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적의 성벽 앞에 도착한 나와 빅터는 보호 마법을 부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또 다른 마법의 보호 아래서 말이다.
“기운을 해머의 끝에 집중해라.”
“네.”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모아서 한 점을 깨는 것이다.”
“알겠어요.”
잔소리 비슷한 요령을 들으며 적의 보호 마법 앞에 다가섰다.
먼저 공격을 시도한 사람은 빅터였다.
장검을 뽑아 든 빅터는 예리한 검기를 모아 투명한 피막을 가격했다.
보호막에 흡수되는 오러의 기운.
콰가가가각―
굉음과 함께 분출된 빅터의 오러는 성을 감싼 보호 마법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흠.”
첫 공격을 시도한 빅터는 자신의 검을 바라보며 침음했다.
실망해서?
아니다. 그는 지금 달라진 자신의 몸에 놀라움을 느끼는 중이었다.
“녀석의 마법을 처음 겪으면 다들 그렇게 돼요.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중독돼 버리죠.”
사기 마법 3종 세트의 위력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대단한 마법이구나. 타인의 능력을 이렇게 끌어올리다니.”
감탄을 전한 빅터는 검을 들어 공격을 이어 갔다.
뽑아 든 검보다 더 길게 뻗어가는 백색의 검기.
본래부터 탈 인간급인 빅터의 무위는 겨울의 마법을 만나 더욱 사나워졌다.
이제 좀 따라잡나 싶었는데.
“마왕이 된 건가…….”
아예 다른 세상의 존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
겨울의 마법은 빅터만 받은 게 아니었다.
“조심하세요.”
경고하듯 중얼거리며 보호막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고는 원기를 가득 채운 해머를 질러 버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소리는 절대 꿀리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건 더욱 그러하다.
내질러진 나의 해머는 투명한 피막에 장대한 금빛의 파동을 만들어 냈다.
산이라도 날렸을 것 같은 엄청난 박력.
검과 해머가 만들어 내는 기운의 발산은 최종 형태에 이르러 완연히 달라졌다.
빅터의 검은 예리했고.
나의 해머는 무겁게 폭발했다.
“그냥 이렇게 치면 되나요? 오러건 원기건, 죄다 흡수해 버리는 것 같은데.”
그러나 보이는 것과 결과는 비례하지 않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느낌일까.
부딪치는 족족 빨려 들어가니 의미 없는 몸짓만 반복되는 기분이었다.
“더 이상 흡수할 수 없을 때 부서지는 게다.”
결론은 배터질 때까지 먹이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먹였다.
쉴 틈 없이 계속.
정해진 한 점을 노리며 무한 반복을 시작했다.
파지지지직!
적들 또한 지켜볼 리 없다.
머리 위를 노리는 치명적인 마법들이 현란한 광경을 만들며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부수려 하는 자와 그것을 막아 내는 자.
서로의 보호막을 부수고 지키려는 힘 대결은 끝없이 이어졌다.
“나름 장관이네.”
보호막을 두드리는 마법을 보며 실없이 중얼거렸다.
그 말이 신호가 된 걸까.
파지직―
놈들이 만든 투명한 피막에 실금이 생기며 진짜 장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침내 깨져 버린 적의 보호막.
“그렇지!”
그 위로 쏟아지는 아군의 마법은 몽환적인 느낌으로 적의 성내에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마무리다, 이반.”
빅터의 음성과 함께 나의 해머가 성벽으로 날아들었다.
콰르르르릉―
철옹성 같았던 제나르의 성벽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했고, 빅터와 나는 마법이 멈추길 기다리며 한걸음 물러섰다.
* * *
한동안 지속되던 마법이 멈췄다.
그것이 신호가 되어 빅터와 나는 달려온 정예병들과 함께 진입을 시도했다.
드디어 시작되는 점령전.
몸을 숨겼던 적병들이 나타나며 무너진 성벽 주위는 치열한 난전이 펼쳐졌다.
공략의 관건은 버티기다.
빅터를 선두로 한 정예병들은 지금부터 20분간 이곳을 지켜야 한다.
“원형진을 구축해 거점을 확보한다!”
빅터의 명을 받은 부관은 크게 외치며 부대를 이끌었다.
진입을 마친 2,000의 병사들이 적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뒤엉킨 전장이 견고한 진의 모양을 갖추자.
“실드 전개!”
마지막으로 합류한 세 명의 마법사가 실드 마법을 시전했다.
