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흑염룡이 뭐냐면. (1)
퇴근하자마자 습관적으로 TV를 틀었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를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보지도 않을 건데 습관적으로 TV를 켜는 행동.
혼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감할 거다.
혼자 사는 집에서만 나오는 적적함이 싫어서 TV 소리라도 내는 것뿐이니까.
TV를 켜는 행동은 나에게 일종의 퇴근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TV 소리를 흘려들으며 옷을 훌렁 벗고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는 중일 때였다.
- 드디어 역사적인 인류의 쾌거를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는 어느 앵커의 상기된 목소리.
누가 들으면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우승이라도 한 것만 같은 반응이다.
지금이 월드컵 시즌도 아닌데 저렇게 호들갑스러울 이유가 있을까?
꼭 쥐가 된 내가 탐스러운 먹이가 놓인 끈끈이 트랩에 마주한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쏠리는 상황이다.
무의식적으로 난 그 목소리를 향해 시선을 향했다.
[특보!! 인류 마지막 던전 정복 현장 생중계!!]
하단에 뜬 자막을 보고 나서야 앵커의 반응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인류에게 불어닥친 재앙, 빅뱅.
던전으로 들어가는 입구 게이트란 것이 생겨나면서 무시무시한 괴생명체인 몬스터들이 인류를 위협했다.
빅뱅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우주 대폭발에서 따온 것이었다.
우주 대폭발처럼, 인류의 역사 자체가 몬스터에 의해 폭발할 뻔하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단 뜻이다.
그 기원은 공식적인 기록에 의하면 약 50년 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헌터라는 새로운 인류의 부류가 생겨난 순간이기도 하다.
50년 동안 인류를 위협한 빅뱅이 종결되는, 인류 역사에 한 획을 새로이 긋는 순간을 각국에서 동시 생중계로 방송 중인 것이다.
“오잉.”
정말 한국이 월드컵에서 우승했다는 정도의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사는 시대에 인류 빅뱅의 종결을 맞이하다니.
세기가 바뀌는 순간을 직접 몸으로 경험한 것처럼, 신비로운 기분이었다.
마지막 던전이 있던 장소는 남극.
얼마 전 세계 각국 정예 헌터들이 팀을 이뤄 남극 던전을 정복하러 갔단 뉴스는 들었지만, 정말 정복을 성공적으로 마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무튼, 남극 던전 게이트에서 나오는 정예 헌터들.
그들이 무사히 밖으로 나오자 게이트는 무너졌다.
인류는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에 사로잡혔으며 TV 채널마다 던전 정복 소식만 지겹게 이어졌다.
같은 내용 보도가 반복되자 지루해진 난 TV에서 시선을 떼고 베란다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왜냐면, 던전이라 하면.
내 온몸이 짜릿할 정도로 강렬한 연(緣)이 하나 있다.
지금은 평범한 30살 직장인에 지나지 않은 나지만.
적어도 그땐 그러지 않았으니까.
“푸후~ 흑염룡. 고 기지배 그거 이젠 다시 못 보나?”
연기를 뱉으며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날 그따위로 부르지 말랬지. 린느라는 이름이 버젓이 있는데 왜 자꾸 그런 별명으로 불러?]
“……?”
나 혼자만 서 있던 베란다에서 차가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뱉은 담배 연기가 스스로 뭉쳐 작은 정령으로 변했다.
“……흑염룡?!”
[린느라고!!]
그렇다.
흑염룡의 정체. 이 정령의 별명이다.
그런데 이 정령이 던전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그건 바로……!
***
그러니까 내가 흑염룡을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중학교 2학년 시절 무렵이었다.
남녀 불문, 사춘기를 겪으면 자매품으로 딸려온다는 그것.
아, 품(品)이라고 하기엔 형체가 없으니 병(炳)이라고 말해야 하나?
그래, 그거 맞다.
중2병.
난 특히나 그 병을 중증으로 겪었다.
일례로 이런 게 있었다.
남녀 공학 학교였던 나에게 평소 마음에 두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쉬는 시간에 복도를 걷는데 이게 웬걸.
