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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 99개-185화 (185/203)

185화

“자네가 그 남자의 아들이란 말인가?”

“정황상 그런 것 같네요.”

“허허… 이것도 인연이군. 우리가 직접 싸울 순 없지만 물자의 지원이라면 아낌없이 돕겠네.”

숨겨진 사실을 접한 욜란드는 크게 반색했다. 그러고는 가지런히 정리된 마력 총을 가리키며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여기 있는 건 다 가져가고 원하는 게 있다면 말만 하게.”

보이는 마력 총은 대략 200자루.

“이렇게 많이 주셔도 됩니까?”

“어차피 사용할 사람이 없는 무기가 아닌가.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는 게 훨씬 보람 있는 일이 될 걸세.”

욜란드는 아낌없이 모든 걸 지원할 기세였다.

이런 상황에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감사합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전했다.

이후 주변은 분주해졌다.

병사들은 지원받은 물건을 챙겨 바쁘게 입구를 오갔고, 나는 욜란드를 통해 마력 총 사용법을 익히고 있었다.

“원리는 간단하네. 방아쇠를 당기면 약실 안으로 마력이 흘러들어 가지, 그러면 부여석에 각인된 마법이 격발되는 원리라네. 이해하겠는가.”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조준해서 방아쇠를 당긴다.

이것만 하게 되면 약실에 각인된 마법이 적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었다.

“마력석이 고갈되면 발사되지 않으니, 교환 시기가 오면 같은 크기로 바꿔 주면 된다네.”

주의 사항까지 확인한 나는 욜란드와 함께 동굴을 나섰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바깥 풍경.

입구에는 옮겨 놓은 짐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결계석과 증폭기, 그리고 마력 총까지.

“염치없지만 부탁하겠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삼등분으로 나눠 각 부대에 전달한 뒤, 우리는 드워븐족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 * *

기분 탓일까.

다시 시작된 수색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새로운 무기와 방어 수단.

공방 일체가 강화되니 마음이 절로 편해진다.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특히나 야영 준비가 대폭 줄어들어 효율적인 면이 크게 향상되었다.

물론 방심할 수는 없지만, 경계에 대한 부담이 감소하는 건 확실히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했다.

잘 먹고 잘 자는 것.

이러한 기본이 충족될 때 인간은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늘어지는 오후 해를 보며 나는 탐색을 중단하기로 했다.

대수림의 밤은 한순간이니까.

시기를 놓친다면 손쓸 틈도 없이 어둠 속에 갇히게 된다.

“저쪽 바위가 좋겠네요.”

겨울은 손가락을 뻗어 좀 더 먼 곳을 가리켰다.

커다란 암석이 반원을 그리고 있는 곳.

장소를 확인한 나는 도착하기에 앞서 결계석을 빙 둘러 설치했다.

이제 남은 것은 간단한 저녁과 이른 휴식뿐.

에비오는 이동 중에 사냥한 짐승을 들고 불가로 다가왔다.

나름 노력하고 있다는 걸까.

서툰 손놀림으로 손질을 마치고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지글거리며 익어 가는 갈색의 덩어리들.

기름이 자르르 돌기 시작하자 녀석은 작은 통을 꺼내 고기 위에 뿌리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소금이요. 허브가 조금 섞인 건데 이렇게 먹으면 엄청 맛있… 아, 이거 진짜 소금이에요!”

그제야 녀석은 무엇이 잘못된 건지 깨달은 듯했다.

희고 작은 결정을 입안에 넣고는.

“이것 보세요! 소금 맞죠?!”

짠맛에 진저릴 치며 필사적으로 결백을 증명했다.

애처로운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후회는 늘 늦은 법이니까.

“그냥 뭐냐고 물어본 거야.”

소금이란 걸 확인한 나는 손에 쥔 물병을 녀석에게 건넸다.

단숨에 들이키며 비워지는 물통.

“후아…….”

갈증을 해결한 에비오는 긴 한숨을 내쉬며 입가를 훔쳤다.

“지구에 있을 땐 무슨 일을 하고 살았냐.”

“저요? 그냥 이것저것 했어요. 식당에서 일한 적도 있었고, 공장에서도 일했었죠. 소환되기 직전엔 관광 가이드를 했어요.”

“관광 가이드?”

“여행을 도와주는 사람이에요. 간혹 빈민가나 위험한 지역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안내해 주는 거예요.”

