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세 군데로 나눠진 부대는 1㎞라는 반경 안에서 또다시 나눠졌다.
탐색이 주목적이니 굳이 우르르 몰려다닐 필요도 없고, 전투 자체를 회피하려면 적당한 인원이 오히려 편하기 때문이다.
나는 재편성된 부대를 다시 세 개의 부대로 나눠 각각 250m의 반경을 살피게 했다.
자연스레 남게 되는 하나의 구역. 남은 지역은 나 혼자 담당하기로 했다.
나야 뭐, 충분히 할 만하니까.
“출발.”
짧은 나의 신호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탐색이 진행되었다.
상황은 예상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을 오갔던 이 지역은 개활지라고 불릴 만한 장소가 거의 없다.
최소 10㎞ 이상은 들어가야 등장할까?
변한 것 없는 이곳의 풍경은 기억 속 모습 그대로 울창한 숲이 가득했다.
“몬스터도 생각보다 없네요? 사라센으로 다 빠져나가서 그런가.”
사실 나도 겨울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근근이 마주치는 몬스터들.
이 정도라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니, 그보다 낮은 빈도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더 기분 나쁜데.”
고요한 숲을 바라보며 나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해일이 오기 전의 상황이랄까.
더 많은 놈들의 등장을 위해 일부러 자리를 비워 둔 것처럼 느껴졌다.
“폭풍전야라는 거군요.”
나의 말뜻을 이해한 겨울은 좌우를 살피며 끄덕거렸다.
그러니 찾아야 한다.
이 불길한 예감을 피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일찍 발견하는 수밖에 없다.
“부지런히 가면 해지기 전에 개활지에 도착할 거야.”
잡념을 떨쳐낸 나는 탐색을 재개하며 속도를 올렸다.
좌우를 오가며 수색하다 보니 전진하는 거리가 더뎠던 것이다.
“우리 너무 정직하게 움직이는 것 같아요. 조금 더 대각선으로 이동하면 살펴보는 범위가 넓어질 것 같은데.”
“그런가.”
겨울의 말을 듣고 보니 탐색 방향이 수평에 가까운 것 같다.
너무 꼼꼼하게 살피려 했던 것이 오히려 무의미하게 시간만 잡아먹었나 보다.
겨울의 말처럼 대각선으로 방향을 잡으려던 찰나.
“오! 신이시여! 이런 곳에서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시다니!”
여기저기 긁혀 만신창이가 된 남자가 풀숲을 헤치며 짐승처럼 튀어나왔다.
“멈추세요! 지금 저 앞으로 가면 큰일 납니다. 몬스터들이 바글바글해요!”
그러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이젠 살았다 싶은 모양이다.
“많이 다치셨나요? 다른 일행 분들은 없으세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겨울은 남자를 향해 걱정스레 물었다.
“아니요.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동료들은 그만…….”
“아, 죄송해요. 괜한 걸 물어봤네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지요. 아가씨가 사과하실 이유는 없습니다.”
남자는 자책하는 겨울에게 정색하듯 손을 휘적거렸다.
그런 남자를 보며 나는 낮은 목소리로 겨울에게 말했다.
“너는 내려오지 마.”
“네.”
짧은 겨울의 답을 확인한 뒤 펜리르에서 내렸다.
내려온 나는 그대로 걸어 남자에게 다가갔다.
“용병이신가요?”
“네, 브라함에서 온 용병입니다.”
“꽤 멀리까지 나오셨네요.”
“리베로 갈 예정이었거든요. 얼마 전까지 순조롭게 잘 왔었는데 갑자기 상황이 변해 버려서…….”
결국 남자는 말끝을 흐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생지옥을 헤쳐 나온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이다.
“브라함에서 온 용병이라고 했나요?”
“네, 맞습니다.”
남자는 먹먹한 감정을 드러내며 무겁게 대답했다.
용병이란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순한 얼굴. 한없이 착하게 생긴 남자의 얼굴이 슬픔으로 가득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하수구 잡부가 용병되느라 고생했네.”
순진한 얼굴을 향해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니까.
“누구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누가 보냈냐고.”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이곳에 사냥을 나왔다가 봉변을 당했을 뿐입니다.”
