까 결국 그런 결단을 내린 거죠.”
“…….”
확실히, 목숨 걸고 레이드에 나서는 헌터들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들어가지만 않으면 안전하다는데 왜 우리가 굳이 나서야 하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분명히 점차 나타날 것.
그렇게 되면 국내 대표 길드였던 HS를 주축으로, 점점 레이드에 부정적인 헌터들이 가득할 거고.
초월석 수급에도 문제가 생기니 잡음이 생기더라도 미리 처단해 버린 것이다.
협회는 역시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이현수 길드장의 주장 하나로 장기적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하고, 잃을 게 너무 많다고 판단해 처단해 버리다니.
이거 어째, 한배는 타긴 탔는데…….
평화로운 한강 크루즈 같은 게 아니라.
요단강을 유유히 거니는 나룻배인 모양이다.
그러던 중, 이지은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뭐예요?”
“찍어요.”
“뭘요?”
“당신 번호. 우리 한배 탔잖아요.”
“…….”
이제 와서 내릴 수 없는 배임은 확실하다.
‘그래,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라잖아.’
난 이지은의 휴대폰에 내 번호를 성심성의껏 찍기 시작했다.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닌 거 같다.
나도 어찌 됐건, 이 흑염룡과의 생활을 영위하려면 일단 헌터가 먼저 되어야 하긴 한다.
그리고 아테나 길드장인 이지은이라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인물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내 번호를 저장시키고, 이지은에게 돌려줬을 때였다.
“그런데…… 게이트를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만드는 방법은 말 안 했잖아요? 막 만들 수 있는 건가? 무제한으로?”
“무제한이긴 한데…… 조건이 조금 있죠.”
“어떤 조건?”
“아, 그거요? 으음…….”
잠깐 고민하다가 방법 하나가 떠올랐다.
그래, 직접 보여주자.
난 의도적으로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
“갑자기…… 왜 그래요?”
“어디에서 향냄새 안 나요……?”
“향……? 근처에 장례식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웬…….”
“아니, 그거 말고. 내 취향 냄새.”
“…….”
그러자 흑염룡이 이를 부득부득 갈며 소리쳤다.
[야! 넌 이 상황에도 그런 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도대체!!]
아직 끝이 아니다.
한 발 더 남았다.
난 이지은을 보며 작은 손뼉을 치는, 간단한 춤사위를 보이며 덧붙였다.
“너는 내~ 취~향 저격~”
“…….”
순간 이지은의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눈에 훤히 보였고.
더 이상 나와는 눈도 못 마주쳤다.
짝.
그리고 내가 손뼉을 쳤을 때.
[이거 정도가 없이 미친놈이네……!]
쿵!
흑염룡은 버티지 못하고, 나와 이지은 옆에 새로운 게이트 하나를 생성했다.
“이런 조건?”
***
강만식은 늦은 시간에 최현민의 호출을 받고 협회로 나왔다.
최현민이 부른 이유는 술이나 한잔하자는 것.
하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부르는 경우는 그저 느긋한 술판을 벌이기 위함이 아니다.
최현민은 꼭 중대한 사안이 있을 때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부른다.
오늘도 필시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그렇게 도착한 협회장실에는 이미 값이 꽤 나가는 양주 한 병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앉아.”
최현민이 술을 따라주고 난 뒤에 서류 봉투 하나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읽어 봐.”
주섬주섬 꺼내 서류를 꺼내자, 제목엔 한자만 가득했다.
“중국 협회 비문이네요?”
“응. 그 밑에 번역본 있어 확인해 봐.”
강만식이 읽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던전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국내 오지를 떠돌던 중, 소수민족의 어린이들이 초월석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것을 목격했다.
해당 지역엔 헌터도 없었는데, 그들이 초월석으로 장식한 목걸이를 차고 다니는 게 의아하다고 판단.
어린이들에게 물어 목걸이의 장식품을 습득한 곳을 추적했다.
놀랍게도 그들이 안내한 곳은 다름 아닌 던전이었다.
이 사실을 두고 오랜 연구한 결과.
하나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바로 어린이가 던전에 들어가도,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린 이 발견을 시작으로.
희생을 감수하지 않는 레이드를 진행할 수 있었다.]
분명히 꽤 오래전에 작성된 비문으로 보였다.
이미 이 시대엔 전 세계 던전이 전부 정복된 상태인데, 이 비문은 아직 던전이 더 남은 것처럼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만식은 손이 덜덜 떨렸다.
“…….”
“놀랍지? 몇 년 전에 ‘그놈’이 말한 거랑 비슷하잖아. 중국 협회에서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더라고.”
‘그놈’이란 이젠 이름을 말해선 안 되는 헌터.
HS 길드장 이현수를 칭하는 단어다.
“그놈이…… 미리 중국에 알린 걸까요?”
“아니, 그놈은 중국 쪽이랑 커넥션이 없어. 중국이 우연히 알아낸 거지.”
“그런데 이 비문은 어떻게 입수하셨어요? 중국 협회가 공유했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당연하지. 우리가 헌터 강국은 아니더라도, 아시아에서 나름 강국인 분야가 있지 않나?”
강만식은 술로 목을 축이며 최현민의 말을 기다렸다.
“해커들이 빼 온 거야. 기회 좀 엿보다가 몇 종류 비문 건졌는데, 그중에 끼어 있었어.”
“운이…… 참 좋았네요.”
협회에선 해커들도 운용하고 있다.
다름 아닌 주변국의 보유 던전 현황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보유 던전 현황은 국가 기밀.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초월석 때문이기도 하다.
보유한 던전은 세계 탑급으로 많은데, 도리어 헌터 강국이 아니면, 각종 경제 협상으로 던전을 빼앗기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FTA가 그중 하나다.
무역 협상 과정에 슬쩍 일정 수의 던전 레이드권까지 끼워 넣어야 겨우 원하는 협상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각국 협회에서는 던전의 보유 현황을 철저히 숨긴다.
던전을 많이 가졌다고 자랑할 수 있는 건 헌터와 경제. 두 분야에서의 강대국들만 할 수 있는 특권이니까.
그러나 강대국이 괜히 강대국인가?
해당 국가의 던전 실보유량을 알아내기 위해 협회가 직접 해커를 고용하여 사이버 전쟁까지 펼치는 시대였다.
한국 협회도 중국보다 경제 강대국은 아니지만, 적어도 헌터력과 정보력에선 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미 예전부터 중국 협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은 땅이 원체 넓으니, 그만큼 던전도 많을 것이니까.
“그런데 지금 이걸 보여주시는 이유는……?”
강만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