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내가 몰랐던 뒷무대 (1)
찌라시 같은 거였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분명히 그런 찌라시를 들고 온 사람이 있었다.
짜라시 내용은 대충 이랬다.
“우리 길드장님이랑 아테나 길드장님 같이 붙어 다니는 게 둘이 사귀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우리 길드장님이 아테나 길드장님 감시하려고 꼭 붙어 있는 거라던데? 둘이 애정이 아니라 원한만 있는 관계인가 봐.”
그 당시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었는데, 상대는 이렇게 답했다.
“그냥. 같이 붙어 다니는데 서로 웃고 있던 적이 한 번도 없잖아? 그럴지도 모른다~라는 카더라지. 아님 말고.”
다들 그건 아니라고 치부했다.
그렇게 미치게 싫은 사람은 보통 연락도 잘 안 하기 마련인데.
저렇게 자주, 꼭 붙어 있을 리가 있을까.
그저 둘 사이를 시기하는 누군가가 살을 붙여서 헛소문을 낸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지금 이지은의 반응을 보니까.
정말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는 말이었다.
SF와 아테나는 서로 협업 관계이기에, 평소 이지은 길드장의 행실도 나는 간략하게나마 안다.
조용하며, 품위가 느껴지는 분위기의 소유자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여자친구라는 단어 하나에 이성을 잃고 고함을 내지른 것이다.
“흐음…… 흠. 내가 잠시 흥분을 했네. 아무튼, 그런 사이 아닙니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그사이, 이지은은 내가 알던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거다.’
희망의 빛.
이제 보이는 것을 넘어서, 그 희망을 손에 쥘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고 느꼈다.
이걸 계속 물고 늘어질 생각으로 이 상황에 한 가지 딜을 했다.
“평소 점잖으신 분이 우리 길드장님 여자친구분이란 말에 흥분할 정도면…… 사이가 평소에 엄청 안 좋으신 건가? 가문의 원수 같은…… 뭐 그런 거?”
슬쩍, 떠보듯 물었다.
바로 지금이 그녀를 떠봐야 할 타이밍이라고 확신했다.
나와 같은 중2병을 중증으로 앓던 자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는가?
바로 분위기 파악을 하는 데에 있어서 꽤 수준이 있는 편이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아주 간단하다.
나와 같은 중2병 환자들은.
소위 이런 말을 듣고 산다, ‘십덕’, 아니면 ‘찐따’.
그러나 이것은 사회에서 인격 모독성의 성격이 강한 용도로 사용되는 단어다.
그렇다 보니 위축이 될 수밖에 없다.
정말 남들은 다 정상인이고 나만 비정상이 된 느낌이니까.
그저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좋아할 뿐이고, 영화나 각종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를 따라 하는 게 좋은, 취향만 조금 다른 평범한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완전히 인류의 새로운 돌연변이가 된 기분이었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그래서 우리 중2병 환자들은 늘 눈치를 봐야 했다.
어쩌다가 대외적으로 모인 자리가 있다면.
그 속에서 과연 나와 같은 중2병 환자들이 있는가?
이것을 확인해야 했으니까.
만약 그러지 않고 나의 중2병을 유감없이 발휘한다면.
난 곧바로 안 좋은 쪽의 돌연변이로 찍혀 버리게 된다.
하지만 피할 수 없이 맞이했던 대외적인 자리에서 역시나 나와 같은 부류는 없었다.
그것이 나의 중2병이 자연 치유된 결정적인 계기이기도 했다.
덕분에 삼십 평생 눈칫밥만 먹은 이 짬밥이 있기에, 분위기를 파악하는 게 꽤 수준급이 되었다.
지금 그 능력을 발휘할 때다.
“…….”
내 예상은 정확했다.
갑자기 이지은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뭐야……? 진짜 이게 통해……?]
흑염룡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이지은은 어금니에 약간 힘을 주며 겨우 답했다.
눈가는 분명히 웃고 있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투는 표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게 이 상황에서 왜 궁금한지는 모르겠는데요?”
부정은 하고 오히려 화제를 돌리려고 한다.
고로, 거짓은 아니다.
이는 이지은이 직접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잡았다!’
난 이 순간을 적극 활용할 생각으로 한 가지를 제안했다.
“이렇게 합시다.”
“뭘요?”
