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목숨 99개-162화 (162/203)

162화

스벤 총사령관이 이끄는 브라함의 제국군은 빅터와 함께 사라센의 수도인 엘 하즈라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나의 부대도 추격을 시작했다.

선두로 출발한 것은 술과 정찰대원들이었고, 뒤를 이어서 1,000명의 군대가 패주한 놈들을 쫓았다.

“이제야 움직임이 가벼워졌군.”

“그러게. 추적대에게 보병을 붙이면 어쩌자는 거야. 루드겐 그 인간은 머리통에 무슨 생각을 넣고 있는지 모르겠네.”

나는 이동 중인 대열을 바라보며 별의 얘기에 대답했다.

본래 우리에게 배정된 인원은 적의 규모와 비슷한 4,000명.

하지만 나의 반대로 병력은 1/4로 줄어들었다.

그 많은 인원을 이끌고 도주한 놈들을 어찌 따라잡겠나.

나는 기마 전투가 가능한 인원만 추려 추적에 나섰다.

“힘만 센 줄 알았더니 제법 똘똘하더구나. 잘했다. 어차피 주력과 일반 병사의 전력 차이가 크니 인원이 많아 봤자 진군 속도만 느려지지. 잘한 결정이다.”

돌풍에 올라탄 클레어는 능숙하게 멧돼지를 몰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덕분에 테오는 말에 올라탄 채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한데 이놈 비린내가 좀 심하구나. 목욕 좀 자주 시켜야겠어.”

“주인들이 알아서 잘하겠죠.”

코를 감싸 쥐는 클레어를 보며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사실 냄새가 나는지 어떤지,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원기라는 걸 쓴다고?”

“네.”

코끝을 매만지던 클레어는 대화의 주제를 나의 기운으로 바꿨다.

“오러와 어떻게 다른 것 같더냐.”

“글쎄요. 알려 드리고 싶어도 저는 오러의 느낌을 모르니까요.”

“흠, 그렇겠구나.”

이상한 질문이란 걸 깨달았는지, 클레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원기라는 걸 보니 마력하고 많이 닮은 것 같더구나. 좀 더 봐야 알겠지만, 내가 보기엔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좋은 건가요?”

“일단 성질이 비슷하니 마법과 상성이 좋겠지. 마법을 방어한다는 측면에서도 오러보다 훨씬 유리할 게다.”

“어떤 차이인데요?”

“오러는 비껴 내거나 쳐 내는 것에 불과할 뿐, 그나마 뿌리가 같아서 가능했던 게다. 그렇지 않았다면 네놈처럼 얻어맞으면서 버텨야 했겠지.”

클레어는 테오와의 대련을 예로 들며 차이점을 설명했다.

내 입장에서야 이해될 수밖에.

당시의 나는 마법에 대해 어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후로 마법을 상대한 적이 있었느냐.”

“알함브라에서 흑마법사들과 싸웠죠.”

“어땠느냐.”

“쉽게 제압했어요. 마법을 걷어 내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너무 수월한 느낌이 있어 의심할 정도였으니까. 나는 그걸 시스템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원기가 마력의 성질을 부드럽게 받아 내는 것이다.”

하지만 클레어는 그 외에 다른 이유를 거론했다.

“음…….”

나로서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이해되지 않는 면이 너무 많았다.

“테오야.”

제자의 이름을 부른 클레어는 손가락을 움직여 신호를 보냈다.

그에 테오는 화염을 만들어 클레어를 향해 망설임 없이 날렸다.

화르륵―

클레어는 테오의 마법을 손바닥으로 지워 버렸다.

아니, 흡수한 건가?

“봤느냐.”

“보기야 제대로 봤죠.”

이해를 못해서 그렇지.

날아온 테오의 마법은 한 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보호 마법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상대의 마법을 해체한 게다.”

“그런 것도 되요?”

“물론 마법에 따라 다르지. 공성 마법 같은 건 해체할 수 없고, 그 외에 난이도 높은 마법들도 실정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흠, 그런데 이게 원기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죠?”

“성질이 같다는 걸 보여 준 게다.”

여전히 아리송하다.

처음 했던 얘기와 같은 맥락인 것 같은데…….

