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그 얘기 들었는가? 어제 밤에 그대의 스승이 큰 싸움을 벌였다고 하던데.”
“어, 들었어. 요란했다고 하더라.”
막사에 들어온 부족장은 좌측 진영에서 벌어진 전투를 화두로 삼았다.
어떤 놈이기에 영감과 대등한 싸움을 했을까.
“듣자하니 접전이었다고 하더군. 퇴각시키긴 했지만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응, 그랬던 것 같아.”
단신으로 스벤의 마법 부대를 전멸시킨 놈이 아닌가.
빅터의 부상 소식까지 있었으니 싸움의 치열함을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녀석은.
“이름이 뭐라고 하더라… 뽀큐? 뻐큐?”
사용하는 이름조차 평범하지 않았다.
“뭐?”
“뻐큐요?”
그에 나와 겨울은 동시 대답했다.
나는 이상해서.
겨울은 뜻을 알고 있어서.
“왜 그런 걸 이름으로 했지…….”
얼굴을 찌푸린 겨울은 갸우뚱하며 홀로 중얼거렸다.
“뻐큐가 뭔데?”
“음… 욕인데요.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할 말을 고르는 걸 보니 보통 욕은 아닌가 보다.
왜 그런 것 있잖은가.
칼부림까지 가는데 한마디면 충분한 그런 것 말이다.
“아무튼 안 좋은 말이에요.”
설명을 포기한 겨울의 모습이 나의 생각을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그런 단어를 이름으로 쓰는 건 제정신인 걸까?
“여기저기 꽤나 설치고 다녔던 것 같더군. 우리도 언제 마주칠지 모르니 준비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얘기를 듣던 부족장은 주의를 당부하며 생각을 보탰다.
“응, 그러자고.”
하여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족장의 말에 대답했다.
이어진 대화의 주제는 놈이 아닌 제나르 성으로 바뀌었다.
“그나저나 저 보호막을 깨야 할 텐데. 생각보다 견고한 것 같군.”
“쌍방 간의 균형이 너무 팽팽해서 그렇지요. 그래도 아케른 성의 마법 부대만으로 이렇게 대치 중인 걸 보면 에르텔의 힘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살짝만 기울어지면 될 것을.
부족장과 테오의 말처럼 이곳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딱히 묘안이 없으니 이렇게 맞대고 있는 것 아니겠나.
주고받는 얘기를 흘려들으며 나는 내 할 일에 집중했다.
지금 저런 대화에 신경 쓸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둔기 마스터리 레벨 7.]
틈틈이 수련한 끝에 숙련도는 6천을 넘겼고, 덕분에 마스터리 레벨이 증가했다.
보상은 기존의 흐름대로 신체 능력이 20% 추가되었다.
누적된 신체 능력 강화의 총합은 이제 45%.
강해졌다는 생각에 기쁘고 흥분되어야 할 지금, 나는 오히려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이유는 바로 이것.
[고유 스킬 제작.]
마스터리 레벨이 7로 오르면서 새로운 기능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시전자의 능력 범위를 참고해 스킬을 제작할 수 있다.
둔기 마스터리 레벨이 오를 때마다 제작 수량이 하나씩 증가.]
이어진 설명에 따르면 뭔가 만들 수 있다는 얘기였다.
‘스킬을 제작한다니.’
당최 감이 오지 않아 막연하지만, 쉽게 생각하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나만의 무술을 만드는 것.
복잡하고 정교한 움직임을 쉽게 행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도와주는 것이다
원기를 운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스킬 제작을 시작하시겠습니까?]
한참을 노려보다 결국 시작을 선택했다.
이렇게 쳐다본들 바뀌는 건 없기 때문이었다.
[원하는 내용을 떠올리세요.]
이렇게 두루뭉술할 수가.
시작된 제작 과정은 처음부터가 당황스러웠다.
너무 광범위한 탓이다.
원하는 게 어디 한두 개여야 떠올릴 것 아닌가.
저 말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선 수십 가지의 형상들이 앞을 다투며 지나갔다.
