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3화 (13/200)

§ 13화. 미모의 불청객 (4)

“아, 아니에요. 뭣 하러 굳이 그래요. 그냥 같이 타고 가죠.”

옆에 있던 여자의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길드장 강만식이 먼저 친절하게 말했다.

내가 굳이 다급하게 내리려고 했던 건 암묵적인 예의 같은 거다.

SF가 대형길드이긴 하나, 그렇다고 일반 대기업과 같이 임원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헌터도 아닌 말단 직원이 무려 길드의 주인, 길드장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다는 것은 예의가 없어 보일 수도 있어서다.

그렇다고 길드장이 직접 지시한 건 아니지만, 나 같은 일반인 직원들에겐 그런 암묵적인 룰이 있다.

길드를 회사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오히려 내게 친절하게 내리지 말라고 하니, 괜히 머쓱해졌다.

“아…… 감사합니다…….”

솔직히 이게 감사할 일인가 싶긴 하지만.

최소한의 예의란 게 있지 않은가?

예의상으로 난 강만식 길드장에게 꾸벅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그 미모의 여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길드장님 여자친구구나.’

[엥? 여자친구?! 나이 차이 많이 나 보이는데? 여자가 아깝네.]

그런데 흑염룡이 반응했다.

내가 육성으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고 물었는지 내가 다 신기했다.

‘뭐야……? 나 생각만 했는데?’

[아, 사실…… 내가 널 주인으로 받아들이면서 머릿속으로도 교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어.]

‘그렇게 유용한 게 있으면 진작 좀 알려달라고!’

여태껏 괜히 남들 눈치 보면서 조용히 말했던 것들이 비참하게 다가왔다.

이런 유용한 기능(?)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자리를 피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어쨌든,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강만식 옆에 있는 사람은 아테나 길드장 이지은.

아테나 길드는 우리 SF와 협업 관계다.

그래서 길드 내 인트라넷으로 아테네 길드 소속 길드원 인사기록부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정말 저 둘이 사귀는지, 난 모른다.

우리 직원들은 그냥 여자친구라고 부른다.

둘이 원체 자주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

그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보니, 여자친구란 단어는 나와 같은 일반인 직원들이 부르는 그녀의 별명 같은 거다.

그렇게 내가 근무하는 층에 도착했고.

난 엘리베이터를 탈출하듯, 뛰쳐나갔다.

***

‘저 남자…….’

강만식 옆에 있던 이지은은 엘리베이터에 들어온 남자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가 헌터가 아닌 일반인 직원이란 것쯤은 안다.

쉽게 식별할 수 있던 것은 바로 남자의 목에 걸린 ID 카드.

헌터 길드원은 저런 ID 카드를 목에 걸지 않는다.

자신도 한 길드를 운영하는 길드장인데, 그런 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지은은 그 남자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바로 그 남자의 머리 옆 부분에 아지랑이와 같은 흐릿한 무언가가 분명히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까지 확인한 이지은은, 그 남자가 강만식에게 꾸벅 인사를 할 때.

그의 ID 카드를 유심히 보았다.

‘이름이 윤도원……. 일반인 같진 않은데?’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윤도원이 내린 뒤, 이지은이 물었다.

“선배님. 방금 그 사람 이름이 뭐예요?”

“왜?”

“되게 친절하게 말씀하시길래. 유능한 직원인 것 같아서요.”

강만식이 그에게 친절한 어투로 뭣 하러 굳이 그러냐고 말한 것을 보고 소름이 끼쳤기 때문이다.

강만식은 같은 헌터, 그것도 자신과 급이 맞는 사람이거나 협회장 같이 더 강한 권력을 쥔 사람에게만 깍듯하다.

전형적으로 강약약강의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급이 낮은 헌터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무척이나 혐오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일개 직원에겐 친절한 어투로 그런 말을 했으니,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아서다.

“몰라. 난 저런 직원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러나 들려오는 답은 역시나였다.

‘이미지 메이킹 제대로 하시는군.’