“같기 때문에 상대의 마법을 조작할 수 있었다는 얘긴가요?”

“그래. 상대의 마법을 지우거나 흡수할 수 있는 건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추측은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오러와 마력은 최소한의 것들만 공유되기에 힘 싸움만 가능하다. 하지만 너라면 그 이상의 것도 가능하겠구나.”

클레어와의 대화는 그렇게 점점 마법의 원리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마치 마법 수업을 받는 것처럼.

“저도 상대의 마법을 건드릴 수 있다는 건가요?”

“솔직히 그게 궁금해서 네놈과 함께 가자고 한 게다. 몇 가지 확인해 보면 네 녀석의 가능성도 드러나겠지.”

“뭐 해부하거나 그러는 건 아니죠?”

“필요하다면 해야겠지.”

“헐…….”

100살을 앞둔 클레어는 옆집 누님 같은 얼굴을 한 채 살벌한 소릴 내뱉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크로제 가문의 광기가 클레어에게도 흐른다는 것을!

어쨌거나.

“네 녀석이 사용하는 원기는 오러와 마력 모두를 아우르는 것 같구나.”

내 몸에 있는 기운이 남다르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좋은 쪽으로.

“아무튼 천천히 알아보자.”

클레어는 묘한 기대를 남기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 * *

추적에 특화된 술의 능력은 이번에도 역시 빛을 발했다.

적의 흔적이야 너무 많으니 차치하고.

녀석은 보이지도 않는 적의 위치를 가리키며 놈들의 상태를 알리고 있었다.

이를테면 눈앞에 보이는 저 산에 놈들의 매복이 있다.

…같은 것들을.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까?”

“눈으로 봤으니 하는 말이다.”

“저 산속이 보인다는 겁니까?”

“아주 잘 보이지.”

술은 믿을 수 없는 시력으로 매복중인 적의 동태를 살폈다.

“한데 매복이라기엔 좀 어설프군. 보아하니 숲으로 들어가 휴식 중인 것 같다.”

심지어 이런 자세한 내용까지 파악했다.

이러니 거짓말처럼 들릴 수밖에.

“확인할 수 없다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건 아니시겠죠?”

“그대를 속여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뭔가?”

믿지 못하는 정찰병을 향해 술은 덤덤히 반문했다.

“고작해야 잠깐의 우쭐함일 뿐, 잃는 것은 목숨이 아닌가. 나는 그대와 농담을 나눌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낮에 무슨 일이 있었나.

너무도 멀쩡한 술의 대답에 나와 별은 눈동자를 키우며 서로를 마주 보았다.

쩍 벌어지는 입은 덤.

“정신이 나갔나 보군.”

카리스마 넘치는 술을 보며 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정상적인 말을 했는데 비정상 취급을 받아야 하다니.

주위의 반응이야 어떻든, 녀석은 본인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다.

“그래서 놈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데.”

나는 술에게 다가가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나무가 많은 왼쪽 능선에 2,000명 정도가 휴식하고 있군. 오른쪽 바위 언덕엔 마법사들과 보병이 1,000명가량 모여 있다.”

“그게 전부야?”

“골짜기를 향하던 기병을 봤다. 이동이 빠른 부대들은 매복지 바깥에서 대기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 수고했어.”

높은 지대와 술의 시력은 뜻밖의 조합으로 다가올 미래를 바꾸고 있었다.

매복이라.

모르고 당할 땐 지옥이겠지만, 역으로 당할 때는 어떤 기분일까.

“바위 언덕은 나와 부족장, 그리고 병사 200이 뒤를 친다. 나머지 인원은 클레어 님과 함께 매복지 왼쪽을 습격한다. 이해했지?”

지시를 받은 부관들은 병사들을 나눠 준비를 마쳤다.

“이 언덕을 내려가면서 좌우로 나눠 이동한다. 전투 개시는 나의 공격으로. 사전에 발각될 경우 먼 거리면 후퇴하고, 근거리에선 교전에 들어간다.”

“알겠습니다.”

최종 지침을 전한 나는 분류된 병사를 이끌어 목적지로 향했다.

“이동속도를 올린다.”

짧은 지시와 함께 병사들은 구보에 가까운 속도로 언덕을 내려갔다.

