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7화 (7/200)

§ 7화. 개봉박두 (2)

아직 레벨이 1밖에 되질 않아서 은신과 똑같이 제한적이라고 한 흑염룡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가장 만만한 물건을 눈으로 찾았다.

내 집에 있는 물건 중 가장 만만한 것.

시선은 금방 멈췄다.

그 조건에 부합한 물건을 쉽게 찾았기 때문이다.

바로 싱크대 옆 접시 건조대의 종지.

저번 주쯤인가?

갑자기 캔맥주가 당겨서 안주로 집에 있던 육포를 구우면서 기름장 만들 때 쓴 종지다.

그것을 노려보며, 속으로 계속 이것만 생각했다.

‘떠올라라, 떠올라라.’

그러자 종지가 혼자서 진동하더니, 접시 건조대에서 약진하듯, 튀어 올랐다.

“와우! 흑염룡! 이거 대박이잖아!”

정말 내가 한 행동이지만, 믿기지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기쁘기도 했다.

염력이라는 초능력을 정말 얻게 되다니.

이런 생각만 가득했다.

들뜬 마음에 나도 모르게 종지에서 눈을 떼고, 흑염룡을 쳐다보던 그때.

쨍그랑-!

“……어라?”

허공으로 튀어 올랐던 종지가 바로 땅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레벨 1인데 집중도 안 하니까 저 모양이 되지. 어휴, 쯧쯧.]

흑염룡은 한심하단 듯이 혀를 찼다.

“으흠, 이런 거구나? 레벨의 의미.”

그래도 확실히 알았다.

레벨 1이라서 정말 기초적인 것만, 그마저도 잠깐 할 수 있는 수준.

종지를 띄우는 것은 성공했지만 오랜 시간 유지하는 것엔 실패다.

[얼른 저거나 치워. 깨진 조각을 밟으면 어쩌려고.]

“…엄마도 아니고 잔소리는.”

이렇게 내가 가지게 된 능력의 실험은 전부 끝.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깨진 종지를 치웠다.

여전히 TV에서는 인류 던전 완전 정복에 대한 속보를 아직도 쏟아내고 있다.

[에휴.]

흑염룡은 그 뉴스를 보며 다시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인류가 축제이지만, 저 사태가 계속되면 어떤 재앙이 들이닥칠지 알고 있으니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종지 조각을 담은 쓰레받기를 구석에 잘 치워 놓고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10시가 다 된 시각이다.

집에 도착한 게 8시 조금 안 돼서였다.

흑염룡과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던전까지 갔다 오며 능력도 시험하니 2시간이 넘는 시간이 벌써 삭제하듯 사라졌다.

자기 전 씻기 위해 자연스럽게 옷을 훌러덩 벗었을 때다.

[야! 이! 미친놈아!! 왜 갑자기 옷을 벗어!]

“……아.”

그러고 보니…….

흑염룡이 내가 주인이 됐다는 거.

설마, 이거…….

“염룡아. 너 혹시… 나랑 계속 같이 살아야 하는 거냐?”

[그럼 네가 내 주인인데 어딜 갈까? 정령이 주인으로 인정하면 일정 반경 이상 못 벗어나. 이렇게 돼.]

실제로 흑염룡은 시범을 보였다.

창문을 통과하며 나와 멀리 떨어진 그 순간.

티잉!

무언가 강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꺄악!]

흑염룡은 통과했던 창문으로 다시 튕겨서 집 안으로 들어왔다.

“…뭐냐, 이건.”

[일정 거리 이상 벗어나면 이렇게 튕겨서 너한테 돌아오게 되어 있어. 즉, 내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결계가 생겼단 말씀!]

“아… 이건 좀…….”

정령과의 불편한 동거도 시작되는 순간이다.

하필이면 여자 정령인 게 더 불편했다.

‘차라리 흑염룡이 남자였다면…….’

나 혼자 사는 집인데 편하게 옷을 벗는 것처럼 그간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행동들 전부를 이제부터 신경 써야 하니까.

아무리 정령이라고 해도 어쨌든 여자애지 않은가?

나도 불편했다.

‘나한테도 족쇄 하나가 생긴 느낌이야…. 이런 것까진 바라진 않았어…….’

세상은 흑백 공식이라더니.

초능력이라는 밝은, 백을 얻자 흑염룡과의 동거라는 불편한 흑이 존재했다.

첫날부터 그다지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

우여곡절 끝에, 어찌어찌해서 겨우 씻고 나온 뒤였다.

흑염룡은 아직도 TV 뉴스를 시청 중이다.

[인간들은 질리지도 않나? 똑같은 걸 계속 내보내네.]

그녀는 불평을 쏟아냈다.

하기야, 그녀 입장에선 달가운 소식은 아니니 그만 듣고 싶을 터다.

