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역시나, 역시나 (2)
흑염룡만 내게 있다면, 초월석은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그래도 정확한 수량 파악이 필요해.’
하지만 정확히 내가 얻을 수 있는 초월석을 얼마나 남은 건가.
이미 인류 빅뱅의 역사는 50년이 넘었다.
아무리 본래 그녀의 세상에 있던 초월석을 많이 쪼갰다고 하더라도, 50년간 소비된 양도 상당할 것.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했다.
“과장님,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어, 그래.”
화장실을 핑계 대며 자리를 피했다.
흑염룡과 조용히 얘기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해서다.
화장실에 도착하자마자 일일이 칸 하나하나를 뒤져, 사람이 있나 없나를 확인했다.
그리고 출입문도 꼭 닫아두고, 세면대 앞에 섰다.
괜히 귀에는 블루투스 이어폰까지 착용했다.
혹시라도 흑염룡과 한창 대화 중에 누가 들어오면, 전화하는 척이라도 하기 위함이다.
[남자 화장실이라~ 15년 전 생각나네.]
나와 흑염룡이 처음 조우한 곳도 남자 화장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땐 내가 중학생이었고, 지금은 어엿한 회사원이란 거다.
“야, 시끄럽고. 뭐 하나 묻자.”
[뭐든.]
“초월석. 정확한 수량 얼마나 남았어?”
[모르지.]
“…네가 모르면 누가 아냐? 도대체?”
정작 중요한 걸 물을 때마다 모른다고 답하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하, 나 참!]
흑염룡은 이제 새침한 모습을 보였다.
[너희 인간은 밤하늘의 별을 일일이 다 세서 개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니?]
“…그건 아니지.”
[그거랑 똑같아.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고.]
“그래도 인류 빅뱅이 시작된 게 50년이 넘었어. 그간 소비된 양도 많을 텐데, 얼마나 남았는지 몰라?”
[응. 몰라. 그리고 굳이 걱정 안 해도 돼. 밤하늘의 별이 사라지는 것과 똑같은 거니까.]
“그게 무슨 뜻인데?”
[너희 인간들은 키스톤을 이용해 생활 자원을 복제하잖아! 그게 원래 키스톤이 가진 오리지널 능력이란 말씀!]
“그렇다면……?”
[응. 키스톤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신을 또 복제해. 그래서 수량에 제한이 없는 거야. 던전도 마찬가지지. 정복하지 않고 놔두면 던전도 복제하니까.]
이거 꽤 유용한 정보다.
결국엔 초월석을 하나만 보존하면 수량은 계속 늘어난다는 뜻이니까.
흑염룡은 설명을 이었다.
[단, 키스톤의 등급에 따라 복제하는 양은 정해져 있어. 너희가 정의한 가장 낮은 등급인 E급의 경우 2~3개 정도가 한계야.]
자원 뻥튀기에 이용되는 초월석도 등급이 낮으면 복제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
다 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결론은, 아직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만 알아두면 됐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렇게 집착해? 아까 표정 보니까 뭔가 되게 깊이 생각하는 거 같던데. 뭔데 그래?]
난 사무실에서 본 뉴스 속보를 보고 생각해 낸 계획을 그제야 전했다.
바로 새로운 초월석을 얻고, 그것을 판다.
그 돈으로 넓은 장소를 임대, 혹은 매입한다.
그리고 그곳에 훨씬 더 많은 간이 게이트를 펼쳐 놓는다.
마치 농장처럼.
[흐음… 내키진 않는데. 뭔가 우리의 문물이 이용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
“그럼, 뭐. 방법 있어? 없잖아? 그 집에 어떻게 농장처럼 펼쳐 놓을 건데.”
[……끄응.]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흑염룡도 이미 내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 잘 안다.
그 집에 계속 있는 한, 흑염룡이 원하는 만큼의 게이트는 열 수 없으니까.
심오한 표정으로 고민을 이은 흑염룡은 “쩝.”하며 생각을 마쳤다.
그리곤 새끼손가락만 펼치며 말했다.
[대신 조건 있어. 이건 꼭 지키기로 약속해.]
“말해 봐. 들어보고 결정한다.”
[아니! 지켜준다고 약속해야 말할 거야!]
절대 이것은 양보할 수 없다는 강한 어필.
괜히 피곤하게 서로의 입장만 완고하게 하는 씨름을 할 필요가 없다.
난 흑염룡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오케이, 좋아. 약속한다. 이제 말해 봐.”
[간이 게이트는 무조건 5개 단위로 유지하기! 5개가 초과한 시점부터 하나씩만 초월석을 가져가! 최소한의 안전장치야!]
5+1이라고 생각하면 됐다.
다섯 번째 게이트가 열렸다면 여섯 번째는 정복 가능.
