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미모의 불청객 (3)
회의실에는 이미 국내 대형 길드 길드장과 협회장 최현민까지 자리에 있었다.
“조금 늦었군.”
최현민이 불만스럽게 말은 했지만, 그래도 강만식을 향한 시선엔 애정이 가득했다.
“하하, 죄송합니다. 협회장님. 차가 조금 막혀서요.”
“일단 앉아.”
“넵.”
대화는 물론이고 둘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은 마치 의형제라도 맺은 듯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이지은에겐 매스껍게 다가올 뿐이었다.
이지은도 정해진 자리로 앉으러 가려는 찰나.
최현민이 그새를 못 참고 한 소리했다.
“이지은 길드장은… 여기 놀러 왔나? 복장이 그게 뭐야?”
꼰대 중의 꼰대.
살아 있는 화석이란 별명을 가진 최현민 눈에 당연, 달갑게 보일 리가 없는 복장이었다.
“죄송합니다. 휴가 중에 급히 오느라요. 다음부터 신경 쓰겠습니다.”
아무리 이지은의 성격도 온순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상대를 보고 숙일 땐 숙일 줄 아는 사람이다.
협회장에게 반기 들어봤자 좋을 것 하나 없기에 일단 수그렸다.
“어휴. 뭐,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지. 앉아.”
“예.”
잡음은 조금 있었지만, 어쨌든 회의는 진행되었다.
최현민이 먼저 말했다.
“정부 지침으로 인한 회의 소집이다.”
‘정부… 지침……?’
이지은은 생각했다.
정부 지침이라면 강만식이 뒤에서 주도하여 열게 된 회의는 아니니 일단 안심이 되었다.
“무슨 지침이랍니까?”
이에 강만식이 물었다.
정말 순진무구하게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하고서다.
‘저 표정이면 확실하네. 강만식이란 연관은 없는 것 같아.’
이것만 돼도 다행이라고 생각한 그녀다.
“다들 뉴스 봤겠지?”
최현민의 질문에 일부 길드장들은 황급히 태블릿 PC로 오늘 자 기사들을 훑었다.
다들 출근 중에 갑자기 불려 온 상황이라 기사를 제대로 보지 못 한 길드장도 더러 존재했다.
이지은도 그런 길드장 중 하나였다.
“무슨 대학교 오픈북 시험 시간도 아니고. 나, 참…… 쯧쯧…….”
최현민은 그런 길드장을 향해 혀를 찼다.
“보면서 설명 들어. 지구상의 던전이 완전 정복되면서 초월석이 그 효력을 잃었다고 한다. 이유는 역시 알 수 없지만, 학자들은 가설 하나를 세웠지.”
“무슨 가설이랍니까?”
회의실에 모인 많은 사람들 중에 실제로 대화를 하고 있는 사람은 최현민과 강만식뿐이었다.
이지은을 포함한 다른 길드장은 그저 병풍처럼 처량하게 느껴졌다.
“혹시 초월석이 그 신비한 효력을 내려면 던전이 존재해야 하는 조건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가설이다.”
“……그게 말이 됩니까?”
“그거 아니고선 이 현상이 말이 안 되잖아. 지금 석유, 전기, 수도 등등. 인류가 살면서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자원에 기존엔 없던 제한이 걸려 버린 상황이야. 국가 재난 상태라고. 아니, 우리나라만 이런 게 아니니 세계 재난이라고 해야겠군.”
“그래서 정부 지침이란 게 정확히는……?”
“던전을 찾으라더군. 우리가 미처 발견 못 한 던전이 어딘가에는 있지 않겠냐고, 그리 말하더군.”
그 순간 이지은에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 자리에 있는 길드장 중 게이트 감지 능력을 지닌 게 바로 이지은 하나였으니까.
최현민이 물었다.
“이지은 길드장. 뭐 느껴지는 거 없어?”
“…….”
이지은은 말문이 막혔다가 잠시 뒤 어렵게 답했다.
“없습니다.”
거짓말이다.
그런데 거짓말을 한 이유.
뻔하지 않은가?
헌터는 공무원 신분이기에 정부 지침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한다.
