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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 99개-161화 (161/203)

161화

지금부터 대략 5분 전.

원기의 승급과 함께 나는 스킬 제작을 시도했다.

고민 끝에 결정한 이미지는 광역 폭발!

내리치는 순간 대지가 뒤집히고, 서 있던 모든 것들은 충격에 피를 토하며 날아간다.

생각만 해도 웅장하지 않나!

베는 맛은 없지만 그 대신 한 방에 모든 걸 박살 내는 호쾌함이 있을 것이다.

[원하는 스킬의 형태를 떠올리세요.]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폭발하는 대지와 함께 공기를 타고 퍼져 가는 강렬한 충격파를 떠올렸다.

거기에 보태 하나 더.

추가로 경직 같은 효과를 떠올렸다.

너무 세게 얻어맞으면 멍해지고 몸이 굳어 버리는 그런 것 있잖은가.

소 대가리의 대검처럼, 움찔거리며 멈추게 되는 특별한 효과를 넣고 싶었다.

‘끝내주겠는데?’

생각을 정리한 나는 그대로 스킬 제작에 돌입했다.

[주축이 되는 효과에 다른 효과를 중첩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불가.

야심 찬 나의 계획은 중첩이라는 항목에서 발목이 잡혔다.

하지만 상관없다.

다른 스킬로 만들어서 중첩시키면 될 테니까.

[광역 강타.]

피격 대상의 주위로 동일한 광역 대미지를 입힙니다.

원기의 레벨에 따라 범위 증가.

제작이 진행된 스킬은 광역 강타라는 이름으로 완성되었다.

그런 녀석의 첫 상대는 뻐큐.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갑작스런 공격에 당한 놈은 엄청난 폭음과 함께 허공으로 떠올랐다.

무방비 상태다.

하지만 놈은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어 검을 휘둘렀다.

상대하지 않았다.

굳이 맞붙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놈이 착지하는 순간을 노려 다시 한번 지면을 강타했다.

“커허억!”

발밑에서 폭발하는 충격에 놈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통나무 같던 두 다리는 부러진 지 오래.

날아가 떨어지는 놈을 향해 또다시 해머를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적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엄청난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적은 나의 사정거리를 예측할 수 없을 테니까.

연이어 터진 새로운 스킬은 내가 바라고 원했던 모습으로 뻐큐라는 놈을 박살 내 버렸다.

자욱한 피 안개가 걷히며 뒤집힌 후원의 전경이 드러났다.

하지만 놈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뭐야? 왜 없지? 죽은 거 아니었나?”

엉망이 되어 버린 후원을 바라보며 얼굴을 구겼다.

분명히 적중했는데.

해머에 전해지는 손맛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놈의 사체는 이곳에 없었고.

“놈은 죽지 않는다.”

빅터는 나에게 이상한 답을 전했다.

“불사라는 거예요?”

“모르겠구나. 하나 쉽게 죽지 않는 건 확실하다.”

일단 안개가 사라진 걸 보면 더 이상 이곳에 없는 것 같다.

또한 시체가 없으니 죽지 않았다는 것도 이해된다.

“특별한 생명력이 있거나, 재생이 뛰어날 수도 있겠지.”

빅터는 불사와 비슷한 추측을 내놓았다.

“흔적조차 없이 날려 버리면요?”

“그렇게 해 본 적 없어서 모르겠구나.”

결국 놈의 정체를 밝히는 건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 * *

이후 진입한 스벤의 제국군은 제나르 성을 장악하고 전력을 정비했다.

피해는 경미했다.

잘난 척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작전은 습관에 찌든 군부를 대신해 대승을 가져왔다.

그야말로 완벽한 승리를.

“두 분 모두 대단한 일을 해내셨습니다. 특히 이반 공은 이번이 첫 출전임에도 단연 눈에 띄는군요. 추후 폐하께 그대의 공로를 귀히 전하도록 하겠소.”

모든 보고와 점검을 마친 스벤은 빅터와 나의 수고에 치하의 말을 전했다.

사실 빅터의 입장에선 꼴 같지 않았겠지만, 어쨌거나 스벤은 총사령관이고 그에겐 그럴만한 권한이 있다.

“모두의 힘입니다.”

겸손히 답한 빅터는 나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뭐.

나도 굽신거리라고?

그저 형식적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안 되지.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적당한 때가 오길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다.

스벤을 비롯한 루드겐 마이어.

그리고 염병할 황제 놈까지.

한데 예를 갖추라고?

발톱을 숨기며 기회를 노리는 건 쥐새끼 같은 놈들이나 하는 짓이 아닌가.