하나 이 또한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것일까.
정신없이 모여들던 생각들은 하나씩 지워지며 범위가 좁혀졌다.
그렇게 결정된 희망 사항은 즉사!
여러 기술들을 떠올리던 나는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즉사 스킬에 집중했다.
이것만 있으면 끝이잖나.
무조건 죽는다!
이 한 가지 생각만 되뇌며 다음 단계를 기다렸다.
이어지는 과정은 이미지 구현.
[원하는 스킬의 형태를 떠올리세요.]
기술이 어떤 식으로 구현될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죽음이라면 역시 사신이지.’
단순한 진리에 다가선 나는 낫을 휘두르는 사신을 떠올리며 다음 과정을 기다렸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갔고.
[대상의 능력이 부족해 구현시킬 수 없습니다.]
시스템은 나의 생각을 거절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안 된다고 하든가.
투덜거리던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 새로운 상상을 시작했다.
이번엔 빅터가 쓰는 기술이다.
엄청난 검기를 마구 날려 버리는 그런 것 있잖은가.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검기를 떠올리며 제작을 진행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또다시 불가.
[원기의 레벨이 낮아 구현시킬 수 없습니다.]
하고 싶은 건 다 안 되는 기묘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차라리 그냥 완제품을 주지.
상상과 거부를 반복하며 나름의 법칙을 깨달았다.
스킬 제작이라는 건, 현재 할 수 있는 것의 상위 호환 같은 개념이었다.
나의 능력을 바탕으로 혼자선 할 수 없던 걸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고 이해하면 된다.
따라서 뒤에 만들수록 좋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총합과 수준이 더욱 높아져 있을 테니까.
하지만.
[둔기 마스터리 레벨이 오를 때마다 제작 수량이 하나씩 증가.]
스킬 제작 안내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적어도 단발성 보상은 아니란 얘기다.
“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시스템을 바라보았다.
삼신기의 숙련도는 세 가지 모두 육천.
이번 것을 제외하고도 최소한 3번은 더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숙련도 증가 방식이 더욱 힘들어 졌다는 건데.
“당장 편해질 수 있는 적당한 기술과 미래를 위한 투자… 너희들이라면 뭘 택하겠어?”
“당연히 미래죠.”
“나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난 오늘만 산다. 내일 어찌 될 줄 알고.”
겨울부터 시작된 대답은 부족장을 거쳐 별과 테오, 그리고 술에 이르러 끝을 맺었다.
사실 냉소적으로 생각하면 술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인데 무슨 미래를 논하겠나.
따라서 당장 도움이 될 수 있는 걸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보통 사람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나에겐 93번의 회귀가 남아 있지 않은가.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적당한 스킬이라면, 나중에 가선 써먹을 일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더 좋은 걸 놔두고 굳이 하위 호환을 사용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하여 나의 선택은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그것은 바로 성장 가속.
레벨이 존재한다는 것은 위로 올라갈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더럽게 힘들어진 숙련도부터 시작해 각종 내성과 원기에 이르기까지.
시스템을 장식하고 있는 대부분의 항목들은 모두 다 성장이라는 것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빠른 성장!’
‘빠른 성장!’
‘빠른 성장!’
그러한 이유로 나는 주문을 외우듯 한 가지 생각에 집중했다.
[원하는 스킬의 형태를 떠올리세요.]
형태랄 게 있나?
보이는 기술이 아닌데.
잠시 생각하던 나는 형태라는 개념을 다른 쪽으로 바꿔 해석했다.
상시 적용.
매 순간 빠른 성장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형태는 일단 통과.
시스템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발…….’
애먼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하게 성공을 기원했다.
간절한 바람만큼 엄청난 효과로 돌아오길 말이다.
그런 나의 절실함이 통한 걸까.
“좋았어!”
떠오른 문자를 보며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성장 가속.]
이름조차 완벽하게 내가 원하던 것으로 구현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내 미간을 찌푸려야 했다.
‘아씨, 망한 건가.’
이어진 스킬의 설명문이 아리송했기 때문이다.