그런데 그런 정부에서 던전을 새로 찾으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그 뒤에 이지은에게 일어날 일?
허리케인이 불어닥칠 때, ‘아, 저 안에 들어가면 내 몸이 어떻게 될까?’ 이런 궁금증이 들어서 허리케인으로 뛰어드는 미친놈이 세상 어디 있는가?
지금 그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분명히 자신에게 던전을 찾으라고 할 것이고.
정부 지침으로 내려와 협회까지 간섭하는 이 일이라면.
저 역겨운 강만식과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해야 하는 암울한 미래만 기다리고 있으니까.
본능적으로 거기까지 계산이 된 이지은은 그런 최악을 피하기 위해 거짓을 답한 것이다.
이지은의 답변에 최현민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순간, 이지은은 불길한 감정이 돌았다.
혹시라도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단 것을 눈치챈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니, 이지은 길드장도 못 느낄 정도면 정말 없는 거 아냐? 찾는 게 의미가 있는 시도냐고.”
‘휴.’
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다.
이지은은 그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최현민의 말에 이지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래도 정부 지침이니 무시할 순 없잖아. 가뜩이나 벌써부터 매스컴이 난리라 골치 아픈데. 일단 꼼꼼히 찾아보자고. 강만식 길드장. 자네가 진두지휘하며 함께 찾아봐.”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최현민은 이지은과 강만식이 한 세트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고서야 진두지휘란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참…… 아이러니하네요. 인류의 소망이 던전 완전 정복이었는데. 이젠 도리어 새 던전을 찾으려고 한다니요.”
강만식이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던 인류 사회가 지금은 새 던전을 찾으려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번 매스컴 보도로 정부 지지율 하락이 눈에 띈 게 화근이지. 국민들이야 던전의 위험성은 안중에도 없고 당장 인플리케이션에만 관심이 쏠려 있으니까. 이걸 해결하면 희대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단 계산에서 나온 지침이지.”
게다가 그 이유가 단순 지지율 때문이라는 것도 결코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15년 전에 어느 중학교 남자 화장실에 변이 게이트가 생긴 적이 있어. 학자들은 그런 게이트가 어딘가에 또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찾아보자고 하더군. 새로운 초월석이 필요한 건 확실하니까.”
15년 전이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길드장이 정식 헌터가 되기도 전의 일이니, 다들 잘 몰랐다.
“따라서 앞으로 협회 산하의 모든 헌터 길드는 던전 찾기에 중점으로 나선다. 그럼, 각자 최선을 다하여 던전을 찾아보도록. 이상.”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지은이 먼저 탈출하듯 협회를 떠나려고 했지만, 강만식이 속박의 말 한마디를 건넸다.
“지은아, 밥이라도 같이 먹지? 얼굴도 오랜만에 보는데.”
‘독사 같은 놈.’
벌써부터 강만식의 그물은 자신의 주위 사방이 깔렸다.
이미 협회장 최현민이 강만식과 자신을 세트로 묶어 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한 팀이 되어 버렸다.
“그래, 전투에 나서기 전엔 배부터 든든히 채워야지.”
최현민의 비수와 같은 한 마디다.
협회장과 다른 길드장도 함께 있는 장소이기에 이렇게 된 이상 이지은은 거절할 수 있는 권리 자체가 없었다.
“……그러죠.”
***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고, 난 근처 편의점에 자리를 잡고 대충 허기를 때울 라면과 김밥을 먹던 중이었다.
[너희 길드엔 식당 없어? 왜 궁상맞게 이런 걸 먹어?]
흑염룡이 측은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물었다.
눈빛에는 “그게 맛은 있긴 하냐?”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그냥, 배가 많이 고픈 건 아니고 그렇다고 안 먹긴 뭐하고. 그래서 라면으로 대충 때우려고.”
[그래……. 많이 먹어라.]
“정령들은 밥 안 먹어?”
[어. 안 먹어.]
“신기하면서 부럽네.”
그렇다면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니까, 그건 조금 부럽다.
대충 식사를 때우면서, 휴대폰으로 뉴스 채널을 틀었다.