그리고 또 열 번째까지 열고, 열한 번째가 정복 가능이다.
생각 외로 간단한 조건이라 마음이 놓였다.
크루즈가 넘어오면 어차피 나도 피해를 보니, 나에게 불리한 조건만 있는 약속은 아니다.
“그 정도는 쉽지.”
[일단 집이 좁으니까 그것만 지켜주면 돼!]
흑염룡과 나는 그렇게 서로 손가락을 건 채로 흔들었다.
벌컥.
그러던 중 다른 부서원 중 누군가가 불쑥 화장실로 들어섰고, 난 황급히 걸었던 손가락을 빼며 괜히 어깨를 돌렸다.
“어후… 잠을 잘못 잤나… 어깨가 왜 이리 아파…….”
“…….”
화장실로 들어온 사람은 분명히 내가 허공에서 손가락을 살살 흔드는 걸 봤다.
그가 문을 연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으니까.
그는 날 미친놈 취급하는 시선으로 봤다.
“어깨가… 아프네~ 왜 이렇게 아프지~”
난 ‘어깨 스트레칭 중이었습니다!’라고 세뇌라도 시킬 심산으로 나가는 내내 그 말과 함께 어깨를 돌렸다.
-어이, 윤도원이. 어디냐? 출근은 했어?
화장실에서 나오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스페셜 포스 길드 소속 헌터.
나와 사석에서도 몇 번 만나면서 친해진 헌터다.
그와 친해진 계기는 자기가 원하는 기간에 휴가 결재가 나도록 도와준 것이 있어서다. 그 부탁을 들어주고 말을 트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나는 그에게 곧장 답했다.
-출근했죠.
-오, 네가? 웬일이야. 매일 간당간당하게 출근하던 놈이. 아직 출근 시간 30분도 넘게 남았는데.
-…시비 걸려고 연락하신 거예요?
-아니지. 담배나 한 대 태우자. 기분도 뭣 같은데.
뭐가 또 이 양반을 예민하게 만들었을까.
-옥상 흡연실로 와라.
일단 그래도 부르는 거니까, 옥상으로 향했다.
***
“어이~ 인사과 윤도원 씨~”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부른 헌터가 손을 흔들며 날 반겼고.
[오호. 헌터긴 헌터인데. 그렇게 강해 보이진 않는다?]
흑염룡은 그를 보자마자 한 말이다.
흑염룡의 말이 맞다.
나를 부른 헌터의 이름은 임재형,
나이는 서른셋.
나 보다도 세 살이 많다.
협회 인증 공식 랭크는…… C급.
30대에 길드장을 하는 사람도 많고, 아니면 최소 A급인 사람도 많은데 같은 30대에 C급이니, 그런 헌터와 비교하면 강하지 않은 헌터는 맞다.
그래도 사람 성격은 좋아서 일반인인 나와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왜 불렀어요, 형? 갑자기.”
“이거 봤냐.”
그의 앞으로 다가가자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다.
어느 기사를 띄워 놓은 화면이다.
<유가 폭등 예정! 리터당 2600원?!>
이미 사무실에서 봤던 그 속보다.
하지만 TV와는 달리 휴대폰이라는 작은 액정이다 보니, 제목은 거기까지만 나타났다.
“아, 봤어요. 근데 저는 차가 없어서.”
“어휴, 태평한 소리. 이것도 봐라.”
임재형은 이제 다른 기사를 보여줬다.
<모든 발전소 가동 중단돼……! 폐쇄한 원자력 발전소 재가동 검토.>
<당월부터 수도, 전기, 가스 등 공과금 폭등할 가능성 농후…….>
역시나 초월석을 사용하는 모든 분야의 문제점이 던전 완전 정복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속속들이 드러나는 중이다.
특히 첫 번째 기사의 ‘폐쇄한 원자력 발전소’.
이것은 인류가 초월석을 이용한 ‘자원 뻥튀기’ 기술을 터득하자, 위험부담이 가장 컸던 원자력 연구소를 전부 폐쇄했다.
애당초 폭발하면 재앙 그 자체인 원자력 발전소를 위험을 무릎 쓰고 가동한 이유가 무엇인가?
독보적인 양의 에너지.
여타 화력이나 풍력, 수력 발전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양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서다.
그러나 초월석을 이용한 자원 뻥튀기 기술이 개발되자 이제 원자력 발전소는 그 독보적인 이점이 점점 퇴색되었다.
일각에선, “기존에 가동되던 원자력 에너지에 초월석을 집어넣어, 반영구적으로 사용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지만.
그 의견은 바로 묵살되었다.
이유인즉슨, 만약 그랬다가 원자력 발전소가 사고로 폭발이라도 한다면, 원자력 발전소가 있던 자리는 물론이요.