나는 대놓고 작살 낼 생각이니 눈치 따위 볼 생각이 티끌만큼도 없다.

원한다면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릴 수도 있다.

하나 이미 말했듯.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참고 있을 뿐이다.

전쟁에서 지면 모든 게 사라질 테니까.

나는 무심히 서서 차가운 시선을 날렸다.

그에 스벤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돌렸다.

놈은 루드겐과 함께 돌아갔고, 적들이 퇴각한 방향을 예측해 정찰대를 출발시켰다.

후방에 앉아 배만 두들기던 놈은 아니라는 거다.

스벤은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기 위해 병력의 이동을 지시했다.

위치는 다음 도시로 이어질 길목인 축복의 평원.

전열을 정비한 브라함 제국군은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 * *

축복의 평원.

이름은 은혜로운데 실물은 말라비틀어진 초목이 무성한 곳이다.

붙어진 지명은 한때의 영화를 나타내고 있을 뿐.

생명의 흔적이 사라진 황무지엔 스산한 바람만 불어오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해는 능선 너머로 기울어 가고, 목적지에 도착한 부대원들은 능숙한 손길로 야영지를 구축했다.

“이놈이 태풍인가?”

“아니, 그놈은 폭풍이고, 저놈이 태풍이다.”

“뭐가 다른데?”

“눈 사이 거리가 다르다.”

느낌이 다르다거나 분위기 어쩌고 했으면 한마디했을 텐데, 정말 두 녀석은 술의 말대로 눈 사이의 거리가 달랐다.

“광풍이는 코가 좀 더 높이 솟았고, 돌풍이는 눈꼬리가 처져 있다.”

게다가 다른 녀석들 역시 지적한 내용대로 명확한 차이점이 있었다.

“와… 너희들도 이거 알고 있었어?”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나는 술의 눈썰미에 감탄하며 다른 녀석들에게 물었다.

“아니, 폭풍이 덩치가 제일 커서 알아본다.”

“광풍이는 예쁘게 생겨서.”

“돌풍이가 제일 작으니까요.”

“어?”

돌아온 녀석들의 대답에 나는 의심쩍은 얼굴로 술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지금 말한 특징들이 술의 얘기보다 훨씬 더 눈에 띄었다.

“흠, 미처 몰랐던 사실이군.”

팔짱을 낀 술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풍 형제를 바라보았다.

쉬운 특징을 놔두고 어려운 걸 찾아내는 능력이라니.

쓸데없이 심오한 녀석의 장점을 보며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때마침 다가오는 총사령관의 전령.

“정찰대가 돌아왔다고 합니다. 지휘관 및 부관들은 모두 모이시랍니다.”

나는 술의 어깨를 도닥이곤 지휘 막사로 걸음을 옮겼다.

* * *

정찰대가 전한 소식은 단순했다.

퇴각한 제나르 성의 잔당들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주 방향이 이상합니다. 후방에 있는 성으로 이동해 재정비를 하는 것이 우선 아닙니까? 한데 놈들의 움직임은 상식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적의 이동 경로를 확인한 켄드릭은 단호하게 상황을 지적했다.

“유인하는 느낌이 노골적으로 풍깁니다. 우리의 목적지와 너무 어긋나기도 하고요. 이대로 뒤를 쫓는 건 시간 낭비입니다.”

“저 역시 켄드릭 경의 말에 동의합니다. 적들이 향하는 경로는 우리의 진로를 방해하거나, 함정으로 끌어들이려는 수작이 분명합니다.”

이어진 다른 영주들의 말도 켄드릭과 다르지 않았다.

결론은 우리의 길을 가자.

하여 빅터는 본진과 함께 사라센 함락에 나서고, 나는 추격대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다만 부대 배치에 대해 약간의 이견이 있었는데.

“이번엔 저 녀석과 함께 가고 싶군.”

클레어가 나와의 동행을 원했던 것이다.

“클레어 경께서 추격대로 가시면 본대의 전력은…….”

“추격대에 있는 마법사를 본대로 보내면 될 거 아닌가. 나와 테오만 남기고 나머지 마법사들은 본대로 합류시키게.”

이의를 제기하는 부관의 말에 클레어는 간단한 대안을 제시했다.

“두 분만 가신다고요?”

“어차피 그쪽 방향은 노지 전투가 아닌가. 기습이 목적인 작전이면 공성 마법사는 굳이 없어도 되지 않겠나.”

클레어는 나를 바라보며 의견을 물었다.

사실 추격 경로가 정해졌을 때 이미 작전은 정해져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접근해서 난전에 돌입한다.