지금의 뉴스는 속보를 전하는 게 아닌, 토론처럼 한 주제를 두고 각자의 의견을 내세우는 시간이었다.
흰머리가 드문드문 자리 잡으신 어느 대학 교수님이 한마디를 꺼냈다.
-그런데 정말 던전이 사라진 게 인류에게 있어서 축배의 날일까요?
자동적으로 토론 내용에 신경이 집중되었다.
흑염룡도 내심 궁금했는지, 나와 같이 숨을 죽이며 뉴스 토론을 지켜봤다.
-그게 무슨 소리죠?
-생각해 보세요. 재앙이라 불리는 던전으로 인해 인류가 피해를 본 것도 있었지만. 무조건 피해만 봤습니까? 대표적으로 자원 뻥튀기. 그리고 던전이 등장하면서 인류의 새 유형인 헌터도 탄생하며 인류는 한 단계 더 강해졌습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재앙이라는 건 말 그대로 이득이 하나도 없이 모든 게 황폐하게 변하는 걸 뜻하는데.
막상 던전이 등장하고 나서 인류가 그런 재앙을 맞이한 게 맞는 것인가?
던전에서 가지고 온 초월석 덕에 인류는 희대의 자원 풍요로움을 맞이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헌터라는 존재.
과연 던전이 생겨나지 않았다면, 그런 든든한 버팀목인 초월적인 존재가 과연 탄생할 수 있었겠냐는 주장이었다.
-그런 정황들을 봤을 때, 전 오히려 던전이 완전히 사라진 게 인류에겐 재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래 인류의 습성이라 함은, 당연하게 누리던 것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 궁색한 법이거든요.
-그건 너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주장이 아닌가욧!
그 순간 반대쪽 진영에서 나온 고함에 가까운 의견이었다.
난 거기까지만 듣고 뉴스 채널을 껐다.
반대쪽 진영에서 무슨 말을 할지 확인해 보지 않아도 이미 뻔하지 않은가?
억측이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냐 등등.
논리는 없고 억지만 가득한 주장일 게 뻔하니까.
“이 양반 말씀 잘하시네. 안 그래?”
난 방금 나온 교수의 발언이 참 맘에 들었다.
협회에도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나와 얘기가 편할 거였고, 내가 지금 이렇게 고민하지도 않았을 게 분명해서다.
[그러네. 인간 중에서도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네.]
“이런 사람이 협회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맞아. 이런 사람을 위해서라면 나도 키스톤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어!]
흑염룡도 이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진심으로 그 마인드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런데 아직도 고민 안 끝났어? 어떻게 할지?]
“응. 계속 생각 중.”
나도 겉으론 태평해 보이겠지만, 과부화가 걸려 머릿속이 띵할 정도다.
게이트 수를 유지하면서, 초월석을 파는 일.
이게 말로만 쉽지 행동으로 옮기려고 하니 문제점이 한두 군데에서 발생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빨리 좀 정해. 조급해 미치겠으니까.]
“나도 그러고 싶다.”
어느덧 점심시간은 슬슬 끝을 향해 달렸고, 난 길드로 복귀했다.
‘이제 오후 업무를 진행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야겠다.’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가득해서일까?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뒤 문이 열릴 때 보통 안에 사람이 얼마나 탔는지를 확인하고 타는 게 정상인데.
이번에는 문이 열리자마자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몸이 움직여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만큼,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많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흑염룡은 이상한 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이상하네, 왜 이렇게 숨이 막히지?]
“뭐가?”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내뱉은 그 말.
아차 싶어서 황급히 엘리베이터 주위를 살폈다.
“…….”
그리고 익숙한 얼굴과 처음 보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나는 우선 익숙한 얼굴 앞에서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길드장님.”
눈치도 없이 길드장님이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확인도 안 하고 그대로 탄 것이다.
여기가 1층인데도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단 뜻은, 지하 주차장에서 올라온 것으로 보였다.
“어, 얼른…… 내리겠습니다!”
난 다급하게 현재 층을 확인하고, 다음 층 버튼을 연타했다.
그러면서 슬쩍 뒤를 확인했는데.
길드장 옆에 선 미모의 여성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이렇게 낯이 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