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게이트 메이커 (2)
아테나 길드 길드장실.
길드장은 서른 살의 젊은 여성 이지은이다.
이 길드의 이름이 아테나인 것도 길드장이 여성이기에 붙인 이름이다.
길드장 이지은은 길드 내 처리할 결재 서류들을 비서로부터 건네받고, 하단에 길드장 사인을 이어가던 중.
비서가 새로운 결재 서류를 넘겼을 때였다.
“음?”
툭.
무언가를 느낀 이지은.
결재 서류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리고 넋이 나간 듯, 초점이 흐려졌다.
“……길드장님?”
비서는 그런 이지은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판단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지은은 곧장 정신을 차렸다.
“아, 미안해요.”
“많이 피곤하신가 봅니다.”
비서는 떨어진 결재 서류를 다시 줍고, 결재 서류 표면을 손으로 슥슥 닦았다.
바닥에 떨어지며 먼지라도 묻진 않았을까, 그것을 털어내는 행동이었다.
물론, 이지은의 눈엔 그저 과한 행동으로 보일 뿐이었다.
비서는 결재 서류를 다시 건넸다.
“그런가 봐요.”
이지은은 서류를 다시 받아들며 나긋하게 답했다.
“그래도 이제 던전이 완전 정복 됐으니, 저희도 한동안은 한가하지 않겠습니까?”
“한동안이라… 어쩌면 평생 한가할지도 모르죠. 던전이 없으면 헌터들도 존재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하하…….”
이지은의 냉철하고 잔인한 답이었을까.
이지은 본인도 헌터임에도 이런 답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것이 내심 신기했다.
이지은은 그렇게 마지막 서류까지 사인을 마치고, 전부 비서에게 건넸다.
“그래도. 모처럼의 여유니까 즐기시죠. 길드장님. 몇 년 동안 쉬지도 않고 아주 바쁘게 움직이셨잖습니까.”
“네, 그러죠.”
비서는 응원의 한마디를 호기롭게 남겼지만, 이지은은 여전히 냉철했다.
그렇게 비서가 나가고 난 뒤의 길드장실.
이지은은 태블릿 PC로 뉴스를 틀었다.
뉴스엔 여전히 인류 던전 완전 정복의 축배가 지속되고 있었다.
“……정말?”
뉴스를 들으며 흘린 그녀의 한마디.
그녀는 뉴스에 의구심을 품었다.
그녀가 갑자기 결재 서류를 떨어트린 이유.
그녀는 감지 계열의 능력자다.
그것도 던전이나 몬스터 관련 S급 감지 능력을 가진 헌터다.
서류를 건네받은 순간 무언가가 머리를 강타하는 느낌이 들었고, 그것은 평소 던전이나 몬스터를 감지했을 때와 똑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정말로 완전 정복한 거 맞아?”
세상은 지금 뭔가 중요한 걸 놓쳤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다.
“이런 걸 보통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하는데…….”
***
[이렇게 훅 들어오면 어떡해? 깜빡이도 없이…….]
내 방에 게이트가 열리고 약 30초 뒤.
흑염룡이 다시 나타나며 따졌다.
본래 게이트가 처음 열릴 때만, 흑염룡의 몸이 게이트로 변하고 이렇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타난다.
“깜빡이 없이 훅 들어가야 오글거리지. 안 그래?”
[……진짜 고수는 깜빡이 켜도 오글거리던데.]
“중2병 끊은 지가 어언 15년이다. 15년 만에 이 정도면 꽤 쓸만한 거 아니냐?”
[예, 예. 너 잘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들어가자.]
그리고 그녀는 이제 게이트 안으로 나를 안내하려 들었다.
하지만 덜컥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은 무서운 마음이 들어서다.
[왜 그래?]
“…우리끼리 들어가서 안전한 거 맞냐?”
이 게이트만 넘으면 몬스터가 득실대는 던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것을 모르고 흑염룡이 게이트를 만들도록 한 것은 아니지만…….
막상 이렇게 저지르고 나니 겁이 먼저 났다.
[나랑 같이 있으면 괜찮다니까? 이왕 만든 거잖아. 얼른 들어가자고.]
흑염룡은 내 옷깃을 잡아 늘어트리며 재촉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연신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도 빼놓지 않았다.
“…그래, 어차피 저지른 거.”
생각해 보면.
내가 게이트 안에 들어가서 뭔가 잘못되어 죽어 버리면 손해를 보는 건 온전히 흑염룡 아닌가?
