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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 99개-174화 (174/203)

174화

리베에 도착한 나는 가장 먼저 용병 조합을 찾았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한스.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아아악! 이 늑대는 뭐야?!”

무작정 달려오던 한스는 기겁을 하며 멈춰 섰다.

펜리르를 처음 본 사람들의 공통점이랄까.

‘우왁!’으로 시작한 사람들의 비명은 ‘우와’라는 감탄사로 마무리된다.

“와…….”

이렇게 말이다.

상황을 파악한 한스는 조심스레 다가와 펜리르를 올려 봤다.

“이반 님 정도 되면 탈것들도 평범하진 않은가 보네요.”

“나야 뭐 평범하지. 돼지를 타는 녀석들도 있는데.”

“꿀꿀하는 그 돼지요?”

“응. 사나워서 그렇지 멋있어. 장난 아니라고.”

입구에 펜리르를 앉혀 두고 나는 용병 조합으로 들어섰다.

“저렇게 놔두면…….”

“안 물어.”

“아…….”

흘끔거리던 한스는 이내 내 뒤를 따라 조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안쪽 사무실에선 서글서글한 표정의 듀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간만이군요.”

다가온 듀란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나는 가볍게 눈을 맞추며 손을 마주 잡았고, 빈자리를 찾아 몸을 기댔다.

“기분 탓인가요. 예전보다 훨씬 강해진 느낌입니다. 풍기는 기운도 달라졌고.”

“나름 변화가 좀 있었죠.”

“조금이 아닌데요? 격의 차이가 커요.”

마주앉은 듀란은 달라진 내 모습에 큰 관심을 드러냈다.

역시 칼을 마주했다 이건가.

용병왕 자리를 빼앗은 게 나였으니 그의 각별한 관심은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크게 변하기도 했고.

적당히 웃어넘긴 나는 이곳을 찾아온 본론을 꺼냈다.

“사람들 생각은 어떻던가요.”

“두말할 게 있나요. 살길이 막막해졌는데. 다들 원정 준비를 하면서 출발신호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듀란의 답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을 이어 갔다.

“알브족 마을에 대한 소식이 필요한데, 혹시 알고 계신 내용이 있나요?”

“알브족의 사정도 좋지 않죠. 몬스터의 개체가 많이 늘어난 모양입니다.”

질문에 답하는 듀란의 표정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예상대로 이곳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달의 계곡이야 원래 좀 험했잖아요. 가뜩이나 외졌는데 근래 들어 더 심해진 거죠.”

찻잔을 들고 온 한스는 듀란의 말을 거들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주변의 상황을 전하기 시작했다.

“일단 대수림이 엉망인 건 맞아요. 몬스터의 개체수가 워낙 급증해서 서식지를 벗어나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곳으로 흘러들어 오진 않았어요.”

“모두 사라센으로 몰렸으니까.”

“어쩐지 잠잠하더라니. 덕분에 한 숨 돌리긴 했는데, 정말 사라센이 끝장난 겁니까?”

“서부의 사정은 아직 몰라. 하지만 그 외의 지역은 이미 마족들에게 점령당했지. 남부 지역은 브라함에게 털렸고.”

“허…….”

사라센의 소식을 접한 한스는 입을 벌리며 탄식을 내뱉었다.

누가 예상했겠나.

그 거대한 사라센이 이렇게 무너질 것이라는 걸.

“아리안은 어때? 그쪽도 심각한가?”

멍한 표정을 짓는 한스에게 나는 다른 질문을 이어 갔다.

“아리안은 아직 여유 있는 것 같아요.”

“그래?”

“네. 그쪽이야 평소에도 조용했으니까요. 대수림 접경 지역도 없으니 몬스터의 출몰도 비교적 적은가 봐요. 딱히 특별한 소식도 없고요.”

역시나 아리안의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대수림 접경이 없던 지리적 불리함이 이번에는 이점으로 작용했던 모양이다.

“아참, 내가 알아봐 달라고 했던 건?”

“마도구 상인에게 얘기해 놨습니다. 보유하고 있는 물량 모두 확보해 놨고, 필요하다면 70개 정도 더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좋아. 더 만들어 달라고 해. 그리고 게브네 아저씨에게 연락해서 공공시설에 설치된 마력 감지기도 모두 회수해 달라고 부탁해 봐.”

“아, 그렇게 많이 필요해요?”

