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목숨 99개-188화 (188/203)

188화

“까아아악!”

비명과 함께 겨울은 마계의 입구로 사라졌다.

그저 손가락을 가져다 댔을 뿐인데.

그 하나의 행동으로 녀석은 삼켜지듯 빨려 들어갔다.

“겨울아!”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소리치며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상황은 너무 갑작스레 일어났고, 무언가 대응하기엔 빠르게 끝나 버렸다.

“젠장.”

다급히 달려간 나는 일렁이는 거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순식간에 변해 가는 주위의 풍경.

슈아아아악―

빨려 들어간 마계의 입구는 답답한 어둠뿐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묘한 부유감을 느끼며 눈앞에 떠오른 문자를 바라보았다.

[맹약에 따라 마계 진입이 거부되었습니다. 인간계로 추방됩니다.]

‘뭐야 이건.’

예상했던 것과 달리 나의 행선지는 마계가 아니었다.

다시 튀어나온 곳은 익숙한 모습의 우거진 숲.

한데 뭔가 이상하다.

있어야 할 펜리르와 에비오는 보이지 않았고.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술의 모습이 나의 시선에 들어왔다.

맡은 구역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별과 함께 서 있는 겨울을 발견했다.

일단 겨울이 무사하니 큰 위기는 넘긴 셈인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너희들이 왜 여기 있어?”

“너야 말로 여길 어떻게 온 거냐.”

“뭔 소리야. 난 여기 입구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건데.

술과 나는 똑같은 얘기를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왜 왔냐고 물으면서 말이다.

“아저씨 우리가 다른 곳으로 넘어온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저거요.”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에게 겨울은 마계 입구를 가리켰다.

“아무래도 저게 다른 입구와 이어진 것 같아요.”

얘는 또 왜 이러는 건지.

설명을 듣던 나는 지도를 꺼내 펼쳐 보았다.

그러고는.

“진짜네.”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한번 마계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지도에 표시된 나의 위치는 다른 장소에 있었다.

“그러니까 저 기물에 손을 대서 이리로 넘어왔다는 건가.”

“그런 것 같은데.”

떨떠름한 나의 대답에 부족장은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다시 돌아가는 건? 돌아갈 수 없다면 귀찮은 일이 되겠군.”

“열심히 뛰어가야겠지.”

성가시긴 하겠지만 못갈 거리는 아니었다. 한 시간 정도 달리면 도착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신경 쓰이는 건 펜리르와 에비오만 남아 있다는 것.

“흐음, 두고 온 부대와 연락할 방법은 있는가.”

부족장의 말처럼 상황을 전달한 방법이 없다는 게 더욱 큰 문제였다.

“없어. 빨리 돌아가는 수밖에.”

굳은 얼굴로 답한 나는 일렁이는 거울로 향했다.

막연하게 떠오른 확신이랄까.

이쪽으로 올 수 있다면 돌아가지 못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디 가요. 설마 다시 들어가려는 거예요?”

“어.”

설명을 생략한 나는 겨울의 손을 잡고 입구에 다가섰다.

하나 다른 사람 눈에는 무모하게 보였나 보다.

“차라리 뛰어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쪽으로 가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잖은가.”

이렇게 말리는 걸 보니 말이다.

입구로 향하는 나에게 별과 부족장은 멈출 것을 권유했다.

“위험할 일 없을 거야.”

그러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가던 걸음을 이어 갔다.

적어도 마계로 갈 일은 없을 테니까.

또다시 들어서는 순간, 나와 겨울은 인간계로 추방당하게 될 것이다.

왔던 곳으로 돌아가든가.

아니면 조금 더 먼 곳으로 가든가.

“무사히 돌아가면 신호 보낼게.”

작별 인사를 전한 나는 겨울의 손을 붙잡고 거울 속으로 들어갔다.

또다시 이어지는 기묘한 부유감.

[맹약에 따라 마계 진입이 거부되었습니다. 인간계로 추방됩니다.]

어둠 속에 빨려든 우리는 똑같은 문자를 보며 어딘가로 튕겨 나갔다.

