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미모의 불청객 (5)
602호.
이지은이 멈춰선 호실 번호다.
‘사람이 사는 집 맞나……? 아니면 공실인가?’
현관문에 귀를 대고 소리에 집중했지만, 들리는 소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지은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 복도를 뒤졌다.
바로 전기 계량기를 살피기 위함이다.
보통 602호가 공실이라면 저 방만 전력 사용량이 현저하게 적으니까.
그러나 602호의 계량기는 다른 호수와 비교했을 때 평균적인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이야…….’
이지은은 이제 이 비밀을 풀어야 했다.
어떻게 사람이 사는 곳에 던전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단 말인가?
도대체 누가 살고 있길래?
아니,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집에 던전이 있다는 것을 알까?
또 그 사람은 헌터일까, 일반인일까.
이 모든 궁금증을 풀어야 했다.
그녀는 던전을 찾기 싫은 게 아니라 강만식과 찾아 나서기가 싫었다.
그리고 전세계 뉴스 속보에서 던전 완전 정복이라고 떠들어대는 와중에,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한 사람이 자신이 유일하다는 것은 분명했다.
이에 이지은은 무식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바로 저 집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집주인이 들어간 뒤에 슬쩍 초인종이라도 눌러 옆집에 이사 왔다는 핑계로 집 안을 확실히 살필 생각이었다.
‘보아하니 좁은 원룸형 오피스텔이니까.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한 번에 내부 전체를 확인할 순 있어.’
확인이 끝난 뒤에는…… 역시 생각해 봐야 했다.
이지은은 그렇게 무작정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오피스텔의 구조가 H형으로 되어 있다는 것.
중앙엔 엘리베이터.
그리고 좌우로 호실들이 나열된 그런 형태다.
따라서 중앙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딱히 수상해 보이진 않을 거다.
***
“피곤하다…….”
난 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은 유독 지하철도 만원의 연속이라 몇 대는 그냥 보낸 바람에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그렇게 도착한 나의 보금자리.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바로 앞에 수상한 여자가 보였다.
그런데 무슨 범죄자라도 된 듯이, 문이 열리는 순간 고개를 푹 숙인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저 여자…….]
그런데 흑염룡이 그 여자를 보곤 갸우뚱한 반응이었다.
‘왜?’
이 복도엔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있어서 속으로 물었다.
어차피 이런 식으로 대화도 가능하다고 하니 이건 참 편했다.
굳이 궁금한 것을 꾹 참고 집에 들어가서 묻는 귀찮은 짓을 안 해도 됐으니까.
[낯이 익는데. 저 인상착의.]
‘낯이 익어? 너한테 낯이 익는 사람도 있냐?’
[본 적이…… 있는데? 분명히?]
나도 흑염룡의 말 때문에 괜히 힐끗 쳐다보게 됐다.
반바지에 긴 생머리를 가진 그 사람.
저렇게 보니 확실히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길드장님 여자친구분이랑 비슷한 체형이긴 하네.’
[그치? 그 사람 아니야?]
‘그럴 리가 있냐. 한 길드의 길드장이 왜 이런 변두리 오피스텔에 와? 여기에 살 리는 더더욱 없고. 그냥 체형만 조금 비슷한 사람이겠지.’
그렇게 무시하며, 난 드디어 내 집인 602호 앞에 도착하고.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렀을 때였다.
[어……! 야! 저 여자 이쪽으로 오는데?]
흑염룡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무슨 헛소리야.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민할까? 내가 여기 살면서 내 집에 찾아온 사람 한 명도 없어. 네 착각이야.’
난 무시하며, 들어갔고.
이제 문을 닫으려고 한 그 순간이었다.
텁!
아기자기한 발 하나가 문틈에 갑자기 나타났다.
때문에 문을 닫을 수 없었다.
“당신…….”
그리고 여자는 나를 희번덕한 눈으로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내 그 여자의 시선은 상체 밑쪽으로 향했다.
“SF 길드 직원 윤도원이잖아……?”
“어어……?”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그 여자 맞는 거 같다고 했잖아!]
정말 흑염룡의 말대로 이지은이 맞았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얗게 변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던 그때.
이지은은 필사적으로 내 집 안을 살피려고 했다.
난 아차 싶었다.
아테나 길드는 SF 길드와 협업 관계에 있어 아테나 길드 소속 헌터들의 인사기록부도 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때 봤다.