“운이 나쁘다면 다 쓰게 될 걸.”

“알겠어요. 단체장님껜 제가 따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줘.”

준비 사항을 확인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로 향했다.

“어디 가시려고요?”

“달의 계곡에.”

간단히 대답한 나는 조합을 나와 펜리르에 올라탔다.

* * *

“와, 달의 계곡……. 감성 터지는 이름이네요. 작명 센스 지렸다.”

“오줌 마려? 지리긴 뭘 지려.”

“하, 아재 냄새. 설마 농담한 건 아니죠? 그쵸? 진지했다고 말해 줘요. 빨리요.”

젠장, 웃으라고 한 말인데.

이도저도 못하던 나는 애먼 펜리르를 자극해 속도를 높였다.

“꽉 잡아!”

“왜 대답 안 해요! 설마 진짜 웃으라고 한 거예요?”

“와! 엄청 큰 고블린이다!”

“농담 맞네.”

“…….”

집요하게 캐묻던 겨울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슬퍼지는 건지.

흐려지는 눈을 깜박이며 알브족 마을로 향했다.

“별 언니랑 다른 아저씨들은 언제 돌아와요?”

탄식을 내뱉던 겨울은 반투족의 일정을 물어 왔다.

“부족 회의하고 준비하고 나면 이틀은 지나야 돌아오겠지.”

“그러면 부족 전체가 내려오는 건가요?”

“글쎄, 그건 회의를 통해 결정하겠지. 전투 인원이 다 빠져나가면 마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니까.”

전쟁의 합류를 위해 돌아갔으니 준비할 것이 많을 터.

심지어 거력의 비약까지 들고 갔으니 이틀 안으론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멍하니 죽치고 있을 수 없잖은가.

반투족이 내려올 동안, 나는 알브족을 만나 참전을 권유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알브족이 합류할까요? 세상과 단절된 부족이라면서요.”

“기억이란 게 있다면 내 말을 들어주겠지. 나와 약속한 게 있으니까.”

― 언젠가 당신을 도울 날이 온다면 그땐 알브족의 이름으로 그대의 편에 설 것이오.

데스 아이를 토벌했을 때, 족장 타르가는 도움을 약속했었다.

한데 기억하고 있을까.

시시각각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이라지만, 그래도 첫인상을 믿어보자고 이 길을 달리는 중이다.

자신이 한 말은 지켜 주길 바라며.

겨울과 나를 태운 펜리르는 더욱 속도를 높여 달의 계곡으로 향했다.

* * *

“외삼촌!”

서재를 나온 로제는 반크스를 찾아 성안을 뛰어다녔다.

후원으로 갔나?

아니다. 이 시간이면 아마 식당에 있을 것이다.

가벼운 안주와 함께 와인을 마시고 있겠지.

휴일마다 찾아온 반크스는 이렇게 시간을 보내며 쓸쓸함을 달래곤 했다.

함께 잔을 기울이던 사람을 떠올리면서.

“역시 여기 있었네. 이러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어요!”

식당에 들어온 로제는 반크스를 바라보며 투정부리듯 말했다.

“왜 이 녀석아. 이렇게 천천히 보내는 사람도 있는 거니까 너무 매정하게 굴지 마라.”

“아버지 유언 못 들으셨어요? 길게 붙잡지 말고 빨리 놔달라고 하셨잖아요. 외삼촌의 마음은 알지만, 이러면 나는 더 힘들어져요!”

쌀쌀한 조카의 핀잔을 들으며 반크스는 마른세수를 했다.

자신조차 이럴 진데, 녀석의 마음은 오죽할까.

매번 다짐을 했건만, 올 때마다 반크스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끝내 넘지 못한 시한부의 벽.

누이의 남편이었던 제논 후작은 긴 투병을 끝내고 부인의 곁으로 돌아갔다.

제 어미를 쏙 빼닮은 로제를 홀로 놔두고.

“미안하구나. 오늘까지만 이럴 테니 이해해다오. 내일부턴 안 그러마.”

먼저 간 누이 생각마저 떠올라 반크스는 마음을 잡지 못했다.

자신이 나서서 로제를 챙겨야 하는데,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술잔을 든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미안해할 것 없어요. 슬픔의 깊이를 재단할 순 없는 거니까요. 하지만 지금 바깥의 상황이 너무 심각해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물론 그렇겠지.

로제의 말을 듣던 반크스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을 표시했다.

