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게이트 메이커 (1)
[뭐야? 표정 보니까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 보이는데.]
“있기야 있지. 근데 그 전에. 그 말 사실이야? 던전이 모두 사라져서 기존 키스톤들이 효력을 잃게 된다는 거.”
확실히 알고 싶어서 재차 강조하며 물었다.
[응. 그거 던전이 같은 세계에 존재할 때만 그런 힘을 내니까. 인간들에게 던전은 재앙으로 보일지 몰라도 키스톤은 아니야. 키스톤이 인간들의 전자 제품이라면 던전은 그걸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콘센트 같은 개념이니까.]
“그러면 던전을 만들고 지키는 게 조금 쉬울 수도 있겠는데?”
[……정말?]
흑염룡은 이제 기대에 잔뜩 찬 눈빛이다.
얼마나 크루즈들이 무서우면 저런 눈빛을 다 지을까 싶었다.
그리고 내가 흑염룡의 말을 듣고 확신할 수 있던 것.
던전 속에서 나온 초월석으로 유가도 내려갔다고 하지 않았던가?
초월석을 이용한 제한된 자원을 반영구적으로 늘리는, 이른바 자원 뻥튀기.
이 방법을 발견한 것은 인류 역사에서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작해야 10년도 채 되지 않은 이야기다.
초월석에 그런 힘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이렇게나 늦게 발견한 것이다.
아무튼, 자원 뻥튀기를 발견한 인류는 모든 분야에 초월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기, 수도, 가스, 기름 등등.
인간의 실생활에 필요한 자원이란 자원엔 전부 투입된 것이다.
그 결과.
이 자원 뻥튀기가 발견되기 직전엔 휘발유가 리터당 1200원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고작 100원 남짓이다.
그리고 주유소는 국가가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주유소가 이제 공기업이 된 것이다.
그 외에도.
수도, 전기, 가스와 같은 공과금 전부를 포함해도 한 달에 만 원 이상 나오는 게 이상한 시대다.
그 정도로 초월석이 가져다준 이점은 대단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초월석이 사라진다면?
답은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자원의 가격이 오르면서 연결된 모든 산업과 생산품의 비용이 오를 것이고, 그렇게 사회는 아비규환 그 자체가 될 테지.
그런 혼란한 사회에 갑자기 던전이 재등장하고, 기존 초월석이 활성화되면서 다시 안정이 찾아온다면?
과연.
던전이란 재앙이 다시금 시작되는 사실에 두려워할까.
아니면 초월석으로 인한 물가 안정화가 찾아올 것을 기뻐할까?
난 솔직히 후자라고 생각한다.
초월석은 일반인들에게도 귀중한 존재니까.
그리고 어차피 일반인이 던전에 들어갈 일도 없으니.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헌터들이 어렵지 않게 던전을 닫을 것이며, 자신들은 안락한 삶을 다시 살 수 있단 것을 기대할 거다.
인간의 본성이란 게 원래 그런 법이니까.
[…그래서 던전을 지킬 수 있단 말이?]
“던전의 이점을 그때 알리면 되는 거지. 그래서 정복하면 안 된다고. 그리고 우리가 먼저 건들지만 않으면 던전 속 몬스터들도 우릴 공격하지 않는다며?”
[……응.]
“그럼 된 거 아냐? 새롭게 만든 던전 안에만 안 들어가면 되는 거니까. 던전만 온전하면 키스톤은 다시 활성화되고. 서로 윈윈 아니야?”
[내 말을 잘못 이해한 거 같은데…….]
하지만 흑염룡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무언가 중요한 사실을 빼먹은 듯하다.
“뭔데?”
[내가 말한 효력을 잃는단 뜻은… 잠깐 멈추는 게 아니라 아예 사라진단 뜻이야.]
“…그 말은. 기존에 인간들이 사용하던 키스톤은 그냥 돌멩이로 전락한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잘 들었네.]
“그럼 새로운 초월석을 얻기 위해선……?”
[던전을 또 정복해야지.]
“하아…….”
손바닥으로 이마를 찰싹 때렸다.
이러면 상황이 나아질 게 하나도 없잖아…….
흑염룡이 새로운 던전을 생성해도, 초월석을 얻기 위한 움직임은 분명히 있을 거고 난 그것을 막아야 하고.