더불어 강만식이 왜 그런 말을 남겼는지 알아차렸다.

저런 직원이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일부러 친절하게 말해서.

직원들 사이에서는 성품이 인자한 길드장으로 각인시키려는 얄팍한 속셈이다.

본디 뒤가 구린 사람이 앞을 치장하기 마련 아닌가?

딱 그 말이 강만식과 천생연분급으로 어울렸다.

그리고 역겨웠다.

이렇게까지 철두철미하게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려는 그의 행동이.

“그런데 뭐하러 관심 갖냐? 일개 직원일 뿐인데.”

그 순간, 이지은은 움찔했다.

그의 말대로 일반인에 지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을 어째서 네가 관심을 갖느냐.

이지은은 윤도원의 머리 옆에 떠다니는 아지랑이의 흐릿한 물체를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그 윤도원이란 사람에게 뭔가 특별한 게 있단 뜻이다.

하지만 이것을 그대로 강만식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지금도 계속 감시당하는 처지인데, “선배님 직원 중에 특별한 사람이 있네요.”라고 말하면 강만식의 성격상, 그 윤도원이란 사람도 앞날이 어두컴컴해질 것이고.

더불어 재능을 알아보는 자신의 안목을 알려주는 꼴이니, 지금보다 더 강만식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뻔했다.

그래서 유치하고 아무런 의심이 들지 않을 핑계를 생각하던 중, 본능적으로 답했다.

“그냥, 제 스타일이라서요.”

“남자 보는 눈이 영 없네. 내 눈엔 별로던데.”

다행스럽게도 강만식은 더는 캐묻지 않고 넘어갔다.

성공적인 대답이었다.

‘그런데…… 강만식은 저 사람 옆에 무언가가 있단 걸 아예 눈치를 못 챈 느낌인데? 왜 나한테만 보인 거지? 분명히 뭐가 있었는데.’

이지은은 이제 그것을 생각했다.

‘설마, 내가 감지 능력자라 그런 건가? 그것과 연관이 있는 거라고 생각되는데.’

전투력만 놓고 보면 강만식이 몇십 배는 훨씬 우위다.

그런데 그런 강만식이 아무것도 모른다면. 답은 이것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

그렇게 둘은 길드장실이 위치한 최상층에 도착했다.

들어가자마자 강만식은 커피포트를 작동시켜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내가 원래 이 커피는 아무나 안 주는데. 넌 특별한 사람이니까.”

둘이 함께 길드에 온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강만식과 불편한 식사를 끝내고, 체할 것 같아 얼른 도망치려 했지만.

강만식은 차나 한잔하자는 핑계로 길드로 끌고 왔다.

근처에 카페도 많은데 굳이 길드로 끌고 온 이유가 이곳에 비싼 원두가 있단 이유였다.

강만식은 느긋하게 커피를 핸드 드립하며, 말했다.

“너도 회의 때 들어서 알지? 협회장님이 진두지휘하라고 했던 것.”

“……네.”

“그래. 언제부터 시작할래? 의미 없는 짓이긴 한데 일단 시키는 거니까 하긴 해야 하잖아.”

“글쎄요.”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어떻게든 강만식으로부터 도망칠 생각만 가득했는데, 이젠 그럴 수 없는 몸이 되었으니까.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 꼬일 수 있는지 원망스러웠다.

그사이, 강만식은 방금 갓 내린 커피를 이지은의 앞에 놨다.

향만 맡아도 예사롭지 않은 커피란 게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강만식이 준 커피이다 보니 이지은의 눈에는 사약으로만 보였다.

“마셔.”

“예.”

이지은은 마시는 척, 입만 대고 금방 잔을 내려놨다.

그리고 용기를 내 힘들게 먼저 말했다.

“며칠만 쉬고 시작하시는 거 어떠실까요? 요새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제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서요.”

시간을 단 며칠이라도 더 벌겠단 생각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강만식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

이지은의 계획이다.

“음, 확실히. 넌 컨디션 따라 능력에 굴곡이 심했지?”