나는 당황하는 남자에게 해머를 들이밀며 말했다.
“개소리하지 마.”
순간 싸늘하게 식어가는 남자의 얼굴.
“하, 이거 안 먹히네. 어떻게 눈치챘지?”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본색을 드러냈다.
아케른의 하수구 노동자.
용병으로 가장한 이 남자는 과거와 현재의 행동이 바뀐 유일한 사람이었다.
“우리 구면인가? 아, 이건 질문이 잘못됐군. 정정할게. 이 얼굴로 마주한 적이 있었나?”
정체가 밝혀진 남자는 의뭉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대답대신 냉소를 보냈고.
“시발, 있었나 보네.”
놈은 얼굴과 맞지 않는 표정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단순히 죽이려 했다면 보자마자 때려잡았겠지만.
“아직 내 말에 대답 안 했다.”
암살을 사주한 놈이 누군지 알아내는 게 먼저였다.
배후가 없다면 이유라도 알아야 할 테니까.
“아닌데, 난 이 얼굴로 너를 만난 적이 없어. 대면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라고.”
그럴 수밖에 없지.
이번 회차에 네놈은 아케른 성으로 오지 않았으니까.
어쨌거나 녀석은 제 할 말만 하며 골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답할 생각이 없다 이건가?
“가만… 헐, 혹시 너 회귀 능력을 이어받았냐? 그 새끼 누구야. 루? 리? 아무튼 대가리 터져 죽은 놈 있잖아.”
그러나 놈은 예상치 못한 답을 이상한 방법으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회귀 능력을 알고 있다니.
더군다나 놈은 본래 소유자의 행방까지 알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놈은 ‘이 얼굴로’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얘기했다.
그럴 이유가 없잖은가.
녀석이 말을 되집어 보면, 마치 다른 얼굴로 만났다는 듯 얘기하는 느낌이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어쩐지 이상하다 했지. 로이드가 집착하던 이유가 있었네.”
놈의 입에선 브라함 흑마탑주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렇다는 건.
“맞아. 너에게 죽었던 레이가 바로 나야.”
놈은 세비앙에서 때려죽인 카이 형제라는 얘기였다.
분명히 박살 냈는데.
펼쳐진 상황을 따라잡지 못해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뜻밖의 결과에 잠시 시선을 돌리던 그때.
“그러니까… 죽어.”
내밀어온 놈의 손에서 정체 모를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치이이익.
반사적으로 내민 손에 시커먼 뭔가가 달라붙었다.
그리고 나의 손은 검푸른 색으로 변해 가며 옅은 연기를 피우기 시작했다.
“어? 바로 안 녹네? 다른 몬스터들은 부글부글 끓던데.”
황급히 물러선 나는 손끝을 향해 원기를 밀어 넣었다.
그냥 본능이었다.
이런다고 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무작정 원기를 돌려 변색을 막아 냈다.
“그걸 버티네. 그거 시독이라고, 엄청 무서운 독이거든. 막 녹아 없어지는 건데 말이야.”
검게 죽어 가는 팔을 보며 레이는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구경거릴 보듯.
놈은 비릿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또다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액체. 휘두른 해머에 엉겨 붙은 시독은 메케한 연기를 뿜어내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뭔가 확실한 반격이 필요한 시점인데.
‘젠장.’
잠식해 오는 시독을 막는 것만으로도 몸 안의 원기를 모조리 써야 할 판이었다.
그나마 버텨 내는 것이 다행일까.
맥없이 죽었던 지난 회차에 비한다면 분명히 지금은 저항에 성공하고 있었다.
다른 것을 할 여력이 없는 게 문제일 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싸움은 작은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오러로 막는 건가? 아니지, 너 오러 없다고 했잖아. 근데 뭐로 막는 거야?”
아니, 할 수 없었다.
레이의 시독은 그만큼 지독했고, 잠시라도 원기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득달같이 퍼져 나갔다.
이래서야 회피마저도 쉽지 않다.
독이라는 낯선 무기 앞에 나의 강함은 무력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말이다…….
‘이제 올라올 때가 됐는데.’
지속되는 고통은 시스템을 자극해 무언갈 되돌려 준다.
예를 들자면 무슨 저항 같은 것들.