길드장 이지은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그녀는 게이트를 감지하는 능력자다.
그 사실은 길드를 다니는 직원들이라면 다 안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 있는 던전들 전부 저 여자 혼자서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것을.
난 필사적으로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텁!
“끄윽!”
이지은은 손으로 내 가슴을 밀치며, 나를 문에서 떨어트렸다.
아무리 비전투 능력 계열 헌터라고 해도, 헌터는 헌터다.
기본적인 힘이 신체 건장한 성인 남성보다 월등하다.
게다가 내가 가진 능력 중에는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능력은 없다.
난 이지은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몇 걸음 물러나게 됐다.
동시에 이지은은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고, 충격을 많이 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당신 집에 왜 게이트가 있어?”
“…….”
[…….]
나와 흑염룡은 동시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
[어떡할 거야……! 어떡할 거야!! 그러니까 내 말 좀 제대로 듣고 조심했어야지! 이거 어쩔 거냐고!!]
흑염룡은 모든 걸 들켰다는 생각에, 내 어깨를 찰싹찰싹 때리며 울분을 토했다.
그녀가 말하는 자신의 말 좀 제대로 듣고 조심했어야 했단 뜻은.
우리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앞에 있던 여자가 이지은인 것 같으니 제대로 확인해 보자는 그 뜻이었다.
게다가 흑염룡은 이지은이 헌터인 것을 안다.
길드 옥상 흡연장에서, 임재형을 처음 봤을 때 대충 눈으로만 보고도 파악하지 않았던가?
임재형이 그다지 강한 헌터가 아니란 것을.
그런데 이지은은 겉보기에도 임재형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이미 눈치챈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지은에게 게이트의 존재를 들킨 지금.
그녀가 초월석을 탐내는 포식자로 보였으리라.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 앞에선 이지은이 살벌하게 노려보고 있고.
또 옆에선 흑염룡이 찰싹찰싹 때리고 있으니, 얼굴이건 어깨건.
여간 따가운 게 아니다.
더 따가운 쪽은 당연, 흑염룡이다.
흑염룡은 손에 캡사이신이라도 듬뿍 발랐는지.
작은 체구를 가진 주제에 손은 매워도 너무 매웠다.
“아…… 좀! 아파 죽겠다고!”
결국, 그 따가움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쳤을 때다.
“그래…… 이거. 이것도 이상했어.”
‘아차……!’
지금 내 앞에 이지은이 있었다.
흑염룡은 남들 눈에 보이지 않고, 주인인 나만 보이는 상태.
그런데 이지은은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갑자기 옆을 보면서 아프다고 소리치니.
이지은이 즉각 반응했다.
[행동 조심 좀 하라고오오오-!!]
또 하나의 비밀을 들킨 것이라 생각한 흑염룡의 호통이 날아들었다.
‘네가 때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어…….’
난 그제야 침착하게, 생각으로 내 말을 전했다.
그러다 슬쩍 이지은의 반응을 살폈을 때다.
“……음?”
그녀의 시선은 이제 나를 향한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내 얼굴 바로 옆.
그곳엔 흑염룡이 있는 자리다.
이지은은 입을 열었다.
“낮에 SF 길드 엘리베이터에서 나 봤죠?”
그녀는 처세술에 능한 검사가 취조를 하듯, 이제 강압적인 모습은 벗어 던지고 회유하는 듯한 따스한 어투를 썼다.
“……예.”
“그때 분명히 봤어. 당신 얼굴 옆에 있는 저 아지랑이. 저거 뭐야……? 분명히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무언가 같은데.”
“아지랑이……?”
그 순간 나와 흑염룡은 눈을 마주쳤다.
[아지랑이? 날 보고 하는 소리 맞지……?]
‘그런 것 같은데……?’
“그래, 지금도! 지금도 저 아지랑이 같은 흐릿한 물체가 움직이잖아!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야? 집에는 게이트가 있고, 눈에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아지랑이를 달고 다니는 일반인 직원이라니? 이게 말이나 돼?”
“…….”
[…….]
확실한 건.
이지은의 눈에는 흑염룡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볼 수 없는 것은 흑염룡의 얼굴이지.
흑염룡 그 자체가 아니다.