그 여학생이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던가?
생각도 하지 않고 내 몸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바로 그 여학생의 어깨를 고의로 부딪힌 것이다. 그것도 넘어질 정도로 세게.
“아 뭐야!!”
바닥에 철퍼덕 엎어진 여학생은 당연히 내게 짜증을 내며 소리쳤고.
그 순간 난 이렇게 답했다.
“이러케 하면 널 가질 쑤 이쓸 꺼라 생각했쒀!”
실제로 발음도 일부러 저렇게 했다.
그게 더 강렬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내 답을 들은 여학생은 시간이 멈춘 듯, 입을 멍하니 벌리며 손가락에 얼마나 힘을 줬는지 손을 덜덜 떨어댔었다.
“뭐 이런 미친놈이……!”
그리곤 황급히 바닥에서 일어나 교실로 뛰어갔더랬다.
난 정말 그 말이 멋있다고 생각해서 말한 거다.
장난 안 섞고 진짜 진지하게.
대차게 차인 나는 “에이, 이게 아닌가.”하며 교실로 들어갔다.
다행스럽게도(어디까지나 여학생 입장에서) 그 여학생과 나는 반이 달라서 교실에서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 쉬는 시간이었다.
‘쾅!’ 소리와 함께 난폭하게 교실 문이 열리고.
“야!! 윤도원!! 너 이 십덕색……!”
내 이름을 사납게 부르며 들소마냥 내 책상 앞까지 다가온 학교 짱.
사실 그 여학생의 남자친구다.
둘이 사귄다는 소식에 난 진지하게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예쁘고 착한 애가 그런 양아치랑 사귈 리가 없어! 분명히 협박으로 인해 무서워서 그런 걸 거야! 걔를 좋아할 리가 없지!’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나만의 착각인 건 비밀.)
아무튼.
난 그렇게 학교 짱에게 붙잡혀 화장실로 끌려갔고, 신나게 얻어터졌더랬다.
쉬는 시간 10분 중 약 5분을 그렇게 맞았고, 학교 짱은 내게 경고하며 떠났다.
“너……. 엔간히 해라, 진짜. 그러다 죽는다.”
그 당시엔 정말 아팠다.
맞은 곳이 아니라.
그녀를 양아치에게 구하지 못했단 사실이.
짱이 떠나고 난 뒤 혼자 남은 화장실.
난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꽉 쥐며 혼자 곱씹었다.
“후욱후욱, 운 좋은 줄 알아. 애송이. 이 안에 있는 흑염룡이 깨어났으면… 넌 걸어서 나가지 못했을 거야.”
그때였다.
“꺄아아아악!! 뭐 이런 미친 인간이 다 있어?!”
남자 화장실에서 들리는 여자의 비명.
깜짝 놀란 난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어떻게 맨정신으로 저런 말을…! 내가 많은 인간을 봤지만… 넌 정말 독보적이야……! 안 좋은 쪽으로!]
천장에서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슬쩍 위로 올려보자.
허공에 두둥실 떠 있던 그것은 박쥐 날개와 똑같은 날개를 가졌으며.
입고 있는 옷은 물론 날개, 눈동자, 머리카락까지 검은색으로 일괄된 정령.
피터팬에 나오는 팅커벨 같은 그런 정령이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이었다.
정령은 날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보더니 아까 그 여학생처럼 손가락을 잔뜩 오므렸다.
[흑염룡이 깨어나면 뭐…? 걸어서 못 나가…? 아아, 들어선 안 됐어! 어떡해, 어떡해!]
손가락을 넘어 발가락까지 오므리더니, 정령은 몸을 잔뜩 웅크렸다.
그러자 정령의 형체가 이상하게 변하더니.
진짜 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쿵!
정령이 게이트로 변한 것이다.
그렇게 평범한 중학교 남자 화장실에 작은 변이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그렇다.
이 정령은 오글거리면 게이트로 변하는, 요상한 능력의 정령이었다.
그것이 나와 흑염룡이라고 내가 직접 이름 붙인 정령의 첫 만남이었다.