[대상의 성장률이 1% 증가합니다. 성취도가 증가할 때마다 0.1%씩 효과가 중첩됩니다.
중첩된 성장률 1%]
일단 시선을 자극하는 저 1%라는 글자가 가슴을 후벼 팠다.
100%도 모자랄 판에 1%면 누구 코에 붙이라는 건지.
뒤에 있는 0.1%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무거운 머리를 초고속으로 회전시켰다.
성취도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 정하는 것인가.
저것의 내용에 따라 스킬의 향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해 보면 알겠지.’
막사를 뛰쳐나간 나는 해머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성취도라고 할 만한 것이 삼신기 수련뿐인 까닭이었다.
부아아악―
밤공기를 가르며 거대한 해머가 선을 그었다.
같은 자리를 따라 다시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한 번에 하나씩 오르던 숙련도는 이제 열 번 내외로 휘둘러야 증가했다.
동작의 완성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점차 까다로워진 탓이었다.
어쨌거나 숙련도는 올랐고.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밤하늘을 올려 보며 미친놈처럼 웃어 댔다.
“노숙 며칠에 저렇게 맛이 가다니… 새벽이슬이 이렇게 위험한 거다.”
“저도 좀 무섭군요.”
뒤를 따라 나온 술과 테오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수군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해서 웃었다.
이걸 보고도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한 놈이다.
[성장률 1.01%]
숙련도 1이 불러온 결과는 성장률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려치기 하나만 1,000번을 반복해야 하는데, 저걸 다하면 100% 증가한다.
나머지 두 개를 더하면 300%.
둔기 마스터리 레벨 8에 이르면 나의 성장률은 3배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거 완전 미쳤잖아?!’
숙련도 10,000을 다 찍게 될 경우 900%가 추가되어 총 1,200%.
성장률은 12배로 증가하게 된다.
그사이 누적된 성장률로 인해 숙련도는 더욱 빨리 오를 테니, 아닌 말로 해머질 한 번에 숙련도 하나씩 오르던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저 인간 갑자기 왜 저러는 건가?”
의뭉스런 시선을 받으며 나는 미친 듯이 해머를 휘둘러 댔다.
* * *
다음 날 아침.
“허억!”
막사의 문을 열고 나온 술은 경기를 일으키며 뒤로 물러섰다.
입구에서 훈련 중인 내 모습에 놀란 것이었다.
“밤새도록 이러고 있었단 말인가?”
연이어 나오는 사람들은 감탄과 황당함을 오가며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라도 예외 없이 말이다.
“와… 이것은 집착일까요, 아니면 집념일까요?”
마지막에 나온 겨울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아니다.
그냥 신난 거다.
누적되는 성장률 수치는 초심을 잃어가는 나에게 엄청난 동기부여를 심어 줬다.
밥 먹다 말고 해머를 휘두르던 그때의 열정과 두근거림.
익숙함이 가져다준 나태라는 껍질이 성장 가속의 등장과 함께 지워져 버렸다.
마차를 끌던 때로 돌아간 나는 더욱 빠르고 강해진 몸을 혹사시켜 아침이 밝도록 해머를 휘둘렀다.
지치지 않는다.
원기를 사용하는 나의 몸은 하룻밤의 불면을 피곤이라 생각지 않았다.
근원을 알 수 없는 흥분이 몸을 채우고, 그런 나의 두 팔은 광기를 띄우며 해머를 내질렀다.
그렇게 한낮이 지나가고.
“저러다 죽는 거 아니야?”
다시 어두워지도록 훈련은 계속되었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모든 생각에서 벗어난 무아의 상태에 이르렀다.
귓가에 어리는 거친 숨소리만 반복될 뿐.
어느 순간부턴 누적되는 성장률조차 바라보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기이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의 표정에 걱정과 근심이 쌓여 가더니, 급기야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해 새벽을 함께 지새웠다.
그렇게 찾아온 밤이 지나 다시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성장률 300%]
둔기 마스터리 8레벨을 만든 나는 기절하듯 쓰러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내 목숨 99개