크루즈가 넘어오지 못하도록 던전을 펼쳐야 하는데,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현재 나밖에 없다.
즉, 흑염룡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 아무도 없단 뜻이다.
그런 그녀가 근거 없는 위로를 할 리가 없으니 믿고, 게이트 안으로 발을 한 발자국 들이밀었다.
‘떨린다…….’
그래도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동시에 등골은 싸늘했다.
싸늘하다라…….
‘비수가 가슴에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손은 아니, 발은 눈보다 빠르니까…….’
게이트 속으로 들어가며 내가 속으로 중얼거린 말이다.
어쩌면 내 중2병은 완치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도 머릿속에서 이런 말이 다 떠오르다니…….
그리고 본래는 손이 눈보다 빠르단 말이지만, 내가 굳이 발로 고친 이유는.
안에서 어떤 상황이 펼쳐져도 내가 가진 발을 믿자는 일종의 기도였다.
***
“우와.”
게이트를 넘으니, 바로 던전이 눈앞에 나타났다.
뉴스나 기사를 통해서만 듣던 단어, 던전.
던전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안에는 어떤 종류의 몬스터가 있는지 등등.
나 같은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건 전혀 없다.
실제로 던전 안에 들어가서 정복을 하는 헌터들이나 아는 기밀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맞이한 던전은 온통 푸른빛으로 깔린 신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타 다른 RPG 종류의 게임에서 많이 보던 배경이라 낯설진 않았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신전의 철문.
그리고 그곳으로 향하는 투박한 푸른빛 돌로 만들어진 하나의 길.
폭도 그리 넓지 않았다.
성인 세 명이 나란히 걸으면 꽉 찰 정도다.
그런데 길 양옆은 휑하니 뚫려 아무것도 없었고, 어둠만이 가득했다.
[길에서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나락이니까.]
“……나락?”
[응. 떨어지면 죽어.]
“…….”
죽는단 말을 참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런데 던전은 다 이렇게 생긴 거야?”
조심스럽게 길을 걸으며 물었다.
[당연히 다 다르지. 던전의 형태는 다양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던전도 있고, 너희 인간계의 아마존과 같은 정글도 있고… 셀 수도 없이 다양하지.]
“그럼 게이트를 열 때마다 내가 들어서는 던전은 다 다르단 거구나?”
[응. 우리가 미리 디자인해 놓은 던전 배경이 무작위로 걸리는 거야. 이번엔 운이 좋았네. 일직선 형태의 던전이니까.]
흑염룡이 있어서 이런 건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이 던전을 만든 것이 흑염룡과 똑같은 정령들이니, 적어도 들어설 때 어떤 던전인지는 바로 알 수 있다는 이점이 있으니까.
실제 헌터들은 던전을 정복하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선발대 혹은 탐험대를 해당 던전에 보낸다.
이유는 단순하지 않은가?
에베레스트도 동네 뒷산 오르듯, 즉흥적으로 “자! 올라가자!” 이러고 바로 올라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적어도 사전 조사란 게 필요하다.
이 던전은 어떤 유형인지, 그리고 안에 있는 몬스터의 종류는 어떻고 얼마나 강하며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등등.
그런 사전 조사를 치밀하게 걸치고 나서야 헌터들이 정복할 수 있다.
적어도 던전을 초기에 만든 흑염룡과 함께인 나는 그런 귀찮은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계속 신전으로 향하는 길을 걸었을 때였다.
쿠구구구궁!
갑자기 길이 울리며 제대로 서기도 힘든 진동이 나를 강타했다.
“뭐, 뭐야?!”
떨어지면 나락이니 조심하라고 했던 흑염룡의 말이 떠올라, 난 본능적으로 길에 바짝 엎드렸다.
[……아무래도 오해를 한 것 같은데?]
“오해라니……?”
흑염룡은 난감한 듯, 볼을 긁적이며 답했다.
그리고 내가 되물은 순간.
나락에서 거대한 물고기 모양의 몬스터가 하늘로 높이 솟았다.
분명 생긴 건 물고기인데 공룡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고, 눈알 하나가 내 키만큼이나 거대했다.
고작 몬스터의 눈이 내 키만큼이나 크다는 뜻은.
실제 몸통은 얼마나 크단 걸까.
기괴한 생김새가 꼭 심해 관련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미지의 심해 생물을 직접 보는 듯했다.
아직 일반인에 지나지 않는 내가.
생생한 몬스터를 직접 목격한 순간이다.