덤으로, 던전과 관련된 짜릿한 연이 이것이다.
그 뒤로 학교 전교생은 귀가 조치가 내려졌고.
협회에서 학교와 가장 가까운 헌터들을 호출시켜, 변이 게이트를 급하게 닫는 헤프닝도 일어났다.
물론, 그들은 왜 변이 게이트가 나타났는지.
끝까지 그 원인을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협회는 변이 게이트 생성이 상당히 위험한 현상이고, 이 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 학교만의 무언가가 있으며.
나아가 또 변이 게이트가 생성될 수 있다는 경고 때문에 학교는 임시 휴교가 내려졌다.
그렇게 임시 휴교 기간은 무려 보름.
보름이 지나도 원인을 알아낼 수 없었던 협회는 안전하진 않지만, 휴교를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해 철회한 것이다.
대신. 학교엔 상주하는 헌터까지 생겨났다.
언제 또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그 뒤로 시작된 흑염룡과의 공생(共生).
나는 흑염룡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왜 갑자기 내게 왔는지. 그리고 흑염룡의 능력이 뭔지.
흑염룡은 일단 자신도 내게 온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자석도 서로 다른 극이 마주치면 끌어당기지만, 같은 극이면 밀어내는 법.
그런 현상과 똑같은 거라고 했다.
흑염룡과 나는 그저 서로 다른 극을 가졌고, 그래서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흑염룡의 주인이 된 것.
그리고 흑염룡은 던전의 입구인 게이트를 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령이 맞았다.
다만, 내가 착각한 부분이 있었는데.
순전히 오글거리게 만들기만 하면 게이트가 열리는 게 아닌, 그녀의 기분에 따라 게이트가 열린다고 한다.
즉,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라도 똑같이 열리는 것이고.
혹은 그 반대로 삶의 욕구도 사라질 정도로 우울하면 열리는 거다.
하지만 분노건 우울함이건 웬만하면 흑염룡 스스로가 감정을 주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날 만나고 나서 오글거리는 것만큼은 참을 수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게이트가 열렸다고 했다.
그래서 난 흑염룡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내 안의 흑염룡을 봉인한다.”
이유는 단순했다.
흑염룡이 나와 함께 있으면 게이트는 언제든 열린다.
게다가 학교엔 상주하는 헌터까지 생겼다.
어린 마음에 그게 무서워서였다.
내가 거대한 범죄라도 저지른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아무리 중2병 중증 환자라고 해도, 현실적인 문제가 닥치면 저도 모르게 정신을 차리기 마련이다.
내가 그런 부류였다.
적어도 현실은 볼 줄 아는.
봉인 명령을 받은 흑염룡은 더는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주 짧은 흑염룡과의 공생은 끝이 났고, 나도 어느덧 중2병이 자연 치유되어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대학교를 진학하고.
도중엔 군대도 갔다 오고, 이제 사회 초년생이 되어 성실히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그녀의 존재를 완전히 잊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오늘.
그 흑염룡이 주인인 내 말을 거역하고 나타난 것이었다.
***
“그런데 이상하네? 넌 주인의 말을 절대 거역할 수 없다며. 명령에도 공소시효 같은 게 있는 거냐?”
내가 조금은 비꼬듯이 물었다.
나를 충신처럼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내린 명령은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게 정령의 도리다.
지금은 엄연히 그런 도리를 깬 순간이 확실하니까.
[저거 때문이잖아.]
그런데 흑염룡은 표정이 상당히 불쾌하게 변했다.
그리고 그녀가 가리킨 곳은.
거실에 켜져 있는 TV였다.
여전히 TV엔 던전 완전 정복의 쾌거를 만끽하는 속보들만 쏟아지는 중이다.
“…저게 왜?”
[인간들은 정말 왜 그렇게 멍청한 거야?! 그걸 그렇게 싹 다 닫아 버리면 어쩌려고! 뒷일도 생각 안 하고 말야!]
그런데 그녀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모습이다.
‘……왜 이래?’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하다.
던전을 완전 정복하면 안 되는 사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