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역시나, 역시나 (1)
[일어나아~! 일어나 자식아! 벌써 알람 두 번이나 울렸어! 시끄러워 죽겠다고오오~!]
“하아…….”
알람보다 시끄러운 흑염룡의 징징거림에 결국, 눈을 떴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확인한 시간.
오전 6시 30분.
나는 원체 아침잠이 많아 알람을 몇 개씩 설정하는 사람이다.
출근을 위해선 늦어도 7시 30분에 일어나서 준비한다.
그러면 딱 아슬아슬하게 출근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병적으로 많은 아침잠 때문에 알람은 6시부터 7시 반까지.
15분 단위로 쭈르륵 맞춰 놓는다.
그렇게 많은 알람을 맞춰도 결국엔 7시 30분에 일어나는 사람.
그게 나다.
“…이런 건 편하네.”
그런데 알람보다 시끄러운 흑염룡 때문에 정말 오래간만에 7시 전에 눈을 떴다.
그저 시끄러운 게 다가 아니다.
얼마나 알람 소리에 괴로웠는지, 내 몸을 밀치고 흔들며 정말 귀찮게도 굴었다.
“세상은… 흑백 공식…….”
흑염룡과의 동거로 불편한 흑 속에서도 확실한 기상이란 백이 존재했다.
[어? 뭐? 흑백 뭐?]
“아니다.”
난 그렇게 무거운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에 머리를 박고 한창 머리를 감던 도중 눈을 흘깃 뜬 순간.
흑염룡과 바로 눈이 마주쳤다.
[안뇽?]
“아! 깜짝이야!”
놀란 난 샤워기를 떨어트리며 뒤로 자빠졌다.
본래 흑염룡은 나와 눈높이가 맞는 곳에서만 날아다녔는데, 지금은 세면대 바로 아래에서 튀어나와 정말 귀신인 줄 알았다.
[푸하하! 이렇게 놀려 먹는 것도 꽤 재미가 쏠쏠하네?]
“이게 미쳤나 진짜!”
격분한 난 샤워기를 들고 흑염룡을 잡으려 했다.
여기저기 난사되는 물줄기가 화장실 전체를 적시자 흑염룡이 말했다.
[아! 차가워!]
“…너 물에 안 맞는 거 아니냐?”
실제로 흑염룡의 머리카락과 옷이 조금 젖어 있었다.
분명히 정령이고, 나에게만 보이는 녀석이라 이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달랐다.
아니면 어떤 비밀이 있는 듯했다.
[다른 사람이 뿌린 물은 안 맞더라도. 내 주인인 네가 뿌린 물은 맞아. 그러니까… 음… 네 손을 거친 것은 남들 눈에 투명 상태인 나도 영향을 받는단 말씀!]
“…참 뭐가 그리 복잡하냐.”
[복잡해? 단순한데?]
“됐다, 시끄러워.”
애써 무시하고 다시 묵묵히 출근 준비에 나섰다.
그렇게 약 30분 뒤.
출근 복장인 깔끔한 정장으로 갈아입은 뒤에 내 방.
그것도 침대 바로 옆에 있는 게이트가 유독 눈에 밟혔다.
저 게이트는 흑염룡이 말한 대로 열어둔 것이라 안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게이트를 방치하면 몬스터가 내 방에서 튀어나오는 거 아니냐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흑염룡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그건 내가 계속 강조하며 말했잖아! 인간들이 먼저 건드려서 몬스터들이 밖까지 나와서 아예 접근도 못 하게 하려는 거였다고!]
즉, 요는 이렇다.
우리 인간.
그중에서도 헌터들은 던전이 발견되면 선발대를 들여보내 던전 안을 면밀히 조사하지 않던가?
바로 그 선발대 때문에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들이 침입받았다고 여기고 보안을 강화하면서 생긴 일이란 것이다.
따라서 내 침대 옆에 있는 게이트는 들어가지만 않으면 절대 밖으로 나올 리가 없단 뜻이다.
“음. 그건 그거고. 이거는 확실히 알아보는 게 좋겠지?”
그런 게이트를 보며 한가지 호기심이 들었다.
[뭘?]
흑염룡이 물었지만, 난 답하지 않고 집 서랍을 뒤져서 물건 하나를 찾았다.
“…하도 안 써서 이렇게 구석에 박혀 있었네.”
[……줄자?]
내가 찾은 것은 3m짜리 반자동 줄자다.
