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5화 (5/200)

§ 5화. 게이트 메이커 (3)

도끼가 나를 내리찍는 속도와.

내가 황급히 일어나, 철문으로 향하는 속도 중에서.

당연, 더 빠른 쪽은 도끼가 나를 찍는 속도였다.

게이트에 들어서기 직전, 속으로 중얼거렸던 기도문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의 공포다.

대신 한 가지는 분명하게 떠올랐다.

‘흑염룡 이 개…….’

그렇게 안심하라고 하더니 결국엔 최후가 이거냐.

세상에 믿을 사람, 아니 정령 없다더니.

그건 순전히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닌, 흑염룡과 같은 이생물(異生物)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즉, 정확히 말하면 세상에 믿을 ‘생명’ 없다란 말이 옳았다.

원망의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난 눈을 감고 말았다.

그 순간.

[뭐 하고 자빠졌어! 빨리 일어나라니까!]

키잉-!

분명히 도끼가 나를 내리찍어 반 토막 내도 모자라지 않은 시간인데, 흑염룡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려왔다.

‘으응……?’

조용히 눈을 뜨니, 흑염룡의 몸체에선 검은빛이 나며 방어막이 펼쳐졌다. 나를 내리찍으려던 도끼를 그녀가 몸으로 막는 중이었다.

저 작은 몸체에서 나오는 검은 방어막이 저렇게 거대한 몬스터의 도끼를 막을 수 있다는 감탄도 잠시.

[얘들아! 이 사람은 내 주인님이라고! 이렇게 공격하면 안 돼……!]

몬스터를 향한 설득을 시작했다.

하지만 몬스터들은 길에서 마주친 그 기괴한 물고기 몬스터처럼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왜! 도대체 왜 안 듣는 거야?! 뭐가 문제야!]

이젠 애원의 절규로 바뀌었다.

흑염룡은 뒤를 슬쩍 돌아보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뭐해! 빨리 안으로 들어가!]

흑염룡이 가리킨 철문.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활짝 열린 상태다.

저렇게 애써 시간을 끌어주고 있으니 지체할 이유가 어디에 있나.

난 그 틈에 재빨리 달려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콰앙!

철문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곧장 닫혔고,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빛이 샐 틈도 없이 완벽히 차단했다.

그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던 그때.

신전 안이 스스로 밝아졌다.

“우와…….”

그 영롱한 자태에 방금까지 내게 일어난 일을 순간 잊었다.

어딘가에 횃불이 걸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빛이 스며들어온 것도 아닌데 스스로 밝아지는 신전.

신전 안도 바깥 배경과 똑같은, 푸른빛이었다.

[후아!]

비로소 완전히 밝아지자 흑염룡도 신전 안으로 들어왔다.

흑염룡이 진땀을 뺐는지, 땀도 흐르지 않는 이마를 손등으로 훔칠 때.

“야 이 기지배야!!”

내가 겪었던 위태로운 상황이 다시 떠올라 분노의 외침을 시전했다.

[깜짝이야! 왜!]

“너랑 있으면 안전하다며? 네가 말한 안전이란 게 내 목숨 저승까지 안전 신속 배달을 말한 거냐?!”

[…그건 미안!]

“미아안? 이게 또 사람 목숨 사과로 퉁 치려고 하고 앉았네?”

격분한 나는 맨손으로 흑염룡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흑염룡은 얄미운 모기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내 손을 피했다.

[아이, 참! 이건 나도 모른다니까! 쟤들이 왜 갑자기 무시하고 너를 공격했는지 도통 모르겠다고~!]

“모르면 땡이야?”

여전히 해명하는 흑염룡.

그리고 그런 흑염룡을 잡기 위해 뛰어다닌 나.

그러던 중, 흑염룡은 신전 안 어딘가를 보고 확실히 알겠단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쟤들이 멋대로 움직였던 거구나?]

“엉?”

흑염룡이 자신이 본 것을 가리켰다.

신전 중앙에 있는 제단.

제단 위에는 두 개의 돌이 허공에서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마치, 놀이공원 마법의 집 같은 곳에 가면.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데 탁구공 같은 것이 허공에 떠, 제자리에서 천천히 회전하는 것과 똑같이 보였다.

[키스톤이 두 개였네. 그래서 그랬던 거야.]

“뭔 소리야…? 초월석이 두 개면 몬스터들이 네 명령을 안 따라?”

[음… 비슷한데, 조금 달라. 애초에 이 던전은 키스톤을 지키기 위해 만든 장소잖아?]

“그렇지?”

[문제는 초월적인 힘을 가진 키스톤이 저렇게 두 개나 같은 곳에 있으면 이곳을 지키는 경비 병력인 몬스터들이 가끔 이상행동을 하거든. 이성을 잃고 무조건 침입자를 죽이려고만 하는 그런 이상행동. 즉, 던전을 태초에 만든 우리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흑염룡은 몬스터들의 이상행동에 대해 더욱 자세히 설명했다.

그녀가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절대 자신이 의도한 게 아니니 믿어달라는 간절한 부탁인 셈이다.

