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흑염룡이 뭐냐면. (2)
“저게 뭐? 인류 입장에선 재앙이었잖아. 갑자기 던전 입구인 게이트가 생기고, 거기서 몬스터가 나타나서 사람들이 죽고. 그러니까 닫는 게 맞잖아?”
[그거야 인간들이 먼저 우릴 건드렸으니까 그러지! 우리도 가만히 있는 인간은 안 건드려!]
이젠 당돌한 목소리다.
심지어는 훈계하는 듯했는데, 그녀의 의견을 헤아리자면 우리 인간이 먼저 선을 넘어서 그렇게 된 거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야! 기존에 있던 게이트가 전부 닫혀 버리는 바람에 우리도 이제 손쓸 방법이 없다고! 여태껏 어떻게든 버텼는데!]
그런데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됐다.
손쓸 방법이 없다? 그리고 여태껏 어떻게든 버텼다?
이 부분이 계속 귓가에서 반복 재생이 되듯이 걸렸다.
“손쓸 방법이 없다는 건 무슨 말이야? 말하는 게 꼭… 그간 우리를 도와줬다는 식으로 말한다?”
계속 훈계하는 듯한 목소리로 보자면 흑염룡이 말하고 싶은 건 그거밖에 없다고 직감했다.
내가 묻자, 흑염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인 나로서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재앙 그 자체라고 불리는 게이트인데, 도리어 그게 인간을 도와주고 있었다니.
도대체 어떤 발상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것인지 궁금했다.
[내가 15년 만에 갑자기 나타난 이유기도 해. 잘 들어.]
그렇게 흑염룡은 설명하기 시작했다.
요는 이렇다.
흑염룡이 본래 살던 세상, 정령계.
즉, 내 입장에선 이계다.
그런데 이계에는 흑염룡 같은 부류만 있는 게 아니다.
이계에는 두 세력이 있고,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 전쟁 중이었다.
인간 입장에선 인류 빅뱅이 일어나기도 한참 전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흑염룡이 속한 세력은 ‘시오스’라 부르고, 그 반대 세력을 ‘크루즈’라 부른다.
그녀가 있던 세상의 본래 주인은 시오스.
그런 세상을 뺏기 위해 침략을 시도한 것이 바로 크루즈.
크루즈는 이미 다른 이계를 정복하고 시오스의 세상까지 넘어와 위협을 가하는 침략 세력이라고 했다.
현재 이계에 시오스의 세상을 제외한 모든 곳은 이미 크루즈의 손에 넘어갔고, 마지막 남은 것이 흑염룡이 살던 세상인 것이다.
그런데 시오스의 땅을 빼앗기 위해선 ‘키스톤’이란 것을 점령해야 한다.
오래 지속되는 전투 속에, 시오스는 점점 열세에 접어들었고.
이대로 가면 키스톤도 점령될 것으로 판단.
강수 하나를 뒀다.
바로 키스톤을 잘게 쪼개, 다른 세계로 보내 버린 것.
그렇게 되면 크루즈가 한순간에 키스톤 전체를 점령할 수 없으니, 일단 자신들의 땅은 지킬 수 있다는 계산에서 나온 강수다.
“…설마. 그게 인간계의 던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묻자,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키스톤이란 걸 쪼갰다고 했을 때 내가 의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바로 던전 마지막 장소에 가면 돌멩이 하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그것을 영어권에선 ‘익시드 스톤(Exceed stone)’, 한국을 포함한 한자를 사용하는 국가에선 ‘초월석(超越石)’이라고 명칭한다.
초월.
말 그대로 어떠한 한계나 표준을 뛰어넘게 해주는 신비한 힘을 가진 돌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은 거다.
“그럼… 우리가 초월석이라 부르는 그 돌의 정체가……?”
[응. 시오스 세상의 키스톤 조각이야.]
어쩐지 처음 초월석의 용도가 대외적으로 알려졌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그깟 돌멩이 하나로 이런 초월적인 에너지를 뽐내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이런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내가 사는 사회에서는 던전 안에서 얻은 초월석으로 헌터만이 아닌, 일반인들도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고갈 위험 자원인 석유.
석유가 매장된 곳에 초월석을 심으니, 초월석이 석유를 그대로 복제하여 생산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석유 1L 안에 초월석을 넣으면 100L로 복제하는 수준이다.
그로 인해 나날이 오르던 전세계 유가(油價)는 내려갔고, 석유가 더는 고갈 위험 자원이 아니라는 공식적인 발표까지 잇따랐다.
이제 초월석만 지속적으로 공급하면 반영구적이 자원이 된 셈이다.
하지만 그런 초월석이 인류에 가져다준 이점은 빙산의 일각.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초월석의 이점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비단 던전을 정복하는 헌터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인간들 전부에게로 돌아갔다.
[키스톤의 작은 조각 하나가 그 정도 힘을 낸 거라고. 우리가 조각 몇 개로 쪼갰는지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아.]
흑염룡은 그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녀의 의도는 필시 이런 것이겠지.
“그 조각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여 온전한 키스톤이 된다면, 어떤 힘을 낼지 상상도 안 가지? 그리고 왜 그걸 크루즈들이 탐내는지도 알겠지?”라고.
하지만 문득 인간으로서 화가 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너희들 싸움에 인간계까지 끌어들여진 거 아냐? 엄연히 이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꼴인데.”
[…….]
핵심을 짚어서일까.
그녀는 뚱한 표정으로 입을 삐쭉 내밀었다.
사실, 내 말이 맞지 않는가?
엄연히 저들끼리의 싸움에 인간계를 끌어들이게 된 것이니까.
즉, 시오스가 인간계에 키스톤 조각만 뿌리지 않았으면 던전이 생길 리도 없었고.