헛것이 보이는 것처럼, 지금 그녀는 흑염룡의 존재는 분명하게 보이는 중이다.
[윤도원. 저 여자…… 감지 계열 능력자라고 했지?]
‘응.’
[게다가 길드장이면 꽤 랭크도 높겠지? 내 눈에 보기엔 그래 보이거든.]
‘S급이야.’
[……하아, 우리가 제일 피해야 하는 능력자였네.]
흑염룡은 자신의 이마를 찰싹 때리며 한탄했다.
‘제일 피해야 하는 능력자라니?’
[감지 계열 능력자는 던전을 감지하는 능력만 있는 게 아냐. 네가 가진 ‘은신’과 ‘염력’에 레벨이 있듯이, 감지 계열 능력도 그런 레벨이 있어. 그런데 지금 저 여자는 감지 계열 레벨이 최고조 직전 단계 같아. 저런 부류의 능력자들이 우리 정령의 존재를 파악하기도 하거든. 그런데 그건 엄청 드문 일인데…….]
‘그래서…… 네가 보인다는 거야?’
[분명히 보고 있잖아. 내 얼굴은 안 보이더라도 아지랑이 같은 거라고 말하는 거 보니까.]
여전히 이지은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내 얼굴 옆, 흑염룡이 있는 자리를 살피고 있었다.
[임자 제대로 만났네…… 그래서 저 여자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구나. 저 게이트 기운을 느낀 거야. 어떡할 거야? 이제. 다 들켜 버렸으니 모든 게 끝난 건데.]
흑염룡은 이지은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경로를 쉽게 파악했다.
‘음…… 그런데 이상하게, 난 왜 그런 생각이 안 들까.’
이건 진심이다.
이상하게 나의 중대한 비밀을 들켰는데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거나, 눈앞이 컴컴해지는 그런 암울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뭔가, 솟아날 구멍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뭐……? 저 여자 보통 여자 아니잖아. 안 그래도 지금 인간들은 초월석 없어져서 난리인데, 게이트까지 들킨 지금. 저 여자가 가만히 있겠어? 네가 목숨만 건져도 다행인 것 같은데.]
하지만 흑염룡은 부정적이었다.
‘아니야, 정말 그런 느낌 안 들어.’
[무슨 확신으로?]
‘내 직감으로. 그러니까 입 다물고 있어 봐. 저 여자가 초월석을 탐냈으면, 진작에 게이트에 들어갔겠지. 그런데 지금 오히려 내게 묻고 있잖아? 이것만 보더라도 희망은 있어.’
난 일단 그렇게 흑염룡을 조용히 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명해. 당신 집에 있는 저 게이트. 그리고 얼굴 옆에 두둥실 떠다니는 아지랑이. 전부.”
이제 보아하니, 이지은은 결과보다 과정이나 발단을 중요시하는 사람인 것 같다.
내 집에 게이트가 생긴 것이 결과다.
그러나 지금 그 결과보단, 어떻게 저게 생겨났는지, 그것을 묻는 중이니 과정이나 발단을 물어보는 것과 똑같은 거다.
“예, 일단 궁금하신 거 설명해 드릴 테니까. 천천히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사실대로 다 말하게?]
하지만 흑염룡은 날 째려보며 물었다.
‘그럼, 방법 있어? 일단은 우리도 살고 봐야지. 저 여자가 궁금한 건 어떻게 저게 생겼냐는 거잖아. 일단 설명하면서, 이 상황 빠져나갈 잔머리 좀 굴리자.’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난 불안해하는 흑염룡을 무시하고, 이지은에게 역으로 물었다.
“그 전에. 저도 궁금한 게 있는데요. 길드장님 여자친구분께서 서울 변두리까지 오신 이유가……. 설마 저 게이트 기운을 감지했기 때문입니까?”
이걸 확실히 알아보기 위함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지은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목소리가 성악가 뺨은 가뿐히 칠 정도로 높게 올라갔다.
“어떤 미친놈이 그래!! 누가 누구 여자친구?!”
‘왜 이렇게 화를 내……? 아니면 아닌 거지. 무슨 서로 원수지간도 아니고…….’
느닷없이 고함을 지르는 이지은의 모습에 그런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간 그 순간.
‘어……? 잠깐만……?’
희망의 빛을 보았다.
지금 이지은의 반응을 보고, 기억 속에 가려졌던 일화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