내가 이해하기 쉽게 이 설명을 덧붙였다.

[아! 그래! 그거라고 설명하면 쉽겠네! 누전! 집에서 가전제품도 많이 쓰면 과부화가 걸리고, 정도가 심하면 누전되면서 불이 날 수도 있잖아?]

“보통은 그걸 방지하기 위해 집에 두꺼비집이 있지.”

[응, 던전은 그런 거 없어. 그래서 그래.]

아무튼, 설명은 이로써 끝.

몬스터들이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도 초월석이 두 개나 있는 던전에 온 바람에 그렇게 됐단 것이 요점이다.

난 이제 다른 것을 물었다.

“넌 이 던전에 초월석 두 개가 있을지 몰랐던 거야? 네가 직접 연 건데?”

[내가 직접 열었다고 던전 내부도 내가 정하는 게 아니야. 말했잖아.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던전을 미리 만들어뒀고, 무작위로 걸리는 거라고. 난 단순히 던전으로 향하는 게이트만 여는 거라니까?]

“……그러냐.”

결국엔 문은 직접 열 수 있으나 던전 선택권은 없다란 뜻이다.

그 정도까지만 알면 충분하다.

난 이제 제단 위에 놓인 두 개의 초월석을 가리켰다.

“…저게 초월석?”

[응.]

초월석을 내 눈으로 처음 보는 순간이다.

뭐 대단한 힘을 가졌으니 그만큼 생긴 것도 뭔가 특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한 오산이다.

초월석의 생김새는 손에 쥘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돌멩이가 피자 조각 모양으로 쪼개진 것과 똑같았다.

제단 위에 있는 초월석 둘 다 생김새는 똑같았다.

심지어 색깔도 이곳 신전의 배경색과 동일한 푸른빛.

초월석은 확실히 어떠한 에너지를 머금었단 것이 눈에 보였다.

초월석에 푸른빛의 기류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꼭 드라이아이스를 물에 담그면 내뿜는 그 기체와 똑같았다.

“흑염룡. 다른 초월석도 생긴 게 다 똑같아?”

[아니. 다 다르지. 넌 병을 깨면 그 조각들 모양이 다 똑같이 깨지는 거 봤니?]

“…못 봤지.”

[그거랑 똑같은 거야.]

“그럼 초월석 색깔이나 초월석에서 나는 이 기류의 색은? 그것도 다 다른가?”

[응. 달라. 그래도 외형만 다른 거지, 키스톤이 가지고 있는 힘은 다 똑같아. 함량만 조금 다른 거야. 너희 인간들은 그걸 측정하고 키스톤에 등급을 부여하잖아.]

흑염룡은 그것만은 꼭 잊지 말라는 듯이 강조했다.

그리고 나도 얼핏 들어서 안다.

초월석은 S급부터 E급까지의 등급이 있는데, 바로 그 힘의 함량에 따라 갈리는 것이다.

당연, 낮은 등급의 초월석은 우리 인간이 주로 사용하는 자원 복제 능력이 높은 등급에 비해 떨어진다.

1L의 석유를 100L로 복제하는 건 S급 초월석이 기준이다.

[그런데 운이 좋았네. 키스톤 두 개짜리 던전이라니. 보통은 키스톤 하나만 있는데.]

“얼마나 운이 좋은 거야? 던전 100곳을 들어간다고 치면 이렇게 두 개나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데?”

[한 다섯 곳쯤?]

백분율로 치면 5%쯤이니.

확실히 운이 좋은 건 맞구나.

나는 천천히 초월석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초월석으로 다가가는 그 짧은 와중에도 주위를 유심히 살폈다.

또 언제 어디에서 몬스터가 위장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제단.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을 때, 흑염룡이 알려줬다.

[그냥 저거 집어서 빼면 돼. 초월석을 지키기 위한 함정이나 장치는 문밖의 몬스터들뿐이지, 초월석 자체에는 없어.]

여전히 안심해도 된다는 흑염룡의 말.

허나 당한 게 있다 보니까 그 안심을 들어도 전혀 안심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얼른. 여기 계속 있고 싶어?]

“아니.”

[그러니까 가지고 나가자.]

그렇게 용기를 내고 제단 위에 놓인 두 개의 초월석을 움켜쥐었을 때였다.

쿠구구궁-!

이번엔 땅만이 아닌, 신전 전체가 흔들리면서 다시 서 있기도 힘든 진동이 찾아왔다.

난 덜컥 겁이 먼저 났다.

또 어디선가 그 무시무시한 몬스터들이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뭐야! 흑염룡!”

[걱정하지 마!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니까!]

“…뭐가 정상적인데!”

[이 던전은 애초에 키스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곳. 그리고 던전도 키스톤의 영향을 받아 존재하는 곳이야. 그런데 키스톤이 이제 네 손에 있으니, 당연히 던전을 온전히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힘도 사라져서 붕괴되는 중일 뿐이야.]

그렇다면 정말 걱정해도 될 건 없다고 생각하던 그때.