그 지역의 영토까지 아예 소실된다는 학자들의 의견이 강해서다.
굳이 그런 위험을 무릎 쓸 필요가 있나? 안전한 화력, 수력, 풍력 발전소에서도 사용하면 후폭풍이 없는데.
결국, 이 의견이 가장 지배적으로 되었고, 위험부담이 큰 원자력 발전소는 완전 폐쇄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안전한 수력, 풍력, 화력 발전소에만 초월석이 쓰이면서 원자력 발전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초월석이 이젠 힘을 잃었으니, 그 공백을 충당하기 위해 가동 중단한 원자력 발전소까지 재가동하겠단 검토 중인 것이다.
“내가 슬쩍 들었거든?”
임재형은 뭔가 귀중한 정보를 들은 듯했다.
“도원이 넌 공과금 한 달에 얼마 내냐?”
“저요? 2천 원쯤?”
“네 기준으로 하면, 그 요금 당장 다음 달에 20만 원까지 오를 수가 있대요. 무려 100배나 뛰는 거라고. 이게 말이 돼? 초월석은 왜 갑자기 말썽이야.”
“…확실히 크긴 크네요. 초월석이 사라지는 거.”
2천 원에서 20만 원.
뭐, 가진 거 많은 사람이야 별로 부담으로 느끼지 않겠지만, 나 같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차액 18만 원으로 많은 걸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건 어디서 들은 거예요?”
“야, 초월석 사용법이 개발되면서 헌터도 공무원이 됐잖아. 특히 우리 길드장님은 1급 공무원이고. 그러니 국가 정세를 안 듣겠냐? 헌터는 공무원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공무원인데? 길드장님이랑 친한 녀석한테 슬쩍 들었다.”
초월석을 이용한 자원 뻥튀기가 개발되고.
국가는 이제 초월석을 얻기 위해 혈안이었다.
그래서 그 시점부터 헌터는 비영리단체가 아닌, 공인 신분이 되었다.
국가가 직접 관리하고, 책임지겠단 뜻이다.
왜냐.
그들은 국가에게서 가장 중요한 초월석을 조달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니까.
헌터는 랭크에 따라 1급부터 6급까지 부여받는다.
당연, 헌터의 랭크는 S급부터 E급이다.
E급 헌터가 되면 6급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공무원 중 가장 되기 힘들며, 육성 기간도 오래 걸리는 대표적인 공무원인 비행기 조종사.
헌터는 그런 조종사보다도 귀하고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 이미 위에선 얘기가 그렇게 오고 가나 봐요?”
“거의 확정 났다는 거 같던데? 언제 발표될지가 관건이지.”
내가 이 회사를 바로 관두지 않는 이유.
지금 임재형의 입에서 나온 것 때문이다.
어디 일반인이 이런 고급 정보 얻을 수 있는가?
그간 부탁도 들어주고, 서로 사적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그는 정말 나를 동생으로 생각했고, 이런 건 말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박힌 것이다.
그리고 문득, 난 임재형을 상대로 한 가지를 떠 보고 싶었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하며,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형. 그런데 만약 말이에요. 그 던전이 사실은 우리 인류에게 꼭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생각해요?”
[야! 미쳤어?!]
흑염룡은 격분했다.
그런 기밀을 왜 지금 말하냐고 따지는 중이다.
“……던전이 꼭 존재해야만 하는 거?”
“네. 절대 사라지면 안 된다면?”
임재형은 나와 지그시 눈을 맞추더니 검지를 까딱거렸다.
더 가까이 와 보란 뜻이다.
그렇게 가까이 다가가자.
“미친 소리 하고 있어!”
고함과 함께 내 이마를 강하게 밀쳤다.
“너 인마! 던전에서 희생당한 헌터가 몇인데! 그런 발언은 그 헌터들의 순국선열을 짓밟는 짓이야! 알아?!”
그는 불쾌한 티를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왜냐, “제가 사실 게이트 열 수 있는데. 초월석 새로 얻을 수 있어요! 그 초월석 있으면 이 인플레이션 해결도 할 수 있어요! 근데 조건이 일정 수의 던전은 유지해야 해요!”라고.
어딘가에 가서 말하면.
“아이고! 그렇습니까?! 이거 중요한 정보를 덕분에 알게 되었군요!”라며 친절하게 답하겠나?
지금 임재형의 반응과 똑같을 거다.
난 그것을 실험한 것이다.
그리고 세상엔 믿을 사람 없다.
아니,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대부분 그렇다는 뜻이다.
만약 내가 그런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사람인 걸 사악한 마음을 품은 누군가가 안다면?
인간의 욕심은 본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무참히 가를 수 있다.
자칫하면 나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는 문제다.
‘하…… 진짜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안전하고 의심 없이, 초월석을 판매할 수 있을까.’
이게 지금 내가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