사람의 희생도 애초에 없었으니까.
[그래도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잖아……. 키스톤 조각으로 인해 인간들도 혜택은 많이 봤잖아…….]
그녀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점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피해 본 것이 오히려 더 컸기 때문이다.
“지금 그게 말이니? 어쨌든, 너희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사실인데.”
[…그건 미안하게 생각해.]
“얼씨구? 야, 인간 사회에서도 사람 죽이고 미안하단 소리로 퉁 치진 않아. 합당한 벌을 받지.”
[그래서…! 우리도 나름대로 인간들한텐 미안하니까 우리 스스로 형벌을 내리긴 했어…!]
마음을 제발 알아달라는 애원으로 들리는 수준이었다.
“형벌? 무슨 형벌?”
[바로 너처럼 정령의 주인이 되는 사람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 그게 우리가 스스로 정한 형벌이야.]
“그런데 어겼잖아? 스스로 정한 형벌치곤 너무 가벼운 거 아냐?”
[아니야… 내가 명령은 어긴 건 분명히 잘못한 게 맞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내 입장에선 그렇다고! 그리고 인간계에 이제 정말 끔찍한 재앙이 닥칠 거야. 그걸 알려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명령을 어긴 것만은 알아줘……!]
“재앙?”
끔찍한 재앙이란 말을 할 때, 정말 흑염룡의 표정은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이었다.
[내가 모든 던전을 정복해서 화를 낸 이유는 바로… 우리가 펼쳐 놓은 던전은 크루즈가 인간계로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억제기 역할도 했기 때문이야.]
“……?”
[키스톤 조각으로 만든 던전을 인간계에 많이 활성화시키면 시킬수록, 크루즈는 이쪽으로 넘어올 수 없어. 그래서 최대한 많은 던전을 옛날부터 퍼트린 거라고!]
“…그럼 던전에 있는 몬스터는? 그 몬스터 때문에 인간이 피해를 봤잖아.”
[그건… 키스톤을 지키기 위한 경비 병력이었어. 그런 초월적인 힘을 가진 키스톤인데 아무나 손대게 할 순 없잖아? 악용의 여지도 있고…….]
“아니,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굴러가는 거냐? 왜 하필 경비 병력을 그런 무시무시한 몬스터로 한 건데?”
[너희 인간들도 중요한 걸 지키기 위해선 온갖 경비 장치를 잔뜩 설치하잖아. 박물관만 가도 도둑이 침입하면 경찰이니 뭐니 다 출동하면서.]
그래, 이해는 된다.
그렇게 귀중하고 대단한 물건이니 아무나 손을 대면 안 되니까.
박물관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소중한 것.
초월적인 힘을 가진 초월석을 지키기 위해서니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고 흑염룡이 했던 말 중 하나도 다시 떠올랐다.
“…그럼, 네가 말한 ‘인간이 우릴 먼저 건드렸으니까.’의 의미는……?”
[그 키스톤을 가져가기 위해 던전 안으로 먼저 들어와서 공격했잖아. 그러니 너희도 크루즈와 똑같이 인식한 거지.]
……참.
이해관계가 완벽히 맞물리면서 이런 현상이 나왔다는 게 개탄스러웠다.
각자의 타당한 사정이 분명히 존재했지만, 단순한 이해관계가 맞물리며 인류는 빅뱅이라는 거대한 재앙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이제 그 억제기가 없어져서 슬슬 크루즈가 이쪽으로 넘어올 거란 뜻이냐?”
[…응.]
흑염룡은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바라는 표정이었다.
시무룩하고 공포에 질린 그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중이다.
[정말… 끔찍하단 말야…….]
던전이 절대적인 재앙이라고만 아는 인간들은 오랜 세월 던전 정복에 힘을 쏟았다.
그런데 사실은 그 재앙 뒤에 더 큰 재앙이 있을 줄 누가 감히 예상이나 하고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현재 나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분명했다.
하필이면 이 두 세력이 싸우는 무대가 내가 살고 있는 지구, 인간계라니.
결국 나까지 휘말리게 된 상황.
이것을 원망한다고 한들, 변하지 않는 것쯤은 알고 있다.
따라서 흑염룡이 말하는 진짜 재앙이 오기 전에 최대한 수습을 해야만 했다.
크루즈보다 약한 시오스가 만든 던전도 인간계에선 발칵 뒤집혔는데.
그들보다 강한 크루즈가 인간계로 오게 되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 것인가?
그 부분을 생각하니 앞으로 다가올 앞날이 두려워졌다.
“크루즈를 못 오게 막을 방법이… 뭔데?”
[던전을 만들어야 해. 그리고 지켜야지.]
“…지켜? 누구로부터 누가?”
[누구긴. 인간계의 헌터들로부터. 그리고 지킬 사람은…….]
그녀는 우물쭈물하게 내 눈치를 보다가 어렵게 입을 뗐다.
[너밖에 없잖아.]
“…내가?! 헌터들까지 막아야 한다고?!”
이제 보니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게 아니라.
그냥 새우라는 존재 자체가 터져 잔해로 변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또 하지 않을 수도 없지 않은가?
방관하면 어차피 인간계의 파멸이고 나 역시 그 인간계에 사는 사람인데.
나도 살고 싶다면 어쩔 수 없이 동조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으면 크루즈가 넘어와…. 정말 막을 방법이 없다고 현재 우리로선…….]
하, 나 참…….
30 평생 평범한 삶을 보낸 나인데.
왜 갑자기 한순간에 지구와 시오스의 구원자가 된 것인가.
기가 차서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참고로… 던전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인간들이 가져간 키스톤 조각도 이제 효력을 잃게 돼. 그거 던전이 남아 있을 때만 활성화되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순간 문득 무언가 스친 생각이 있다.
‘그렇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