지난 시간을 묻는 나의 말에 에비오는 이해 못할 얘기를 늘어놨다.

경치 좋은 곳을 놔두고 왜 하필 그런 곳을 보려는 건지.

애먼 턱을 긁적이며 지구인의 취향을 이해해 보려 했다.

하지만 나는 이내 생각을 접었다.

“힘들게 얻은 자리였는데…….”

흐려지는 녀석의 말끝에서 짙은 아쉬움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삶이랄까.

생각을 갈무리한 나는 풀 죽은 녀석의 손에서 잘 익은 고기를 건네받았다.

노릇하게 잘 익은 넓적한 다리 살.

“맛있네.”

크게 한입 베어 문 나는 남은 고기를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 * *

식사를 마친 겨울은 손에 쥔 마력 총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어딘가 들뜬 상기된 표정.

초롱초롱한 겨울의 눈 속엔 처음 마주하는 공격 수단에 대한 작은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에비오도 마찬가지.

부러움을 담은 에비오의 눈빛은 겨울의 마력 총을 향해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이르다.

녀석이야 말로 간절하겠지만, 무기를 나눠 줄 순 없었다.

측은한 마음과 믿음을 착각하는 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테니까.

“생각보다 많이 무겁진 않네요.”

나는 시선을 돌려 겨울의 마력 총을 바라보았다.

길이는 대략 팔 하나에 두께는 손목 정도.

약실에 각인된 락 버스터 마법은 소환된 작은 돌을 날려 폭발시키는 중급의 마법이었다.

원래는 바위를 날린다고 했었나?

상급인 진짜 마법에 비할 순 없지만, 기본 수준이 높아 위력은 상당하다고 했다.

어쨌거나 다룰 줄 알아야 써먹을 것 아니겠나.

“한 번 쏴 볼까요?”

“그래 해 봐.”

주저하는 겨울을 부추겨 연습을 시도했다.

“이렇게 하는 건가?”

겨울은 총구를 앞으로 내밀어 고목을 겨냥했다.

슈악!

공기를 가르는 격발음이 두 귀를 스치고.

쿠아아앙!

목표로 했던 나무 둥치가 뜯겨져 나가듯 사라졌다.

이런 예상을 했던 게 아니었는데.

“허얼!”

“어…….”

생각을 뛰어넘는 엄청난 결과에 겨울과 나는 얼빠진 소릴 냈다.

이 정도 위력의 마법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다니, 이렇게 된다면 마법사가 합류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된다.

그것도 연속 공격이 가능한 배틀 메이지가.

“이런 게 200자루라고?”

박살 난 고목을 보던 나는 시선을 돌려 마력 총을 바라보았다.

지금쯤 조준이 뛰어난 자들을 선별해 무장을 시키고 있을 터.

“멀리 있으면 쏴 죽이고, 다가오면 찔러 죽이고… 끝내주겠네요.”

동경에 가득 찬 에비오의 시선은 다가올 전천후 병사의 등장을 기대하게 했다.

* * *

바빌리안에 도착한 카리프는 아리안이 아닌, 대수림 입구로 향했다.

하여 도착한 이곳은 접경 지역의 경비 초소.

로이드를 찾아야 한다는 사마르의 계획에 카라프 역시 동참하게 되었다.

이 사달을 멈춰야 뭐든 할 테니까.

사마르의 생각과 상관없이 그저 우선순위에 따른 결정이었다.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 생각인가.”

“글쎄? 내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은가. 새로운 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돌아온 사마르의 대답에 카리프는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일단 몬스터의 움직임이 멈춘 것은 좋은데… 문제는 자신들의 행보 또한 멈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막연히 무언가를 기다려야 했다.

“막심의 소식은 알고 있나.”

“총사령관을 말하는 건가.”

“그래. 그놈은 지금 어디에 있나.”

“모하비에 있었던 것까지 알고 있네. 그 이후로는 모르겠군. 브라함에게 함락당했으니 죽었든가 도망쳤겠지.”

무심한 사마르의 답에 카리프는 말없이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오른팔이자 가문의 원수.

아버지를 죽인 빅터보다도 막심에 대한 원한이 더욱 강렬했다.

― 카라얀 님을 대신해 내가 너를 보살펴 주마.

따스한 손길을 보내던 친절한 남자는 그렇게 가문의 모든 걸 훔쳐 갔다.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 위에 올라온 어린 카리프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용서할 수 없다.