우리의 목표인 바위 언덕은 몸을 숨기며 접근할 구간이 마땅치 않은 탓이었다.

따라서 크게 우회해야 하는 상황.

클레어의 부대와 시간을 맞추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정해진 경로를 따라 신속하게 언덕을 내려왔다.

이어지는 또 다른 능선.

“전방에 적의 첨병 다수.”

앞서 나가던 부족장은 걸음을 멈추며 상황을 알렸다.

그 또한 반투족이란 거다.

부족 특유의 시력을 앞세운 부족장은 적의 위치를 발견하곤 은밀히 접근했다.

“크허억!”

숨어서 망을 보던 첨병을 해치우고 신속한 이동을 계속했다.

마침내 도착한 바위 언덕의 후방.

높은 지대에 위치한 우리는 매복지를 내려다보며 놈들의 동태를 살폈다.

“확실히 휴식 중인 것 같지?”

“그렇게 보이는군. 경계 서는 몇 명을 제외하곤 잠든 사람도 있는 것 같다.”

패배한 군대의 사기라는 게 그런 것 아니겠나.

더군다나 놈들은 매복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방심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사냥꾼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지.

“공격 개시.”

네 글자로 시작된 우리의 기습은 무방비 상태인 놈들을 향해 가차 없이 이어졌다.

나의 첫 번째 목표는 마법사들.

[광역 강타.]

사정거리에 접근한 나는 지체 없이 바닥을 내리쳤다.

콰아아아아아앙!

머리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엄청난 량의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마치 마법이 작렬한 것 같은.

바위로 가득 찬 언덕은 나의 스킬과 맞물려 잔혹한 결과를 불러왔다.

“끄으으으…….”

날아드는 돌덩이에 피격당한 마법사들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물론 예외라는 건 늘 존재하는 법.

운 좋게 빗맞은 마법사들에겐 금빛의 해머가 2차로 날아들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삼사 초 내외.

뒤늦은 적의 반응이 시작됐을 땐, 놈들의 마법사는 모두 사라지고 난 이후였다.

“여기 모여 있었구나.”

달려드는 탁한 오러들을 보며 나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놈들이야 말로 진짜 목표니까.

콰가가가가가각!

접근조차 허락지 않는 나의 공격은 놈들이 밟은 지면을 폭발시켜 허공으로 날려 버렸다.

연이어 작렬하는 광역 강타.

“미쳤어.”

손맛과 보는 맛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휘두르는 족족 터지고 날아가는데 버텨 낼 재간이 없다.

상대하는 놈들은 분명히 6성급 강화 인간인데.

그런 놈들이 픽픽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내 앞에서만 그렇다는 얘기다.

“크윽! 마크 백인장이 쓰러졌습니다!”

강화 인간과 격돌한 부대원들의 사정은 나와 달랐다.

병력과 무위에서 밀리는 아군들은 소수를 제외하곤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

그게 정상이다.

대륙 전체를 다 합쳐도 강화 인간보다 높은 등급의 기사는 열 손가락을 채우지 못한다.

따라서 보통 이런 경우엔 아군의 전멸을 예상한다.

하지만 이곳에는.

콰드드득!

열 손가락 중에 하나가 존재했다.

“이쪽이야. 나랑 놀자고.”

놈들에겐 불행인 거지.

가까이 서 있는 놈을 향해 무작정 해머를 내질렀다.

콰아아아아아앙!

놈의 방어는 의미 없었다.

방패를 타격한 나의 스킬은 상대의 몸을 관통해 충격파를 날렸다.

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금빛의 파장.

“…이런 방법이.”

방향 지정이 불가했던 광역 강타는 이로서 아군을 피해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콰드득!

콰각! 콰아아아앙!

탁한 오러를 찾아 좁은 전장을 미친놈처럼 누볐다.

조금 더 빨리.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눈에 밟히는 모든 것을 난폭하게 때려 부쉈다.

“끄어어어어…….”

마지막 남은 적의 병사가 부족장의 창에 쓰러졌다.

그러나 적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골짜기로 향했다는 기병과 함께 있는 걸까.

건너편 전장을 바라보던 나는 지원이 아닌 추격을 선택했다.

내 목숨 99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