그런 던전이 사라지면, 크루즈들이 넘어올 거고.
당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아! 이게 무조건 정답이다!’라는 게 아예 떠오르질 않는단 뜻이다.
“그런데…….”
그런 거 다 제쳐두고.
내가 놓친 최대의 문제점이 하나 남아 있었다.
[왜?]
“그래, 던전을 만드는 건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걸 지키냐……? 나 헌터도 아닌데……?”
크루즈를 막기 위해 던전을 흑염룡을 통해 새로이 만들면, 그것을 또 막기 위해 헌터들이 달려온다.
일반인에 지나지 않은 내가 초인이라 불리는 그런 헌터를 막을 재간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어쩔 수 없지. 키스톤 몇 개는 너한테 써야지.]
그런데 흑염룡은 전혀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는 태평한 목소리다.
“…쓰다니? 쓰면 뭐가 달라지는데?”
[초능력을 얻지. 헌터들처럼.]
“…초월석에 그런 효과도 있어?”
[응.]
이건 나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아니, 나만이 아니라 세계도 모른다.
[애초에 인간들은 키스톤을 잘못된 용도로 사용하고 있어. 그 키스톤은 우리가 급할 때 꺼내 쓰는 무기고 역할도 했던 거라고. 키스톤 안에는 다양한 능력들이 있거든.]
정말 들으면 들을수록 만능의 돌이란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고작 돌덩이 하나가 그런 다양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비로웠다.
흑염룡은 설명을 덧붙였다.
[너희 인간들 중에 갑자기 헌터가 된 인간. 그런 인간도 바로 키스톤의 영향을 받은 거라고.]
“…….”
난 이번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왜냐, 흑염룡의 말이 거짓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어서다.
여러 기사를 봐도 알 수 있었다.
평범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초능력이 생기거나.
혹은 태어날 때부터 비범한 초능력을 보인다거나.
이런 기사들은 예전부터 심심찮게 쏟아졌다.
그들은 당연히 그대로 헌터의 길을 걸었고, 그렇게 능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훈련을 따로 거친 다음에 실전에 투입되는 어엿한 헌터가 되었다.
그렇게 헌터가 된 사람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출산지나 거주지가 던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럼 신생아부터 헌터의 초능력을 가지게 된 아이들이?”
[응. 던전 근처에 사는 임산부가 그 영향을 받고 뱃속에 있는 아기한테 옮겨진 거지.]
그간 인류가 어떤 가설을 세우고, 실험해도 풀어낼 수 없었던 문제.
난 흑염룡의 입을 통해서 너무나도 간단히 알아 버렸다.
[그러니까 던전을 지키는 방법은 분명히 있어. 마침 난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정령이잖아. 나를 이용하면 너도 강한 헌터가 되고, 나는 크루즈를 못 오게 막고. 서로 좋은 거 아냐?]
이제 그녀는 나를 설득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그 뒤로는?”
[……응?]
“크루즈를 여기 인간계로 못 넘어오게 막고 끝? 아닐 것 같은데. 결국엔 그 크루즈 전체를 없애야 하지 않아? 네가 살던 곳도 점점 점령당하는 중이라며.”
[…….]
말을 아끼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 듯했다.
“결국 마지막에는 초월석의 힘을 가져갔으니 나한테 시오스의 세상을 탈환하는 것까지 시킬 것 아냐? 내가 왜? 오히려 난 너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인데.”
[……그건.]
확실하게 하려고 강하게 말했는데, 역시나다.
애초에 흑염룡의 계획은 거기까지였다.
“…….”
그렇게 흑염룡과 나는 제법 긴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흑염룡은 우물쭈물하며 내내 나의 눈치를 봤고.
나는 불붙인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그대로 둔 채, 담뱃재가 길게 타들어 가는 것만 보았다.
치이익.
“됐다.”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며 그녀에게 말했다.
[……뭐가 됐단 건데.]
“일단은 크루즈가 문제잖아. 크루즈 넘어오게 하면 우리 인간들도 재앙인 거고. 이건 맞는 거지?”
그 물음에는 답은 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된 거라고. 어쨌든 크루즈를 못 오게 해야 하니까……. 넘어오면 인간들도 다치잖아. 그러니 던전은 새로 만들어야지.”