“어차피 저도 집에 게이트가 있는 거 들킨 마당이니 다 알려드린다고 했는데, 저도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거든요. 우리 길드장님과의 관계 솔직하게 말하면, 저도 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드리는 걸로. 물론, 먼저 말하는 쪽은.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레이디 퍼스트.”
[그 레이디 퍼스트가…… 그 레이디 퍼스트가 아닌 거 같은데……?]
나의 짬밥에서 나오는 눈칫밥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지금 이지은과 SF 길드장 강만식과 뭔가가 있다.
내가 굳이 이것에 집착하는 이유는 딱 하나.
난 이미 비밀을 들킨 상태다.
그러나 이지은도 완벽히는 아니지만, 자신의 비밀을 얼핏 유출시키고 말았다.
따라서 둘 다 비밀을 알고 있어야 서로 섣부른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내 계산된 행동이다.
지금 이대로 그녀를 보내면 아테나 길드장인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나도 이런 비밀 하나쯤은 알고 있어야 그나마 안전한 것이다.
“어쩌시렵니까, 콜?”
“……순서만 바꾸면 좋습니다.”
이지은은 결국, 고민하다가 승낙했다.
다만, 조건은 내가 먼저 말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만 돼도, 난 불만 없다.
[……이게 진짜 통하네?]
흑염룡은 감탄하며,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오빠만 믿어라.’
[내가 너보다 나이 많다.]
이 상황에도 흑염룡은 지지 않았다.
***
이지은에게 흑염룡이 내게 처음 나타났던 시기와.
그녀에게 들은 시오스와 크루즈라는 존재들.
그리고 던전이 어떤 역할을 하며, 내 집에 왜 던전이 있는지를 전부 설명한 뒤다.
“…….”
이지은은 눈만 껌뻑이면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맞는 걸까? 표정 보면 전혀 못 믿는 눈치인데.]
흑염룡은 무응답의 이지은이 그저 불안하기만 했다.
하지만 난 이지은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 못 하는 게 아니다.
내가 흑염룡의 존재를 중학교 2학년 때 미리 안 게 아니라면? 서른이 된 지금에서야 갑자기 흑염룡을 알게 되고 방금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들었다면?
나도 저런 반응을 보였을 거니까.
‘기다려 봐. 낚시 같은 거야. 입질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야 해.’
이럴 땐 재촉보다 먼저 반응을 보이길 기다리는 게 훨씬 낫다.
“그러니까…….”
이지은은 그제야 입을 어렵게 뗐다.
손가락으로 나를 시작으로, 그다음으로 흑염룡, 그리고 집에 있는 게이트를 순차적으로 가리킨 다음이었다.
“인류가 던전 완전 정복을 한 게 오히려 독이고. 던전은 크루즈를 넘어오지 못 하게 하는 억제기. 그리고…… 당신은 게이트를 열 수 있는 능력자다?”
이해는 빠르다.
조금 틀린 부분이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게이트를 여는 건 내가 아니라 저랑 꼭 붙어 다니는 흑염룡이지만요.”
[내 이름은 린느다. 남들한테도 흑염룡이라고 소개하지 마라.]
가볍게 무시했다.
그리고 이지은의 질문은 계속됐다.
“그게 그거 아닌가요? 내 눈엔 안 보이지만, 당신 눈엔 보인다는 거잖아?”
“뭐, 그렇게 생각하면 맞는 말이긴 하네요.”
“그런데…… 그 초월석을 이용해서 능력을 얻었다면서요? 그게 가능한가? 이건 협회도 모르는 건데.”
난 대답 대신 내가 가진 능력 두 가지를 전부 보여줬다.
시작은 바로 은신이다.
그 뒤로는 염력까지 보여준 뒤였다.
“어머.”
이지은은 정말 리얼한 반응을 보였다.
난 은신을 풀고, 이어나갔다.
“이제 그쪽 차례인데.”
“음…… 그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데. 당신은 어차피 강만식의 SF 길드 직원이잖아요? 직원들이 보는 강만식은 어떻죠?”
“뭐, 불편하지도. 그렇다고 친근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게, 최고로 좋은 길드장 정도? 원래 우리 같은 직원들은 오너가 너무 불편하거나 친근한 것보다 적당히 있는 듯, 없는 느낌의 오너가 최고라고 말하잖아요.”
일반 직원은 헌터가 아니니까.
