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미모의 불청객 (2)
올해까지 사용할 수 있는 반차는 얼마든지 남아있다.
언제건 쓰고 싶을 때 휴가를 낼 수 있는 셈이다.
이대로 반차를 내고 협회로 돌진.
그 뒤에 “나 헌터로 각성했소!”라고 의기양양하게 외치면 정식 헌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잠깐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생각은 금방 접었다.
‘너무 무모해.’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확실하게 알아봐야 할 것이 있다.
일단 그걸 알아보자고 마음먹었을 때, 임재형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내가 하도 깊은 생각에 잠기는 바람에 눈의 초점까지 사라진 것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고 여긴 모양이다.
난 황급히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니에요. 벌써 업무 시간 다 됐네요. 저 먼저 내려갑니다.”
이 상황에서 자리를 벗어나기 위한 최고의 핑계다.
헌터들이야 말이 출근이지, 업무 같은 것도 없고 그저 수련만 주야장천 하면 되는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일개 일반 직원인 난 그렇지 않았다.
“고생해라.”
다행스럽게도 임재형은 나를 쉽게 놓아주었다.
덕분에 그대로 내가 근무하는 인사과로 직행.
앉자마자 주위 눈치를 살폈다.
‘분위기가 여전히 심각하구먼.’
업무 시간이 이제 다 되었는데도 인사과 직원들은 업무를 하지 않고, 각자 모니터로 뉴스 기사를 연신 확인하고만 있었다.
그런 탓에, 인사과에는 ‘드르륵’거리는 마우스 휠 돌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난 일단 주변 직원들의 눈치를 보면서 길드 사내 사이트를 열었다.
[뭐 하려고?]
흑염룡은 그런 내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내가 하는 행동 전부가 자신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들이다.
하지만 남들 다 있는 곳이기에, 난 그녀의 질문을 애써 무시했다.
이 조용한 곳에서 혼잣말로 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내가 확인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SF 길드가 보유한 헌터들의 인사기록부.
그중에서도 ‘각성 시기’란을 전부 살폈다.
헌터들의 인사기록부에는 전부 각성 시기를 적어 놓으니까.
그렇게 오전 업무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때려 박은 뒤에야 전부 확인할 수 있었다.
“…….”
하지만 확인이 끝나고 나자 허탈감에 의자 등받이에 등을 푹 기댄 채 앉았다.
표정은 허망함 그 자체를 간직한 채로.
[도대체 왜 그래?]
영문 모르는 흑염룡은 계속해서 알려달라고 나를 귀찮게도 굴었다.
이번에도 흑염룡의 물음을 무시한 채 과장에게 한마디만 남기고 일어났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요.”
“그래.”
***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습관적으로 확인한 것은 바로 내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다.
흡연 장소는 우리 길드에서 여기 한 곳밖에 없기에, 길드 내의 흡연자 전부가 모이는 만남의 광장이다.
다행히 다른 부서는 오전 업무가 바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있는 인사과처럼 그 충격적인 기사를 계속 보고 있는 것인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아까 뭘 그렇게 열심히 확인하고 울상을 지은 거야?]
드디어 흑염룡의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시기가 왔다.
난 일단 흑염룡의 질문에 답하기 전, 협회로 갈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협회엔 왜?]
“가서 헌터로 각성했다고 말하고 정식 헌터가 될까 생각 중이었지.”
[하고 나서는?]
“앞으로 얻을 초월석 팔려고 했지. 뭐…… 어떻게 얻었는지 그 경로를 말해야겠지만, 네 존재는 숨기면서 대충 거짓말로 넘어갈 생각이었으니까.”
[협회가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닐 텐데…….]
나도 그건 동감이다.
어설픈 거짓말 같은 거에 넘어갈 협회인가.
엄연히 그곳도 국가 기관 중 하나인데.
하지만 내가 그 계획을 관둔 건 이게 결정적인 이유가 아니다.
[그래서 아까 네가 열심히 확인한 게 뭔데?]
“여기 길드 소속 헌터들의 각성 시기.”
[……각성 시기?]
“응. 다들 언제 헌터로 각성되었는지 전부 확인했지. 하나도 빠짐없이.”