[……그럼, 내 부탁을 들어주는 거야?!]
이젠 희망을 보았는지 상기된 표정을 하며 물었다.
“일단은. 우리도 살고 봐야 하니까.”
선택지라는 게 처음부터 있었을까.
크루즈는 이미 잘게 쪼개 인간계에 퍼트린 키스톤을 회수하기 위해 올 것이고.
그 무대는 내가 사는 인간계다.
난 베란다에서 주위를 한번 훑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그다지 고급스럽지 않은 원룸형 오피스텔.
주위엔 이런 오피스텔 건물이 정말 많았다.
만약 크루즈가 넘어오면, 이런 건물 숲은 사라지고 황폐한 황무지로 변한다는 것만큼은 뚜렷한 사실 아닌가.
“나, 참. 중2 때 너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 인생이 기구하게 변할 거란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안 그래?”
[…….]
“자. 일단 시작하자. 던전 얼른 만들어.”
그렇게 이제 베란다를 나와서 말했다.
[……만들라니?]
그런데 흑염룡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게이트 만들 수 있는 정령이잖아. 얼른 만들라고. 여기 우리 집이니까 누구한테 들키지도 않고. 어차피 몬스터는 먼저 건들지만 않으면 된다며? 그러니까 일단 첫 번째 게이트는 내 집에다 만들어 놓자고.”
[아니, 그게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잖아.]
“그럼?”
나의 되물음에 그녀는 미간을 심하게 찌푸렸다.
미간에 진 주름이 마치 미니 효자손으로 자국을 낸 것만 같았다.
“왜? 뭐가 문젠데?”
[잊었어? 내가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조건이 뭔지.]
“……아!”
그래, 흑염룡 말대로 잠깐 잊었다.
하기야, 나도 15년 만에 보는 건데, 그녀가 어떻게 던전을 여는지는 잠깐 잊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분명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으면 너도 모르게 열리는 거였지?”
[응. 날 어떻게 만들 건데?]
“으음…….”
고민했다.
흑염룡이 게이트를 꺼내게 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오글거리게 만드는 것.
보통 오글거리는 건 인간들도 쉽게 제어할 수 없는 반응 중 하나니까.
그런데…….
중2병은 이미 예전에 완치되었는데 그때와 같은 중2병력이 나올 수 있을까?
15년 전이 마지막이었는데, 아직도 나에게 소위 말하는 그런 클라스가 남아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머리를 열심히 굴려봤다.
어떻게 하면 흑염룡을 오글거리게 만들 수 있을까.
보통 오글거리는 건 몸짓보단 말이 효과가 제격이다.
그런 것 중에 확실한 게 뭐가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던 중.
나도 모르게 한마디를 흘렸다.
“하, 흑염룡 저 기지배가 인간이었다면 당장 신고했을 텐데.”
[내가 인간이면? 왜?]
흑염룡은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뭔가가 떠올랐는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오호라, 주거침입죄 이런 걸로 나 보내 버리게? 너 지금 생각해 보니까 하기 싫어서 그렇지?]
“아니. 내가 신고하러 갈 곳은 경찰서가 아닌데…….”
그리고 난 흑염룡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것도 내가 생각하고 하는 행동이 아니다.
마치 입력된 명령어 그대로 움직이는 공장의 설비처럼, 몸이 그렇게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중이다.
[……왜 이래? 징그럽게.]
어느덧 흑염룡의 코와 내 코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고.
그 상태에서 난 한 손은 작은 흑염룡의 정수리 위에 올렸다.
“동사무소에 갈 거야.”
[……뭔?]
“혼인신고… 하러.”
준비해둔 윙크도 잊지 않았다.
찡긋.
“네가 인간이면 평생 데리고 살 비주얼 아니겠어? 정령 아가씨?”
[오우…… 쉐엣…….]
흑염룡은 주먹을 꽉 쥔 상태로 말했다.
[……15년 만에 들으니까 진짜 최악이야!]
쿵!
그리고 반응은 바로 나타났다.
흑염룡은 내 방에 게이트 하나를 만들었다.
훗, 역시.
명언은 틀리지 않았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라스는 영원하다.’라는 명언.
내 중2병 클라스는 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