“아무래도 중요한 일이니까 확실히 해야죠.”

“그래, 며칠이면 될 거 같은데? 네가 몇 년 동안 쉬지도 않고 일한 걸 나나 협회장님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며칠 정돈 괜찮을 거야.”

“최소 3일이요.”

마음 같아선 한 달도 부르고 싶었지만, 협회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게다가 이번 프로젝트가 정부 지침으로 인해 하달된 것이고, 자신이 핵심 인물이다.

그 정도로 여유 있게 끌 수 없었다.

“3일이라. 그래, 그때 다시 연락해. 3일간 푹 쉬고. 커피 어때? 맛있지?”

“……예,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불편한 티타임은 계속됐다.

‘맛은 쥐뿔…… 역류할 것 같다, 정말.’

당연히 커피의 맛은 느껴지지도 않는 상태다.

강만식과 함께 좁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지옥의 문을 마주한 것만 같았다.

***

이지은은 그렇게 불편한 티타임을 오후 내내 보냈다.

겨우 강만식에게 풀려난 그녀는 SF 길드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세상에. 진짜 감금이 따로 없네.”

차의 시동을 걸자마자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6시가 다 되었다.

더불어 길드 직원들의 퇴근 시간까지 겹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오늘은 진이 너무 빠졌으니…… 일단 쉬고 생각해 봐야겠네.”

아침부터 협회, 그리고 SF 길드에서 강만식과 하루 종일 있었으니 힘이 남아나질 않았다.

어떻게 강만식에게서 벗어날지는 내일부터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퇴근 시간이 겹쳐서일까.

벌써부터 서울의 도로는 러시아워가 시작됐다.

신호 하나 받아서 달리기도 힘든 서울의 도로.

그렇게 꾸역꾸역, 막힌 하수구 뚫듯이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이지은의 집은 서울 중앙부가 아닌, 외곽에 있다.

보통 길드장들은 길드 출근에 용이하게 길드와 가까운 서울 중심부에 자가를 소유하는데, 이지은은 달랐다.

왜냐.

강만식이 만약 호출하면, 집이 멀다는 핑계로 시간을 늦출 수 있었으니까.

재수가 좋으면 그냥 오지 말라고 한 적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이지은은 자신이 서울 외곽에 집을 정한 게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호에 걸려 차를 주차하고, 대기하던 중이었다.

삐이…….

갑자기 그녀의 귀에서 기분 나쁜 이명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잠깐…… 이거…….”

이 신호.

감지 능력자 이지은은 잘 알았다.

자신과 가까운 곳에 던전이 있을 때만 나타나는 그 현상이다.

‘이런 도심 한복판에……?’

이지은은 주위를 살폈다.

협회와 정부에서는 존재 파악도 못 한 그 던전이.

등잔 밑이 어둡다고, 지금 서울 도심에서 느껴진 순간이다.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눈에 보이는 거라곤 그다지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은 오피스텔 단지들 뿐이었다.

‘내가 피곤해서 그런 게 아니야. 이건 분명히 확실해.’

이지은은 차의 경로를 바꿨다.

곧바로 감지 능력이 가리키는 오피스텔 단지로 진입했고,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한 뒤 차에서 내렸다.

‘분명히…… 이쯤인데……?’

이지은은 걸으면서 그 불쾌한 이명과 어지럼증이 강하게 느껴지는 지점을 찾기 시작했다.

삐이이이-!

마치 스스로가 금속 탐지기가 된 것처럼, 특정 오피스텔 건물 앞에 서자 이명이 더 강하게 들렸다.

‘여기다.’

이지은은 고민도 하지 않고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출입문에 도어락도 없고, 경비 사무실도 없는 저가형 오피스텔인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몇 층이지?’

이지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 한 층에서 멈췄다.

바로 그 이명이 더욱 선명하게 들리는 층이 던전이 있는 곳이니까.

그렇게 그녀는 드디어 멈춰 섰다.

‘어떻게…… 오피스텔 안에 던전이 있는 거야? 그게 가능한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