[그걸로 뭐 하려고?]
“이걸 알고 싶었거든.”
줄자로 이제 게이트의 규격을 재기 시작했다.
높이는 2m가 조금 넘었고, 너비는 1m 안팎이다.
“흑염룡. 네가 만든 게이트는 이렇게 규격이 다 똑같아?”
[조금씩은 달라.]
“얼마나 다른데? 높이가 뭐 5m짜리도 있고 그러나?”
[아니, 그 정돈 아닌데. 많이 차이 나야 30cm 정도?]
그럼 됐다.
오차범위가 크지 않다는 거니까.
[근데 이 쓸데없는 행동은 왜 하는 건데?]
“어허, 전혀 쓸데없는 게 아니야.”
흑염룡의 눈엔 그리 보일지 몰라도 상당히 중요한 과정이다.
난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유가 뭔데?]
“흑염룡. 네가 연 게이트는 5개 정도가 모여야 정식 던전 하나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지? 평균적으로.”
[응.]
“내 집을 봐. 게이트 몇 개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아…….]
내가 살고 있는 원룸형 오피스텔은 10평이 간당간당하다.
평수만 10평이지, 배치된 가구가 차지한 자리를 전부 뺀다면?
7평은 될까 싶었다.
7평이면 대략 23제곱미터.
가로, 세로의 길이가 각각 정확히 23미터란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는 집이 정확한 23 정사각형도 아니고 크고 작은 직사각형이 합쳐져서 23제곱미터가 된 것.
따라서 실제 게이트를 펼쳐 놓을 수 있는 공간은 5평도 채 되지 않을 수 있다.
집이 너무 좁다.
크루즈를 억제하기 위해선 많은 수의 게이트가 필요한데, 내 집에선 그걸 행할 수가 없다.
정식 던전 하나의 효과를 내는 5개의 간이 게이트.
그 5개도 내 집에 전부 간당간당하게 들어선다는 뜻이다.
[그럼… 규격을 잰 이유가?]
“넓은 장소가 필요해. 몇십 개, 혹은 몇백 개의 간이 게이트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은 장소.”
[…너 혹시 재벌 2세, 이런 거야?]
“갑자기 왜?”
[넓은 장소가 필요하단 건 그만한 땅이라도 사겠단 거 아냐? 그건 재벌 2세만 가능하잖아?]
그런데 오해를 해도 단단히 해 버렸다.
“내가 재벌 2세면. 이런 곳에서 살고 있겠냐?”
[……아, 그러네.]
다시 내 집을 훑고 한 답이다.
[아니면 뭐… 어디 아는 곳이라도 있어? 네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
“아니, 그런 게 어디 있어. 땅이나 건물을 사야지.”
[……돈 없다며?]
“이제 만들어야지.”
[어떻게?]
“잘.”
[……?]
흑염룡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정녕 자신이 들은 게 정확한 답인가를 의심하는 중이다.
“뭐, 지금 말해도 장황한 설명밖에 안 되니까. 일단, 그렇게 알고 있어.”
줄자는 침대에 던져 놓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내가 다니는 회사로 향했다.
회사로 향하는 첫 번째 관문.
지옥철.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지하철은 만원이며,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른 시간이면 뭐하나?
직장인들에겐 전혀 이른 시간이 아닌데.
따라서 각자의 회사로 향하는 사람들이 출근 시간에 몰려 지옥철을 이루고 말았다.
[아오! 진짜!]
사람들 사이에 겹쳐져서 힘든 건 나인데, 오히려 흑염룡이 짜증을 냈다.
남들 다 있는 곳이라 그녀에게 뭐라 말을 하지 못해, 계속 불평 섞인 외침을 들으면서 지하철을 타고 있노라니.
정말 곤욕도 이런 곤욕이 따로 없었다.
[이봐요! 주인님! 회사원 같은 거 때려치우고 그 시간에 능력이나 연마해서 정식 헌터 되면 되잖아! 그럼 회사원보다 훨씬 많이 벌 건데!]
뭐가 그렇게 견디기 힘들었는지, 나를 향한 조언일지 충고일지 모르는 말이다.
하지만 대답은 할 수 없어서 난 지하철 천장에 대고 검지만 입술에 가져다 댔다.
‘조용히 좀 해라, 좀.’
그러던 중, 내 바로 옆에 있던 한 승객과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의 눈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가락질을 하고 있으니 미친 사람을 보는 눈초리였다.