따라서 회사로 대입하면 길드장은 기업 회장님 정도 된다.
그런 회장님이 너무 친근해도, 불편해도 문제지만.
지금의 강만식이 나한테는 딱 좋다.
그것이 내가 SF 길드를 오래 다닐 수 있었던 것 이유 중 하나다.
“역시 그런가…….”
“왜요? 문제 있어요?”
“아니요,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이거 듣고 나서도 그런 반응일지 모르겠네. 내가 그 인간을 얼마나 싫어하는데.”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그녀는 막힘없이 자신과 강만식의 관계를 전부 털어놨다.
강만식을 처음 봤던 시기와.
강만식이 이지은에게 행한 일.
난 그것에 제일 집중하게 됐다.
그녀가 헌터 특목고를 졸업하자마자 아시아를 돌아다니며 던전 입구를 전부 찾아내는 성과를 올렸지만.
강만식은 그것을 이용하여 뒷돈을 챙기고, 협회장 최현민과 돈독한 사이로 발전.
그리고 그 일 하나로 지금의 SF 길드를 설립할 수 있는 자금이 마련되었다는 것까지.
덧붙여, 강만식은 자신의 치부를 알고 있는 이지은을 자유롭게 놔둘 생각이 없어 아테나 길드를 설립해 주고, 비서로 자신의 측근을 붙여 버리며 감시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까지 설명한 뒤였다.
[이런 쓰레기 새끼!!]
오히려 흑염룡이 이젠 이지은에게 연민을 느꼈는지,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난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아뇨, 이해가 안 돼서.”
“뭐가요?”
“그래요, 강민식 길드장이 뭐 그런 이유 때문에 당신을 감시하는 건 그렇다 치는데…… 아무리 그래도 지금 당신도 한 길드의 길드장이잖아요? 더군다나 아테나 길드엔 강한 헌터도 많은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런데 이지은은 뜬금없이 물었다.
“……예? 아테나랑 SF 협업 관계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거기 소속 직원이나 헌터들 인사기록부 다 볼 수 있는 걸 모르실 리가 없을…… 설마?”
설마 이것까지 강만식이 몰래 했다는 것인가.
그런 아찔한 생각이 들었을 때, 이지은은 자신의 이마를 때리듯 감싸 쥐었다.
“박우민 이 개색…….”
“박우민?”
“제가 말한 비서요. 강만식이 심어둔 첩자. 그놈이 주도한 일이었는데, 그땐 분명히 인사기록의 공개 범위가 일반인 직원에 한해서였는데…… 아니었네. 뒤에서 그런 식으로 조작했구나…….”
아테나 길드 초장기 때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꽤 오래전 얘기인데, 아테나 길드의 주인인 이지은이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아니, 이걸 이제야 아는 게 더 이상한데.”
“그만큼 강만식의 감시가 삼엄하단 생각은 안 해보고요?”
“…….”
그래, 이 정도로 몰랐다면 정말 강만식 길드장이 제대로 감시하고 있단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심지어 그녀의 비서 박우민은 사실 헌터인데, 이지은을 감시하려고 일반인으로 위장까지 한 인물이라고 한다.
이지은조차도 박우민이 정확히 어떤 헌터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정말 강만식이란 사람은 내가 아는 것과 달리, 상당히 무서운 사람이었다.
“아무튼, 제가 이어서 말하려던 건, 아테나 길드 헌터들이랑 으쌰으쌰해서 어떻게 뭐 정의로운 구현. 이런 거 할 수 있지 않았어요? 왜 여태 패배감에 젖어서 계속 감시당하는지 난 모르겠어서.”
비참하고 잔인한 말로 들리겠지만.
내가 보기엔 적어도 그래 보였다.
충분히 길드장 신분에선 시도할 수 있는 게 많은 텐데도.
이지은은 그러지 않고 그저 감시만 당하면서 포기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러나 이지은은 헛웃음 쳤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난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뭘요?”
“강만식이 저렇게 날뛸 수 있었던 이유. 최현민 협회장이랑 친해지면서 협회장이 별도로 임명한 직위가 있잖아요?”
“……무슨?”
“이거 들으면 당신, 나랑 공동체가 되는 건데. 한배 탄다는 거지. 그래도 들을래요?”
이 정도로 무게를 잡는 거 보면, 꽤 중요한 얘기다.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 아닌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
고로, 안 들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