지난 기습 공격을 막아 내면서 내가 배운 경험은 그것이었다.

적의 마법사가 대응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 내에 적들과 뒤섞인다.

상황이 이렇게 돼 버리고 나면.

공성 마법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사주 경계를 강화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럼 허락한 것으로 알겠네.”

할 말을 마친 클레어는 등받이 깊숙이 몸을 묻었다.

* * *

30년 전 어느 여름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카론은 들뜬 마음을 달래며 완구점으로 향했다.

첫 번째 생일을 맞이한 딸아이의 선물을 사기 위함이었다.

“한 살 여아에게 주려고 하는데요. 가장 좋은 걸로 추천 부탁드립니다.”

그에 점원은 카론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시작했다.

눈앞을 오가는 인형들을 보며 카론은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인형을 받고 좋아할 딸아이의 모습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뭐가 그리도 좋은 건지.

그 작은 천사는 작은 인형 하나로 온종일 방실방실 웃어 댔다.

격무에 시달린 피로를 말끔히 날려 버리는 초강력 피로 회복제.

사랑스런 아내와 딸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카론이었다.

“행복한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점원의 덕담을 받으며 카론은 곱게 포장된 인형과 머리끈을 품에 안았다.

왜 이리 설레고 두근거리는 걸까.

집으로 가는 길은 늘 행복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이 조급했다.

아름다운 아내의 미소가 너무도 그리웠고, 부서질 듯 사랑스런 딸아이의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상했다.

이제 곧 만나게 될 텐데, 영영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숨 막히게 애틋했다.

‘너무 들떠서 그런가?’

주차장을 가로지르는 카론은 심호흡을 하며 요동치는 마음을 추슬렀다.

너무도 간절한 바람이기에 이럴지도 모른다.

1년 전 카론의 소원은 오직 오늘 하루였기 때문이다.

7개월 만에 태어난 카론의 딸 엠마는 의사들조차 비관적이었다.

의학 드라마에서 흔히 마주하는 모습들 있잖은가.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만…….

뭐, 이런 것들 말이다.

날 때부터 희귀병을 안고 태어난 엠마는 의사들로부터 절망적인 소견을 받았다.

한 달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하지만 기적은 존재했고, 힘든 시간을 이겨 낸 엠마는 첫 번째 생일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날이 바로 오늘.

카론은 삶의 의미가 되어 준 가족의 품을 향해 낡은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하나 그 순간.

창밖을 통해 보이는 세상이 소용돌이치듯 휘감겨 들기 시작했다.

까무룩 정신을 잃은 카론이 다시 눈을 떴을 땐.

“환영한다. 나는 브라함 왕국의 2왕자, 데드릭 폰 케이사르라고 한다.”

낯선 복장의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그것이 이세계로 소환된 첫날의 기억이었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지만, 나를 돕는다면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현 황제의 첫 번째 약속이었다.

하여 카론은 어린 서자의 개가 되길 자처했다.

돌아갈 수 있다는 단 하나의 희망에 모든 걸 걸고.

“진을 죽이면 우리 모두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

함께 소환된 사람들을 설득해 목숨을 나눈 동료를 배반했다.

“진을? 진을 왜 죽여요. 그 사람이야 말로 우리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 줬는데.”

“아니야, 우리가 소환된 이유도 진 때문이고, 우리가 죽어야 놈이 지구로 귀환할 수 있나 봐.”

“네? 그게 무슨…….”

“우릴 소환했던 마법사가 말해 주더군. 돌아오는 만월에 놈이 우리와 황제를 죽이고 귀환 의식을 치르기로 했다고.”

“설마… 진이 그럴 리가…….”

“사실이야. 어차피 죽을 거라면 싸워 보자. 만약 우리가 이긴다면 놈을 대신해서 우리가 귀환할 수 있게 되는 거라고!”

거짓말이었다.

데드릭 황제의 거짓에 속은 카론은 동료들과 함께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다.

그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돌아가야 해.’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는 곳으로 가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카론, 아니, 브라함의 흑마탑주인 로이드가 원하는 단 하나의 소원이었다.

“준비 다 됐습니다, 로이드님.”

때를 알리는 부관의 말에 로이드는 지난 기억에서 돌아왔다.

가슴속에 묻고 참아 왔던 30년의 기억.

로이드는 아직 귀환을 포기하지 않았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반드시 살아 돌아갈 것이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이것 하나뿐.

“소환을 시작하지.”

에르텔을 손에 쥔 로이드는 마력을 끌어 모아 의식을 시작했다.

내 목숨 9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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