“하하…….”
난 그를 향해 멋쩍게 웃고, 이젠 흑염룡을 향한 손짓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하고, 던전을 탈출할 때처럼, 후다닥 달려서 지옥철을 벗어났다.
‘던전을 경험해서 그런가. 현실도 치열한 게 던전이랑 비교해도 손색이 없네.’
이미 던전과 비슷한 것을 일반인이 매일 겪고 있단 건 아마 나만 알고 있겠지.
***
도착한 회사 건물 앞.
그런데 흑염룡은 다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다니는 회사란 게…….]
“응. 헌터 길드 ‘스페셜 포스’.”
스페셜 포스는 헌터계의 독보적인 특수한 길드가 되겠다는 길드장의 염원을 담은 이름이다.
약어로 SF라고도 부른다.
난 이 길드의 경영지원부.
그중에서도 인사과에서 근무한다.
[……그런데 왜 회사라고 해? 보통 길드는 길드라고 하잖아?]
“그건 헌터들이나 쓰는 말이야. 나처럼 비헌터 직원은 회사라고 말해. 그게 우리끼리의 암묵적인 규칙이고.”
누가 나서서 그렇게 부르라고 시킨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길드‘원’이라는 말은 보통 길드의 구성원인 헌터들에게나 해당된다.
길드라는 이름을 걸고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은 헌터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나 같은 일반인은 그냥 회사라고 부른다.
이런 현상과 비슷한 거다.
회사원들이 퇴근 시간이 다 되었는데 상사가 아직 퇴근하고 있지 않아서 눈치 보느라 퇴근 못 하는 거.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흑염룡이 했던 말.
회사원 때려치우고 능력이나 연마해서 정식 헌터가 되란 것.
그것도 내 계획에 있다.
그러나 길드를 관두는 것은 아직 하고 싶지 않다.
왜냐, 내가 근무하는 스페셜 포스 길드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길드 중 하나.
그런 길드의 인사과에 있는 나이기에 일반인임에도 헌터 관련 지식은 잡다하게 많이 알 수 있던 이유다.
게다가 인사과에 근무하면서 소속 헌터들 휴가 일정 조율 등등.
그런 업무도 맡고 있기에 친해진 헌터도 몇 있다.
따라서 지금 관두는 것은 시기상조.
빼 먹을 거 다 빼 먹은 다음에 관두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나도 다 계획이 있다고.’
그렇게 출근을 위해 길드 건물로 들어섰고, 내가 근무하는 층으로 향했다.
***
‘분위기가… 다들 왜 이러냐?’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든 생각이다.
오늘 회사의 분위기가 남다르다.
평소라면, 다들 업무 시작 전에 모닝커피나 한잔 하든가, 아직 자리에 앉아 있지도 않을 터다.
그런데 전부 제각각 부서에 모여서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근무하는 인사과도 예외가 아니었다.
내 직속상관인 과장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과장님 뭘 그렇게 보세요?”
“어, 도원이 왔어? 이거 봐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이러냐?”
“네?”
과장을 포함한 인사과원들이 보고 있던 것은 컴퓨터로 보는 아침 뉴스 속보.
[유가 폭등 예정! 리터당 2600원?! ‘자원 뻥튀기’ 시절 전보다 심각한 상태로 돌아가…….]
속보 하단에 뜬 자막이 먼저 보였고.
-오늘 새벽, 산유국들의 공식 발표가 잇따랐습니다. 기존 초월석을 이용한 이른바, ‘자원 뻥튀기’ 기술이 원유에 더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발표입니다. 초월석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이제 더는 원유를 복제, 재생산하지 않는다는데요.
뉴스 앵커가 육성으로 소식을 전했다.
역시나, 내가 예상한 그것이 오고야 말았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솔직히 몰랐다.
-그로 인해 반영구적이었던 원유는 이제 예전처럼 고갈 위험 자원이 될 것이라는 공식 발표입니다.
“이야, 세상이 어떻게 미쳐 돌아가는 거냐. 던전 완전 정복해서 기뻐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과장님은 정말 세상을 잃은 듯한 목소리다.
그도 그럴 것이 리터당 100원 하던 휘발유를 이제 26배나 많이 줘야 하니, 자차로 출근하는 사람 입장에선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중이긴 한데… 너무 빠른 감이 없잖아 있다.
‘이제… 초월석을 팔아먹으면 되는데. 어떻게 팔까.’
난 이제 이것을 고민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