그런 나와 겨울을 맞이한 것은.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겁에 질린 에비오와 꼬리를 흔드는 펜리르였다.

“진짜로 돌아왔네…….”

얼굴을 부비는 펜리르를 보니 착각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는 건.

“다른 입구들도 모두 똑같을까요?”

“그럴 것 같은데.”

입구 하나를 발견하면 두 개를 찾은 것과 마찬가지란 얘기였다.

넘어간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좌우지간 돌아온 것에 성공한 겨울과 나는 격한 환대를 받으며 다음 계획을 세웠다.

마계 입구의 생성과 진행을 확인했으니, 이제부터는 입구를 봉인해 재출현을 막는 게 목표였다.

“봉인 방법은 알고 계세요?”

“어, 배웠어.”

짧게 대답한 나는 해머를 들어 입구로 다가섰다.

그대로 천천히 들어 자세를 잡고는.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있는 힘을 다해 입구를 내리쳤다.

“엥? 뭐하는 거예요?!”

“봉인.”

“이게 무슨 봉인이에요. 그냥 때려 부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하는 거래.”

“누가요?”

“그레이시 아저씨가.”

그에 겨울은 황당한 표정으로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라고 좋아서 이러고 있겠나.

― 봉인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 그냥 때려 부수면 된다.

― 그냥요? 결계석으로 봉인했다고 하던데.

― 결계석은 그냥 두고 온 거야.

― 왜요?

― 그렇게 말하면 뭔가 큰일하고 온 것 같잖아. 폼도 나고.

― 허… 스승님은 그 사실을 아세요?

― 당연히 모르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소환자였거든.

내가 하는 이 모든 행동은 그레이시의 고증으로 재현한 최후의 전투였다.

인마대전의 시작과 끝.

봉인되었다고 알려진 마계의 입구는 단지 부서져 사라진 것뿐이었다.

― 사실 이 아이디어를 낸 건 카론이었지.

― 로이드라는 사람이요?

― 그래. 기왕 일하는 거 티 나게 해야 보상도 큰 법이라고 하더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하기로 했다.

봉인이란 말이 쓰이게 된 건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저렴한 이유였네요.”

“뭐, 그랬다더라고.”

허망한 진실을 접한 겨울은 머쓱한 나를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의 내 표정도 저랬을까.

진실을 말하던 그레이시도 머리를 긁적거렸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상관일까.

“이러는 편이 쉽잖아. 차라리 다행인거지.”

“그렇긴 하죠.”

의미를 파악한 겨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과정이야 단순할수록 좋을 테니까.

남아 있는 입구를 박살 내고 수색을 재개하려 했다.

그렇게 하려했지만.

[긴급 성장 시스템 가동.]

맹약에 도전하는 자.

몬스터 사살 0/10,000

게이트 파괴 0/3

보상 : 모든 레벨 1증가.

오래간만에 나타난 성장 시스템이 나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특히나 보상 내용에 시선이 멈추고 말았는데.

‘모든 레벨 증가라고?’

내가 이해한 게 맞는다면 보유한 모든 기술들이 한 단계씩 승급한다는 얘기였다.

이런 거라면 할 수밖에 없지.

의욕 가득한 나의 해머는 남아있는 입구를 초토화 시켜 버렸다.

기다렸다는 듯 떠오르는 시스템 문자.

게이트 파괴 1/3

파격적인 보상을 향한 나의 행보는 이렇듯 가볍게 시작을 알렸다.

* * *

북쪽을 담당한 반크스의 일행은 순조로운 일정을 계속하고 있었다.

평화롭다 못해 지루할 지경.

“인마대전이 시작된 게 맞나? 너무 조용하니 오히려 불안하군.”

“그러게 말입니다. 얼마 전 상황이 거짓말 같군요.”

언짢은 반크스의 말을 받으며 듀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벌써 한 시간째 이어지는 이 외길은 원해서 들어온 길이 아니었다.

강제로 합류했다고 해야 하나.

본래 따로 움직이던 듀란은 깊은 절벽을 만나며 진행 방향을 변경해야 했다.