[그런데 울상인 이유는?]
“나처럼 서른 살 가까이 돼서 각성한 사람 단 한 명도 없어. 고로, 내가 협회에 가서 갑자기 헌터가 되었다는 말은 오히려 더 의심을 사게 될 일이란 거지.”
내가 허탈했던 게 바로 이거다.
보통 헌터들이 각성하는 건 내가 알기로도 유년기나 청소년기 중에 일어난다.
하지만 그런 헌터들 중에서도 나처럼 성인이 된 이후에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헌터가 된 사람이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걸고 찾아본 것이다.
게다가 내가 근무하는 길드는 국내에서도 최고라고 불리는 대형 길드 SF.
보유한 헌터의 수가 가장 많은 곳이다.
그만큼 능력 확실한 헌터들도 가장 많다.
그런 SF 길드에서도 헌터들의 각성시기는 전부 유년기 혹은 청소년기다.
따라서 내가 처음 생각한 것처럼 무턱대고 반차 내서 협회로 돌진하는 건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 될 뻔한 일이었다.
[그럼…… 이제 어떡하냐?]
“나도 모르겠다…….”
일단 내가 정식으로 헌터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뒤에 초월석을 팔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헌터가 되는 길부터 가시덤불……보다 더 심한 용암이 깔려 있다.
발 닿으면 그대로 녹아서 사라질 그런 용암이.
“어떡하지…….”
난 먼 산을 바라보며 연기만 연거푸 내뿜었다.
어떻게든 뾰족한 대안을 찾아야 했으니까.
***
이지은이 협회 주차장에 도착해 차를 주차하고 나오자마자, 뒤에서 듣기 싫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은이 오랜만이네? 요새 얼굴 보기 힘들다?”
“…….”
상대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이지은은 무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너 날 싫어하는 티 너무 대놓고 내는 거 아니냐?”
상대가 이지은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날카로운 인상만큼이나 머리카락도 한올 한올 왁스로 뾰족하게 만든 것처럼 삐죽 솟아 있는 남자.
바로 SF 길드장 강만식이다.
나이 서른아홉.
젊은 나이인데도 대한민국 헌터계의 권력을 협회장 다음으로 꽉 쥔 인물이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이지은은 그제야 딱딱한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의상 분위기가 평소랑 많이 다르네? 피크닉이라도 다녀 와?”
강만식은 시선으로 이지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이지은은 그렇지 않아도 무기한 휴가를 내고 전국 일주를 할 생각이었기에 평소 입던 정장이 아닌, 반바지에 면티, 가디건 하나 걸친 캐쥬얼한 모습이었다.
“휴가 중에 불려 나온 거거든요.”
“아, 그래? 우리 지은이가 이런 청순함도 다 있었네?”
그러면서 강만식은 슬쩍 이지은의 어깨에 손을 올렸지만.
이지은은 정색하며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저희 파티 온 거 아니잖아요? 공적인 회의 온 거지.”
개수작 부리지 말라는 경고였다.
“허허, 지은아.”
강만식이 인자한 웃음을 보인 것도 아주 잠시였다.
펄펄 끓는 냄비에 눈 한 송이를 넣으면 금세 사라지는 것처럼, 그의 미소도 증발하듯 사라진 뒤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강만식은 이지은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속삭이며 말했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도 이빨 보이면 복날의 개처럼 맞는 법이란다. 적당히 해. 귀엽게 봐줄 때.”
“…….”
살벌한 말을 내뱉은 뒤, 강만식은 이지은의 귓가에서 얼굴을 떼고 다시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자, 갈까? 회의하러.”
그렇게 이지은을 앞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협회 회의실로 향했다.
‘사이코 새끼…….’
이지은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분한 마음을 삭힐 뿐이었다.
이지은과 강만식의 관계.
결코 좋은 관계가 아니다.
이지은은 강만식 때문에 지금의 길드장이 되었다. 17세에 헌터 특목고에 입학한 것도 전부 앞에 있는 강만식 때문이다.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길드장을 서른 살에 되었으면 ‘덕분’이 아니냐란 말이 나오겠지만, 이지은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이 인간을 알게 된 게 인생 최악의 악운이라고 생각한다.