신전을 이루는 벽과 땅이 고운 모래알처럼 변하더니, 내가 손에 쥔 초월석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붕괴되는 과정이야. 키스톤이 던전을 전부 흡수하기 전에 나가야 해.]

“그런 건 처음부터 미리 좀 알려달라고오오오-!”

왜 중요한 걸 나중에 말하는 걸까.

[미안!]

이번에도 흑염룡은 내 화를 돋우는 대답만 늘어놨다.

고운 모래알처럼 변한 것은 이 던전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

이 신전 그리고 바깥에 있는 몬스터까지.

그 요소들을 전부 흡수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간이… 얼마나 있는데?”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이 5분쯤은 됐다.

신전과 연결된 그 나락 위의 길이 그 정도로 긴 것이었다.

[으음… 속도 보니 5분 내로 나가야 할 것 같은데?]

“만약 그 안에 못 나가면……?”

설마, 하는 심정으로 되물었다.

[던전이랑 같이 붕괴되는 거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뜻.]

“이런 이씨……!”

그 답을 들은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5분.

다행히 그 5분은 오직 걸어서 걸린 시간이다.

걸어서 5분 거리였으니 뛴다면 5분 내로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무조건 뛰었다.

일단 신전의 철문 앞으로 도달하니, 철문은 스스로 열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난 당황하지 않고 신전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유는, 이미 초월석이 내게 회수되자 빠른 속도로 던전의 모든 요소가 흡수되기 시작했고.

철문까지 모래알로 변하며 흡수되는 중이라, 내가 지나갈 틈이 생겨서다.

그렇게 신전을 탈출.

우리가 본래 들어왔던 게이트로 향하는 그 길에 들어섰을 때였다.

치이이익.

나락 위에 위태롭게 난 길.

본래도 좁았는데, 초월석을 회수하는 바람에 이 길까지도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길의 끝과 끝이 먼저 사라지는 게 아닌, 가장자리부터 사라지는 중이란 점이다.

따라서 처음엔 성인 세 명이 나란히 걸으면 꽉 차던 길이 지금은 두 명은 제대로 나란히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너비가 되었다.

[어… 음… 하필이면 여기 형태가 다리 하나만 있는 곳이라… 5분보다 더 빨리 가야 할 것 같은데?]

흑염룡이 불안하게 말했다.

“나도 알어!”

난 화를 내듯 소리치고 숨을 참으며 그저 내달렸다.

그렇게 긴박한 상황이란 것쯤은 설명 안 해도 잘 알고 있으니, 가만히 있으란 뜻이다.

달리면서도 뒤를 슬쩍 돌아봤다.

신전의 입구 철문.

그리고 좌우에 있던 몬스터 석상.

전부 형체가 반쯤은 사라져서 손에 쥔 초월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런 곳이구나… 던전은…….’

던전 입성. 그리고 몬스터.

마지막 단계인 던전 탈출까지.

일반인인 내가 어디 가서 돈 주고도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겪는 중이다.

‘아, 이제 난 일반인이 아니지.’

평범한 회사원 윤도원은 오늘로 끝.

두 개의 초월석을 쥐고 나가는 나는 이제 헌터 윤도원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나락의 다리를 뛰어간 순간이다.

시선에 드디어 출구인 게이트가 보였다.

그러나…….

던전 붕괴가 진행되는 바람에 출구 게이트까지 닿았던 다리 끝부분이 완전히 사라졌다.

출입구와 다리 사이에는 어떠한 길도 없이 나락이 되었다.

[……세상에. 벌써 다리가 사라지다니.]

흑염룡은 세상이 끝이 난 것처럼 처량한 목소리를 냈다.

이대로라면 우린 다리에 고립되어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져 죽는 것만 기다리는 꼴이 되었다.

출구와의 떨어진 거리를 눈으로 가늠했을 땐 대략 2m.

아니,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길 수도 있다.

‘떨어지면 죽는다.’

오직 그 생각만 가지고 있었던 걸까.

난 행동의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바로 던전 출입구를 향해 펄쩍 뛰어올랐다.

[윤도원……!]

뛰는 그 순간에는,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은 슬로우 처리를 한 것처럼.

내가 느낀 게 그랬다.

출구를 향해 뛰어, 몸이 허공에 올랐을 때.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모든 게 천천히 보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출구를 향해 다가가는 내 몸.

그러나 난 본능적으로 느꼈다.

점프력이 부족해서 출구가 있는 곳까지 닿을 수 없단 것을.

실제로 지금 내 눈높이와 출구의 눈높이가 일직선이다.

아직 몸이 허공에 떠 있는데도 말이다.

손만 조금만 더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까지 왔는데…….

정말 몇 센치가 모자라다.

내가 어느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신체 부위를 고무처럼 자유자재로 늘리는 그런 능력자였다면.

이런 건 문제도 아닐 텐데.

그 생각을 마친 순간.

이제 출구와 내 눈높이는 일직선도 아니게 되었다.

출구가 조금 더 높았다.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길, 이렇게…….’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이익……!]

퍽!

그 순간 흑염룡의 기합 소리와 등 뒤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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