그렇게 마주친 것이 반크스였고, 여전히 길은 하나로 이어지고 있었다.

“무탈하게 지나가는 게 가장 좋지만 뭔가 맥 빠지는 기분이기도 하네요.”

“듀란 경도 그렇게 생각하시오? 저 역시 살짝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네, 이러다 병사들 긴장감마저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군요. 솔직히 걱정입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궁금해하던 적의 정체가 이제 곧 밝혀질 모양이니까.

“흠,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모양입니다.”

반크스는 수직으로 서 있는 은빛 물결을 보며 나직이 말했다.

기이하게 출렁이는 아치.

좁은 외길이 끝나는 넓은 지형 가운데엔, 이제껏 찾아다니던 마계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 저렇게 생겼군요.”

시선을 돌린 듀란은 작은 탄성을 뱉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대로 주위를 살펴보고는.

“아직 시작 전인 것 같으니 우선 병사들을 매복시키도록 하시죠.”

교전 수칙에 따라 1차적인 전투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반크스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요. 놈들이 나오기 전에 입구 자리를 선점합시다.”

“지켜본 뒤에 입구를 봉인하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물론 그랬습니다. 하나 그건 아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무방비인 적을 상대할 상황이 됐다면 지휘관의 재량껏 작전을 바꿔야지요.”

그가 원하는 것은 선제공격.

입구를 장악한 채 나오는 적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하자는 것이었다.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뜻이 통한 듀란은 눈을 빛내며 아치를 바라보았다.

승산이 있는 얘기다.

생성되고 있는 저 아치는 높이에 비해 폭은 넓지 않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동시에 등장하는 개체 수에 한계가 있을 터.

“부대는 신속히 진군한다!”

신호를 보낸 듀란과 반크스는 말을 달려 완성 직전의 입구에 도착했다.

“1열에 방패 검사 및 마력 총 소지자 정렬. 마력 총이 선공을 하고, 흘러나온 적은 검사들이 소탕한다.”

듀란의 지휘에 따라 부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대형을 만들었다.

어느새 완벽하게 형성된 덫.

일렁거리던 아치의 평면에서 마계의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때를 같이해 마력 총의 방아쇠가 당겨졌고.

쿠아아아앙!

각인된 락 버스터 마법이 긴 코를 가진 네발짐승을 무력화시켰다.

연이어 날아드는 예리한 창검.

인간계에 나타난 마계의 몬스터는 반응할 겨를도 없이 널브러졌다.

그 다음도 마찬가지.

이어서 등장한 몬스터들은 쏟아지는 마력 총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이거 토끼 사냥하는 기분인데.”

창을 거둬들인 병사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곁에 있는 동료와 히죽거렸다.

나오는 족족 사냥당하니 그렇게 생각할 법했다.

“마계도 별거 아니네.”

“기습 공격엔 장사 없지. 이렇게 당하는 데 어떻게 견디겠어.”

이렇게 말이다.

듀란의 걱정처럼 병사들의 긴장감은 느슨해지고 있었다.

분위기를 감지한 듀란이 일갈하려던 찰나.

끼에에에에엑―

귀를 찢는 괴성과 함께 와이번이 솟아올랐다.

순간 흐트러지는 집중력.

지상을 겨냥하던 마법 총은 예상치 못한 몬스터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다.

당황한 병사들의 시선이 공중에 머물렀다.

그것이 실수였다.

찰나의 혼란이 만들어 낸 틈은 포위망을 분열시키기에 충분했다.

“뚫린다!”

“막아! 집중해!”

뒤늦게 고함을 치며 수습을 시도했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한 놈이 통과하는 순간 다음 녀석이 뒤를 이었고, 1열의 좁은 공간은 순식간에 가득 채워졌다.

하나로 집중되던 공격은 이제 여러 갈래로 나눠진 상황.

전투의 양상은 난전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아니, 구축된 포위망은 급격하게 기능을 잃어 가고 있었다.

지켜보는 건 여기까지.

“물러서게.”

뒤엉킨 병사들을 물리며 반크스가 앞으로 나섰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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