“그만큼 역사적인 순간이니까 그렇지.”

이렇게 대답하며 TV를 껐다.

딱히 더 듣고 싶은 내용도 없을뿐더러, 흑염룡 말대로 똑같은 내용만 반복해서 지루하던 참이었다.

저렇게 반복하면 그건 이제 속보가 아닌, 소음 공해가 되기 마련이다.

TV를 끄고.

자기 위해 침대로 다이빙했다.

그러나 흑염룡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내 위를 두둥실 떠다녔다.

“……왜?”

[벌써 자려고?]

“당연하지.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쉬는 날도 아니란 말야.”

아무리 내가 흑염룡 덕분에 헌터의 능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난 아직 예비 헌터지 정식 헌터가 아니다.

더군다나 방금 실험해 봐서 알지 않은가?

아직은 실제 헌터로서 쓸 수 있을만한 능력이 아니었다.

염력이건 은신이건 전부 지속시간이 짧고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수준도 안 된다.

뭐, 은신의 경우엔 내가 중2병을 여전히 중증으로 앓고 있다면 ‘이 상태로 여탕을……?’이란 생각은 했겠지.

하지만 엄연히 그건 15년 전의 나고, 지금은 어엿한 성인.

그것도 계란 한판인 서른 살의 나다.

그런 유치한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말고!! 내 부탁은 들어줘야지!]

하지만 흑염룡이 원하던 답이 아니었는지, 버럭 화를 냈다.

“뭔 부탁?”

[그새 잊어? 던전이 있어야 크루즈를 억제한다니까!]

“…네가 만든 게이트는 5개가 모여야 한다며 지금 상태로 5개나 만드는 건 무리인 것 같은데.”

5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바꿔 말하면.

흑염룡을 다섯 번이나 오글거리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내겐 그럴 여력이 없었다.

중2병에서 탈출한 지 오래인 나에게는 이제 그 과정이 은근히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좋으니까 만들어놔 줘. 아예 없는 것보다 간이 게이트 하나라도 있는 게 좋아. 그래야 나도 조금은 안심이 되고.]

“하아…….”

아무래도 이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절대로 날 재우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무슨 방법으로 오글거리게 만든담…….

다시 생각하던 중, 이번에도 의도하지 않은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내 속에 잠재된 그 중2병께서 또다시 강림하시는 모양이다.

나는 흑염룡을 매섭게 쳐다보며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

“넌 진짜 미친년이구나?”

[…뭐? 왜 갑자기 욕이야?]

흑염룡은 진심으로 화가 난 듯 인상을 잔뜩 구겼다.

지금이다.

“날 미치게 만들고 있잖아.”

그와 동시에.

난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네?]

한껏 당황했는지, 흑염룡의 구겨졌던 표정은 다리미질을 한 것처럼 펴졌다. 이젠 눈동자가 덜덜 떨렸다.

“날 자꾸 이렇게 미치게 만들면…….”

[……무슨.]

“확 덮쳐 버린다? 아.가.씨.”

흑염룡이 양손의 손가락을 힘껏 구부리며 말했다.

[…이 미친놈! 진짜! 예상도 못 한 걸로 훅 치고 들어오네……!]

쿵!

효과는 있었다.

덜덜 떨리는 흑염룡의 눈동자와 손가락. 그렇게 그녀는.

게이트로 변했다.

완전히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흑염룡의 부탁은 들어줬다.

“잘 자라~”

***

쿵.

“어……?”

“길드장님. 정말 괜찮으신 거 맞으세요?”

이지은은 퇴근 중이다.

길드장실에서 결재 서류를 건넸던 비서가 굳이 운전기사를 자처하겠다며 떼를 썼다. 계속 거절하면 입만 아플 것 같아 마음대로 하라고 한 뒤였다.

그렇게 비서가 기사가 되어 이지은의 집까지 운전하던 도중.

뒷좌석에 앉은 이지은은 차 창문에 머리를 가볍게 박았다.

‘이번에도…….’

또 느껴졌다.

길드장실에서 결재 서류를 한창 사인하던 그때, 머리를 무언가 강타한 느낌.

그 느낌 때문에 의도치 않게 스스로 머리를 박은 것이다.

“길드장님?”

비서는 그런 그녀가 걱정됐는지, 시선을 뒷좌석으로 슬쩍 옮겼다.

“앞에 봐요, 앞에. 운전하는 사람이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아… 죄송합니다.”

비서는 황급히 사과하며 시선을 전방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걱정 어린 질문은 끝이 나질 않았다.

“길드장님, 오늘 되게 이상하시네요? 정말 많이 피곤하셨나 봅니다.”

“아마도요.”