나락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는 날개도 없는데 하늘을 자유롭게 날았다.
그리고 그 거대한 두 눈알이 나를 정확히 응시하며 낙하하기 시작했다.
나를 완전히 짓뭉개 형체도 남아나지 않도록 할 것만 같은 움직임이었다.
“흐…흑염료오오오옹-!!”
너무 놀란 나머지 다리에 힘이 쫙 풀리며, 엎어진 상태로 애타게 소리쳤다.
[어……! 아니야! 아니야! 내 주인님이야! 그러면 안 돼!]
흑염룡이 그 정체불명의 몬스터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그러자 거대한 물고기 몬스터는 공중에서 멈췄다.
[어쩐지.]
……응?
이 목소리는 흑염룡의 목소리가 아니다.
분명히 공중으로 튀어 오른 저 물고기가 낸 목소리였다.
[응! 그러니까 얼른 들어가! 주인님 무서워하잖아!]
[실례했군.]
몬스터는 짧은 그 한마디만 남기고 다시 나락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몬스터가 모습을 감추면서 극심한 진동도 사라져 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뭐야?”
[뭘 뭐야? 말했잖아. 게이트 속 몬스터는 키스톤을 지키기 위한 것. 우리의 경비 장치라고.]
경비 장치가 너무 살벌하다.
보통 경비 장치 걸리면 체포되는 게 전부인데 이건 목숨이 증발하는 수준이니, 정신 잠깐 놓으면 저세상에 갈 것만 같았다.
[자! 얼른 가자!]
흑염룡은 활기차게 제안했다.
이 던전이야 나에게 두려움이 가득 도사린 재앙의 장소이지, 흑염룡에겐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라 그럴까.
유독 신이 난 듯한 목소리였다.
“……그래.”
난 그렇게 터벅터벅 걸어 저 멀리 보이는 신전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슬쩍 뒤를 돌아 방금 내가 지나왔던 그곳을 쳐다봤다.
거대한 물고기 몬스터가 나를 위협했던 곳이다.
‘실제 헌터들은 저런 몬스터와 싸운다…….’
보는 것만으로 몸에 힘이 쫙 빠져 움직일 수도 없었는데, 그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던 걸까.
헌터들이 내심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크루즈들은 저것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하단 거잖아?’
과연 크루즈들은 또 어떤 기괴하고 무서운 생김새를 가졌을지, 쉽게 가늠도 가지 않았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해? 빨리 가자니까.]
흑염룡의 생떼와 같은 재촉으로 생각은 거기에서 멈췄다.
크루즈가 어떨지 그런 건 생각해 보니, 걱정할 게 아니다.
애초에 내가 지금 이 짓을 하는 것 자체가 크루즈가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니까.
***
계속 걷고 걸어서 드디어 도착한 신전의 거대한 철문.
가까이에서 보니 철문도 거대했다.
높이가 웬만한 5층짜리 빌라와 맞먹었다.
그리고 철문 좌우엔 석상이 하나씩 놓여 있었는데, 석상의 생김새 역시 나에게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다.
바로 고대 이집트의 스핑스크와 상당히 유사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머리만 그런 스핑크스이고 두 발로 당당히 서 있다는 것이다.
석상의 크기 역시 철문과 비슷할 정도로 컸다.
그리고 석상은 두꺼운 양손잡이 단날 도끼를 들고 있었다.
[다 왔다!]
흑염룡이 먼저 유유히 날아 철문 앞으로 당도했다.
내게 어서 오라는 손짓을 계속 보냈고, 나도 철문 앞에 있는 돌계단에 발 한쪽을 올린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궁-!
또다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서 있기도 힘들 정도의 진동이 나를 덮쳐왔다.
[……세상에! 이게 왜 지금 작동돼?!]
그런데 흑염룡은 세상을 잃은 것만 같은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빨리 뛰어와! 빨리!]
그리곤 화를 내는 것같이 느껴질 정도의 다급한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드드드드득-!
철문 좌우에 있던 석상이 표면에 있던 돌이 벗겨지며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설마… 이것도 몬스터였어?’
그저 장식물일 줄 알았던 석상.
그러나 몬스터가 들어 있던 것이다.
몬스터의 몸을 감싸던 돌이 전부 사라지자, 석상은 이제 거대한 몬스터로 변했다.
[윤도원!! 빨리!!]
다시 흑염룡의 목소리가 날아든 순간.
몬스터들은 단날 도끼를 번쩍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