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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6화 (6/200)

§ 6화. 개봉박두 (1)

철푸덕!

내 몸은 나락이 아닌, 출입문 바로 앞에 떨어지게 되었다.

“……어떻게?”

분명 그대로라면 나락에서 떨어져야 하는 게 정상인데, 지금 내 몸이 왜 출구 앞에 있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내가 공중에서 밀었지!]

설명하는 흑염룡.

그러고 보니 등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누가 때린 느낌이 들었는데 흑염룡이 공중에서 나를 밀어 버리며 난 소리였다.

‘하긴, 정말 몇 센티 모자랐던 거니까 밀어서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지.’

흑염룡은 공중을 나는 녀석이기도 하니까, 공중에서 날 미는 것도 가능했다.

정말 흑염룡의 순간적인 판단 덕분에 살았다.

“고맙다! 염룡아!”

[일단 나가기나 해!]

흑염룡은 던전 탈출이 우선이다.

감사 인사 따위에 몇 초를 지체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살았다는 안도도 잠깐, 나는 곧바로 출구를 향해 몸을 던졌다.

***

던전에서 나오자 아주 익숙한 나의 자취방이 날 반겼다.

“후우…… 후우…….”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았단 안도가 생기자 몸에 긴장도 풀리면서 힘이 쫙 빠졌다.

난 그대로 내 방에 대 자로 눕게 됐다.

그리고 내 머리맡에 있던 게이트.

게이트는 이내 무너지고, 모래더미 같은 잔해로 변하더니 몇 초 지나지 않아 그 잔해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다 문득 하나의 의문점이 생겼다.

“흑염룡. 왜 네가 만든 던전 게이트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보통 흔적은 있는데 입구만 막히잖아.”

내가 퇴근하고 본 뉴스에는 남극에 있던 인류 마지막 던전이 정복되는 현장을 생중계로 보내주었다.

그러나 분명히 뉴스 속의 게이트는 확실하게 무너졌지만, 그 흔적은 존재했다.

즉, 문만 사라진 거지 문틀은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연 게이트는 정식 게이트가 아닌 간이 게이트니까. 원래 없던 길을 연 개념이야.]

“으음. 그럼 네가 만든 게이트는 이렇게 정복하면 아예 사라진다는 뜻이지?”

[응. 흔적이 남는 건 우리가 정식으로 만든 게이트만 남아.]

“정식 게이트랑 간이 게이트랑 차이가 뭔데?”

[너 게임 자주 하지?]

또 내가 이해하기 쉽게 어떤 비유를 들려는 것 같았다.

“예전엔 자주 했지? 요즘에야 바빠서 못 하지만.”

[내가 연 게이트는 게임의 테스트 서버라고 생각하면 돼. 맛보기.]

“아, 그래?”

[응. 보통 던전은 우리가 방금 나온 곳처럼 방이 하나만 있지 않아.]

“방이란 개념이… 뭔데?”

[장소. 우리가 처음 들어선 곳은 신전이었잖아? 만약 정식 던전이었다면, 그 신전 철문을 들어선 순간 또 다른 던전이 나오는 거지. 그런 식으로 정식 던전은 방이 여러 개야. 당연히, 키스톤도 방 제일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고.]

정식 게이트와 간이 게이트의 차이.

확실히 알았다.

여기에서도 확실한 수확이 있었는데, 흑염룡을 통해서 들어가는 던전은 초월석을 얻기 쉽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점만 존재할까?

세상엔 이점만 존재하는 것 따윈 없다.

대표적으로 게이트도 인류가 처음 그것을 발견했을 때는 정보가 부족했던 탓에 재앙이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얻은 초월석의 활용법을 개발하고, 터득한 인류는 더는 게이트를 재앙 그 자체로만 보진 않는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은 흑백 공식을 따른다.

어두운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밝은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흑염룡이 만든 게이트는 이런 편리한 게 있는 것만 아닐 터다.

[당연히 단점은 존재하지!]

아니나 다를까, 내가 의구심을 품은 부분을 말하자 흑염룡은 기다렸단 듯이 답했다.

“단점이 뭔데?”

[내가 전에 설명했듯이, 크루즈를 막기 위해선 던전을 펼쳐야 한다고 했지?]

“그랬지.”

[그런데 난 방 한 개짜리 간이 게이트만 할 수 있어. 따라서 정식 던전만큼의 억제 능력을 가지지 못해.]

“…그럼 네가 게이트를 열어도, 의미 없는 거 아냐?”

[아니야. 완전히 억제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정식 던전에 비하면 그 힘이 약하단 거지.]

그래도 다행이다.

흑염룡이 연 게이트는 어쨌든, 억제 역할은 할 수 있단 뜻이니까.