비서는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에 앉은 이지은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의 시선은 어느덧 창밖을 향해 있었고, 이마를 긁적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저리 걱정스러운 얼굴이야?’

아무래도 단순히 피곤해서만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이상해. 하루에 두 번이나? 이건 확실한 건데.’

반면, 이지은은 이제 완벽히 굳혔다.

‘던전. 어딘가에 있어. 내가 놓친 건가……?’

이지은이 젊은 나이에 길드장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

바로 그녀가 협회와 협력하여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 있는 던전의 위치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은 자국인 한국.

전국 일주를 하며 한국에 있는 던전의 위치를 전부 알아냈다.

그녀의 능력을 이용해 던전 위치를 알아낸 덕에, 한국 헌터 협회도 던전의 내부를 상세히 조사할 선발대를 조직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능력이 인접국에 소문이 퍼지면서 해외 원정을 나가기도 했다.

물론, 이 세상에서 이지은만이 감지 능력을 가진 건 아니다.

소수이긴 하지만 세계 여기저기 감지 능력 헌터가 존재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거리가 너무 멀면 감지를 할 수 없었다.

이지은의 경우에도 공식 등급은 S급.

감지할 수 있는 범위는 정해져 있다.

정확한 범위를 스스로도 잘 모르지만, 어림잡으면 시(市)정도다.

같은 시에 있다고 무조건 감지되는 것도 아니다.

해당 던전의 등급에 따라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 때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지은은 감지 헌터 중에서도 상위권에 자리 잡은 인물.

시 정도의 면적을 감지하는 헌터는 아시아 국가 중엔 이지은이 유일했다.

해외는 가까운 일본을 시작으로.

섬이 많은 필리핀, 넓은 대륙을 자랑하는 중국까지.

해당 국가 협회의 의뢰를 받아 전부 순차적으로 이지은이 활동하며 던전을 찾았다.

그녀는 일찍이 헌터 전문 교육을 받은 헌터.

태어날 때부터 자신 안에 무언가가 있다고 깨달은 부류다.

바로 흑염룡이 말한, 던전 부근에 거주하는 임산부가 영향을 받아 뱃속의 아기가 능력이 생긴 부류.

그게 이지은이었다.

그녀는 헌터 특목고를 진학하자마자 바로 두각을 나타냈고.

17세, 헌터 특목고 입학 후 첫 여름 방학을 맞이하기도 전에 졸업하여 실전에 투입되는 정식 헌터가 되었다.

‘절대 착각이 아니야.’

그런 자신이 착각했을 리가 없다.

그녀는 협회 인증 공식 S급 감지 헌터다.

실제로 그녀 혼자서 아시아의 모든 던전을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도대체 어디지? 서울은 확실한데…….’

서울의 어디이냐가 중요했다.

이지은은 분명히 자신이 놓친 던전이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녀를 여전히 헷갈리게 하는 것은 던전의 위치.

이유는, 던전을 감지할 때 느끼는 머리를 강타하는 느낌.

이것이 뜻하는 것은 딱 둘 중 하나다.

첫째, 던전의 위치가 자신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

어찌 됐건 자신이 느낀다면 서울인 건 확실하다.

둘째, 자신과 가까이 있더라도 등급이 상당히 낮을 것이다.

던전의 등급은 알파벳으로 S급부터 E급까지 있다.

그리고 높은 등급의 던전을 감지할 땐 지금처럼 단순히 강타한 느낌이 아닌, 어지럼증 혹은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온다.

‘그런데 왜 계속 느껴지는 게 아니라 이렇게 불규칙적으로 느껴지는 거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지은도 알 수 없었다.

여태껏 감지 활동을 하면서 이런 건 처음 겪었기 때문이다.

‘설마 던전이 생겼다가 사라질 리는 없고…….’

문득 혼자서 내린 추측.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런 던전.

세간에 알려진 것도 없고, 던전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연구 기관에 문의해도 돌아오는 답은 뻔하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있었으면 진작 발견됐겠죠.”라고.

갑자기 생기는 변이 게이트란 게 있긴 하지만, 적어도 그건 혼자서 멋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변이 게이트는 누군가 닫아야 사라지는 것이기에 만약 자신이 느낀 게 변이 게이트라면 누군가 닫았단 뜻.

그러나 그걸 협회가 모를 리가 없었다.

따라서 이번에 자신이 느낀 게이트는 변이 게이트와 다른 종류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있는 건 맞아. 찾아야 해.’

추측은 그만두고,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박 비서.”

“네, 길드장님.”

“앞으로 저 당분간 휴가입니다. 누가 찾아도 중요한 거나 급한 거 아니면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혹시 언제까지 휴가 보내실 계획이십니까?”

“무기한.”

그녀는 던전을 찾을 때까지 길드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