이 조합으로 본대의 합류까지 이곳을 지키며 영역을 확장한다.
빅터와 나는 확장이라는 임무의 선봉에 섰다.
콰직!
임무라는 말도 이상하고, 선봉이란 말도 어색하다.
변변한 상대조차 없는 이곳에서 무슨 임무를 논할까.
그저 잡히는 대로 치고 패며 앞으로 전진할 뿐이었다.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의문이 짙어졌다.
놈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당연히 마주했어야 할 강화 인간들은 몇 놈 해치웠다 싶었더니 자취를 감췄다.
전멸?
그건 아닐 것이다.
이곳 제나르의 흑마탑은 여전히 건재했고, 성내에 들어온 나는 아직 제대로 된 강화 인간을 마주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유야 어찌됐건, 놈들은 핵심 전력을 다른 곳으로 빼돌렸음이 분명했다.
아니면 지금 빼돌리는 중이든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빅터는 주위를 살피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진영 확장!”
빅터와 나의 활약으로 적의 밀집도가 현저하게 느슨해졌다.
2선을 따르던 반투족은 흐트러진 적병들을 작은 단위로 갈라놓았다.
그 순간 들이치는 정예병들의 창칼.
성문 점거에 성공한 병사들은 거대한 도르래를 돌려 성문을 개방했다.
“본대 200미터 앞까지 접근!”
어느새 본진은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제 이곳은 저들에게 맡기면 될 것이다.
한데 그 순간.
아우우우우우우우!
반투족과 함께 들어온 펜리르가 성벽을 울리며 하울링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시스템의 알림이 떠올랐다.
[하울링의 효과로 투지가 상승합니다. 적으로 인식된 대상은 공포에 잠식됩니다.]
시스템은 펜리르의 울음을 특별한 현상으로 구분했다.
마치 마법처럼 말이다.
‘설마 진짜 신수가 되는 건가?’
언령이니 뭐니, 솔직히 절반만 믿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생각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
“우아아아아아!”
갑자기 사기가 오른 병사들은 고함을 지르며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진짜 효과가 있는 것이다.
마법을 쓰는 짐승이라니.
몬스터로 시작된 녀석의 혈통은 신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진화하고 있었다.
이러다 입으로 마법을 난사하는 거 아냐?
폭풍을 부르고 뇌전을 내리 꽂는 구전 속 신수처럼 말이다.
‘그럴게 될지도…….’
마른침을 삼키며 감탄하는 사이.
펜리르의 몸이 어딘가를 향해 날듯이 떠올랐다.
목표는 뭉쳐 있는 적의 작은 무리였다.
며칠 사이 더욱 성장한 펜리르는 거대한 앞발을 휘둘러 적병의 가슴팍을 뜯어내다시피 긁어 버렸다.
하울링에 노출된 병사들은 공포에 잠식돼 우왕좌왕 갈피를 잃었다.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라면 저항조차 힘든 상황.
펜리르는 이름값을 해내며 사납게 날뛰고 있었다.
주인인 나도 질 수 없지.
원기를 품은 해머는 폭탄을 휘두르듯 적병들을 날려 버렸다.
그 와중에 확실하게 느꼈다.
해머와 검은 다르다는 걸.
아직 손대지 않은 스킬 제작은 검기의 난무가 아닌 폭발로 가닥을 잡았다.
‘나에겐 그게 맞아.’
애초에 무기의 기능이 다르지 않았나.
뭉뚝한 해머를 들고 예리한 검기를 날리겠다는 게 멍청한 생각이었다.
생각 없이 좋은 것만 좆는 자의 한계였다.
콰득!
콰드득! 빠각! 콰가가각!
내밀어 오는 방패를 박살 내면서 스킬의 윤각을 잡아 갔다.
빅터가 휘두르던 검술이 아닌 나의 둔기술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빛날 수 있는 모습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심상 속 이미지를 정립한 나는, 어디론가 급히 달려가는 빅터를 보며 흥미진진한 상상을 접었다.
무엇을 쫓아가는 걸까.
더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앞서 달리는 거대한 덩치가 보였다.
혹시 저놈이…….
그놈일지도 모르겠다.
일전에 맞붙었다는 뻐큐라는 녀석.
나 역시 뒤를 쫓고 싶었지만, 지금은 눈앞의 상황에 집중해야 했다.
개미 때처럼 엉겨 붙은 사라센의 병력들.