그렇다면 과연 흑염룡이 만든 간이 던전 몇 개가 모여야 정식 던전 하나만큼의 힘을 낼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음, 정확한 건 나도 잘 모르지만. 내 예상으로는 대략 5개쯤 모여야 할 거야.]

“…네가 직접 문을 여는 정령인데 모를 수가 있나?”

[그전까진 정식 던전이 존재했고, 내가 따로 열지 않아도 됐으니까 모르지.]

“뭐, 그래. 그런 사정이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치고. 5개라는 예상치를 낸 이유는?”

아무 근거도 없이 5개라는 정확한 수치를 말하진 않았을 거다.

더군다나 흑염룡이 그렇게 멍청한 정령이 아니란 건 이미 알고 있어서였다.

[보통 정식 던전을 방 5개 이상으로 하니까.]

“아~”

생각 외로 아주 간단한 계산법이었다.

[더 궁금한 거 없고?]

또 묻고 싶은 게 뭐가 있을지 곰곰이 생각하던 중, 한쪽 손에서 느껴지는 물체.

“아, 이거. 어떻게 쓴다는 거야?”

바로 던전에서 회수해 온 두 개의 초월석이다.

흑염룡은 분명히 이 초월석을 사용하면 헌터들이나 갖는 초능력을 얻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난 그 사용법을 모르지 않던가?

[아~ 그거? 간단해. 나한테 줘 봐.]

고사리 같은 손을 내미는 흑염룡.

난 의심 없이 그녀에게 초월석을 모두 건넸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초월석을 무슨 큐브 장난감처럼 이리저리 돌리면서 조작하자, 초월석의 모양이 변했다.

소주잔과 유사한 형태로 변한 뒤.

번쩍-!

잠깐의 섬광이 일어난 후에 흑염룡은 기쁘게 소리쳤다.

[다 됐다!]

그리곤 변형을 완료한 두 개의 초월석을 다시 내게 건넸다.

변형된 초월석 안에는 물로 보이는 것이 가득 고여 있었다.

“…초월석에서 물이 나와?”

[정확히 말하면, 물이 아니라 물로 보이는… 으음…….]

아무래도 마땅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은 모양이다.

한참이나 미간을 찌푸리고 나서 한다는 대답이.

[에너지 기류라고 해야 하나?]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데?”

[마시면 돼.]

뭔가 비주얼적으로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그런 간단한 행위 하나로 초능력을 얻게 된다는 것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난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연달아 들이켰다.

확실히 평범한 물과는 달랐다.

분명히 목을 꺾어 기도 깊숙한 곳으로 넣는 중인데, 액체가 넘어가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대신 알싸한 느낌만 있었다.

그렇게 전부를 마시고 난 뒤에.

[어때?]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를 한 흑염룡이 기대에 찬 상태로 물었다.

“뭐가 어떻다는 건데.”

[힘이 막 솟아난다거나, 그런 기분 안 느껴지냐고.]

“…안 느껴지는데?”

라고 답한 순간.

“우욱……!”

[왜, 왜 그래?!]

속이 거북해지면서 당장이라도 구토가 올라올 것 같았다.

헛구역질을 참을 때처럼 억지로 침을 삼키며 그 거북한 느낌을 애써 이겨냈다.

“이거 원래 마시고 난 뒤에 이렇게 토할 것 같아?”

[…난 모르지. 키스톤을 이렇게 쓴 적이 나도 처음이니까.]

“…….”

도움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중요할 때 도움이 되질 않는 흑염룡.

참 애증스러운 존재다.

“그래서. 이제 나 능력이 생긴 건가?”

[확인하면 돼.]

“어떻게?”

[그건 내가 하는 거니까 넌 가만히 있어.]

흑염룡은 작은 날개를 펄럭이며 내 이마 앞으로 다가왔다.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내 이마를 짚고.

눈을 감으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해?”

[네가 흡수한 키스톤의 능력이 뭔지 알아보는 중이니까 가만히 있어 줄래? 집중해야 되니까.]

“아, 예에…….”

그 말은, 내 스스로 알아낼 방법은 없다는 뜻이 아닌가.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제대로 알아낼 수 없을 테지.

지금은 흑염룡이 정답.

난 그녀가 나의 능력을 찾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오오~ 키스톤 두 개짜리 던전 걸린 것도 모자라 이런 능력이? 너 운이 되게 좋구나?]

“궁금하니까. 능력이 뭔지나 알려주고 그런 추임새를 넣지?”

[너의 능력은 바로! 두구두구두구! 개봉박두!]

흑염룡은 이제 두 손을 허공에서 겹쳤다가 좌우로 활짝 폈다.