그런 막심에 비한다면, 빅터는 차라리 아무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아버지보다 강했다는 것이 빅터의 죄라면 죄일 뿐.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카리프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모닥불을 향한 시선은 카리프만이 아니었다.

마주 앉아 있던 사마르의 눈동자도 일렁이는 붉은 빛에 고정돼있었다.

아니.

그 앞에 떠오른 시스템 문자를 보고 있었다.

이미 모든 게이트가 사라졌는데.

‘비활성이라…….’

시스템에 표시된 게이트 좌표는 여전히 남아 비활성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언젠가 다시 활성화된다는 것 아니겠나.

사마르는 이전에 보았던 게이트 목록을 다시금 떠올렸다.

홀로 다른 색을 빛내고 있던 어딘가의 좌표.

위치를 기억할 순 없지만, 당시에는 분명히 이상하다고 느꼈었다.

만약 다시 게이트가 활성화된다면…….

‘그곳으로 가겠지.’

사마르는 로이드의 목적지를 그렇게 단정 지었다.

자신의 눈에 보인다면 로이드의 눈에도 보일 테니까.

게이트를 열었을 땐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특별한 어딘가에서 얻을 수 있는 각별한 무언가가.

막연한 추측이지만, 그보다 명확한 단서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생각을 갈무리하던 찰나.

[게이트 활성까지 남은 시간 12:00]

모닥불을 등진 시스템 창은 새로운 문자를 허공에 띄워 올렸다.

* * *

“저 마을인 것 같네요.”

“그런 것 같구나. 도착하면 정보가 될 만한 것부터 찾아보도록 하자.”

빅터는 그레이시의 말에 답하며 고삐를 잡아챘다.

점차 가까워지는 작은 마을.

로이드를 찾아 나선 세 사람은 목적지인 다우롱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바로 찾아온 게 맞겠죠?”

“그러길 바라야지.”

에스카와 그레이시는 문답을 주고받으며 달리는 말을 재촉했다.

입구 현판조차 없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 그나마 울타리가 있는 건 혹시 모를 고블린에 대한 방책일 것이었다.

“정보를 물어볼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요.”

하지만 에스카는 눈살을 찌푸리며 마을 입구를 바라보았다.

제 기능을 잃은 울타리는 형태만 남아 있었고, 유혈이 낭자한 마을의 풍경은 지나간 이곳의 시간을 짐작케 했다.

“한 발 늦은 것 같네요.”

“쯧…….”

“일단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혀를 차는 빅터를 향해 그레이시가 말했다.

마을 한복판으로 들어간 세 사람은 말에서 내려 가까운 곳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집들을 지나며 일일이 확인해 보았지만.

“이 집은 끝났네요.”

“여기도요. 모두 죽었거나 다른 곳으로 피난 간 것 같아요.”

살펴본 마을의 집에선 살아 있는 생명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따금 보이는 닫힌 현관을 열고 들어가도, 사람의 흔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곳을 지난 놈들은 어디로 향했을까요? 사라센 쪽의 몬스터들은 모두 엘 하자르로 몰려들었잖아요.”

“여기도 그쪽으로 향하지 않았을까? 대수림의 흔적을 보면 그랬을 것 같은데.”

몬스터의 행방을 묻는 에스카의 말에 그레이시는 턱 끝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그에 에스카는 골똘한 얼굴로 작게 고갤 끄덕였다.

딱히 반론할 내용이 없는 게, 이제껏 확인한 모든 흔적들은 사라센 땅을 향해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다행스런 일이긴 한데.

“스벤이 어쨌을지 모르겠구나.”

문제는 이동 경로에 놓인 인간들의 대처 방식이었다.

굳이 막으려 들거나 부딪치지 않는다면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를 재앙인 탓이었다.

“하기야 홀린 듯 직진만 했으니까요.”

그레이시는 이제껏 경험한 상황을 떠올리며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마치 명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사라센에서 마주한 모든 몬스터들은 진행 방향에 걸릴 경우에만 인간에게 반응했다.

그 말인즉, 목적지로 향하는 것만 막지 않는다면, 놈들 역시 우리를 의식하지 않는단 얘기였다.

“용감한 작자는 아니니 얌전히 눈치만 보고 있을 겁니다.”

스벤을 떠올린 그레이시는 확신하듯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러고는.

“우리는 로이드 족치는 것에만 집중하죠.”

마을의 서쪽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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