푸아아악―
외성에 가득한 적들을 터트리며, 조금씩 내성으로 이동했다.
때를 같이해 들려오는 반가운 소식.
“본대가 합류했습니다!”
그에 나는 내성으로 향하는 걸음에 속도를 올렸다.
외성 중앙을 가로지르며 마주치는 놈들에게 해머를 때려 박았다.
한 방에 수십 명이 날아갔으면 좋으련만.
해치워야 할 적이 많아지니 이런 비효율적인 싸움이 꽤나 불편하게 느껴진다.
‘원기 레벨만 올라라.’
스킬 제작은 그때부터니까.
조급해지는 마음을 억누르며 다음 목표를 찾아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찾아냈다.
떡 벌어진 어깨와 두툼한 팔뚝.
뾰족한 철퇴를 거머쥔 놈은 바람을 일으키며 아군의 머리를 날리고 있었다.
평범한 놈은 아니다.
강화 인간도 아니고.
녀석은 왠지 반가운 순수한 오러 유저였다.
콰득! 빠드득!
아군을 박살 내는 놈의 철퇴엔 피와 육편이 지저분하게 얼룩져 있었다.
공중으로 뛰어오른 나는, 원기를 끌어모아 놈의 머리를 향해 해머를 내리쳤다.
‘어?’
찌릿하며 빨려 나가는 대량의 원기.
움찔하는 사이에 놈은 철퇴를 휘둘러 나의 해머에 맞섰다.
하지만 틀렸다.
내가 주춤했을 때 피했어야지.
잘못된 선택을 한 놈의 철퇴가 금빛 해머와 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이어진 결과는 대폭발.
놈은 날아든 파편에 눈이 꿰뚫려 쓰러졌다.
그리고 나의 눈앞엔.
[원기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기다리던 소식이 떠올랐다.
* * *
중지를 치켜든 놈을 쫓아 빅터는 내성까지 따라 들어왔다.
이어진 길을 따라 들어선 곳은 후원. 뻐큐라고 알려진 바스코는 이곳을 통해 어디론가 사라졌다.
“흠…….”
갈 곳이 없음을 확인한 빅터는 검을 쥔 손을 들어 다가올 공격에 대비했다.
순간 시작되는 기습.
카앙―
동시에 후원은 짙은 핏빛 안개로 가득 찼다.
그에 빅터는 피부를 자극하는 저릿함을 느끼며 전방을 향해 크게 검을 휘둘렀다.
와르륵!
검풍에 쓸려간 안개 너머로 무너진 내성의 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오늘은 그때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안개 속에 몸을 숨긴 놈은 빅터를 향해 감탄 섞인 질문을 던졌다.
왜 아니겠나.
겨울의 마법을 받은 빅터는 8성의 경지를 뛰어넘은 상태였다.
바스코의 입장에선 쉽게 맞서기 힘든 상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기습 공격을 이어 갔다.
그에 대항하는 빅터는 안개를 향해 검풍을 일으켰다.
그렇게 지우고.
또다시 피어오른다.
실체 없는 두 사람의 싸움은 변변한 소득 없이 계속되었다.
저렇게 주의를 끌어 빈틈을 찾으려는 모양인데.
콰르르릉!
어림없다.
냉정히 기척을 찾아 움직이는 빅터는 놈이 숨은 곳을 찾아 말도 안 되는 검풍을 뿌려 댔다.
고작 바람 따위로 내성벽이 무너지다니.
검기가 섞인 바람은 마주하는 모든 것들의 형체를 가차 없이 빼앗고 있었다.
쫓고 쫓기는 공방이 계속되던 그때.
순식간에 피어난 안개가 후원을 가득 채우며 짙은 혈향을 뿌려 댔다.
다시 시작되는 놈의 등장.
모습을 드러낸 핏빛의 검이 빅터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하지만 빅터의 검은 바스코의 기습을 가볍게 막아 냈다.
즉시 빅터의 반격이 이어졌고.
콰드드드득―
맞은편에 있던 내성벽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검풍에 휘말린 일대의 안개가 사라지며, 반대편에 선 놈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하지만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후원 전체가 폭발하며 대지가 하늘로 치솟았다.
“커어어어어억!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는 바스코.
“너였구나. 우리 영감님을 괴롭힌 게.”
갑자기 난입한 이반은 미간을 찌푸리며 해머를 치켜들었다.
내 목숨 9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