그러자 두루마리 종이를 편 것처럼, 상단과 하단이 동글동글하게 말린 어떤 종이가 형상화되었다.

아무래도 흑염룡과 같은 정령들만 사용하는 그들의 고유 능력으로 보였다.

[은신 Lv 1]

[염력 Lv 1]

“은신이랑 염력?”

[응! 다행이지 않아? 너 아까 뛰는 거 보니까 몸도 그렇게 튼튼한 것 같지도 않았는데 몸 쓰는 능력은 아니니까!]

나를 도발하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저 두 가지 능력이 내 몸속에 있다는 건 확실한 정보.

난 그다음이 궁금했다.

“어떻게 사용하지? 내 능력.”

[특별한 거 없어. 그냥 네가 사용하고 싶다고 생각해 봐.]

“으음…….”

그러면서 속으로 ‘투명해지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을 때다.

[으잉?! 뭐야? 벌써 사용한 거야?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

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흑염룡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그녀는 내가 방금까지 있던 자리에 확실하게 있는지 나를 노크하듯 똑똑 두들겼다.

당연히, 난 움직이지 않았기에 이마가 두들겨졌다.

“하지 마라.”

[오! 이렇게 직접 사용하는 건 나도 처음이라 그런지 엄청 신기하네~ 너도 궁금하면 거울이라도 보던가.]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구석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 섰다.

“허얼…….”

그러나 거울에 비친 건 아무것도 없다.

분명히 난 거울 앞에 있는데,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진짜 이런 게 가능하구나…….”

흑염룡을 통해 만든 게이트에 들어가서 아주 쉽게 초월석을 얻었다.

그것도 방 한 개짜리 간이 던전.

보통 헌터들은 최소 다섯 개 이상의 방이 있는 던전에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내가 신전으로 도달할 때까지 마주친 몬스터 최소 다섯 배 이상으로 마주쳤다는 것이고.

그런 몬스터를 일일이 무력으로 제압한 뒤에야 초월석이 있는 마지막 방을 찾았단 뜻이다.

그에 비해 나는 운이 좋게도 흑염룡을 통해 아주 간단히 능력을 얻었고, 이렇게 활용하는 중이다.

“흑염룡.”

[왜?]

“초월석을 변형시키고 하는 거. 그거 정령인 네가 직접 만들어서 가능한 거지? 인간들은 그렇게 못 하는 거지?”

[당연하지! 그런 귀중한 기능을 인간들까지 사용할 수 있으면 안 되지!]

인류 빅뱅이 시작된 게 50년이 넘었는데도, 왜 인간이 초월석을 이용해 헌터를 새롭게 만드는 일을 이뤄내지 못했는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을 줄 과연 누가 알았을까.

인간들은 그동안 던전 근처에서 비규칙적으로 태어나는 헌터들만 기다려왔을 뿐이었다.

“염력은 어떻게 사용하지?”

[은신을 사용한 거랑 똑같아. 무언가를 들고 싶다고 생각하면 돼. 그런데 레벨이 1밖에 안 되니까 가볍고 부피가 작은 물체만 될 거야.]

“옆에 있는 레벨이란 게… 그런 뜻인가?”

[응. 염력의 경우, 레벨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욱 무겁고 부피가 큰 걸 들 수 있겠지. 나중에는 네가 살고 있는 이 건물을 통째로 드는 것도 가능할 거야.]

“내가 꼭 매그니토가 된 느낌이군.”

[…그게 뭔데?]

인간 사회에 대해선 잘 알면서, 아무래도 이건 모르는 모양이다.

“있어. 어느 영화에 나오는 초능력자. 아무튼, 그럼 은신은?”

[당연히 레벨이 높을수록 지속시간도 길고, 심지어 네가 지정한 물체까지 은신시킬 수 있을걸?]

“있을‘걸’은 뭐야? 너도 확신이 없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사용했는데, 너도 그게 가능할지 몰라서 그렇지.]

하기야, 그녀가 모든 능력을 만든 것도 아니고.

이 능력은 처음부터 그녀가 살던 세상의 완전체 키스톤이 가지고 있던 능력들이다.

종류 전부를 알고 있을 순 있어도, 그 능력이 어디까지 발전되고 강력해지는지는 모를 수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흑염룡과 짤막한 대화를 나눈 사이.

어느덧 내 은신은 풀렸다.

내가 의도한 게 아닌데도.

“음, 지속시간이 상당히 짧구나.”

[레벨이 1밖에 안 되니까.]

“그럼 이 레벨을 올리기 위해선?”

[뻔하지. 그 능력을 계속 쓰면서 몸에 익숙하게 해야지.]

“오호, 그거 간단해서 다행이구먼.”

그렇다면 바로 염력을 시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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