두 개의 영지를 관리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백작령과 후작령을 동시에 다스리게 된 로제는 하루하루가 눈코 뜰 세 없이 바빴다.

아직 정비되지 못한 후작령이 여러모로 분주했던 탓이다.

“후작령에 또 무슨 일이 생겼나 보구나.”

“아니에요.”

짧게 대답한 로제는 양피지를 꺼내 반크스 앞에 내려놓았다.

메신저였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반크스는 양피지를 들어 적혀 있는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고는 눈을 부릅뜨며 로제에게 되물었다.

“이게 사실이냐?!”

“네, 이반 님께서 직접 보내신 편지에요. 사라센을 빠져나와 지금 리베에 계시다고 하네요.”

“너는 어쩔 셈이냐?”

“어쩌긴요. 왕궁으로 가서 국왕님을 설득해야죠.”

“흠… 전하께서 협력하실지 모르겠구나.”

“정 안 되면 제 개인의 자격으로라도 참전해야지요. 대륙이 사라질 판인데 영지는 지켜서 뭐 하겠어요.”

로제는 양피지를 접어 넣으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 * *

달의 계곡에 도착한 나는 자연스럽게 싸움에 휘말렸다.

무시하고 싶어도.

“트롤은 혼자 다니는 거 아니었나?”

바글바글하게 몰려 있으니 결국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변종이다.

어딘가 익숙한 모습인 것이, 마계에서 넘어온 눈 없는 거인과 비슷하게 변해 있었다.

마치 아종 같다고 해야 하나.

비슷한 면이 많긴 하지만, 트롤 본연의 특징은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같은 종류 아니에요? 눈 빼곤 다 똑같은 것 같은데.”

“조금 달라. 손가락 발가락 개수도 다르고, 체격 차이도 좀 크게 나고.”

헛갈려 하는 겨울에게 티도 안 나는 차이를 설명했다.

굳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몬스터라는 것 자체가 마수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마계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미쳐서 날뛰는 것 아니겠나.

“어차피 다 때려잡아야 할 테니.”

외형이 어떻건 간에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모조리 다 쓸어 내야지.

무리지어 나타난 트롤의 머리 위로 금빛 해머가 내리꽂혔다.

결과야 말해 뭐 하겠나.

트롤의 재생력이야 유명하지만, 거인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재생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으윽.”

곤죽이 돼 버린 트롤을 보며 겨울은 얼굴을 구겼다.

변종이 되어 강해졌다 한들, 격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펜리르마저 마법의 지원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녀석은 울렁증이 생길 정도로 빨라졌고.

촤아아악!

앞발질 한 번에 두꺼운 트롤의 목이 잘려 나갔다.

확실히 성장한 느낌이랄까.

단순히 겨울의 마법 때문만이 아닌, 펜리르 자체의 능력이 크게 성장한 것처럼 보였다.

강인한 육체 공격뿐만 아니라.

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

길게 내지르는 하울링에 트롤의 움직임이 움찔거리며 멈추기도 했다.

“이건 대단한 건데.”

몬스터의 움직임을 멈춘다는 건 신기에 가까운 일이다.

기본적으로 놈들은 겁을 먹는 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몬스터를 하울링 한 번에 제압한다는 건, 신수라는 이름에 걸맞는 권능에 가까운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주인을 닮은 펜리르는 종횡무진 계곡을 누비고 다녔고, 원기로 만들어진 금빛 해머는 마주한 트롤들을 짓이겼다.

고기 반죽처럼 말이다.

그렇게 날뛰던 나와 펜리르는 어느덧 달의 계곡 내부로 깊숙이 들어왔다.

알브족과 트롤이 싸우는 전장으로.

퍼어어어엉!

화르륵―

빗발치는 마법들이 트롤을 노리며 날아들고 있었다.

그러나 트롤의 움직임은 위축되지 않았다. 마력에 대한 내성이 있어 대미지를 덜 받는 모양인데.

“광역 강타.”

마법이 아닌 스킬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사라질 뿐이었다.

게다가 반가운 소식까지 더해졌으니.

[숙련 조건을 만족하여 광역 강타의 레벨이 2로 상승합니다.]

[숙련 조건을 만족하여 천벌의 레벨이 2로 상승합니다.]

성장률 600%가 넘는 성장 가속은 나의 밥줄을 다음 단계로 진화시켰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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