왜냐.
강만식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지은을 이용했던 족속이었으니까.
분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가 가진 헌터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강만식은 상대의 능력을 알아보는 안목도 상당히 뛰어난 인물이다.
처음 강만식의 눈에 띈 때가 이지은이 15살, 강만식은 24살 때였다.
당시 강만식은 S급은커녕 B급에 지나지 않은 헌터였다.
강만식은 일찍이 이지은의 재능을 알아보고 직접 자신의 부모님을 찾아가 헌터 특목고 진학을 주도한 인물.
특목고 입학 후 첫 여름 방학을 맞이하기도 전에 졸업한 것은 순전히 이지은의 능력이다.
그러나 그게 실수였다.
아무것도 몰랐던 풋내기 어린 학생 이지은은 그저 학교생활만 열심히 하고 우수하여 일찍 졸업한 것인데, 그거 하나로 강만식은 확신할 수 있던 거다.
‘역대급 헌터 하나 나오겠구나.’라고.
실제로 이지은의 능력을 알게 된 강만식은 그 뒤로 이지은을 감시하듯이 주변을 서성이며 그녀를 데리고 국내 게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게이트를 찾으면 곧장 협회에 알려 수고비를 챙기고, 이지은에겐 원금 30% 수준만 톡 떼어준 양아치다.
이지은이 찾은 게이트 급수에 따라 그 수고비가 달라졌는데, 1,000만 원을 받았다고 치면 700만 원은 강만식이 꿀꺽하고 나머지 300만 원을 이지은에게 준 것이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강만식은 지금의 SF길드를 차렸고, 협회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당시 이지은은 강만식이 뒤에서 그런 짓을 하는 줄 정말 몰랐다.
고작해야 고등학생밖에 되지 않는 나이였으니까.
세상 물정 정말 하나도 몰랐던 애송이였다.
나중에 이것을 알고 났을 때 이지은은 따졌지만, 오히려 강만식은 더욱 뻔뻔하게 나왔다.
“그래서 뭐? 협회장한테 가서 이르게? 일러 봐. 협회장은 누구 말을 더 믿을지.”
실제로 그간 세운 공로에서 이지은의 이름은 처음부터 없었고, 협회장과 강만식은 이미 돈독한 사이였다.
게다가 협회장 최현민은 강만식이 이지은을 발굴했다고 여겼기에, 오히려 강만식의 능력만 높게 샀다.
정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받은 격이다.
하지만 이지은이 모든 걸 알게 된 시기는 너무 늦어 버려 수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강만식은 갑자기 인자한 모습으로 돌변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성공한 게 다 네 덕분인데, 선배 된 도리로 은사와 같은 후배에게 선물 하나 정돈 줘야지.”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아테나 길드다.
이지은을 길드장에 앉혀 버리면서 협회의 간섭을 더욱 심하게 받도록 하기 위한 강만식의 설계.
그리고 이지은이 현 비서실장 박우민을 그토록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그 박우민은 본래 강만식의 비서였기 때문이다.
강만식은 처음부터 이지은을 자유롭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추태를 알고 있기에 약점이라고 생각했고.
그렇다고 자신이 모든 걸 밀착 감시할 수 없으니 신생 길드 안정화를 위해 능력 있는 비서 하나 소개해주겠다며 자신의 비서를 아테나로 보내 버린 것이다.
이것이 이지은이 비서실장 박우민에게 한 말 중.
“친한 길드장 하나 있잖아요.”라고 말한 사람이 바로 앞에 있는 SF길드장 강만식이다.
박우민은 한사코 강만식의 비서를 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이미 이지은이 따로 알아낸 사실이다.
‘이 역겨운 놈한테서 언제 해방될까.’
이지은의 인생 목표는 이 악연을 끊는 것이다.
강만식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누구든 이용해 먹고 남는 추악한 인간이었으니까.
그런 다짐을 하는 사이, 어느덧 회의실 앞까지 도착했다.
‘일단 무슨 회의인지나 알아보자. 이것도 강만식이랑 연관 있을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