그런 나의 예상은 적중했고.
[체내에 누적된 독에 적응해 맹독 내성이 발현됩니다.]
떠오른 시스템 문자는 여지없이 새로운 내성을 선물로 안겨 주었다.
이번엔 맹독 내성.
검게 죽어 가던 팔의 혈색이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라?”
그에 레이는 휘둥그레 눈을 뜨며 멍청한 소릴 내뱉었다.
그 황금 같은 시간에.
눈치 없이 서서 도망갈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그러니 남은 건 반복되는 응징의 시간일 뿐.
“도망쳤어야지.”
콰아아아아앙!
작렬한 광역 강타에 놈의 몸뚱이가 날아가 처박혔다.
“크허억!”
바닥을 구르던 레이는 피를 토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제야 뒤늦게 검을 들어 나에게 겨눠 보지만.
“진작 그렇게 하지 그랬어.”
시독이 뭍은 레이의 검은 내지른 해머에 튕겨 허공을 날았다.
체념하듯 고개를 젓는 레이.
“새끼… 뭔 짓을 했기에 이렇게 강해진 거야.”
“로이드는 어디 있지?”
푸념하는 녀석에게 이 사태의 원흉을 물어보았다.
계속된 소환으로 마계의 문을 열어 버린 인간. 놈이야 말로 하루빨리 제거해야 할 인류의 적이었다.
“궁금해? 궁금하면 뭐라도 좀 내놔 봐.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그러나 레이는 협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뭐라도 받길 원한다면 줘야지.
“끄아아아아아악!”
피식거리는 놈의 다리에 해머를 내리쳐 뭉개 버렸다.
“또 줄까?”
고통에 몸부림치는 레이에게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큭큭… 뒤통수 조심해라.”
역시나 돌아온 말은 녀석다웠다.
그에 나는 빙그르 돌며 자리를 이탈했고.
샤아아악!
날카로운 단검이 목덜미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떨어지는 천벌.
콰아아아아아앙!
흙먼지가 사라졌을 땐, 육편이 돼 버린 레이의 사체가 비참하게 널려 있었다.
그런 레이를 대신해 새로운 남자가 나타났으니.
“너는 로우겠네.”
이름을 묻는 나의 말에 남자는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뭐,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덩치와 다르게 민첩한 놈은, 천벌을 피해 멀찌감치 물러나 있었다.
녀석의 공격과 동시에 내리쳤는데 말이다.
과거에도 그랬듯, 로우의 몸놀림은 속도에 특화되어 있었다.
눈으로 쫓기 버거울 만큼.
얼마 전의 나였다면 분명히 녀석에게 당했을 것이다.
저런 속도로 공격해 온다면 막을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그런 결말을 원했다는 듯, 로우는 잔상을 지우며 빛처럼 날아들었다.
이것은 잡을 수 없다.
인간의 몸은 이런 속도를 쫓아 반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라면 그랬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콰아아아아아앙!
굳이 목표를 조준하지 않아도 되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사정거리 안에만 있으면 될 뿐.
놈의 공격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더 이상 나에겐 의미 없는 일이었다.
“쿨럭!”
광역 강타에 걸려든 로우는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다.
연이어 터지는 충격파의 향연.
폭발하는 광역 강타는 놈의 몸을 띄워 땅에 떨어질 틈조차 주지 않았다.
제깟 놈이 아무리 빠르고 강하다 한들, 저리 되면 속수무책일 터.
헝겊 인형처럼 춤추던 놈의 몸뚱이는 어느새 찢기고 갈라져 붉은 선혈이 분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이제 마무리를 할 차례.
어차피 녀석에겐 얻어 낼 수 있는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얼굴 가죽이 벗겨져도 입을 다물던 놈이 바로 로우였고, 저놈의 대답 따위 이젠 상관없다.
이름을 알려 줄 놈이야 하나 더 있으니까.
쿠아아아아아앙―
두 개의 천벌이 동시에 떨어지며 로우의 몸뚱이는 땅속 깊이 파묻혀 버렸다.
그대로 고개를 돌린 나는.
“거기 숨어 있는 쥐새끼. 지금 나오면 살려 준다.”
짙은 숲을 향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